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4 셔먼
1. 제원
2. 개요
Medium Tank, M4(혹은 M4 Sherman)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 중형전차다.[7] 셔먼이란 명칭은 미국의 유명 장군 윌리엄 테쿰세 셔먼에서 따왔다.
3. 영광과 좌절
3.1. 미군 최초의 제대로 된 중(中)형전차 등장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37mm 정도의 주포나 단포신 유탄포를 탑재한 전차가 고작이던 전간기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전차의 성능이 높아졌으며, 이러한 전장 상황의 변화에 미 군부는 타국의 이러한 신형 전차를 기존의 구식 전차로는 대응할수 없다고 판단해 75mm 주포를 탑재한 신형 전차를 개발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에 75mm 주포를 탑재하고 선회 가능한 포탑을 단 전차를 개발하려 했지만, 미군으로써는 포탑에 75mm급의 주포를 다는 것은 시도해본 일이 없었기에 급한 임시방편으로 차체에 75mm 주포를 단 M3 리를 만든다.[8] 그러나 M3 리는 어디까지나 차체에 주포를 탑재했기에 포탑에 탑재한 주포와 달리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결점이 있었고, 이에 미 군부는 포탑에 75mm 주포를 얹은 제대로 된 후계 전차로 M4 셔먼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M2 전차부터 이어져온 차체를 유용하여 디자인했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서 생산에서는 유리했지만 구식차체의 다양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전선에서 티거와 비교되는 바람에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루는 매체에서 야라레메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9] , 미군으로서는 처음으로 360도 선회포탑에 75mm급 중포를 얹은 차량이며, 등장 당시만 해도 장갑과 화력, 기동성을 비롯한 전차의 요소 모두가 상당히 균형 잡힌 우수한 전차였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도 들어 있어서 기동중에도 목표를 계속 조준할 수 있도록 주포에 수직안정장치를 장착하기도 했다. 다만 이 장치는 상하안정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실전에서 얼마나 명중율을 높여주었는가는 평가가 갈리는데, 최소한 저속 기동 중에는 어느 정도 명중을 낼 수 있었고 고속 기동 중에도 포수가 표적을 조준경 밖으로 놓치지 않고 계속 쫓는 데 유용했다고 한다[10] 적 차량 258대 격파 기록으로 유명한 셔먼 전차장 라파예트 풀의 경우 수직안정장치를 이용한 기동간 사격으로 적이 예측하지 못하게 사격하는 걸 특히 선호했다고 하니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던 듯.
개발 당시의 주포는 우수한 속사 능력, 고폭탄의 화력과 더불어서 당시 기준으로 뛰어난 대전차 능력을 지녔던 75mm 포가 선택됐다. 해당 75mm 포의 원형은 19세기말 프랑스가 개발, 전세계적 히트 대포가 되고 미군도 제1차 세계 대전 이래로 애용한 M1897 75mm 야포로, 이 포는 짧은 포신에 비해 포구 초속이 빨라 독일군도 프랑스에서의 노획품을 7.5cm PaK 97/38로 명명, 한동안 대전차포로도 쓴 물건이다.[11] 참고로 시제형 명칭은 T6 전차라고 했다.
셔먼이 세상에 최초로 등장했을 당시엔 회전 포탑에 75mm 급의 주포를 장착한 전차는 4호 전차와 T-34를 제외하면 대량생산된 전차 가운데엔 없다시피해서 화력면에서는 충분했다. 셔먼의 개발이 1940년, 생산이 1941년 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독일 주력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를 상대하기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평가했을때도 셔먼은 5톤이 더 무거운 만큼 전체적인 성능이 높아 저 4호 전차보다 주행성능이 우수하고 공방능력에서는 장포신형의 F2/G 이후의 4호 전차와 비교했을때 차체전면을 포함하여[12] 방어면에서는 우세했으며[13] 공격력도 딱 4호전차 G형의 전면 장갑을 표준 교전 거리에서 무리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호 전차와 비교하면 주행성능은 비슷하지만 공방능력이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중 하나가 바로 300대의 셔먼이었으니...[14] 셔먼의 배치 초기 아프리카에는 나름 중장갑의 셔먼을 잡을만한 전차인 43구경장을 장착한 4호전차 F2형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8,8cm FlaK까지 동원'''될 지경이었다.
문제는 저 75mm 포를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고 유럽 전선에서도 '''계속''' 썼다는 것. 이는 후속 주포의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군은 티거가 등장하기 전인 1942년 초부터 M10 울버린에 장착된 3인치 M5/M7 주포에 주목하여 이에 준하는 주포를 셔먼에 장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3인치 M7은 포미가 너무 커서 포탑에 그야말로 쑤셔넣는 수준이라 도저히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3인치 포의 경량화 버전이자 M18 헬캣에 탑재된 76mm M1 대전차포조차도 너무 커서 제대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이미 76mm M1 주포를 장착했던 M4A1 셔먼(제식명 M4A1(76)W)은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고는 도로 75mm를 장착해야 했다. 결국 사용 가능한 76mm포 버전 셔먼이 개발된 것은 T23 중형전차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해당 전차의 포탑이 셔먼에 장착된 1944년의 일이었다. 거기다 생산해된 M4A1(76)W의 재고도 대서양을 건너느라 D-Day를 맞추지 못하고 1944년 7월 코브라 작전이 되어서야 첫번째 전투를 치렀다.[15] 더해서 셔먼을 대체할 후속작인 M26 퍼싱이 심각한 심장 질환(...)을 달고 있어서, T23의 포탑을 셔먼에 장착하는 형식으로 때우고 기다렸으나 전쟁이 끝나갈 때 쯤에도 해결 못하고 선행배치 형식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와중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의 6호 전차 티거와 같은 강력한 중전차와의 조우시 기존의 75mm 포로는 제대로 대응이 불가능함을 확인했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대책 없이 "이런 예외적인 성능의 중전차는 독일군 내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전황 자체에 큰 영향을 줄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연합군 전차병의 희생을 늘렸다. 물론 통계적으로는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이 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더라면 재수 없이 티거와 조우해서 싸워야 했던 영/미군 전차병의 희생을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기면 독일은 판터를 양산하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이 독일군의 신형 전차 역시 티거와 마찬가지로 75mm 포로는 500m 안까지 접근해서, 그것도 측면을 노려야 상대 가능한 수준이여서 정면에서 격파하려면 76mm 포로, 그것도 HVAP같은 특수탄을 사용하거나 취약 부위를 노려 사격해야했다.
