FC 바이에른 뮌헨
1. 개요
독일 분데스리가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독일 바이에른 자유주 뮌헨. 홈 구장은 알리안츠 아레나.
'''UEFA 3대 메이저 대회 우승[20] , 트레블[21] , 유러피언컵 3연패[22] 를 모두 달성한 두 팀 중 하나'''[23] 이자, '''6관왕과 2회의 트레블을 기록한 유이한 클럽'''[24] 이다. 거기에 11만 여명의 멤버십 회원들을 보유,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유럽 최대급의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우승 경력, 수많은 레전드, 고고한 전통, 안정적인 유스 시스템까지 갖춘 바이에른 뮌헨은 명실공히 독일 최고 명문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좀처럼 거액의 이적료를 지출하지 않고 합리적인 흑자 경영을 하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며, 타구단에서 자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공언할 정도이다.
구단 이름인 FC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이름 (바이에른 주 뮌헨)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보통 바이에른이라 부른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이 뮌헨이라는 도시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팀으로써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1870년에 통일되기 이전까지 여러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나눠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다. 같은 뮌헨을 연고지로 하는 클럽인 TSV 1860 뮌헨이 40여년 앞선 시기에 창단되기는 했지만, 1960년대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뮌헨의 대표클럽은 바이에른 뮌헨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뮌헨 시와는 다르게 바이에른 주는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은 보수적인 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25] 과 '주의 클럽'과 '주의 정당'으로서의 연합을 맺고 역사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바이에른 주의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원어 발음으로 'Bayern[ˈbaɪ̯ɐn]'은 바이언, 또는 바이안에 가깝다 독일어에서 r이 음절의 끝에 올때 '아', '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München[ˈmʏnçn̩]'에서 'Mün'은 '뮌'과 '뮨'의 중간정도 발음, 'chen'은 '혠, 현(히엔, 히언, 히은)'과 '셴, 션(시엔, 시언, 시은)'의 중간 정도 발음인데,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셴, 션'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는 바이언 뮤닉(Bayern Munich).
UEFA 챔피언스 리그/2017-18 시즌에서 조추첨자로 토티가 나와 추첨을 하는도중 '바이에른 모나코'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고 중계중이던 캐스터가 토티도 긴장을 하나보다 라며 틀렸다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 했는데, 틀린 표현이 아니다. 이탈리아어로 뮌헨을 '''모나코'''로 표기하기 때문.[26] 다만 'FC Bayern' 부분은 다른 유럽 언어에서도 고유명사로 보아 Bavaria(영어), Bavière(프랑스어), Baviera(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으로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Bayern으로 쓴다.[27]
'Die Roten'이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상징색은 붉은색이며, Rot und Weiß (붉은색 & 흰색)로 대표되는 이 팀의 고유한 컬러는 1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2010년대[28] 에는 독일 클럽 최초의 트레블에 2013년 한 해 5관왕, 분데스리가 8연패 및 최단 기간 우승 등 독일 내 온갖 레코드들을 갈아 치웠다. 이후 펩 과르디올라가 전성기의 스쿼드를 물려받았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실망스런 성과[29] 를 내고 떠난뒤, 결국 니코 코바치 후임인 한지 플릭 체제로 2019-20 시즌 또다시 트레블을 무려 챔스 전승 우승으로 이뤄내며 2010년대를 눈부신 팀의 세 번째 전성기[30] 로 장식하고 있으며,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던 70년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또한 2019-2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승 우승'''[31] 으로 2번째 트레블을 이룩했고 뒤이어 UEFA 슈퍼컵, DFL-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제패해 6관왕을 달성, 멈추지않는 성공 시대를 질주하고 있다.[32]
독일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리그 내 대항마가 없다시피 해서 그런지 그만큼 안티도 많은 편이다.[33]
축구 뿐만 아니라 농구, 핸드볼, 탁구, 볼링, 체스팀도 운영중이다.[34]
2. 스쿼드
2.1. 1군 스쿼드
2.2. 임대 명단
2.3. 리저브 팀 스쿼드
2.4. 유소년 팀 스쿼드
2.4.1. U19
2.4.2. U17
2.5. 코칭스태프/지원스태프
3. 클럽 역사
-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3.1. 클럽 관련 인물
4. 특징
바이에른 뮌헨의 확고한 프라이드가 잘 보이는 문장이다.[35] 실제로 바이에른 뮌헨을 구성하는 보드진들은 거의 구단 출신의 레전드로 채워져 있고, 명예 회장, 현직 회장, 사장, 단장까지 모두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던 선수들이다. 거기다 전문 경영인이 아닌 구단의 레전드 선수들이 경영자로서 활동함에도 2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건실한 운영을 보여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바이에른의 구단 운영과 레전드 대우에 대해서 극찬한 바 있으며,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등 유수의 명문 클럽들도 바이에른 뮌헨의 재정 운영 모델을 참고하여 구단 운영을 개선하고 있다.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바이에른 뮌헨 위로의 진보는 없다.'''
'''- 프란츠 베켄바워'''
4.1. 선수단 정책
소위 빅 클럽 중에선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자국 유스 활용도가 가장 높은 클럽'''으로 바이에른 유스 출신 선수들은 숨가쁜 영입 러쉬 속에서도 꾸준히 중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수준급의 유스 배출을 자랑한다. 일단 가장 대표적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인 프란츠 베켄바워를 필두로 게르트 뮐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제프 마이어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세계 최정상급의 풀백인 필립 람을 필두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마스 뮐러, 토니 크로스, 홀거 바트슈투버, 데이비드 알라바, 마츠 후멜스 같은 선수들이 모두 바이에른 뮌헨 유스 출신이다. 이 정도면 FC 바르셀로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유스 발굴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언제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08-09, 10-11시즌 막장의 주역들이 있다.
바이에른의 유스 아카데미는 선수들에게 단 하나의 포지션만을 가르친다. 또한 유스 팀의 경우 전통적으로 미드필더를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한 4-4-2 포메이션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스 선수들의 경우 포지션 변환이 빈번하고 그 때문에 자리를 못 잡는 여타 어린 선수들을 보면 이 쪽이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추후 팀의 필요에 따라 변형적으로 기용해서 선수의 적응도에 따라 포지션을 변환하는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윙어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풀백에서 중앙 미드필더 /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필립 람, 중앙 미드필더에서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데이비드 알라바[36]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수를 영입할 때의 선수단 정책도 굉장히 특이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돈을 잘 안 쓰고 아낀다. 2007년까지는 선수를 영입할 때의 상한선을 정해 놓을 정도였는데, 이 상한선은 고작 2,000만 유로였다. 현대 축구에서는 그리 높은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은 계속해서 이 상한선을 고수해왔다. 사실 이러한 처사가 2000년대의 암흑기를 불러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것을 처음으로 깬 사례가 바로 프랑크 리베리의 영입이다. 2,500만 유로를 투자해 프랑크 리베리를 영입한 이후에는 몇 년마다 한번씩 '''분노의 영입'''을 진행하여 많은 돈을 투자해서 스쿼드를 대폭 개편하는 모습도 보인다.
