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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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3. 개발
4. 실전
5. 미디어 등장


1. 제원


  • 전장 : 5.7m
  • 전폭 : 2.3m
  • 중량 : 19t
  • 속도 : 44km
  • 행동거리 : 210km
  • 주포 : 47mm 전차포 1문, 7.7mm 97식 중기관총 2정
  • 장갑 : 최대 50mm
  • 엔진 : 統一 제 100식 발동기 4스트로크 V형 12기통 공랭식 엔진
  • 출력 : 240hp
  • 승무원 : 5명

2. 개요


'''一式中戦車 チヘ''' (Type 1 Medium Tank Chi-h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만든 중(中)형전차.

3.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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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힌골 전투로 자군 중전차들이 대전차 능력에서 고자라는 걸 절감한 일본군이 대전차 능력 강화를 목표로 급거 개발한 전차. 치헤라는 명칭은 원래는 개발을 감추기 위해 붙인 코드명으로 정식명칭은 1식중전차이다. 1식이란 번호는 일본의 황기 2601년(1941년) 배치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이 완료된 건 1943년이 되어서였다.
개발을 서둘렀기 때문에 주포 이외에는 대부분 97식 전차 치하의 컴포넌트를 유용했다. 그래도 차체에 본격적으로 용접을 사용했고 볼트 중량이 없어진 만큼 절약된 무게를 장갑 강화에 투자, 방어면에서는 제법 발전된 전차였다. 일본의 전차 가운데 최초로 대전차포 장비를 상정하고 만든 전차라 화력 면에서도 나름대로 충실하다.
형태가 47mm 포를 탑재한 치하 후기형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 차체전면부가 치하는 대량의 리벳으로 접합되어 있지만 치헤는 용접과 평면볼트로 접합했다.
  • 조명등이 치하는 차체중앙에 1개가 있는 반면 치헤는 양쪽 진흙받이 위에 각각 두 개가 탑재되어 있다.
  • 차체길이가 치헤가 치하보다 약간 길다.
  • 엔진 출력이 170마력에서 240마력으로 상승했다.
  • 탑승인원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나 장비운용면에서 효율성이 높아졌다.
  • 정면장갑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 탄약탑재량이 약 20발 증가했다.
  • 용접구조와 장갑판의 강화로 인해 실험에서 일제 150mm 견인곡사포를 직접 맞았을 때 치하는 너덜너덜해졌지만 치헤는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치헤의 차체를 활용한 1식 타하 자주대공포가 있다. 47mm 대신에 37mm 대공포를 장비했다. 프로토타입 딱 하나 만들어서 사진이고 정보고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가장 유명한 파생형으론 치헤의 차체에 포탑링을 늘리고 75mm를 무장한 치누가 있다.

4.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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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에서 사열을 받는 치헤부대.
주포의 개발이 완료된 것이 1941년 말이었고 포탄 호환을 이유로 49구경 57mm 1식 포가 아니라 48구경 47mm 1식 포를 장비하면서 대전차능력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여기에 처음 하는 용접 생산에 익숙치 않아 개발이 지지부진해지자 치하의 차체에 치헤의 포탑을 실은 땜빵형 치하(개)를 만들어 전선에 투입, 생산이 더 늦어져 정작 양산이 시작된 것은 1943년말이다. 이 때쯤이면 독일의 3호 전차는 기종을 막론하고 몽땅 구식이 된지 오래인 시점이고, 결정적으로 치헤는 3호 전차 중기형이나 M3 스튜어트에 비해서 전체적인 성능(관통력, 신뢰성 등)이 한참 떨어졌다.
덤으로 대다수의 생산량은 일본 본토 방위 목적으로 일본에 남아서 실전경험을 할 수 없었다.[1]
문제는 적 전차는 6호 전차 티거 쇼크로 단련되고, 75mm 포를 탑재한 M4 셔먼이었고, 47mm 포를 가지고 평상 시에 쓰는 탄환으로 셔먼을 잡으려면 측면이나 후면 공격밖에는 답이 없으며(그것도 70m 내에서 쏴야만 했다), 개량 철갑탄으로는 300m까지 접근해야 전면을 겨우 뚫을까 말까이지만, 셔먼이 한 방 쏘면 1km 밖에서도 그대로 박살날 게 분명한 빈약한 장갑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미 안습. 숫자로 승부하고 싶어도 생산량은 다 합해봐야 최대 587대라 미군의 물량을 생각하면 답이 더 안 나온다.
그렇다면 주포를 원래 예정되었던 49구경 57mm 1식 포로 교체하면 좀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가정도 있다. 하지만 해당 포의 경우 영국과 미국의 6파운더 대전차포와 유사한 위력을 지니는 걸 목표로 했으나 전쟁이 끝날때까지 양산품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2][3] 심지어 시제품조차 남아있지도 않은 상황인지라 이 포를 채택했으면 그야말로 무장도 없고 탄약도 없는 개막장이 되므로 그냥 기존의 주포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복좌기가 치토 마냥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37mm 포가 포탑에 명중 시 포를 못 쏘는 상황이 현실에서 나올 수 있다. 중량이 증가되었다고 변속기 조작에 T-34를 능가하는 조종수의 팔힘이 필요하였으며, 종종 제멋대로 튕겨나오는 변속기 레버에 맞아서 부상을 입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한가지 더 까자면 여전히 동축기관총이 포탑 후면에 향해 있다. 대보병 제압 능력이 치하와 같이 떨어졌다.

5. 미디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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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탱크에서 일본 4티어 중형전차로 나온다. 사진의 치헤는 57mm 실험용 포를 달고 있어서 제퇴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1] 일부 차량이 필리핀에서 실전을 가졌다고 서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리핀에서 치헤를 운용했다고 명시되어 있는 전차 2사단 예하 3여단 소속 7연대의 운용차량은 일본측 기록에 의하면 치하, 신포탑 치하, 하고 3종류로 신포탑 치하가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Steven Zaloga의 Japanese Tanks 1939-45란 서적으로 그마저도 어느 페이지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 혹은, 만일 당시 미국 측이 치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독일군이 T-34/85를 T-43으로 기록한 것과 같은 사례일 수 있다.[2] 심지어 이 6파운더도 625때 T-34를 상대로 완벽히 무력했다...는 건 헛소리고, 실제로 철갑탄을 충분히 확보한 숙련된 부대에서 제법 전과를 획득했었다. 수원 장안문 전투에서 대전차지뢰와 연계하여 3대(대전차포 전과는 1대)를 격파했으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6.25 초반 벌어진 청주 전투에서 18연대 산하 대전차중대가 T-34/85 3대를 격파하였다-- [3] 당시 소련은 대전차전에 한해 76.2mm보다 강한 관통력을 보인 57mm '73구경'포 장착형을 소수 양산하여 티거를 상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