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수용소
淸津 收容所 / 淸津 第二十五號 敎化所
1. 개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196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주민에게는 '''용평 완전통제구역'''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공포의 대상. 이곳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은 '''평양 시내''' 승호구역에 있던 승호 수용소였지만 해당 수용소가 1994년에 국제사면위원회의 폭로 덕분에 폐쇄되면서 이 수용소가 1급 정치범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이때 승호 수용소가 작살나면서 여기에 수감된 사람들이 죄다 이 수용소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은 불명. 하지만 두 수용소 모두 교화소로 최고급 감옥이었으며 1991년 이전까지 교화소랍시고 있었던 곳은 이 청진 수용소와 승호 수용소 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가로 약 500m, 세로 약 500m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위성 사진상으로 보면 높은 벽이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보면 오각형이 나오는데 이 오각형의 가로가 300m, 세로가 250m로 넓이가 대략 7.5ha 정도이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부지가 대략 20ha였다고 하니 그 절반 수준. 그야말로 초미니 감옥인 셈이다. 헌데 서대문 형무소의 수감 가능 인원이 3천 명이었으니 얼마나 바글바글 몰려 있을지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범죄자의 가족들이 주로 수감되는 관리소와는 달리 이 청진 수용소는 정치범 '''본인'''이 수용되기 때문에 훨씬 크기가 작은 것. 이로 미루어보면 청진 수용소는 교화소가 확실한데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외국 기사에서는 관리소로 표기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중 하나로 정식 명칭은 제 25호 관리소이다. 요덕 수용소의 네임드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개천 수용소, 회령 전거리 수용소, 화성 수용소와 함께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수용소'''이다. 사실 요덕 수용소가 유명한 이유는 그곳에서 나온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실제로 요덕 수용소는 '''그나마 나은 곳'''으로 진짜 지옥 중에서도 생지옥은 이곳 청진 수용소와 앞서 거론한 3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실제로 정치범 중에서도 '''1급 정치범'''만을 수용시키는 곳으로 청진 수용소는 1960년대 운영된 이후 북한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고.. 물론 이 청진 수용소도 완전통제구역으로 종신 감금되는 곳이다.
2. 시설
청진시 수성역에서 1.5㎞ 정도에 위치해 있으며 수성역 청사 옆 건물은 이곳으로 수감되거나 이송되는 정치범들을 특별 관리하는 '연락소'가 있어 수용소로 수감자들을 철저히 검열하여 입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6m 높이의 담장에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고 가장 외벽에는 감시탑이 세워져 수용자들을 감시한다.
3. 특징
이곳의 특징이라면 '''전원 1급 정치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과 쌍벽을 이루던 '''평양'''시 승호구역의 승호 수용소가 94년 국제사면위원회(AI)의 폭로가 있은 뒤 해체당한 이후 그곳의 수감자들이 모두 청진 수용소로 옮겨졌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 청진 수용소에는 형벌이 무거운 간첩 혐의자와 체제전복, 반당ㆍ반혁명 종파분자로 불리는 권력에서 숙청된 자들, 북송 재일 교포들이 주로 수감됐으며 최근에는 탈북하다 붙잡힌 사람들과 종교인들도 대거 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재탈북자 유태준 씨도 월북 이후 32년 형을 선고받고 이곳에 수감됐다가 기자회견을 위해 석방된 후 탈북 했다. 이곳에 수감된 수용자들은 관리소 내에서 라디에이터, 무동력 냉장고, 무쇠밥솥, 재봉틀, 자전거 등을 생산하며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며 이곳에서 생산돼 나오는 갈매기 상표 자전거는 북한 전 지역으로 보급된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좌한 상태로 꼿꼿이 앉아 있다가 6시 30분에 식사를 하며 식사는 콩알이 섞인 옥수수 주먹밥과 시래기국이 전부다. 강제 노동은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무려 '''15시간'''동안 탄광, 공장 등에서 이루어지며 강제 노동 후에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며 사상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감자들은 20명씩 한 방을 쓰며 안에서는 탈출을 막기 위해 2인 1조씩 행동하며 화장실에 가도 함께 일어나 가야 한다.
아무래도 수용소 감시자는 수용소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사는 모양이며(실제로 수용소 벽 인근에 민가가 몇 채 있다.) 수용소가 협소한 관계로 큰 공장이라든지 화성 수용소처럼 핵 실험장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기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전거 공장이다. 북한에서 나온 자전거 중 '갈매기'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청진 수용소에서 제작된 것.
요덕 수용소의 용평 완전통제구역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곳인데 안명철[3] 에 의하면 자신이 근무하던 곳은 회령 수용소[4] 였는데 이 청진 수용소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Top-level)''' 수용소라고 하니 알 만하다. 또한 면적이 적어서 관리하기가 쉽다는 요건 때문인지 이 수용소도 화성 수용소처럼 '''단 한 명의 탈출자도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다. 하긴 인근 교통편이 적당히 멀어야 추적도 어려울 텐데 이건 가깝다 못해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라서...
다만 이 무시무시한 곳을 '''경험했던 사람은''' 있는데 그 주인공은 유태준. 놀랍게도 그는 1998년 함흥에서 살다가 탈북한 이후 2000년에 부인을 데려오겠다고 무단 입북했다가 그만 여기에 수감되었었는데 이게 국제 문제로 비화되면서 석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재차 탈북해서 북한을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2004년에는 정작 '나를 장군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사람이다. 아마 수용소에서의 반복되는 사상교육과 세뇌의 결과일 것이다.
제9회 국제 회의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주 수감자는 1급 정치범,[5]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특히 기독교도), 평양에서 쫓겨난 자와 그 가족, 의견을 달리하는,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을 부정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여기에 수감된다고 한다.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의 선장 임국재가 세 번 탈북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 끝내 여기에 수감되어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기록도 있다.
4. 수용소 주변
수용소 주변은 그야말로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1.5km 지점에 수성역이 있긴 하나 수용소 자체가 송골이라는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 지역을 간수들이 감시하고 있어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 하다.
5. 확장
2013년 2월쯤 수용소 면적을 2배나 늘린 것이 확인되었다. 기사 그리고 계속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