반대로 선수를 이적료를 비싸게 받으려고 파는 일도 많지 않다. 특히 팀의 주축 선수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전통적으로 오히려 주축 선수와의 계약 만료가 가까워 왔다 하더라도, 이적료를 받고 팔기보다는 계약 만료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루시우 등의 선수가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이적을 보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리베리를 영입하고자 레알 마드리드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하였을 때에도, 바이에른 뮌헨 단장은 계약 만료 후 자유 이적으로 보내주는 일은 있어도, 이적료를 받고 팔지는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을 정도다.[37][38]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유연해진 듯 하다. 예를 들어 토니 크로스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둘 다 이적료를 받고 주전 선수를 다른 클럽에 판매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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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수단의 주급 체계도 매우 엄격하다. 오직 경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주급을 책정한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2007년부터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 온 프랑크 리베리와 유스 시절때부터 무려 20여년을 팀을 위해서 헌신한 주장 필립 람과 지금은 시카고 파이어로 이적했지만 17년을 팀과 함께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같은 선수들이 상위에 있었다. 단, 최근에는 이 주급 체계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마리오 괴체와 티아고 알칸타라의 영입 과정에서 그 논란이 불거졌다. 마리오 괴체가 독일 최고의 재능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계약할 때부터 12m이라는 팀 최고 주급을 줘야 했느냐에 대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또 티아고 알칸타라도 8m이라는 팀 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주급을 받으며 원성을 샀다. 게다가 주급 협상 과정에서 최고의 재능이었던 토니 크로스를 잃은 바 있기 때문에 더더욱 논란이 되었다. 아무튼 바이에른은 절대로 과소비를 하지 않으며[40] 최대한 돈을 아낀다. 하지만 소비 정책을 비난하는 팬들은 없다. 이러한 소비 정책이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바이에른 뮌헨의 재정 상황을 만들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보드진은 '''협상의 달인'''의 면모를 보이며 이적 시장때 마다 싼 가격에 이적을 성사시켜 '''저소비 고효율'''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르연 로번, 루이스 구스타부, 단테, [41] 같은 선수들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아르투로 비달의 영입 또한 3,7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성사시키며 진짜 협상의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심지어 네이마르, 우스만 뎀벨레, 킬리앙 음바페 등의 초고가 이적으로 이적시장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운 2017년 여름 시장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헐값[42] 에 데려오는 등 달인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43]
4.2. 분데스리가 내의 선수 영입
2000년대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내 라이벌 팀으로부터 주력 선수를 영입한 사례 모음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역대 우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팀이다. 바이에른은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 내에서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정책을 펴왔다. 바이에른 자체 내의 유스 시스템도 잘되어 있기 때문에 유스 출신의 선수도 많지만, 리그 내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독일 선수들 역시 대부분 제2의 국대라 불리는 바이에른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 바이에른이 사실상의 독일 국대라고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아무리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독일 선수가 아니면 가급적 뽑지 않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분데스리가 출신을 뽑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때문에 타 리그에서 선수를 영입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거의 언제나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 국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유럽의 다른 국대들이 식민지 출신의 흑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한 것과 달리 독일 국대는 2000년대 후반까지 오랫동안 독일 순혈을 유지해왔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바이에른의 이러한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 출신의 영입 비중이 높다.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더라도 타리그보다 분데스리가 출신들을 선호하는 것도 여전하다.
바이에른이 자국 출신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것 처럼 분데스리가 선수들도 타 리그의 명문 팀에서 뛰는 것보다 바이에른에서 뛰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이 아닌 팀에서 뛰는 것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마저 존재했다. 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44] 에서 활약한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이 때문에 모국 독일에서는 탈영병 취급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에른에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해서 활동했던 로타어 마테우스는 독일 선수들이 너무 분데스리가에서만 뛰려 하고 있다면서 타 리그에서도 활동하는 것이 독일 축구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피력할 정도였다.[45] 미하엘 발락의 이적도 독일 축구의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준다. 미하엘 발락이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성장한 후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하엘 발락이 바이에른에서 첼시 FC로 이적할 때는 졸부 구단 첼시의 돈의 유혹 앞에 바이에른 선수로써의 명예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누엘 노이어의 이적 일화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샬케에서 활약하던 마누엘 노이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지만 "나의 목표는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는 것. 해외여행은 일년에 한두번이면 충분하다."이라고 말하면서 퍼거슨 감독의 구애를 뿌리쳤고, 결국 나중에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반면에 분데스리가는 프리미어 리그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기 바이에른이 강팀의 반열에 자리한 가운데, 다른 한 두 팀이 그때 그때 바이에른에 도전하는 형국을 보여왔기 때문에 리그 내에서 장기적인 바이에른의 라이벌은 사실상 없다.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선수들이 제2의 국대로 불리는 바이에른으로의 이적을 원하고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점은 프리미어 리그와는 분명한 문화적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입 정책 때문에 바이에른의 역대 레전드들을 보면 독일 내 다른 팀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오랜 라이벌인 팀인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인 로타어 마테우스, 슈테판 에펜베르크 등이 대표적이다.
레버쿠젠의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루시우 페헤이라,[46] 베르더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베르더과 함부르크에서 본좌놀이 했던 대형 센터백 발레리 이스마엘과 다니엘 반 바이텐, 영입 당시 독일축구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던 마리오 고메스까지. 90년대 후반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그나마 과감한 자금 투자로 견제했지만 2000년대 초반 재정난으로 무너진 이후에는 딱히 경쟁자가 없었다. 미하엘 발락이 떠나고 잠시동안 슈투트가르트, 베르더 브레멘 등이 떠오르면서 리그 우승도 뺐겼지만 다음 시즌에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며 루카 토니, 클로제, 프랑크 리베리등을 보강해서 다시 리그를 지배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주전 선수들이 차례로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면서 충성심 높은 도르트문트의 팬들이 광분하기도 했다. 또한 라이벌 팀 간에 선수 이적이 드문 잉글랜드 등 해외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것처럼 정상급의 유망한 선수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는 것은 분데스리가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실 도르트문트 역시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의 주축 선수들을 빼오면서 스퀴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다.
'''2012-13 시즌 종료 직전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마리오 괴체를 영입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유럽의 이적 가운데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경우였다. 갑자기 뜬금 없이 4월 23일에 빌트지가 그 유명한 '''빌트는 알고 있다''' 라는 문구를 앞세워 독점 보도를 터트리며 마리오 괴체의 바이에른 이적이 완료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47] 이후 도르트문트 지역의 지역지부터 결국 키커 까지 이 사실을 보도하며 사실상 이적이 확정되었다. 결국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공홈에서 '''마리오 괴체의 바이에른 이적을 알렸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그 전까지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고, 마리오 괴체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스 출신이었다.[48] 게다가 독일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 받던 선수가 갑작스럽게 바이에른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팬들에게 '''유다 (Judas)''' 라는 비난까지 들었다.[49]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라이벌 흔들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겹쳐서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특히 당시는 바이에른이 회장 울리 회네스의 장기간에 걸친 탈세가 적발되어서[50] 팀의 핵심이자 팀의 미래인 마리오 괴체의 이적이 바이에른 구단측에서 흘러나온 것은 이를 묻기 위해서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게다가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이 진행중이던 1월 5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의 계약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1경기 4골''' 을 넣은 뒤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떠올랐으며, 떠난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보도되면서 최고의 매물로 떠올랐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유럽 최고의 구단들이 계속에서 밑물 작업으로 유혹했지만, 유럽의 12개 구단[51] 의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시절 '''드림팀'''이었다던 바이에른에 합류했다. 그러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은 마리오 괴체의 이적과는 달리 매우 훈훈했는데, 이유는 이미 이적 1년전부터 사실상 이적이 확정된 분위기였고[52]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는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고별식까지 열렸다.