물론 셔먼의 '타이거 쇼크'는 주로 1944년 이후 유럽 전선에서 생겼고, 티거는 생산량 자체가 원체 적은데다 1943년만 해도 생산된 수량 대부분이 격전지인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으므로 셔먼과 티거는 거의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셔먼이 겪은 것은 '타이거 쇼크'가 아닌 '판터 쇼크'라고 부르는게 좀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티거와 셔먼은 판터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42년 12월 4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최초로 조우'''해 포화를 주고 받았으며, 그 와중에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동가능한 티거 131호가 영국군에 노획되었다. 그중 육군 501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지만 504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이탈리아 전선에 남아 방어전을 치르며 영/미군의 셔먼과 교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나 미군 전차병이 독일군 전차를 싸잡아 "타이거"라고 불렀던 점[16] 등을 감안하면, 판터 보다 먼저 등장해 그 위력을 과시한 티거로 인해서 연합국 전차병이 '타이거'라는 단어를 '독일 전차' 내지는 '중전차'에 해당하는 일반 명사로 인식해 버렸고, 판터의 등장과 그로 인한 쇼크 조차 '판터 쇼크'가 아닌 '타이거 쇼크'가 되어 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군 중전차의 상징과도 같은 티거는 절대적으로 수량이 적었다. 비교적 많은 양이 생산된 판터[17] 조차 미국의 압도적인 공업력을 바탕으로 한 물량 앞에선 한줌에 불과했고[18] , 그마저도 구동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가동률마저 높지 않았다. 실질적인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을 차지하고 있던 가벼운 4호 전차에 비해 75 셔먼은 조금 더 나은 수준이고, 76 셔먼은 고폭탄을 제외한 성능과 신뢰성, 생산성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19]
판터나 티거등의 예외적인 성능의 전차와의 교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셔먼의 기본 성능 자체는 준수한 편으로 미국/영연방/소련/자유 프랑스/중국 국민당[20] 정부 등의 거의 모든 연합국에서 사용했고, 영국의 경우는 전차 대량생산국이면서도 전쟁 후기에 들어서면 자국산 전차보다 M4A2 셔먼이 더 많을 정도였다. 최대 생산대수가 소련의 T-34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마구 찍어냈다. 거기에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셔먼을 유럽전선까지 수송하는 것을 방해할 독일 해군의 거의 유일한 전력인 유보트가 서서히 관으로 전락하면서 수송함이 격침될 일이 사실상 없어졌던 것도 있으며 파괴되어도 다시 수거해 고쳐서 투입할 수 있었으므로, 파괴된만큼 그때그때 새로 채워넣는 괴랄한 보급이 가능했다. 물론 현장에서 파괴된 셔먼을 회수해서 수리하는 사람들[21] 의 고통은 별개의 이야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따라서 셔먼에 관련된 진정한 문제는 셔먼 자체의 성능이 아니라, '''이거 말고는 딱히 투입할 전차가 없었던''' 미/영의 전차 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인 44년 중반 이후를 기준으로, 소련은 주력인 T-34 이외에도 티거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자주포 및 중전차를 운용했다. SU-152와 ISU-152 같은 대구경 곡사포를 장착한 다목적 중자주포는 고폭탄 한발로도 티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또한 SU-85/100처럼 대공포 기반의 직사포를 가졌고 연사속도도 괜찮고 즉응탄도 충분한 대전차전 특화 자주포도 등장하여 티거를 상대 할 수 있었다. 역시나 122mm 포를 사용하여 어느정도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다른 자주포도 많았다. 중전차로 보면 IS-2 같이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22] 공방 성능에서 티거를 뛰어넘는 중전차를 투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시기에 T-34는 이미 제한적으로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85mm 포를 장착한 상태라서 앞서 설명한 여러 자주포의 지원을 받거나 숫자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티거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미국과 달리 다양한 체급의 다양한 차량이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여받은 셔먼은 딱 75mm 포[23] 전차에 걸맞는 추격 및 보병지원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무리없이 써먹을 수 있었다.
반대로 미군 입장에선 아무리 성능이 좋아 봤자 체급상 상대가 힘겨운 셔먼'''만''' 가지고 티거 같은 중전차까지 상대해야 했다는 게 문제의 근원이다. 함대전으로 따지면 전함이 단 한대도 없는 순양함, 그것도 구축함이나 순양함 정도만을 상대할 것을 전제로 만든 순양함 전대로 적 전함과 싸워야 했던 건데, 아무리 이쪽의 성능이 좋다고 해도 근본적인 체급 차이로 나오는 전투력 차이를 어쩌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기더라도 큰 희생을 치뤄야만 한다. 그렇다고 이쪽이 월등히 성능이 우월한 것도 아니고. 미국도 M6 전차 같은 걸 만들어보긴 했으나 결국은 더 가벼운 중형전차를 선호했는데, 이에는 적 전차 성능을 오판한 문제도 있지만 바다 건너 배로 전차를 수송해 투입해야 하다 보니 무거운 전차는 꺼리게 되었던 이유도 크다. 셔먼의 사진을 잘 보면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바리에이션이 차체전면과 후방에 고리가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크레인으로 줄을 묶은 뒤 전차를 들어올려 배에 싣기 위한 용도였다. 당시 화물선 구조상 이런 불편한 방식을 써야 하는데 당시 미국에서 크레인으로 하역할 수 있는 중량 한계는 대개 40톤이었다.[24] 따라서 독일처럼 40톤을 한참 초과하는 전차(티거, 판터)를 중형전차처럼 굴릴 수 있었던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셔먼이 엄청나게 터져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티거를 잡을 수 있는 76mm포를 도입하는 등 애초에 중전차에 대응할 방법을 주지 않았던 것도 문제. 보통 보병 지원용으로 많이 쓰고 통계적으로는 확실히 티거를 조우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일단 만나기만 하면 그냥 눈 뜨고 죽어야 하는 극상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손실은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숫자가 적다고는 해도 아예 상대를 못 하는 적이 나와버리면 방법이 없으니까. 물론 미군도 강한 적 전차가 나타나면 쓰라는 전담마크맨이 있긴 했다. 문제는 그 마크맨이 대전차 자주포였고 화력이나 장갑도 전차에 비하면 대등하거나 한참 부족해 적 전차를 기습해서 처리하는 식으로 싸워야 했으므로 정면에서 만나면 제대로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전쟁 말기에 도입한 M36 잭슨은 90mm 주포로 화력부족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으나 빈약한 장갑은 여전했다. 대전 중기부터는 영국의 주력전차 역시 셔먼 계열이 차지한다. 그나마 이쪽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준비해놓기는 했지만 17파운더 포의 고폭탄 위력 부족으로 인해 전차보다는 대전차 자주포로써의 의미가 강했다. 소련처럼 티거와 맞상대가 가능한 중전차가 있었다면 셔먼이 오랫동안 관통력이 떨어지지만 보병 상대로는 더 나은 75mm 포를 쓰더라도 여차하면 중전차를 부르는 걸로 대응이 되니 나름 정당화가 되지만, 그런 게 있었어야 말이지? 따라서 이 문제 역시 결국 중전차가 없다는 문제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막상 다른 대안이 있는 소련조차도 T-34가 티거를 잡을 수 있도록 개량을 했다.
