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시
1. 개요
현 북한 함경북도 도당 위원회/도인민위원회 소재지. 시당소재지는 청암구역이다. 명목상 함경북도(이북5도위원회)의 도청 소재지다.
면적 1,855km2 (8.15 광복 당시 275km2).
인구 667,929명(2008년 인구조사, 출처는 여기). 인구 및 도시규모 면에서 북한에서 평양직할시, 함흥시 다음 가는 제 3의 도시지만, 통계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 북한 사람들의 인식은 평양이 제 1도시, 청진이 제 2도시, 함흥이 제 3도시로 되어있다.[4] 이 정도면 남한에서도 어지간한 지방 대도시급, 가령 전주시 정도에 해당한다. 사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인구 규모 면에서 무려 '''대구(!)'''와 동급의 도시였으니 상대적으로 발전이 많이 더딘 것. 제철제강이 유명한 도시로, 북한에서는 일명 "북방의 대야금기지''라고 불린다.
함경북도의 3대 도시 항구(청진, 김책(성진), 라선(나진)) 중 하나이다.
서울에서 약 750km,직선 거리로는 약 530km로, 이 지역은 서울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제주도보다도 한참 멀고, 후쿠오카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속초에서는 뱃길로 약 420km, 육로 이용시 약 630km.
2. 역사
2.1.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원래는 부령군 관할의 작은 어촌이었지만 1908년(융희 2)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5] 시가지가 형성되고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0년 부령군 전체가 청진부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청진부의 영역을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나머지 면 지역을 다시 부령군으로 분리시켰다.
원래는 동쪽 고말(高抹)반도에서 도시가 발달하여, 점차 서쪽 수성평야로 도시가 확장되는 양상을 띄었다. 그러다가 1940년 3월에 함경북도의 도청과 구 청진공항이 있던 경성군(鏡城郡) 나남읍[6] , 용성면 및 부령군 일부를 편입하여 청진시는 '''함북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면적이 275km2[7] 로 늘어났고, 인구 규모면에서도 1945년 당시 '''23만 5천명'''으로 인구 면에서 전국 5대 도시[8] 로 발돋움하였다.
함경북도의 해안선 중앙에 위치하여 전쟁에서의 주요 목표가 된 일이 많다. 태평양 전쟁 말기 만주 작전에서 소련이 부수적으로 함경북도에 군대를 보냈는데, 광복 전까지 소련군이 당도한 최남단 지역이었다.
2.2. 북한 치하에서
소련군정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6.25 전쟁당시 1950년 11월 26일 국군이 가장 북쪽으로 진격해서 점령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광복 이후 북한에서의 행정구역 변화가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옛 라남읍 지역이 '''라남시'''로 잠깐 분리된 적도 있고, 한때 '''청진직할시'''(1963[9] ~1970, 1977~1985)였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일반시이다.[10] 이처럼 직할시 승격과 일반시 격하가 반복된 근본적인 이유는 '''현지지도에 기반한 즉흥적인 정책 결정'''에 있었다. 즉, 김일성이 현지지도와 교시를 통해 후방 제철기지인 청진에 대한 후방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 직할시로 승격시켰다가[11] , 명색이 직할시인데 정작 중앙에서의 지원은 지지부진하고 더불어 직할시당과 도당 간의 알력 다툼까지 벌어지면[12] 결국 직할시를 일반시로 격하시키는 사태가 되풀이 된 것이다.
현재는 일반시지만 그래도 함경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북한 전체를 봐도 큰 도시이다. 또 공업과 항구도시로서 중요한 소임을 맡고 있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실제로 2002년 기준으로 도와 동급인 평양, 남포, 라선을 제외하고 인민위원회에 처급 부서가 편성되어 있는 일반시는 오직 청진시뿐이다.[13]
3. 지리
3.1. 지형
[image]
수성천(輸城川)가의 모습. 청진은 수성천 하구의 수성평야 삼각주에 발달한 도시이다.