'''2015-16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또다시 에이스를 영입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르트문트의 중앙수비수 마츠 후멜스.''' 훈훈한 마무리를 가진 레반도프스키와는 정반대로 후멜스는 팀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강한 마찰을 빚었는데다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에게 팬 자격이 없다 발언하는 등 적반하장스러운 면을 보였고,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는 등 감정이 좋지 않은 이별을 했다.[53] 바이에른이 괴체, 레반도프스키, 이제는 주장인 후멜스까지 국가대표 선발선수 3명을 3년만에 같은 팀에서 빼앗아 가니 도르트문트 팬들이 화날수 밖에 없기는 하다. 내년엔 로이스와 뎀벨레를 데려갈 것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도르트문트,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샬케04, 베르더 브레멘과 같이 바이에른의 우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팀[54] 출신 선수나 감독들이 반 바이에른파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위르겐 클린스만이나 토르스텐 프링스, 오토 레하겔은 이런 예에 속하면서도 바이에른에 몸 담은 적이 있었다. 바이에른에 있었던 적이 있지만 이들이 바이에른과 결별했을때는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56]
한편 선수 방출도 상당히 냉정한 편이다. 빅클럽들이 선수를 방출하는게 냉정하긴하지만, 위의 렌징의 예도 그렇고 바이에른은 특히 냉랭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리베리, 클로제, 루카 토니를 한꺼번에 사온 '''분노의 영입'''을 벌일때도 클럽에 충성해오던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였다. 클라우디오 피사로, 로이 마카이, 하산 살리하미지치, 로케 산타 크루즈 등을 냉정히 쫓아내었다.[57] 그래도 메멧 숄, 올리버 칸, 비셴테 리사라수, 필립 람 등 바이에른에서 은퇴한 선수들도 나름대로 많은 편이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경우, 전성기를 이 팀에서 보냈고, 구단 올타임 베스트 11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사실상 레전드격인데도 불구하고 반 바이에른파이다.[58] 마테우스의 경우 구단 올타임 레전드로 뽑히는 위상을 가졌으나, 문제는 은퇴 후 바이에른 보드진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회장 울리 회네스가 '로타어 마테우스는 이제 바이언으로 돌아와도 잔디 관리사의 직위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인터뷰 했을 정도이다. 바이에른의 레전드 대우는 세계 최고라고 봐도 무방한데도 말이다. 이는 사실상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타어 마테우스는 은퇴 이후 여러 번 구설수에 휘말렸기 때문에 그의 반 바이에른 성향도 그다지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여러 군데에서 감독을 맡았지만 모두 실패하기도 했다.
4.2.1. 리그 경쟁력 약화에 대한 비판
하지만, 아무리 선수 본인이 원하고, 리그 전체의 분위기가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하더라도 이러한 바이에른 중심의 이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유럽 굴지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독일의 프로리그가 리그 경쟁력과 상업력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다소 밀리는 것에 대해서는 바이에른의 리그독식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오래전의 묀헨 글라드바흐의 예시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만 하더라도, 바이엘 04 레버쿠젠, 베르더 브레멘, 함부르크 SV, VfB 슈트트가르트 등 강팀들이 선전을 한 이후에 그 다음 시즌 주축 선수들을 바이에른에게 빼앗기면서 몰락하였고, 결국 그 중에 슈투트가르트는 결국 하위권을 전전하다 강등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주축 선수들의 바이에른으로의 엑소더스가 진행 중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물론이거니와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세바스티안 루디와 같은 분데스리가에서 주목할만한 자원, 혹은 이미 검증된 자원을 압도적인 주급과 클럽의 위상을 버무려 무려 '자유계약'으로 데려오는 악랄한 이적정책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어려운 분데스리가 특성상 선수 이적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바이에른의 경우 주축 선수들을 꽤 염가로 사온다는 거. 저 위의 주축 선수들이 다른 리그로 갔으면 훨씬 많은 이적료를 구단이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독일 축구의 잘 갖춰진 시스템으로 유망주를 잘 육성하면서 버텨왔는데 맨시티와 PSG, 레알 마드리드 등 다른 리그 구단들이 이 선수들 몸값을 말그대로 폭등시켜 놓은 상황에서 바이에른이 자국 리그의 선수들을 자꾸 염가로 빼가면 선수 빼앗긴 구단은 선수 보충이 갈수록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유망주라는 게 항상 터져주는 것도 아니다.
4.2.2.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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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축구계에서 중소 클럽의 선수들이 더 나은 조건과 트로피를 찾아 보다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피해자로 묘사된 도르트문트는 위르겐 클롭과 토마스 투헬과 같은 감독으로부터 시작해서 네벤 수보티치와 박주호까지 많은 핵심 선수들을 마인츠로부터 영입한 데 이어 바이에른보다도 리그내 선수영입을 많이 하는 구단이고[59] 레버쿠젠은 함부르크에서 3년 연속으로 핵심 선수들[60] 을 영입했다.
EPL에서는 퍼거슨 시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라이벌 팀 아스날에서 반 페르시를 빼가며 우승을 따냈지만 퍼거슨의 위명과 아스날의 당시 부진으로 묻힌 감이 있다. 사실상 아스날의 마지막 에이스라 할 수 있는 반 페르시를 빼가면서 해당 시즌 반 페르시를 뺏긴 아스날은 리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거세게 추격하는 맨체스터 시티를 제외하면 리그에서 라이벌이 없었다. 그로 인해 여유롭게 우승을 거머쥔 감이 있다.
또한 15-16 시즌 기적적인 우승을 이뤄낸 레스터 시티에서 은골로 캉테를 영입한 첼시,[61] 사우스햄튼 FC의 선수 6명[62] 를 영입한 리버풀까지 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라리가에서는 말라가로부터 잘 나가던 시절에 이스코를 영입해 온 레알 마드리드나 유로파리그 3연패를 달성한 세비야에서 이반 라키티치와 알레이스 비달을, 그리고 레알과 바르사의 2강 체제를 위협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아르다 투란을 영입해 온 FC 바르셀로나가 있다.
세리에 A에서는 미랄렘 퍄니치,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곤살로 이과인, 주앙 칸셀루, 다니엘레 루가니, 파울로 디발라, 스테파노 스투라로, 마티아 칼다라 등 리그내 탑클래스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끌어모은 유벤투스가 있다.
또한, 바이에른이 해당 선수들을 영입해와서 리그의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는데 과연 해당 선수들이 바이에른으로 이적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분데스리가에 남았을 것이냐는 문제이다.
분데스리가는 기본적으로 '''50+1 규정'''에 의해 대량의 자본이 들어서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이때문에 대다수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셀링 클럽의 기조를 띄게 된다. 굳이 바이에른 때문이 아니더라도 분데스리가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은 원 소속팀을 떠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실제로 오스만 뎀벨레,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 세아드 콜라시나츠, 그라니트 자카, 율리안 드락슬러, 막스 마이어 등 양질의 선수들이 분데스리가를 떠났다.