3.2. 장/단점
3.2.1. 높은 전고
M3 리, M6 전차 등 2차 대전 초창기 미국 전차가 대부분 그랬지만, 전차용 엔진을 개발해본 경험이 부족해 항공기용 성형엔진을 채택했다. 성형엔진은 그 구조상 단면적이 원형이므로 차체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후방엔진, 전면변속기를 채택해서 동력축이 차체 아래의 공간을 차지해서 차체가 높아지는 문제도 있었는데, 이건 동시기 비슷한 구조의 다른 전차에게도 비슷하게 존재했던 문제였다. 다만 셔먼은 [image] 물론 헤처와 같이 그냥 동력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헤처는 포탑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판터와 티거도 차체가 높았는데, 하부에 부피를 차지하는 동력축과 토션바를 둘 다 넣기 위해 차체를 높여야 했다. 반대로 셔먼은 서스펜션이 외부에 있어 하부 부피를 차지하진 않았다. 만약 셔먼이 토션바까지 채용했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전차가 나왔을 것이다.
2차 대전기 가장 차체가 낮은 중형전차는 크롬웰과 T-34였는데 둘 다 엔진과 변속기가 전부 후방에 있어 동력전달장치가 필요 없었고, 바닥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채용했기에 가능했다. 다만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문제로 전차 내부 폭이 좁아졌다. 2세대 전차인 치프틴도 토션바가 아닌 외부에 장착하는 홀스트만 현가장치를 사용해서 차체를 최대한 낮출 수 있었다. 한편 M18 GMC의 경우 토션바를 장착하면서 차체 하부 공간이 더 필요해지게 되자 [image] 공간을 좀 더 확보했다. 그러나 토션바로 인한 추가 공간이 필요한 건 어쩔 수 없었고, 토션바 방식이 아니고 동력축이 비스듬하지 않았던 셔먼M4A2 차체의 M10GMC의 개량형인 M4A3차체 기반인 M36의 90mm 포탑을 가져와 장착한 슈퍼 헬켓을 만들 때에는 공간 부족으로 인해 포탑 바스켓 하부를 잘라내야 했다. 현대 전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일체화된 파워팩 구조가 보통이다. 그러나 셔먼이 나올 무렵까지만 해도 변속기를 후방에 엔진과 같이 장착할 경우 정비가 힘들고 차체 뒤쪽의 변속기를 차체 전면의 조종수석에서 조작하게 만들기 어려운 등의 문제점이 있어 전방변속기, 후방엔진 구조가 나오곤 했다. 차체 뒤에 장착된 T-34의 변속기 조작이 유난히 어려웠던 이유도 이 부분을 제대로 처리 못한 데에 있었다.
덕분에 이 높은 전고로 인해 동시대의 中전차 중에서는 폭에 비해 차체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눈에 잘 띄고 피격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무게중심도 높아져서 넘어지기 쉬우며 방어력이 증가하면 무게증가가 심했다.
특히 철도의 건축한계규격이 좁은 사용하는 영국에서 셔먼을 운용할 경우 높은 전고 덕분에 굉장한 애로사항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Warwell형태의 열차 트레일러까지 세트로 만들어 영국에 수송해야 했다.
[image]
이런 이유로 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에서는 이 높은 전고가 단점으로 인식되었으나, 정글투성인 태평양 전선과 후일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군에게선 높은 전고를 통한 시계확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내부 공간도 넒어서 승무원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아 활동하기도 편하고, 피격시 승무원의 생존에 유리하기도 해서 전투 효율은 T-34보다 유리했다. T-34는 좁고 불편한 2차대전 전차의 대명사지만, 사실 영국 전차가 더 악명높았다. 무엇보다 넓은 공간과 널널한 설계 덕에 개량도 쉬웠다. 그 큰 17파운더를 집어넣어 파이어플라이를 만들거나, 슈퍼셔먼, 아이셔먼 등 업건이 가능했다.
3.2.2. 표적획득능력
높은 전고는 적에게 쉽게 들키고 잘 맞는 단점이긴 하지만 시야 확보 면에서는 더 유리하다. 또한 여러 모로 시야 확보를 하기 쉽게 만들어서, 후기형은 포수의 보조 조준경으로 1.x ~ 6배 가변배율 잠망경을 장착했고 물량의 미국답게 승무원 한명 한명마다 자기 자리에서 쓸 수 있는 회전식 잠망경이 있어서 해치 밀폐시에도 사방을 감시하기에 더 좋았다. 대표적으로 영화 퓨리를 보면 티거와의 전투 장면에서 티거의 측면으로 돌아가는 동안 부조종수가 잠망경을 돌려 티거를 계속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은 조준장치의 품질 면에서 미국산보다 약간 더 좋아서[25] 장거리에서 포착하기 좋았을지는 몰라도 승무원별로는 부족해서 근접상황에서 적을 찾는데 더 불리했다. 티거의 포수는 잠망경 없이 전면에 고정된 조준경이 있었을 뿐이었고 판터는 포수용으로 고배율에 넓은 시야의 조준경이 있었지만 셔먼과 달리 무배율 보조 조준경은 없어서 근거리에서는 표적을 찾는데 더 불리해서 이는 전차장이 포수에게 표적을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으며, 다른 승무원들에게는 고정식 관측창만이 있어서 시야가 제한되었다. 당연하지만 고배율 조준경은 무배율 ~ 저배율 조준경보다 시야각이 좁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터와 셔먼을 운용한 전후 프랑스군의 보고서에서는 판터의 조준시간이 매우 느리다고 하였다.