3.2. 기후
겨울이 길고 추운 북한이지만 그래도 청진 지역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5.3℃로 강원도 철원군의 1월 평균기온과 비슷한 정도다. 물론 위도에 비해서는 추운 편이다. 청진시의 위도는 북위 41°46'인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보다 약간 더 높고 이탈리아의 로마보다 약간 더 낮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로마는 1월 평균기온이 영상 8~9℃ 정도로 청진에 비하면 훨씬 더 따뜻하다. 다만 북아메리카에서 비슷한 위도에 있는 미국 시카고[14] 와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이 지방의 여름은 북한한류의 영향으로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2018년 폭염 때도 최고기온이 30℃를 넘은 날은 11일, 32℃를 넘은 날은 7월 22일(34.7℃) 단 하루 뿐이었다. 서울에서 폭염이 절정이었던 8월 1일의 최'''저'''기온은 31.7℃(단, 날씨는 흐림). 열대야는 단 하루도 없었고, 최저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은 7월 27일과 28일의 23.9℃다.(기상자료개방포털 관측자료 참조) 1993년 여름 때는 서늘한 여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라도 최저기온이 20℃를 넘은 적이 '''없다'''
또한, 이 일대는 혜산시와 함께 남북한을 통틀어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데, 연 강수량이 622.2mm에 불과하다. 이는 연평균 강수량이 가장 많은 거제시 2,007.3mm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06년에는 324.2mm의 기록에 남을 만한 수준의 낮은 연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류(寒流) 때문이라기보다는 청진을 포함한 관북 해안 지방은 주로 부는 북동풍이 대륙의 건조한 바람이라 이렇게 강수량이 낮은 것이다.[15]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청진에는 동풍이나 남풍이 거의 불지 않아 바다에서 오는 습한 바람도 거의 없다. 관북해안은 왜 소우지인가?
4. 경제
풍부한 지하광물을 통한 공업이 일제강점기부터 크게 발달했고 무역도 많아, 지방에서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도시이다. 대중교통수단도 잘 발달되어 있고, 큰 기업소도 여럿 있으며, 대학도 많은 편. 부자들이나 당원들도 많이 사는 편.# 김정일이 1980년대 초반 중국 후야오방(胡曜邦)의 설득으로 일시적으로 개방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한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지방 개발이 미약한 북한치고는 국영공장·기업소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16] 북한 최대의 제철소인 김책제철련합기업소[17] 가 있으며, 이곳은 김책시의 성진제강연합기업소(성강)과 함께 북한의 가장 큰 제철소 가운데 하나이다. 김철에서는 주로 무산광산의 철광석을 이용하며, 무산에서 청진까지는 이른바 '3화수송'이라 불리는 수송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 외에 청진조선소, 청진화학섬유공장,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청진철도공장, 청진버스공장 등 산업시설이 많은 공업도시이다. 어뢰를 생산하는 군수시설인 129호 공장(추정), 나남제약공장[18] 등 군수시설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민간국영기업소들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인해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민간자본이 국영공장의 설비나 공간을 임대하는 형식의 사업이 제법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것도 2009년의 삽질을 전후해 타격이 적지 않은 듯하다.
부동항을 가지고 있어 나진과 함께 지린성을 포함한 동만주 지역의 외항 역할을 한다. 2006년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이 금지되면서 원산이 대일 수출입 기지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반면, 청진항은 적은 양이나마 꾸준히 대일교역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일본산 중고차 등을 수입하여 중국에 재수출하는 중계무역이 이루어진다. 수산업기지로서의 위상도 크다.
청진 수성시장은 역사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시장으로 평양 통일거리시장, 신의주 채하시장, 평성시장, 사리원시장과 함께 북한의 주요 도매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의주가 단둥의 대규모 트럭 행렬로 대변되는 합법적 형태의 교역이 주류를 이룬다면 청진은 온성, 회령, 혜산 등을 통해 '''합법과 비합법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온 온갖 소비재들을 취급한다. 그런만큼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에서 단천 다음으로 아사자가 많은 도시가 되는 등의 타격을 받았다.