샬케에서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레온 고레츠카의 사례를 보면 파리 생제르맹,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타 리그 클럽들과 연결되다가 마지막에 바이에른을 선택한 케이스로 만약 바이에른이 영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 소속팀 샬케에 잔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바이에른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사장은 바이에른이 이득보고 있는 이 50+1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2018년 3월 50+1 규정의 폐지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제도 유지가 결정되자 인터뷰에서 "이날 나는 DFL과 작별을 고했다."라고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4.3. 라이벌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의 판도는 절대강자 바이에른 뮌헨과, 그에 대항하여 5~10년 주기로 라이벌팀이 등장해 시대를 양분하는 양상이었다. 최근에 분데스리가의 강호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로 평가받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함부르크 SV을 꼽을 수 있다.
70년대의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였다. 묀헨글라트바흐는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라이벌이었다. 7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71-72, 72-73, 73-74 세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으며, 이 여세를 몰아 74년부터 76년까지 3년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챔스 전신)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 시절 바이에른을 위협했던 묀헨글라트바흐는 69-70, 70-71, 74-75, 75-76, 76-77 시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두면서 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보다 더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함부르크 SV가 득세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도르트문트가 부상하여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정상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나 지나치게 전력을 짜낸 후유증으로 곧 추락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SV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후반에는 FC 샬케 04, 그리고 2010년대에는 다시 도르트문트가 화려하게 부활함에 따라 더비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특히 2012 - 2013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가 맞붙게 되자, 엘 클라시코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찾던 해외 언론들이 엘 클라시코를 독일어로 번역한 데어 클라시커라는 말을 급조하여 앞다투어 사용하면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 현지에서는 데어 클라시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도 않고 두 팀간의 특별한 라이벌리도 없다.
널리 알려진 더비전으로는 우승순위 1, 2위를 차지하며[63] 같은 바이에른 주에 연고하는 1.FC 뉘른베르크와의 '''바이에른 더비'''[64] , 바로 옆동네에 있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쥐트도이치 더비 (남독일 더비)''', 지금은 하위 리가를 전전해서 잊혀졌지만 같은 뮌헨을 연고로하는 독일 최초의 클럽 TSV 1860 뮌헨과의 '''뮌헨 더비'''등이 있다. 1960년까지만 해도 TSV 1860 뮌헨이 바이에른 뮌헨 위상 못지 않은 명문 클럽이었기에 더욱 치열했던 더비전이었다.
한편 유럽 대항전에서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CF가 최대의 라이벌로 꼽힌다. 이 두 팀은 유럽 무대에서 많은 경기나 치렀고 상대 전적에서 바이에른은 마드리드에게 11승 3무 12패로 근소한 열세이다. 이외에도 FC 바르셀로나, 리버풀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아스날 FC, AC 밀란,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유럽 유수의 명문 구단들과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같은 바이에른주의 지역 더비 라이벌 관계였던 1.FC 뉘른베르크와 VfB 슈투트가르트가 모두 강등당한 상태라 2011년에 승격해 1부리그에 자리잡은 FC 아우크스부르크가 새로운 지역 더비관계로 떠오르고 있다.[65] 아우크스부르크는 13-14시즌 후반기 바이에른의 53경기 무패 행진에 제동을 걸었던 바 있다.[66]
4.4. 바이에른 스쿼드 = 독일 국대 스쿼드(?)
특히 유로나 월드컵 직전 시즌에 주로 생기는 떡밥. 바이에른에서 주축을 담당하는 독일국적 선수들은 모두 독일 국대에서도 활약하는 현상. 회네스 구단주의 속내일수도 있겠지만 분데스리가의 선수들이 꿈꾸는 최종목표가 대부분 '''바이에른 뮌헨 입단'''인 것에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60년대 후반에 바이에른이 분데스리가의 강팀으로 자리잡으면서 시작되었고, 1972년 유로와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확고해졌다. 74년 우승당시 서독 국대 스쿼드는 주장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비롯해 수문장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뮐러, 울리 회네스, 파울 브라이트너,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 등 무려 7명의 주전이 바이에른 소속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파들이 등장하면서 잠재워지나 했더니 2010년대 들어와서 이 조짐이 부활했는데, 특히 유로 2012 직전 시즌이었던 11 - 12시즌 당시 공격진부터 마리오 고메스 - 토마스 뮐러 - 토니 크로스에 중원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거기에 수비진 필립 람 - 제롬 보아텡 - 홀거 바트슈투버가 그대로 국가 대표 스쿼드였으며, 여기에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까지 있었다. 게다가 독일의 주장, 부주장은 필립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였고, 바이에른의 주장과 부주장 역시 필립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다.[67]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샬케, 도르트문트 등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해외파 선수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 현상도 줄어드나 싶더니 대회 직전 마르코 로이스의 부상, 허리부상으로 일찌감찌 시즌아웃된 일카이 귄도간, 그리고 역시 부상으로 벤더 형제마저 못 나오자 다시 독일국대는 바이에른 천국이 되어버렸다. 주전 라인업 중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뮐러, 마리오 괴체 무려 7명이 바이에른 선수로 채워졌다. 그리고 독일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하인케스 감독이 물러나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 이후 비독일인 선수들이 상당수 유입되어 예전에 비해 독일 국적 선수들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과르디올라 체제 3년과 안첼로티의 첫 시즌인 2016/17 시즌까지 4년의 기간동안 바이에른에서는 팀의 주전인 동시에 독일 국가대표 선수인 마리오 고메즈,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이 떠나고, 티아고 알칸타라(스페인), 아르투로 비달(칠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 후안 베르나트(스페인), 킹슬리 코망(프랑스), 더글라스 코스타(브라질), 헤나투 산체스(포르투갈) 등 주로 스페인어권을 필두로 한 외국 용병들이 스쿼드 대부분을 메워 외국인팀으로 변해갔다. 물론 중간중간 요주아 키미히나 마츠 훔멜스 등이 합류했으나 유프 하인케스 시절이나 이전의 히츠펠트 시절에 비하면 외국인 비중이 굉장히 커졌다. '''16/17 시즌에는 공격진 및 미드필더진 주전 중 독일 국가대표 선수는 0명이었으며'''[68] 그나마 수비 라인이 보아텡-훔멜스-람에 마누엘 노이어가 포진해 독일 국대의 수비력을 이식한 형태였다. (그나마도 보아텡의 잦은 부상으로 대부분 하비 마르티네스가 선발이었다.)
그러나 울리 회네스 회장이 팀에 복귀하자 현재 바이에른의 영입 노선은 다시 독일의 색채를 더하는 정책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회네스는 젊은 독일선수들 위주의 리빌딩을 구상하고 있으며, 히츠펠트 감독 또한 바이에른에는 너무 많은 외국인 용병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바이에른이 유럽을 제패하며 전성기를 구가할 때에는 항상 독일 최고의 선수들이 바이에른에 모여있었다. 16/17 겨울 이적시장을 포함해서 2017/18 시즌을 앞둔 현재 바이에른의 이적시장을 보면 니클라스 쥘레, 제바스티안 루디, 세르지 나브리 같은 독일 유망주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다시금 2001년과 2013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리빌딩에 이미 착수하기 시작했다.[69] 이들 뿐만 아니라 율리안 브란트, 레온 고레츠카 등 현재 컨페드 컵에서 활약중인 독일의 영건들도 바이에른과 강력하게 링크되고 있으며, 이 중 고레츠카는 결국 바이에른 이적이 확정되었다.