사실 셔먼도 초기형은 M3리와 마찬가지로 포수에게 잠망조준경만 달아서 조준이 부실했었다. 하지만 곧 M3와 초기형 셔먼의 운영교훈을 보고, 1943년 부터는 직시 조준경을 추가로 달아서 직시조준경으로는 정확한 조준을 하고 잠망조준경으론 터렛다운상태에서 조준 할 수 있게 변하였다.
또한 원시적인 헌터 킬러[26] 기능이 존재하여 전차장이 포탑을 움직일 수 있었다. 때문에 높은전고 + 1인 1잠망경 + 최상급 큐폴라[27] + 수직안정기 + 헌터킬러 기능이 엮여, 표적 획득 능력은 '''2차대전 전차중 최고'''[28] 였다. 거기다 포수용 잠망경은 주포와 연동되기 때문에 잠망경으로 조준이 가능하여 터렛 다운 상태로 적을 조준하고 수직안정기를 작동 후 헐 다운 상태가 되자마자 발사 후 다시 터렛 다운 상태로 돌아가는, 2세대 주력전차와 비슷한(수평안정이 부족하긴 하지만) 기동이 가능했다.[29] 이는 1세대 주력전차에서도 센추리온 전차만이 셔먼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2세대 주력전차(소련 제외)에는 미치지 못하나 시대를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덕분에 2차대전 셔먼 전차 승무원의 기록을 보면 적을 선제 발견하여 먼저 사격했다는 기록이 수시로 나오며, 심지어 영거리에서 마주친 티거는 셔먼이 십수발을 맞출때까지 반격을 하지 못 했다는 해당 전차 전차장의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이 셔먼은 75mm 탑재형이라 티거에게 상처를 못 주었고 그 티거의 반격에 포탑을 관통당했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의 전차전에서는 방어측이 숨어있다가 먼저 적을 발견하기 더 수월해 방어측이 월등이 유리했으며 독일은 선제 발견이 더 쉬웠던 방어측이었는데도 주로 공격에 나선 셔먼이 더 먼저 때렸다는 거다. 결국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중동전쟁에서 현대 주포로 업건을 한 셔먼이 T-54/55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그놈의 주포가 평판을 다 말아먹었던 것이다.
3.2.3. 장갑
한방에 터지는 야라레메카라는 인식과 달리, 동급 중형 전차와 상대하면 대체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허망하게 폭죽처럼 터지는 이미지는 그저 티거나 판터같은 더 체급이 좋은 적을 상대하다가 터진 것 때문이다. 초창기의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셔먼은 보다 가벼운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주포로는 잘 뚫리지 않는 장갑이었다. 셔먼의 장갑은 수치상으로 주적인 4호나 독일군의 골칫거리였다. 초기형 차체는 50.8mm 57도 경사 실질방호력 약 93mm. 후기형 차체는 63.5mm 47도 경사 실질방호력 약 111mm였다.독일의 판터와 티거는 더 넓은 트랙을 가지고 있어서 야지는 물론이고 진흙탕, 눈밭에서, 찐따스러울 정도로 좁은 트랙을 가진 셔먼 전차보다 기동성이 높습니다. 접지면적을 넓히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덕빌(Duck Bill)을 추가로 붙이고 다녔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죠. 개인적인 의견으로 우리네 셔먼은 독일 놈들의 판터와 티거 전차에 비하면 기동성이 안습 그 자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ㅡ제66 기갑 연대 폭스 중대장 헨리 W. 존슨(Henry W. Johnson) 대위
그런데도 셔먼이 잘 박살난 이유는 티거나 판터의 주포 관통력이 원체 뛰어났던 것도 있지만, 셔먼 자체가 전쟁에 대량으로 쓰인 시기가 너무 늦었던데다가[30] , 구조적인 문제도 기인했다. 항공기 엔진을 사용하는 구조적 한계로 전면투영면적 또한 크기에 비하면 제법 넓은 편이었던데다, 앞뒤로 길쭉했던 탓에 측면의 피탄면적까지 넓었으며, 하필 그 자리에 포탄을 싣고 다니다보니 유폭이 일어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측면장갑은 경사장갑이 아닌 수직장갑인데다 두께도 상당히 얇았기에 문제가 되었다. 널찍해서 맞추기도 쉬운데 그 부분이 약점이라고 보면 딱이다. 그 당시 예비 탄약을 차체 내에 쌓아두는 건 모든 전차의 공통점이었고, 유폭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독일군의 중전차를 상대로 부각된 장갑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차병은 이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 보곤 했다. 보통 전면과 측면에 남는 장갑판을 용접해서 붙이곤 했으며, 심지어는 장갑판도 아닌 그냥 철판을 가져다 붙이거나 콘크리트를 두껍게 바르기도 했다.[31]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역량을 쥐어짜내는 다른 나라 차량[32] 과는 달리 셔먼의 확장성이 원체 좋았기에 이러한 무게 증가에도 기동성 저하는 크지 않았다고 하며, 방어력이 약간이나마 증대되는 좋은 효과를 봤다고 한다.[33] 이러한 플랫폼의 신뢰성을 방어력으로 몰빵한 예가 바로 후술할 점보 셔먼인데, 이러한 예를 보면 차체 자체는 작정하면 티거 이상의 방어력을 내는 것도 가능했던 셈이다.