특이하게 패션에서 상당히 개방된 도시이다. 보통 북한은 사회주의 생활앙식에 맞는 의복을 권장하고 악세서리나 노출이 있는 옷, 과하게 화려한 옷은 금기시한다. 그러나 청진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패션에서 개방적인 도시이다. 청진은 일본에서 건너온 수입품을 가장 먼저 접하는 도시이며, 주로 일본에선 유행이 지나 안팔리는 재고품 위주로 수입하지만 그럼에도 북한 기준으로는 최첨단의 패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양보다 훨씬 수입의류가 많은 이유도 일단 청진 주민들이 수입의복을 먼저 구입하고, 나머지가 평양이나 기타 도시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 시민들은 특수계층이다 보니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서 당의 엄숙주의 지침을 잘 따르는 편이라고 한다.
일례로 청진의 젊은이들은 오래전부터 청바지를 입었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청바지를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에서 청바지를 입었다가는 치도곤을 당하곤 한다. 심지어 근래의 청진에서는 스키니진이 유행하고 있다는데, 평양의 패션리더들은 청바지는 못 입으니 딱 붙는 검정색이나 짙은 파란색 나팔바지를, 그것도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나 입는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외신 기자들이 리설주에 대한 얘기를 인터뷰 하면 평양 출신들은 오프 더 레코드로 말하기는 하지만 "너무 파격적인 복장" 이라고 언급하는데 비해서, 청진 출신들은 "너무 촌스럽다" 라면서 지적을 했다고 한다.[출처] 여담이지만 리설주 본인도 청진 출신이다.
5. 교통
5.1. 시내교통
▲ 독일인 유튜버가 촬영한 청진 전차와 트롤리버스 (2019)
청진시의 전차와 트롤리버스 노선도 (독일어, 2015)
청진에는 노면전차(電車)가 다니는데, 1999년 남청진~봉천 간 6km 구간이 처음 개통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부윤~남청진 구간이 개통되면서 총연장은 13km이다. 다만 북한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파행 운행이 잦은데, 이게 오래 된 일이라고 한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상태가 막장이었을 때는 1시간에 1편 정도 다녔다고 한다.
5.2. 시외교통
철도 평라선과 함북선의 분기점이다.
북한의 도소재지들 중 유독 수도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지방과의 연결은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청진의 장거리 노선버스는 함흥이 최대 진출선이었다. 청진-함흥 구간만 해도 거리가 400km가 넘어가는(!) 장거리 구간인 데다가 도로 상태도 엉망이라 소요시간 또한 족히 하루가 걸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철도는 이미 박살나서 1주일에 1대나 다닐까 말까 한 상태라.... 그런데 2010년대가 되면서 평성 등 함흥 이남 지방으로 가는 노선버스도 생겼다. 그 외에 회령 등 함경북도의 주요 도시로 수시로 버스와 단거리 서비차가 다닌다.
이웃한 라선과도 당연히 교류가 많아서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그런데 청진 버스는 라선에, 라선 버스는 청진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삼해와 관해 사이에 보위부 검문소가 있어서, 버스가 매일같이 검문 받는 것도 귀찮으니 아예 이 검문소까지만 운행하고 승객들은 검문소에서 환승한다나.
북한에서 버스 운행은 주로 개인 돈주들이 버스를 사서 기관이나 기업소에 등록해놓고 운행하는 형태인데, 2011년까지 청진 버스는 이를 인민무력부 산하에 등록된 울림운송회사에서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인민무력부의 비호를 받는 회사이니만큼 농촌지원전투 기간이라 버스 운행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운행을 하거나, 기름값 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높여 폭리를 취하는 등의 행태로 꽤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래놓고 상급기관인 인민무력부에 상납금을 제대로 바치지 못해 2011년 4월 해체됐다.