4.5. 조직과 재정
바이에른 축구 클럽은 자회사인 FC 바이에른 뮌헨 AG에 의해 운영된다. 정확히 말하면 AG는 Aktiengsellschaft, 즉 주식 회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주식 시장에는 상장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적인 회사이다. 회사 주식의 대부분은 모 구단인 FC 바이에른 뮌헨 e.V (흔히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대표되는) 이 보유하고 있다.[70] FC 바이에른 뮌헨 e.V 는 남자 축구 (1군 팀, 2군 팀, 유소년 팀), 여자 축구, 농구, 볼링, 체스, 체조, 핸드볼, 탁구, 축구 심판부, 올드 보이 선수단을 두고 있다. 이 중 80% 이상의 지분을 남자 축구단이 차지하고 있다. 모 구단인 FC 바이에른 뮌헨 e.V 가 보유한 75%의 주식 이외의 주식들은 스폰서십을 맺은 대기업들에게 있다. 아디다스가 8.3%, 아우디가 8.3%, 알리안츠가 8.3%를 소유하고 있다.[71]
FC 바이에른 뮌헨 e.V 에는 모든 선수단을 관리하는 관리 자문 위원회가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축구단을 운영하는 자회사인 FC 바이에른 AG 또한 이 관리 자문 위원회의 산하에 있고 이들에 의해서 통솔되는 것이다. 바이에른의 상징적인 인물인 울리 회네스가 1979년에 클럽 디렉터로 합류한 이후 2009년에 이 관리 자문 위원회의 회장직에 올랐었다. 그야말로 반평생을 바이에른에서 일하며 클럽의 재정적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전임은 1994년부터 2009년까지 회장 역할을 역임한 프란츠 베켄바우어.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명예 회장이 되었지만 명예 회장은 실질적인 영향력은 없다. 다음은 이 FC 바이에른 뮌헨 e.V 의 관리 자문 위원회 명단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e.V 관리 자문 위원회'''
회장 : '''울리 회네스''' (Uli Hoeneß)[72]
부회장 : '''디터 마이어''' (Dieter Maier)[73]
자문 위원회장 및 집행 위원회 회원 : '''헤르베르트 하이너''' (Herbert Hainer) / 아디다스의 CEO
자문 위원회 부회장 및 집행 위원회 회원 : '''루퍼트 슈타들러''' (Rupert Stadler) / 아우디의 CEO
수석 부회장 및 집행 위원회 회원 : '''루돌프 셸스''' (Rudolf Schels)
집행 위원회 회원 : '''티모호이스 회트게스''' (Timotheus Höttges) / 도이체 텔레콤의 CEO[74]
집행 위원회 회원 : '''헬무트 마크보트''' (Helmut Markwort) / <Focus>[75] 의 창간인이자 편집장
집행 위원회 회원 : '''디터 람플''' (Dieter Rampl) / 유니 크레디트[76] 의 회장
집행 위원회 회원 : '''에드문트 슈토이버''' (Edmund Stoiber) / 전 바이에른 주의 총리,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의 당수, 독일의 거물 정치인
집행 위원회 회원 : '''마틴 빈터콘''' (Martin Winterkorn) /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77]
그리고 FC 바이에른 뮌헨 e.V 의 관리 자문 위원회와는 따로 FC 바이에른 뮌헨 AG에도 운영진이 있는데, 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드진이다. 바이에른의 보드진은 대부분이 팀의 레전드 선수 출신이거나 아주 오래전부터 일해와서 구단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사람들이 많다. 다음은 FC 바이에른 뮌헨 AG의 보드진 명단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AG 보드진'''
CEO[78] : '''칼 하인츠 루메니게''' (Karl - Heinz Rummenigge)[79]
부사장 및 재무 이사 : '''얀 크리스티안 드레센''' (Jan-Christian Dreesen)
스폰서 및 광고 담당 이사 : '''안드레아스 융''' (Andreas Jung)
프로 선수팀 담당 이사 (단장 / 스포팅 디렉터) : '''하산 살리하미지치''' (Hasan Salihamidžić)
국제화 및 전략 담당 이사 : '''외르크 바커''' (Jörg Wacker)
2007-08 시즌의 매출은 2.1M유로의 세금을 제외하면 328.4M을 기록하였고, 2008-09 세금을 제하고 303.8M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델로이트의 풋볼 머니 리그에 의하면, 바이에른은 2009년에 €289.5M의 매출을 기록한 4번째 부자 클럽이라고 발표되었다. 또한 유럽 매출 Top 10 구단 가운데 가장 부채 액수가 적으며, 동시에 가장 재정 안정도가 높다. 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출전에 따라, 클럽의 브랜드 가치는 $786M으로 상승하였고, 이는 전년도 대비 59% 상승한 수치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 가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600M 가치를 넘어섰고, $853M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뒤를 이어 이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2013년은 트레블에 한 해 5관왕의 업적을 이루는 등 우주 최강의 위엄을 뿜어낸 덕택에 832M로 '''브랜드가치 1위를 탈환했고''', 2014년에도 챔스우승팀 레알 마드리드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위자리를 유지했다. 어쨋건 대부분의 거대 클럽들이 적자인 마당에 2년 연속 흑자를 기록중인데다, 올 시즌 구단의 머천다이징 수입은 지난시즌의 두 배에 달하는 1억 유로를 내다볼 정도로 마케팅 능력도 탁월하다. 또한 최근의 구단 수입 발표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세번째 자리를 차지했는데, 여기서 TV 중계권료를 빼면 바이에른이 1위다.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가의 TV 중계권료는 높지 않으며, 2부 리그에게 중계권료를 나누어주는 균형 정책까지 쓰고 있다. 이 분배가 매우 균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1위 팀과 18위 팀의 중계권료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엄청나게 높은 수치의 중계권료를 자랑하는 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의 중계권료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인 라리가처럼 중계권료를 받았다면 훨씬 더 높은 매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이니 더욱 대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이 아주 많고, 재정적으로도 아주 건전하고, 과소비를 안 한다.'''
여담으로 타 유럽 구단들은 국제적 마케팅에 중점을 둔 가운데, 바이에른은 국내 마케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일 축구팬들은 바이에른 팬과 바이에른 반대파로 갈릴 정도로 전국구 인기 구단이다. 물론 2010년대로 넘어올수록 여타 유럽지역과 중동 / 아시아쪽의 마케팅에도 신경쓰는 모습.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마케팅에 굉장히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수 마케팅을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시하지만 아무래도 최근의 추세를 보아 글로벌 마케팅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로 위원회를 만들어 프란츠 베켄바워와 파울 브라이트너를 내세워서 특히 미국쪽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5.1. 지역 기반 기업과의 스폰서십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그러하듯 바이에른 역시 뮌헨 지역을 연고로한 많은 거대기업들의 빠방한 스폰서십을 협찬받고 있다. 이 부분이 바이에른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점인데 유럽 최고 부국에서 알짜배기 땅을 거의 통짜로 먹고 있는 수준이다. 영국의 EPL만 봐도 좁은 런던에 수많은 클럽이 존재하고 스페인도 영국보다는 나은 형편은 못된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 제법 살 만한 다른 지역들은 전통 있는 클럽들이 산재해 있는데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을 넘어서 바이에른을 통째로 집어삼킨 꼴. 이와 비교해서 독일 북부 지방의 중심인 베스트팔렌 지역은 샬케 04, 바이엘 레버쿠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등등 챔스 경쟁팀만 4팀이 있다.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4200억원에 달하는 경기장 건설비의 24%를 뮌헨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보험사 알리안츠가 지원하는 댓가로 경기장 명명권을 얻은 것이고, 최근에는 110M 유로를 지불하고 바이에른의 지분 8.33%를 인수하는 동시에 경기장 명명권 계약을 5년 연장해 2041년까지 명명권을 가지게 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110M이라는 계약금을 손에 넣은 바이에른은 공사비 부채 잔액을 변제하고, 남은 금액은 유소년 클럽 시설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밖에 뮌헨 근교의 잉골슈타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기업 아우디와도 스폰서십이 체결되어있고, 2009년 90M의 주식을 매입해 6.5%의 지분을 보유하고있다. 이 계약은 바이에른의 알리안츠 아레나 임대료를 지불하는 기간을 예상보다 훨씬 단축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부터 매년 프리시즌 막바지에 유럽-남미의 강호 클럽들을 초청해 아우디 컵을 개최하고있다.
