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호
1. 소개
전 한국프로야구 선수이다. 배명고를 졸업했고 OB/두산, KIA를 거쳐 삼성에서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154경기 평균 자책점 4.77 483이닝 27승(1완투) 21패 3 세이브.
2. OB / 두산 베어스 시절
1994년 12월 28일에 당시 계약금으로 7,500만원에 연봉은 1,800만원을 더해서 총 9,300만원에 OB와 전격 입단을 계약했으며 1997년 시즌까지 단 2경기에만 나왔을 뿐 주로 불펜을 맴돌았으나 1998년 시즌에는 30경기에 출장 해 54와 3분의 2 이닝을 던져 2승 2 세이브를 기록 성장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1999년 5월 6일 LG전에서는 '''8회 동안 단 1안타 만을 허용하는''' 눈부신 피칭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팀명이 두산으로 변경된 첫 시즌인 1999년에는 선발 투수로 뛰면서 10승 달성에는 실패했으나 규정이닝을 채워줬고, 2000년까지 5선발 겸 전천후로 등판하곤 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승선하며 커리어 유일한 우승 반지를 끼기도 했을 정도.
3.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3년 7월 9일 외국인 투수 마크 키퍼를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 되었다. 그러나 최용호는 트레이드를 거부한 뒤 '''은퇴 선언'''을 하고 잠적했으나[1] 얼마 안 가 은퇴 의사를 철회하고 동년 7월 17일에 선수단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2004년 이후로는 1군에 다시 올라오지 못했고 2005년 7월 24일에 신동주를 상대로 맞트레이드 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 2006년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4. 연도별 성적
5. 기타
KBO 공식 사이트에 연도 별 방어율 TOP 10에 등록되어 있다. (4.26/10위)
6. 관련 문서
[1] 이건 최용호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애초에 해태 타이거즈는 과거부터 엄격한 팀 분위기와 군기잡기로 유명한 팀이었으며 구타 또한 빈번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2000년 3월 양준혁을 상대로 해태로 트레이드된 손혁이 당시 해태 선수단 합류를 거부하고 곧바로 은퇴를 선언한 뒤 잠적해버렸을 정도로 해태 말기~기아자동차 인수 후 KIA 타이거즈 초기까지 예전의 쌍팔년도식 문화가 남아 있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최용호가 KIA로 트레이드되기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이 사건이 뇌리에서 잊혀지기에 1년은 너무나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