청진공항은 이 시의 명칭을 딴 공항이긴 하나, 청진시에서 약 44.5km 남쪽에 위치해 있고, 행정구역상으로도 어랑군 어랑읍, 어랑역에 위치해 있어 사실상 따로 있는 공항이다. 남한으로 친다면 김포공항이나 김해공항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확히는 원래 수성천 근교 월포동에 청진공항이 있었으나, 6.25 전쟁 때 폭격으로 고자가 되면서 복구하지 않고 어랑공항이 대용으로 쓰이게 된 것. 라선과 가까운 삼해동에 공항을 지을 계획이 있다고 한다.
6. 남북통일 이후 전망
지금도 북한에서 평양과 함흥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인데다가 북한에서 그나마 공업이 발전한 편이고 항구가 들어서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통일 뒤 라선과 더불어 빠르게 성장할 곳으로 여겨진다. 라선특별시 문서에 적혀있는 유라시아 허브항을 입지조건이 거의 비슷하지만 이미 인구가 있고, 땅이 더 넓은 이곳이 갖게 될 수도 있다.
통일 뒤 발전하여 인구가 늘어나면 부령군[19] 과 엮이어 도농통합된 후 광역시로 승격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함흥, 신의주와 더불어 북한 지역에서 광역시 승격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때문에 함경북도에서 청진시가 떨어져나가면 소도시, 시골 수준의 시, 군들만 남기 때문에 함경북도 측에서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의적인 쪽에서는 청진이 광역시가 될 확률은 (도시의 인구규모, 그리고 소속 도에서 차지하는 인구비중이 비슷한) 청주광역시, 전주광역시 떡밥과 같은 급으로 본다. 청진 주변 지역을 아무리 영끌해봐야 100만도 안 되는 인구, 그리고 통일 후에도 평양이나 남한 쪽 대도시라면 모를까 인구가 크게 증가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
게다가 통일한국의 양대 메트로폴리스가 될 서울과 평양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20] 이 두 지역의 인구분산으로 인한 인구증가도 기대할수도 없다. 여긴 그렇다쳐도 인구 50만 이상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함흥조차 400km나 떨어져 있다. 훗날 러시아 극동과 동북 3성이 제대로 개발된다면 이들 지역으로 가는 거점으로서 도시가 발달할수는 있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함경북도의 제1도시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지방도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교통 면에서는 서울에서 청진까지의 거리가 750km 정도로 매우 멀어서 4시간의 벽에 걸리는 곳인지라 고속전철이 뚫리더라도 항공 교통 또한 흥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선로 개선이 이루어져서 거리가 짧아지더라도 부산이나 제주, 광주 등에서 청진을 가려면 비행기가 압도적으로 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주시, 부산광역시와 더불어 국내 지방 항공 교통의 3대 도시가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리고 여름이 시원하다는 장점을 살려 피서지로 각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거리상으로는 개마고원의 장진, 부전 방면이 더 가깝지만 황초령과 부전령을 타고 올라가야 하고 인구도 적은 산골이라, 피서도 하고 어느 정도 문화생활도 즐기고 싶은 경우 좀 멀어도 대도시인 청진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7. 행정구역
7.1. 북한 기준 행정구역
청진시의 경우 북한 제 3의 도시이기도 하며, 함북의 종주도시니만큼 7개구역이 있다. 이외에 로동자구는 없으며 함흥시처럼 구역이 폐지되거나 구역을 통합해 서로 분리되고 다시붙거나 여러번 변경되는등 크게 유동적이지 않다. 다만 여러번 경계 조절을 한 적은 있다. 각각의 항목 참조.