메인 유니폼 제작사는 아디다스사가 맡고 있고[80] , 이미 40년 가까이 협력관계인 아디다스는 2002년에 77M의 주식을 사들여 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에른 구단 외 기업이 맡은 가장 많은 지분이다. 2020년까지 유니폼 제작사 스폰서십 계약이 되어있는데, 더 연장될 예정이다.
현 바이에른 유니폼의 주 광고 파트너이자 메인 스폰서는 독일 자국 내 최대의 통신기업 도이체 텔레콤이고,[81] 또한 뮌헨에 본사를 둔, 3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맥주회사 파울라너와도 오랜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관계다. 그래서 바이에른이 우승 세레머니를 할때는 항상 들이붓고 마시는 맥주는 파울라너다. 그밖에 옥토버페스트나 각종 행사에 쓰이는 맥주, 음료를 후원하고있고, 매년 파울라너컵을 개최해 바이에른과 지역민들이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82]
그밖의 프리미엄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기업에는 코카콜라, 삼성전자[83] 루프트한자[84] 등이 있다.
4.5.2. 자선단체
바이에른 뮌헨은 이미 자선단체를 운영해 어려움에 빠진 클럽이나 개인을 도와온걸로 유명한데,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이 일어난 직후 FC 바이에른 - 힐페 e. V. (FC Bayern – Hilfe e.V.)가 조직되어 자선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이 활동으로 클럽의 선수들은 €600,000의 기부금액을 모았다. 모인 기부금은 스리랑카의 마라텐케니에 학교를 짓는데 쓰였으며, 스리랑카의 트린코말리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도 쓰였다. 2007년 4월, 이 기부단체는 지역의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하였다.
바이에른은 재정난에 닥친 축구 클럽을 도우는데에도 힘썼다. 그 사례로 지역 라이벌 TSV 1860 뮌헨은 바이에른과 정기적 친선 경기를 가졌고, 1860에게 도움이 되는 이적을 해주며, 재정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FC 장크트 파울리가 재정난으로 프로리그 라이선스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장크트 파울리와 친선 경기를 무료로 벌여, 모든 매출액을 FC 장크트 파울리가 가져가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마르크 판보멀의 친정팀인 네덜란드의 포르튀나 시타르트가 재정난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자선경기를 벌였고, 수입금 전액을 지원해주었다. 2013년 2월에는 재정난으로 부도 위기 직전에 놓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알레마니아 아헨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친선경기를 기획해 관중 입장료 등 수익금 전액을 아헨의 부채 탕감에 지원하는데 쓰도록 하였다.
또다른 사례로는 1993년 알렉산더 치클러를 디나모 드레스덴으로부터 영입한 데에 있었다. 바이에른은 2.3M의 DM에 치클러를 영입, 재정난에 닥친 드레스덴을 도왔다. 2003년 바이에른은 160만 유로의 대출을 담보 없이, 거의 부도가 난 라이벌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지원해주었고, 도르트문트는 파산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재 이 대출 금액은 상환되고 있는 상태다.
5. 파트너쉽
5.1. 메인 파트너
5.2. 플래티넘 파트너
5.3. 골드 파트너
5.4. 오피셜 파트너
- 아델홀쯔너
- 애플뮤직
- 바이에른 라디오 3
- 비츠
- 바디 앤 소울
- 기가셋
- 휴고보스
- 지멘스
- 지멘스 헬스케어
- 뵈브 클리코
6. 역대 유니폼
7. 응원가
8. FC 바이에른 뮌헨을 응원하는 유명인사
- 前 헤비급 복싱 선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우크라이나)
- 前 테니스 선수 보리스 베커 (독일) - 실제로 바이에른 보드진에서 10년 동안 활동했다.
- 前 교황 베네딕토 16세 (독일) - 실제로 바이에른 출신이며, 축구광으로도 유명하다.
- 前 테니스 선수 슈테피 그라프 (독일)
- 테니스 선수 알렉산더 즈베레프 (독일) - 2019-20 챔피언스리그 토트넘과 바이에른의 경기에서 7-2로 바이에른이 이기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사진(토트넘 몇 선수와 바이에른 몇 선수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토트넘 선수들은 다 취해있고 바이에른 선수들은 신나 놀고 있는 그림)을 올렸다. 바이에른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또한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으며 바이에른 뮌헨 선수, 구단 계정을 팔로우한다. 구단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했다.
- 테니스 선수 다닐 메드베데프 (러시아) - 인스타그램 소개글에 바이에른 뮌헨의 구호인 Mia san mia를 적었고, 바이에른 뮌헨 대부분 선수를 팔로우중이다.
- 축구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
9. 클럽 역대 주장
상당수가 동시에 독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10. 클럽 역대 감독
11. 둘러보기
12. 기타
- 팬클럽에서 일본의 욱일기를 응원 도구로 사용되어 논란이 일자 구단 측에서는 이에 대해 규제하겠다고 밝혔다.[90]
- 팬들 사이에서는 뮌헨이 선수들의 몸을 벌크업시키는 데에 특출나다는 인식이 있다. 당장 고레츠카와 레반도프스키를 보자.
