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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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혁
1963년에 창단한 배명고의 첫 전성기는 1972년으로 에이스인 김정남의 활약 속에 봉황대기 우승에 성공한 것이 시초였다. 김정남은 실업선수로만 뛰고 은퇴해서 프로무대 기록은 없지만, 고교무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로 뒷날 골프 선수로 전향하게 된다. 이 시기 같이 뛴 김용윤은 훗날 김바위로 이름을 개명해서 MBC 청룡의 1루수 이름을 알리지만, 이 때 무렵의 선수 중에 가장 유명해진 인물은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졸업장은 배명에서 받는 박철순이었다.
1.1. 1990년대
그 뒤로는 4강 문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교 1로 남았다가 1990년대 초 공격적인 스카웃을 통해 전력을 급상승시키면서 1992년을 일약 배명고의 한 해로 만들었다. 당시의 주역 중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가 당시 3학년인 이경필, 그리고 한 해 후배인 김동주였다. 그 외에도 프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봉황기 MVP 노상진, 포수 장성국 같은 선수들이 뒤를 받치면서 배명고는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 때의 전성기는 한동안 계속되어 1994년에는 봉황대기와 1997년 청룡기, 1999년 대통령배 준우승을 차지[3][4] 했고, 2000년도 초반까지 꾸준히 4강권을 노리는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꾸준히 고교 무대에서 활약하는 좋은 투수들 덕분[5] 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팀의 대통령배 준우승을 이끈 심수창. 사실 이 당시 배명고 최고의 투수는 96~97년까지 1,2학년으로 팀의 에이스와 중심타자로 활약한 박기범이었으나 현대 유니콘스의 1차지명을 위해 98년 동산고로 전학하였다. 이후 1년 유급한 심수창이 배명고 에이스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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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00년대 ~ 2010년대 초반
2002년에는 대통령배 4강에 진출하기도 했고, 같은 해 광주 무등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대전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전반적으로 팀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1년에는 돌연 선수 스카웃을 중단하면서 해체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으나 윤여국 전 광주동성고 감독(2015년 전주고 감독으로 옮겨 2018년까지 재직)이 사령탑을 맡은 후 다시 팀을 정비하였다.
1.3. 2010년대 중반 : 재도약기
2015년 가을 배명고 출신(32기)이자 배명중학교 감독이였던 김경섭 감독이 고등학교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그 이후 팀의 재정비와 팀웍강화 등을 통하여 2016년 청룡기에서 2008년 대통령배 이후 8년 만에 전국대회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고등학교 야구의 최강가인 덕수고에 4 : 9로 패했다.
그 이듬해인 2017년에 또 다시 청룡기 4강에 진출하여 준결승에서 안산공고를 꺾으며 이 대회 20년 만에, 메이저 전국대회 전체로는 18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다. 비로 하루 순연되어 2017년 7월 16일 열린 결승전에서 혈전 끝에 주장 곽빈의 호투에 힘입어 서울고에 2-1 승리를 거두고 25년 만에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2019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영산고, 군산상고, 서울디자인고를 차례로 꺾고 4강에 오른 뒤 준결승에서 마산고와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 전주고와 우승을 다퉜으며 6-3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 첫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16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16강에서 김해고등학교한테 3:4로 패하며 탈락했다.[7]
김경섭 감독은 투수 자원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프로지명과 대학진학을 앞둔 고3의 경우 경기출전 실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팀 성적도 내면서 선수들 개개인의 대학 진학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팀을 잘 이끌고 있다는 호평이 많다.인터뷰
2. 출신선수[8]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나무위키 등록 선수[3] 심수창, 이명호, 정재훈 등이 활약[4] 부산고 2학년 투수 추신수가 맹활약하며 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유독 번트를 즐겨쓰던 부산고는 결승전에서도 번트로 한 점씩 짜내는 야구를 펼치며 6대3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5] 96년~99년 사이 김승회, 김성배, 심수창 등의 투수와 정현택, 김원섭 등의 타자라인이 꾸준히 활약하였다.[6] 사진은 한양대학교에서 뛰던 시절의 유니폼이다.[7] 김해고는 결승까지 내달리며 창단 후 첫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다.[8] 나무위키 등록 선수[9] 개명 전 김용윤[10]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성무 야구단(공군)에서 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