■ 함경북도 소속 ■ 라선특별시 소속
7.2.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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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5도위원회에서는 청진시에 5개의 행정동을 설정하였으며, 명예동장이 임명되어 있다. 하지만 관할 법정동은 실제 지도에 대입해보면 월경지투성이라고.#
[image]
▲ 이북5도상 법정동 지도. 청진의 원도심인 동쪽 고말반도 쪽에 법정동이 촘촘한 것을 볼 수 있다.
- 나남동(羅南洞)
- 신암동(新巖洞)
- 용성동(龍城洞)
- 청암동(靑岩洞)
- 포항동(浦項洞)
7.3. 광복 당시 행정구역
광복 당시의 청진부는 32정 18동을 관할하였다. 한국의 대부분의 일제시절 도시들이 그랬듯 일본식 지명이 많았다. 지도
아래는 1914년 당시의 청진부를 구성하였던 정(町)이다. 청진부가 처음 지정되었던 고말반도 지역에 있는 지명들이다. 일본 지명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밑의 지명들이 자연스럽게 일본 지명처럼 읽힐 것이다. 특히 목하전정은 화폐개혁을 주도한 메가타(目賀田)와 이름이 같다.
- 고사정(高沙町)
- 교립정(橋立町)
- 길천정(吉川町)
- 대화정(大和町)
- 명치정(明治町)
- 목하전정(目賀田町)
- 미생정(彌生町)
- 보정(寶町)
- 복천정(福泉町)
- 부귀정(富貴町)
- 부도정(敷島町)
- 북성정(北星町)
- 상반정(常盤町)
- 상생정(相生町)
- 서정(曙町)
- 송도정(松島町)
- 수정(壽町)
- 신암정(新巖町) - 1가~4가로 구성되었으며 부청(시청)이 1가에 있었다. 1940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그리고 1~4정목으로 분할, 개편되었다.
- 영정(榮町)
- 일출정(日出町)
- 입선정(入船町)
- 조일정(朝日町)
- 축정(祝町)
- 파정(巴町)
- 포항정(浦項町) - 1940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 행정(幸町)
- 수남정(水南町) - 1940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 나남정(羅南町) - 함경북도청 소재지(나남본동으로 알려져 있다).
- 나북정(羅北町)
- 미길정(美吉町)
- 생구정(生駒町)
- 초뢰정(初賴町)
- 회향동(檜鄕洞)
- 강덕동(康德洞)
- 근동(芹洞)
- 농포동(農圃洞) - 농포동 석기 유적지가 이 곳에 있다.
- 봉암동(鳳岩洞)
- 송동(松洞)
- 송정동(松亭洞)
- 수남동(水南洞) - 수남정과는 완전 다른 동네이다.
- 수북동(水北洞)
- 수성동(數城洞)
- 용암동(龍岩洞)
- 용향동(龍鄕洞)
- 회암동(回岩洞)
- 반죽동(班竹洞)
- 월포동(月浦洞) - 구 청진공항 소재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자작동(自作洞)
- 직하동(稷下洞)
- 창평동(蒼坪洞)
- 천마정(天馬町) - 이 일대에 있는 산인 천마산에서 유래했다.
8. 기타
-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는 이 곳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 영사관이 설치된 도시는 오로지 이곳뿐이다.
- 수성역 인근에 청진 수용소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두 문서를 참조할 것.
- 이 도시에서는 한국 제2의 고봉인 관모봉이 보인다고 한다. 해당 항목 참조.
- 현재 한국으로 온 새터민들 중 청진 출신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 까닭은 함경북도가 두만강을 끼고 있어 탈북이 쉽고, 청진은 그 함경북도에서 가장 큰 중심도시이자 북한에서도 대도시에 속하는 만큼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함경북도는 험준한 산지를 끼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대대로 내륙지방에 사는 인구가 매우 적었다. 그에 비해 청진은 해안 평야지역에 있는 도시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9. 출신 인물
- 김만철
- 김수근 - 1938년 청진 천마소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 2학기 때 서울로 이사했다.