[1] 오스트로바이에른어로는 '''F.C. Boarn Minga'''로 표기한다.[2] 뒤에 붙는 e.V.는 eingetragener Verein을 줄인 말로, "등록 클럽"이란 뜻이다.[3] 리그/컵 최다 우승, 최다 이적료 기록 등 독일 내 기록이란 기록은 모두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기에 붙여진 별명.[4] 원래 도이체마이스터란 단어는 분데스리가우승 클럽에 붙는 칭호인데 알다시피 바이언은 2019-20시즌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리그 8연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엔 바이언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5]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1860 뮌헨이 1부, 바이에른 뮌헨이 2부에서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1860 뮌헨이 더 강팀이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부 리그 소속이었다. 참고로 2000년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 출전한 전력도 있다. [6]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 다음으로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팀인 것이 보여주듯 과거에는, 특히 2008년 즈음 이전에는 레비어 더비만큼이나 치열한 매치중 하나였다. 그러나 뉘른베르크는 그 후 차차 몰락의 길을 걷더니 13/14 시즌에는 결국 17위로 다이렉트로 강등되고 말았다. 17/18 시즌 뉘른베르크가 분데스리가 승격이 확정되어, 18/19 시즌부터 바이에른 더비가 이어지게 된다.하지만 뉘른베르크가 18/19 시즌 강등을 당하면서 19/20 시즌에는 바이에른 더비를 볼 수 없게 되었다.[7] 15/16 시즌 강등됐다가 16/17 시즌 2. 분데스리가에서 우승, 17/18 시즌부터 분데스리가로 복귀하게 되어 남독일 더비가 다시 성사되었다.[8] 'Wir sind wir'의 오스트로바이에른어. 해석하면 '우리는 우리일 뿐'이라는 뜻. 누가 뭐래도 우리는 우리라는 의미로 바이에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9] 아디다스사의 전 CEO이다.[10] 2022년부터 올리버 칸이 부임함[11] http://m.dcinside.com/board/fcbayernmunich/143302[12] 비공식 한국어 팬페이지[1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1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15] 뮌헨 공홈은 1932년에 우승한 독일 챔피언십까지 합쳐서 30회 우승으로 표기했다.[16] 2007년 폐지되었다.[17] 선발 라인업 11명 다음의 번호인 12번을 팬들을 위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놓았다.[18] 바이에른 뮌헨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지휘 아래 2013 시즌 트레블을 달성하며, 다시금 유럽 축구의 정상을 탈환했다. 왼쪽부터 분데스리가 마이스터샬레, UEFA 챔피언스 리그 빅 이어와 DFB-포칼,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트로피이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가져간 DFL-슈퍼컵을 제외하고 이 모든 트로피를 단 한 시즌에 따냈다.[19] 2019-20 시즌 한지 플릭 체제에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챔스 전승 우승으로 구단 역대 6번째 우승이자 2번째 트레블을 완성했다. 왼쪽부터 DFB-포칼, 분데스리가 마이스터샬레, UEFA 챔피언스리그 빅 이어 트로피이다. 트로피 아래 우승횟수가 적혀있는데 마이스터샬레 아래 30이란 숫자는 분데스리가 출범후 29회 우승에 1932년 독일 챔피언십 1회 우승을 합친 숫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홈구장에서 무관중으로 기념행사를 하는 모습이다. 이후 UEFA 슈퍼컵,DFL-슈퍼컵에 이어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 6관왕으로 시즌 전관왕의 대위업을 달성하며 역대 최고의 영광스런 시즌을 보냈다.[20]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현재 폐지된 UEFA 컵 위너스컵으로 2017년 기준 이 대회를 전부 우승한 팀은 유벤투스 FC,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첼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까지 총 5팀이 있다.[21] 트레블은 셀틱 FC, AFC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르셀로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이에른 뮌헨까지 총 7팀이 달성했다.[22] 유러피언컵 3연패는 레알 마드리드 CF(5연패), AFC 아약스(3연패), FC 바이에른 뮌헨(3연패)까지 단 3팀만 달성했다.[23] 다른 한 팀은 AFC 아약스.[24] 다른 한 팀은 FC 바르셀로나.[25] 바이에른 뮌헨 e.V 의 관리 자문 위원회를 서술한 부분을 보면 에드문트 슈토이버가 일원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의 당수이다.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26] 정확하게는 뮌헨이 사용하는 정식 명칭이 'Monaco di Baviera'이다. 뮌헨 항목 참조. 예전에 무리뉴도 인터 밀란 감독 당시 뮌헨을 모나코라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27] 이후 김민구 캐스터는 본인이 잘못 알았다며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28] 정확히는 2012-13시즌부터[29] 3년 연속 4강. 보통의 타 구단이라면 전성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성과일수도 있으나 전성기의 뮌헨에겐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성적이었다.[30] 트레블 2번에, 분데스리가는 8연패중이다. 또한 마지막 32경기 전적이 31승 1무, 23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행진중이었으나 UEFA 슈퍼컵을 위시한 엄청난 스케쥴로 결국 분데스리가 2라운드에서 호펜하임에게 졌다.[31] 코로나의 여파로 8강과 4강을 단판전으로 치르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본래 경기수보다 단 2경기만 적을뿐더러, 그 단판전들마저 다득점으로 이겼기 때문에 전승 우승이라는 말에 흠이 되지 않는다.[32] 구단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이자 08-09 바르셀로나에 이어 역대 2번째 6관왕.[33] 독일 축구팬들 중 반은 뮌헨을 좋아하고 나머지 반은 뮌헨을 싫어한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다.[34] 유럽에선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같은 축구클럽 이름으로 산하 농구단및 기타 종목 운영이 흔하다.[35] 이는 프랑크 리베리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이적설로 시끄러웠을 때 프란츠 베켄바워가 실제로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구단 레전드들이 발 벗고 나서 리베리를 설득했고, 결국 리베리는 바이에른에 남아 트레블을 달성했다.[36] 단 데이비드 알라바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표팀에서는 계속해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왔으며 왼쪽 풀백,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다.[37] 결국 리베리는 바이에른과 재계약하였다. 바이에른 수뇌부가 리베리의 생일때 직접 파티를 열고 구단 최고 연봉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와 펜이 담긴 상자를 건냈다고 한다.[38] 관련 일화 #[39] 물론 이 두 선수 모두 순전히 이적료 수입만을 위해 판매한 케이스라 보기는 어렵고, 주급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한 케이스라 볼 수 있다.[40] 칼 하인츠 루메니게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 선수에게 1억 유로를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최근의 이적 시장 거품을 비난한 것이며 그 금액을 지불하는 구단들도 이상적이지 않다고 바라본 것이다.[41] 레반도프스키의 경우는 계약 만료로 데려온 것이므로 저 선수들과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세계 최고의 9번 공격수 중 하나를 공짜로 데려온 것이니...[42] 약 4200만 유로 정도로 추정되며 한화로는 약 550억원에 해당한다. 참고로 '''손흥민의 토트넘 이적료가 3000만 유로 가량이다.'''[43] 하메스의 경우는 임대 이적이긴 하지만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가격도 원래 마드리드가 지불했던 이적료와 현재 이적시장 시세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기량도 이미 월드클래스에 가깝고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은 전성기를 구사할 수 있는 나이에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스타성도 뛰어나서 바이에른 입장에선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44] 70년대 묀헨글라트바흐는 5차례나 리그 우승을 할 정도의 강팀으로 바이에른과는 라이벌이었다.[45] 그러나 로타어 마테우스 역시 현재 독일 축구협회에서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다.[46] 이 때가 어이없는 게 이 3명으로 가히 남의 집 기둥뿌리를 뽑아다가 본인 기둥뿌리로 삼은 격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트리플 러너업 시즌 당시 이 3명을 제외하면 월드클래스에 가까웠던 멤버는 그나마 한스외르그 부트, 베른트 슈나이더, 올리버 뇌빌 정도뿐이었다.