3.2.4. 론슨 라이터 논란
셔먼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역시 '론슨 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라이터의 광고문구가 '한번에 바로 불이 붙습니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론슨 라이터의 이 광고문구는 '''전쟁 후에 시작된 광고'''라는 게 함정이다.[34] 사실 전쟁 당시 미군에게 보급된 라이터는 주로 지포(Zippo)였으므로 만약 불이 환상적으로 잘 붙는다고 별명을 지어주고 싶었으면 그냥 지포라고 불렀으면 되었을 일이다. 실제로 태평양 전선에서는 불 잘 붙는 일본군 폭격기 G4M을 지포라고 불렀지만, 셔먼 계열 차량 중에서 지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화염방사기 장착형 전차 뿐이었다.''''론슨 라이터' 운운하는 소리는 엉터리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군 전차도 똑같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휘발유가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것부터가 유언비어입니다. 독일이든 미국이든 상관없이 전차 화재 분석 자료를 읽어보면 주된 원인은 항상 탄약입니다. 2차대전의 전차 화재의 가장 큰 원인이 탄약이었던 이유는 탄약 화재는 끌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엔진의 휘발유 때문에 불이 난 전차는 그 불을 끌 수가 있었습니다. 2차대전 전차 대부분은 소화기를 탑재하고 있었고 따라서 엔진 구획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 너무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별 문제 없이 끌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탄약 화재는 일단 났다 하면 끝이었습니다. 전차 포탄 추진제는 산화제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셔먼은 차체 측면에 탄약을 적재했는데, 좁은 공간에 탄약이 가득 들어 있어 문제를 가중시켰지요. 하지만 1944년 늦여름부터 습식 탄약고를 장비한 셔먼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그 문제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론슨 소리가 잘못되었다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독일의 사례에는 눈길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군 역시 4호 전차와 판터같은 전차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고 특히 판터는 연료도관 누출과 변속기 특성 때문에 불쏘시개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렇지만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독일측 자료는 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영어로 된 기록이나 회고록은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독일어 자료는 그렇지 못하지요. 그리고 독일어 자료 자체도 적어요. 셔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미군이나 영국군 전차병의 회고록은 수십, 수백 건이 있지만 서부전선에서 4호 전차나 판터를 몬 독일군 전차병의 회고록은 거의 없습니다. 동부전선에만 약간 있을 뿐이지요. 만일 있었다면 셔먼 전차병이 한 것과 똑같은 불평을 읽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사진자료를 보면 독일군 전차들이 셔먼과 같은 탄약 유폭을 일으킨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4호 전차의 탄약 방호 수준은 셔먼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관점 때문에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군과 영국군의 화재 관련 기록은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와 비교할 만한 독일군 자료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티거에 쏠리는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티거 승무원의 회고록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티거는 심지어 동부전선에서도 드물었지요. 그 반면에 수가 훨씬 많았던 4호 전차와 판터 승무원의 회고록의 비율은 적고요. Steven J. Zaloga
정확하게 따지고보면 셔먼은 맞으면 즉시 잘 불타는 전차는 아니었다. 노르망디에서 셔먼이 피탄당했을 때 불이 날 확률은 82%로 평균 1.89번 관통당할 경우였는데, 그러나 같은 전선의 독일의 4호 전차도 평균 1.5번 관통당하면 불이 붙을 확률이 80%였다.[35] 결국 셔먼과 4호의 화재율은 비슷했다는 것.
불이 잘 안붙는 경유를 쓰는 디젤 엔진을 사용한 전차가 아니고서야[36] 휘발유를 쓰는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전차의 화재확률은 거의 고만고만했다. 티거나 판터같은 독일 전차는 상대적으로 장갑이 두꺼웠기에 엔진에 포탄이 직접 피격되는 경우가 적었을 뿐, 관통된 경우의 화재확률에선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셔먼이 론슨 라이터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실존했던 별명인지 부터 의심되지만)는 셔먼의 장갑이 워낙에 잘 뚫렸기 때문이지 엔진의 화재확률이 타 전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은 아니다. 당장 4호 전차만 하더라도 화재확률은 비슷했으며, T-34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전차니 당연히 화재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셔먼의 구조상 측면을 피격당하면 포탄이 유폭하기 쉬운 구조였던 건 맞으나, '''포탄이 유폭당하면 골로 가는건 어느 전차나 마찬가지였다.'''[37] 다만 워낙에 많은 수가 쏟아져나온 셔먼의 물량과, 상대적으로(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티거나 판터에 비해 얇았던 장갑 탓에 그리고 이들과 교전했을 때 전술숙련도 등을 따지지 않고 평균적으로 1대 터질 사이 셔먼이 5대 가량 터지는 등 교전교환 손실이 높았다는 결과로만 따지면서 잘 불탄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긴 셈이다.
게다가 디젤 엔진 대신 가솔린 엔진을 채용한 것엔 이유가 있는데, T-34같은 소련 전차의 디젤 엔진 사용이 2차대전 당시에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물론 디젤 엔진을 채용한 전차 자체는 잘 찾아보면 꽤 많다. 문제는 M11/39계열이나 89식 중전차, 97식 전차 등 하나같이 처참하며, 해당 전차가 안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디젤 엔진의 저출력 및 작동시의 엄청난 소음과 진동[38] 이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는 미군에 야간 기습을 하려던 일본군의 작전이 전차 소음 때문에 홀랑 들통난 적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디젤 엔진을 쓰고 제대로 성공한 전차는 T-34 하나로만 봐도 무방할 지경.[39] 한마디로 독일도, 프랑스도, 영국도, 이탈리아도 잘 타는데도 괜히 가솔린을 쓴 게 아니다.
야전에서는 높은 정비성과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시절 디젤 엔진은 이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디젤엔진은 동일 출력의 가솔린 엔진보다 구조상 크고 무거운데다가 그만큼 생산단가도 높고, 무엇보다 당시 기술력으론 출력을 크게 올리기가 힘들었다. 이것이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기에 과거 미 육군이나 국군도 군용 차량엔 전부 가솔린 엔진을 쓸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가솔린 엔진이란 것은 절대 단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당시 의 소련군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디젤엔진이 채용되었던 것. 무슨 말이냐면, 디젤 엔진의 성능만 보면 토크가 좋기에 진흙탕인 러시아의 환경을 헤쳐나가기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련은 디젤엔진의 높은 소모성에 대해서 대처할 만한 역량을 가진 국가였고, 신뢰성이 좋지만 높은 가격과 시간을 요구하는 엔진보다 신뢰성이 떨어지더라도 대량생산이 싼 값에 빠르게 가능한 엔진을 선호했다.[40] 하지만 미국은 그런 타협없이, 세계 최고의 엔진을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따라서 간단하게 말하면, 셔먼이 디젤엔진을 채용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미군한테 적절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가솔린 엔진이 화재의 주 원인이었는지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탄약고 주변을 물로 채워서 유폭을 방지한 Wet Stowage(습식 탄약고) 형식을 채용한 셔먼의 경우, '''피탄시 화재 확률이 80%에서 15%까지 감소한다는 미 육군의 연구 결과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스티븐 잘로가의 연구에 의하면 휘발유가 화재의 원인이라는 것은 '''유언비어'''라고 한다.