- 김지영
- 김형준(북한)
- 김혜영
- 리상벽
- 리설주
- 신상옥
- 이윤성
- 장성택
- 토츠카 히로시
- BJ 이평
- 유튜버 강나라
- 유현주#s-4
[1] 2008년 기준[2] 2014년 12월에 탈북을 하였다.[3] 청진 출신으로 소개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동해안의 조그만 어촌 출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위키백과의 정보를 그대로 반영한 모양이다.[4] 외국인에게도 함흥은 3번째로 큰 도시라고 설명한다. 참고로 인구상으로만 따지면 평양과 함흥 사이에 남포특별시가 들어간다. 남포의 인구는 98만 명.[5] 오히려 성진(1899년)보다도 개항이 늦었다. 정작 이 이후부터는 성진보다 청진이 더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지만… [6] 원래 경성면에 있던 도청을 1920년에 나남으로 옮겼었다.[7] 당시 평양의 면적과 맞먹었다. 당시 평양시의 인구는 '''41만.'''[8] 인구 순으로 경성-평양-부산-대구-청진-흥남-신의주-원산 순으로 꼽혔다. 즉, 대구와 맞먹을 정도였다.[9] '연합뉴스 북한연감'에는 1958년 10월로 나오지만 북한에서 발간한 '조선향토대백과'에는 1963년이라고 되어 있다.[10] 이 당시 부령군, 경성군, 무산군까지 청진직할시에 편입되어 함경북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적이 있다.[11] 일반시와 직할시는 주민 대우가 달라진다. 일례로 식량 배급시 일반시에서는 입쌀:강냉이 비율이 3:7인데 비해 직할시에서는 7:3이며 소채류를 무조건 공급해주도록 되어 있다.[12]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도청이 광역시 내에 있는 경우 이런 사례가 종종 보인다. 일례로 호남고속선 분기역 선정 당시 충청남도청은 천안아산역 분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도청이 하필 대전광역시에 있다보니 사방이 대전역 분기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일을 추진할 공무원들조차 대전 사람들인(...) 안습한 사태가 벌어졌다.[13] 북한의 행정기구 부서의 위계는 국-처-부-과 순으로 나가며 대개 시도급 인민위원회에서는 국이, 일반시군에서는 부가 최상위 부서이다. 즉 청진시는 일반시군 중에서는 함흥시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최상위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14] 북위 41° 52', 1월 평균 기온 -4.7℃[15] 이에 비해 고저, 통천, 장전 등 북강원도 지방은 북동풍이 동해의 습한 바람이라 강수량이 많다.[16] 북한의 기업들은 주로 종업원 수를 기준으로 특급~6급까지 분류한다. 이 중 특급~3급까지만이 국영기업소, 그 이하는 지방공장·기업소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지방 소도시나 군 단위에 국영기업소는 3급 정도가 고작이다.[17] 이른바 '김철', 구 청진제철[18] 비공식적인 의혹 중 하나로, 함흥의 흥남제약공장과 함께 북한의 3대 수출 자금원 중 하나인 마약을 생산제조한다는 설이 있다. 나머지는 일명 '슈퍼노트'라 불리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와 가짜 담배다. 여기서 찍어낸 마약은 매우 품질이 높은 고순도 제품인지라 국제마약범죄조직에서 주로 취급하며, 이들이 유통시킨 마약이 돌고 돌아 국내 유흥가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서도 이 사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정해진 수출 목표액을 초과 달성한다든지 하면 '''백도라지 영웅 칭호(!!!)까지 부여'''한다고. [출처] : North Korea Confidential[19] 사실 1914년 분리, 1960년 편입 1985년 재분리 이런식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에 역사성을 따져 청진시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20] 현재 철도중단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104km, 청진이 653km로 나와있는데, 이걸 가지고 계산을 해도 무려 757km나 된다. 평양까지의 거리도 평양역과 청진역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720km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