[47] 당시 기사 독일에서는 왠만하면 'Transfer - Hammer' 라는 문구를 쓰지 않는다. 보통 충격적인게 아니고서는...[48] 다만 바이에른주 출생인 마리오 괴체는 예전부터 바이에른의 팬이었고, 어린 시절 가장 싫어하는 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하지만 베스트팔렌주로 이주하면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스 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유스 팀에서 뛰게 되면서 예전의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다고 한다.[49] 바이에른 뮌헨 팬들도 반신반의하다가 갑작스러운 라이벌 팀 선수 영입에 혼란스러워했다. 별 필요도 없어 보였는데다, 한동안 라이벌 밟기성 영입이 없어서 그 이미지가 엷어지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50] 2000만 유로 이상의 대형 탈세로, 가업으로 이어져 오던 거대한 소시지 사업 도중에서 탈세한 것이 적발된 것이다. 결국 회장직을 사임하고 3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현재는 바이에른의 유스팀에서 일하는 중이다.[51]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아스날, 토트넘 핫스퍼, 유벤투스, AS 로마, 인테르나치오날레, 제니트 샹트페테르부르크, 샤흐타르 도네츠크, 그리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52]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보드진들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바이에른 이적을 오피셜도 뜨기 전에 인정하기까지 했다.[53] 위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마츠 후멜스는 원래 바이에른 유스 출신으로, 바이에른 팀과 갈등을 빚어 완전히 1군 선수가 되기 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케이스였다.[54] 특히 북부를 대표하는 함부르크와 베르더는 남부를 대표하는 바이에른을 매우 싫어한다.[55] 레버쿠젠 전성기 시절 주전 골키퍼였으나 바이에른에게 막히며 번번히 우승의 꿈이 좌절이 되었다.국가대표에서도 바이에른의 올리버 칸에 밀리며 벤치 신세를 진다. 최소한 이 당시에는 반 바이에른파라고 봐도 된다.[56] 올리버 칸의 후계자로 유스시절부터 정성들여 키우던 미하엘 렌징이 부진하자 바이에른에 나름대로 자격지심이 있을듯한 한스 외르그 부트[55] 를 영입하며 성골 격임에도 렌징을 방출시킨 사례를 볼때, 다른팀들도 그렇지만 굉장히 냉정하게 인사정리를 해버린다. 이에 따라 미하엘 렌징은 유스 출신임에도 반 바이에른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57] 냉정하긴 했지만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었고, 이에 따라 대대적인 선수진 교체를 진행 중이었다. 마카이, 살리하미지치는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 선수였고, 피사로는 챔피언스리그의 활약은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 부족한 활약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로케 산타 크루즈는 포텐이 안 터져서 만년 유망주 소리를 듣던 선수였고, 결국 만년 유망주로 남았다. 다만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이후에 바이에른으로 다시 돌아와서 엄청난 노익장을 보여주며 12-13시즌 트레블 멤버에 포함되었고, 계약 만료로 14-15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으나 '''19-20시즌까지 ''''''분데스리가 현역 선수로 활약했다.'''[58] 로타어 마테우스는 바이에른의 라이벌팀인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이긴 하다. 그러나 바이에른에서 활약한 시간이 더 길었고, 전성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이에른의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다.[59] 17-18 시즌을 예로 들면 바이에른이 고레츠카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면서 욕먹는 동안 도르트문트는 리그내에서 4명을 영입했음에도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다.[60] 손흥민, 하칸 찰하노을루, 조나단 타[61] 레스터 시티의 경우 우승 멤버들이 다음 시즌에도 그대로 이어지진 못할 것을 누구나 예상했다. 그나마 당시 레스터의 에이스라 불리던 마레즈와 바디 그리고 캉테 중 두 명이나 지켜낸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62] 클라인, 판데이크, 로브렌, 마네, 랄라나, 램버트[63] 바이에른 24회, 뉘른베르크 8회(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공동2위)[64] 13-14시즌 결과 결국 뉘른베르크가 강등당하면서 당분간 이 더비는 볼 수 없게 되었다...가 18-19시즌에 뉘른베르크가 1부 리가로 승격함으로써 다시 성사되었다.[65] 포칼 경기에서는 프랑크 리베리와 구자철이 충돌하기도 했다.[66] 이미 바이에른이 우승을 확정지은 터라 주전 대부분이 빠졌던 부분도 있으니 감안해야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와 바이에른이 맞붙으면 항상 어떻게될지 알 수 없다.[67] 단 필립 람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에 독일 대표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주장직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넘어갔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14 - 15 시즌을 마지막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68] 토마스 뮐러가 벤치로 밀려나고 로베리 라인이 주전으로 돌아왔다. 그 서브도 코스타-코망 라인이었다. 요슈아 키미히 역시 전반기에는 주전이었으나 후반기에는 티아고 - 비달 - 알론소 라인으로 주전이 굳혀지면서 서브로 뛰었다.[69] 그러나 이것이 무조건 독일인만 영입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며 코랑탱 톨리소를 영입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있다. 회네스 왈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을 하되, 이왕이면 독일 선수라면 더 좋다."[70] AG는 Aktiengesellschaft(주식회사)의 약자, EV는 Eingetragener Verein(등록 클럽)의 약자이다.[71] DFB(독일축구협회) 산하 클럽들은 50+1 제도에 의해 한 개인이나 회사가 구단의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것이 금지되어있다. 바이에른도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같이 소시오 제도로 운영되는 시민의 클럽이며, 80%에 달하는 지분이 바이에른 뮌헨 e.V와 11만에 달하는 팬클럽이 보유중이다.[72] 다시 이후 만장일치로 울리 회네스가 회장직에 복귀했다.[73] 2001년부터 클럽의 일원이었고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 즉 뮌헨 대학교의 명예 교수이다.[74] 바이에른의 유니폼 중간에 있는 'T' 자 모양이 바로 도이체 텔레콤의 마크이다.[75] 독일의 대표적인 주간 시사 잡지[76]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은행[77]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 인물이며, 모기업인 폭스바겐의 이사회 의장이자, 아우디와 포르쉐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78] 이사회 회장[79] 1991년부터 보드진으로 일했다. 1991년, 프란츠 베켄바워의 추천으로 부회장직에 취임했고, 이 직위를 2002년까지 수행했다. 이후에 지금의 CEO직에 취임하였으며, 클럽의 설명에 따르자면 그는 클럽의 대외적인 관계, 언론, 보드진으로서의 일, 그리고 클럽을 대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유럽 클럽 협회 (European Club Association) 의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는 등 세계 축구계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80] 바이에른 근교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본사가 있다.[81] 유니폼에있는 '''·T···'''가 도이치 텔레콤의 엠블럼이다. 또한 홈에서 리그나 컵대회가 열릴 때마다 관중석의 일부 부분에 흰색 가운을 입은 도이체 텔레콤 직원들이 '''·T···''' 모양으로 앉아서 자사의 홍보를 하고 있다.##[82] 대회방식은 까다로운 조건없이 아마추어팀도 모두 참여 가능하며,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려 우승팀은 꿈에 그리던 바이에른 뮌헨과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83] 경기장 내부 모니터, 스크린, TV등은 대부분 삼성것이다.[84] 항공편 스폰서십. 루프트한자 CF에 바이에른 선수들이 자주 등장한다.[85] 독일의 은행이다.[86] 몰타의 배팅 및 카지노 회사이다.[87] 바이언의 팀닥터인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박사와의 인연으로 척추문제를 해결한 뒤 금메달을 딴 이후 바이언을 적극 서포팅하고 있다.[88] 제프 마이어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부주장이던 게르트 뮐러가 주장이 되었으나 차기 시즌 바로 포트 로더데일로 이적해서 주장기간이 매우 짧다.[89] 현재까지 구단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주장이다.당시 감독 루이스 반 할이 같은 네덜란드 국적인 점도 결정적 영향이 있다.[90] 연고지가 연고지이니 만큼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뮌헨은 애초부터 나치당이 창당, 발기했던 곳이니 지역적 흑역사를 갖고있는 팀의 분위기상 두고 볼 수는 없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