워게이밍의 직원이자 전차 탐방 동영상으로 유명한 치프틴(Chieftain)은 화재율도 중요하지만 전차병의 생존률/사망률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이 운용한 셔먼의 전차병 사망률은 전쟁 전까지 약 3%로 사망률이 18.5%에 달했던 보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보직이었고, 미군 셔먼의 차량 격파시 전차병 사망률은 차량당 0.3명[41] 영국군 셔먼의 경우는 0.6명[42] , T-34는 약 1.8명으로 T-34보다는 셔먼이 전차병의 입장에서 더 안전한 전차였다고 한다. 이런 생존률 차이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전차병이 빠져나올 수 있는 해치의 수량과 위치와 관련이 있는데, 셔먼은 전차병이 좌석 바로 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치 4개와 차량 아래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가 있어서 화재 발생시에도 비교적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던 반면, T-34는 포탑 천장의 해치와 좁디 좁은 전면 운전수 해치만 있었고 차량의 크기가 작아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43] 바닥에는 작게나마 운전수와 전방 기관총 사수용 비상탈출구도 있었지만 이들은 피탄을 당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사망했으므로 나머지 승무원은 해당 탈출구를 쓰기 어려웠다. 영국군 셔먼의 피격시 전차병 사망률은 동시기에 운용했던 크롬웰, 챌린저나 코멧 전차 등과 차이가 없었으므로 셔먼이 유독 불에 잘 붙는 것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셔먼의 운전석 바로 위에 위치한 해치 또한 승무원의 생존성을 어느정도 늘려주기도 했다. 2차대전 당시 다른 전차는 해치의 위치가 승무원의 바로 위가 아니였다. 옆이나 앞, 위쪽 대각선 방향에 달려 있었고 중전차인 티거도 대각선 방향인데, 이렇게 느린 탈출속도면 궤도/엔진/주포 등의 전투력 상실시 제 때 탈출하지 못하고 전차와 함께 산화하기 딱 좋다.
위 동영상에서 보듯 해치의 크기와 주변 공간도 유독 넉넉한 편이었다. 동영상을 촬영한 치프틴은 신장이 일반적인 전차병보다 매우 큰 191cm라서 다른 전차에서 탈출할 때는 몸이 중간에 끼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덩치로도 셔먼만큼은 손쉽게 탈출했다. 해치 크기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통계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장신이어서 맡고 싶었던 전차병 보직을 아예 맡을 수 없었고 OCS를 거쳐 우격다짐으로 전차장이 되어야 했던 치프틴조차 쉽게 탈출할 정도였으니 피탄된 병사가 급할 때 탈출할 때 꽤나 도움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3.2.5. 기동성
셔먼 vs 티거 논쟁에서 셔먼을 옹호하는 쪽이 주로 주장하는 내용중에 "셔먼의 기동성은 6호 전차 티거보다 우수하니 우회하여 측면을 노려 사격하면 격파할 수 있다!"인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이와 같이 격파했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44] 셔먼의 기동성은 독일의 대전기 초중반 주력 전차였던 4호 전차와 3호 전차보다는 우월했지만 6호 전차 티거와 5호 전차 판터(이쪽은 스펙상 속도지만)와 같은 독일 전차와 비교했을때는 열세를 보이는 면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탈로그 스펙상 셔먼의 최고속도는 38~48km/h, 평균 노상속도 33km/h, 평균 야지속도 17~32km/h이다. 40km/h대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타 국가 전차의 평균 노상속도는 조금 열세였지만, 평균 야지속도는 최대 32km/h로 최대 25km/h에 불과한 티거와 T-34-85보단 우월했다. 추중비 역시 12hp/t으로 나쁘지 않은 편.[45] 오히려 제 3제국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인 회상(원제 Inside the Third Reich)에서 셔먼의 기동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셔먼보다 가벼운 3호전차, 4호전차와 비교했을때 이야기일 뿐이다. 카탈로그상 스펙은 우월했지만, 정작 셔먼의 실제 야지 능력은 티거와 같은 독일 중전차보다 열세였기 때문이다. 여기엔 셔먼의 높은 접지압이 한몫했다. VVSS[47] 형 셔먼의 궤도 폭은 421mm에 불과했고, 이는 0.96kg/cm^2이라는 무지막지한 접지압의 원인이 되었다. 0.735kg/cm^2인 티거의 접지압과 비교시 확실한 열세다.[48] 덕분에 티거와 판터가 주행가능한 지형에서 주행하지 못하는 참극도 발생했다.이탈리아 남서부 전선에서 노획한 셔먼은 야지에서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보였다. 우리 전차가 주행하지 못하는 산악지형에서도 충분히 주행이 가능했다. 대단한 점 하나는, 셔먼이 무게에 비해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는것이다. 셔먼의 야지 주행 능력은 우리 26 기갑사단 소속 동급의 전차가 나타낸것보다 훨씬 우수했다.[46]
사령부는 아군 전차의 기동성이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우리는 노획한 독일의 마크 5를 우리 전차의 시험조건에서 테스트 해봤다. 야지에서든, 도로에서든 독일전차는 우리 전차보다 빠를 뿐 아니라 깔끔한 선회까지 가능했다. 언덕 주행면에서도 뛰어났다.
- 미군 제2기갑사단, 윌슨 M. 호킨스 중령
도로에서의 고속주행성능을 위해 장착한 VVSS가 야지에서의 기동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셔먼의 선회 반경 역시 18.6m로 영 좋지 않은 편이었다. 결국 전차병은 덕빌(Duckbills)이라는 어댑터를 궤도 바깥에 추가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지압을 낮추려고 애를 썼고, 이 문제는 광폭궤도를 사용한 HVSS형 셔먼이 나오며 해결되었다. 문제는 HVSS형 셔먼의 생산은 1944년 5월에 시작되었지만, 정작 대대적인 보급은 노르망디에서 죽도록 터져나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내가 보기엔 판터와 티거는 (우리 전차보다)기동성은 물론이고 험지주파능력 또한 뛰어났다. 셔먼이 퍼지는 장소에서 판터와 티거가 활개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심지어 적어도 10대의 쾨니히스티거가 셔먼은 거의 기동이 불가능한 지형을 뚫고 역공을 가해오는 걸 본 적도 있었다.
- 미군 제2기갑사단, 전차소대 소대장 찰스 A. 칼든 하사[49]
3.2.6. 화력
2차 세계 대전 당시 셔먼을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 하면서 양산이 미뤄지는 와중, 트라이던트 회담(1943년 5월 25일)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히게 된다. 신형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 mm gun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지만(E6셔먼) 상륙작전에서 배재하면서 D-Day를 놓쳐 버려, 독일의 전차와 셔먼은 75mm를 장착한체 마주하게 되었고[50] , 신형주포를 탑재한 M4A1E6는 7월 코브라 작전부터 참가하게 된다.포구 초속이 더 빠른 독일 전차가 셔먼 주포 사정거리 밖에서 쏴제껴대니 별 수 있습니까.1,000미터에서 독일 놈들이 아군 전차를 격파하는 건 조낸 많이 봤는데, 아군 셔먼이 판터나 티거를 300미터 이상에서 격파한 걸 본 적은 없습니다. 까놓고 말해볼까요? 우리 기갑 부대가 병신 같아서 실제로 판터와 티거를 부수는건 우리네 공군과 육군 항공대죠. 아니면 독일 놈들이 자폭했든가요. 그리고 반대로 더러운 독일 놈들 기갑 부대는 졸라 짱 쎄서 우리 전차 85%가 독일 전차, 돌격포 그리고 대전차포에 당했습죠. 솔직히 우리네 포구 초속 느린 75, 76밀리 주포로는 독일 놈들의 75, 88밀리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ㅡ제66 기갑 연대 폭스 중대장 헨리 W. 존슨(Henry W. Johnson) 대위
하지만 그 76mm마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일단 76mm 포는 1942년 제작을 시작한 당시 충분한 화력이였지만 표기된 관통력은 30도로 기울인 RHA 강판에 사격한 결과.[53] , 정작 탑재는 T23의 포탑이 나오고 셔먼에 탑재 되면서 1944년 1월이 되면서 였고,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연합군이 티거와 판터를 비롯한 독일의 신형 전차를 조우한 후인 1944년 중반에 들어서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미군 수뇌부는 76mm를 사용한다면 판터고 티거고 충분히 자국산 전차로 상대할수 있다고 판단해 버렸다. 판터의 장갑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정보를 입수하여 동일 두께의 장갑판에 사격을 해본 후에 관통가능이란 결과가 뜬 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맞붙어 보자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실전에선 높으신 분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 바로 '''탄착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맨 위의 관통력 시험 보고서 이미지에도 30도정도로 티타임#s-3을 준 채로 삐딱하게 서있는 티거에 대해선 '''측면조차도 표준 교전 거리에서 관통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있다. 이걸 무시한채로 주포 관통력과 장갑 두께만을 산술적으로 계산해 "뭐? 티거 정면장갑이 100mm인데 우리 76mm의 관통력이 109mm라고? 그럼 됐네!" 해버린 게 문제의 시작. 셔먼에도 경사장갑을 채용했기 때문에 설계시 탄착각을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장군급 지휘관도 76mm의 부족한 관통력을 모르는 경우가 있던 것을 보면, 일단 현장의 말단 병사는 잘 몰랐을 확률이 높다. 이 문제는 미군의 바주카 사용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며, 슈퍼 바주카도 이래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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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M93 HVAP탄이 제식으로 채용된 것은 슬슬 티거와 판터의 씨가 말라가던 1945년 2월 경[57] 이었던 데다가, 76mm 급의 HVAP같은 소구경 고속탄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급감하고 입사각 영향을 심하게 받기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1944년 8월 30일 행해진 미군의 76mm 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관통력 비교 시험에선 판터의 전면에 대해 200 야드 거리에서 발사된 76mm HVAP 4발중 3발이, 명중한 17 파운드 APDS 2발중 1발, APCBC탄 두발은 균열만 발생시켰을뿐 관통에 실패한 사례도 보고 되었는데,[58] RHA 강판에 대한 관통력 시험 결과 대로라면 200 야드 거리에선 당연히 모든 탄이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 했어야 한다.
하지만 '''T20이 계획대로 셔먼을 대체했다면''' 수뇌부 입장에서 76mm(17파운더 포함) 채용보류는 오판은 아니였다. 76mm는 고폭탄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에[59] 76mm셔먼을 배치하면서 옆그레이드가 되어 버렸고, 그것을 보충할 105mm셔먼과 75mm셔먼을 혼합배치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독일처럼 대전차포인 76mm로만 통일 하기에는 대전차전보다 대보병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데다, 76mm는 이미 대전차 자주포가 사용하고 있었으니, 셔먼에 같은 포를 장착하면 독일의 구축전차처럼 중복투자가 되어 버린다.
또한 75mm M64 백린연막탄도 전체 적재량의 10% 수준으로 수량은 적었지만, 연막탄 본연의 목적과 더불어서 대보병, 대진지, 대차량[60] 목적으로 전부 쓸 수 있는 만능 포탄으로 크나큰 호평을 받았다. 반대로 76mm M88 연막탄의 성능은 그저 그랬기 때문에 76mm포 셔먼으로 교체받은 전차 대대도 백린연막탄 발사 용도로 75mm포 셔먼을 한두대씩 계속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미국의 오판은 셔먼의 업건 보류와 함께 90mm 포 탑재에 관한 것으로, 기갑국은 셔먼(전차)에 90mm를 달아서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병기국은 76mm에 만족하면서 T25(전차)에 90mm를 탑재할지 말지(90mm가 필요한지)로 논쟁 하다가 90mm를 대전차자주포에 장착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길어진 논쟁으로 1944년 4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76mm 셔먼과 마찬가지로 D-Day를 놓쳤고, 실전에 투입하니 90mm를 장착하였어도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로 인해 전선에서는 90mm를 장착한 전차의 요구가 쇄도하게 된다. 결국 90mm를 장착할 역량이 충분했던 셔먼은 90mm 장착 전차의 전선수요가 발생한 다음에 다시 고려되었으나, 퍼싱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90mm 셔먼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비슷하고, 퍼싱의 양산에 방해될 수 있단 판단이 나와버려 포기해버렸다.
다만 공군 해군 위주의 미군에게 육군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2차대전 서부전선은 전차전이 중심이 아니라 보병이 중심이었다. 미군 전차병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낼 때 미군 보병은 15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설령 독일군의 전차가 성능적으로 우위라도, 그 외의 대부분의 요소에서는 미군이 훨씬 유리하므로 독일 전차병 입장에서는 '''셔먼을 만난다는건 그외의 야포나 항공지원, 다른 대전차 전력도 걱정해야되는 것'''이기에 셔먼이 현실적으로 크게 불리한 것은 아니였다. 거기에 76mm로 업그레이드 된 셔먼은 최소한 '''정확히 사격을 가하거나 고속철갑탄 등의 특수탄종을 사용시 자신을 뚫을 수 있었을테니, 잠재적 위협요소가 하나 증가한 셈이다.''' 물론 그 시기가 굉장히 늦긴 했지만, 76mm를 장착한 셔먼이나 그 이외의 차량에 대응하기가 어려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좋은 예가 바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소령이 75mm셔먼을 가지고 아군 항공지원도 없이 판터를 갖춘 독일 장갑부대를 '''8:3.1'''이란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박살'''내버린 아라쿠르 전투. 아라쿠르에서의 판터는 셔먼의 매복에 걸려들면서 상당한 피해를 냈는데, 셔먼 2대가 매복하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판터 2대를 격파했으며, 판터가 퇴각하기 시작하자 증원온 셔먼 4대가 우회해서 판터 8대를 추가로 격파해버렸다. 여기에서 셔먼쪽 피해는 없었다. 전차의 개별 성능도 중요하지만 기존에는 판터가 주로 방어적 상황이라서 유리했었지만 이번엔 오히려 매복에 당해서 형세부터 나빴고, 적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했기에 측면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컸다.
또한 대부분 간과하는 점은 셔먼의 75mm와 76mm는 전차의 임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보병, 대경장갑, 대진지, 그리고 4호 전차와 같은 동급 전차를 상대할 때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 매우 우수한 무기였다는 점이다. 물론 독일군 기갑전력의 하이엔드인 중전차를 만날때는 곤란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이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경우였다. 또한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예를 볼 수 있듯이 중장갑에 대적하기에 최적화된 포는 그 외의 다양한 임무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고폭탄의 위력이 낮아질 뿐 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투사할 수 있는 포탄의 수도 적어지고 휴행탄수도 적어지기 때문에 전투지속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기관총 진지 하나 잡는데 90mm탄 혹은 17파운더을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담이 있고 아까운 짓이다. 100번에 2,3번 정도 만날까 말까한 상대를 위해서 주력 전차를 전부 업건하여 나머지 97,98번의 임무에 대한 효율성을 낮추는건 군대 입장에서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며, 그런한 예외의 경우에도 TD나 포병, 공군과 같이 다양한 수단으로 충분히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의 큰 그림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3.2.7. 확장성
셔먼의 확장성은 놀라웠는데, 이는 튼튼한 서스펜션과 넓은 용적이 바탕이었다. 초기형의 무게가 15톤이었던 4호 전차가 장갑과 무장 증설로 인해 중량이 10톤 늘어나자 구동계에 매우 심각한 무리가 갔지만, 셔먼은 18톤인 M2 중형전차의 서스펜션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무려 20톤 상당의 무게을 증설한 점보 셔먼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다 점보는 HVSS로 현가장치를 바꾸고 퍼싱의 포탑을 장착해 90mm로 업건할 계획까지 있었다. 이는 취소되고 점보퍼싱으로 계획이 전환되었다
주포또한 처음부터 주포의 변경이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만 업건이 아닌 상황에 따른 주포 환장(105mm셔먼 등) 정도의 설계였음에도 2차대전에 쓰인 파이어플라이, 그리고 냉전기 이스라엘의 슈퍼 셔먼, 아이셔먼 등의 업건이 가능했다.
3.3. 유럽 전선
이렇듯 셔먼의 성능은 타국의 주력전차와 비교하면 나쁘진 않았고 오히려 일부 면에서는 우세에 있었으나, 상층부 및 기타 운용국들의 거한 삽질로 동급의 적 전차만이 아니라 더 강한 상대와도 싸워야 했던 탓에 막심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렌드리스로 건너간 소련에선...
이 정도면 잠재적인 적성국의 무기 체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일 것이다.[64]속도는 빠른 편이어서 적을 추격하는 작전에 유리하며 전술적 능력이 매우 높다. 75mm 주포[61]
는 고폭탄의 파괴력은 물론 철갑탄 관통력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주포는 물론이고, 탑재된 브라우닝 기관총 역시 고장 없이 아주 잘 작동하며, 방어력 역시 중전차로서 손색이 없는 60mm 장갑덕분에 80m 지근거리에서 14.5mm 대전차소총을 여유있게 막아낸다.[62] T-34보다 조종이 훨씬 편하고 쉬우며 오랫동안 주행해도 고장이 잘나지 않고 엔진 역시 튼튼하며 고장이 없다. '''정말 잘 만든 쓸만한 전차'''지만 넓은 평지에서는 높은 차체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는 단점[63] 이 있다.
초창기 셔먼의 약점은 트랙이 고무로 덮여서 고온에서 금방 벗겨지고 지면과의 마찰력이 떨어져 험지 주파 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점은 미군측 기술자의 도움으로 새 트랙을 공수해와서 금방 해결되었다. 그리고 일반 도로를 밟기만 해도 굉음을 내던 T-34와는 달리 고무 트랙을 썼던 셔먼은 도로에서 자동차처럼 조용했으니 일장일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5]
전고가 높아서 무게중심이 높은 것도 문제점이었는데, 험지에서 급하게 선회를 할 경우 옆으로 넘어질 위험성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탄 전차가 옆으로 넘어져서 세우는 동안 중대의 전차가 죄다 돌격했다가 기습을 당해 전멸당하고 나는 살아남았으니 이런 약점에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기 형식은 해치가 수직으로 열렸던 탓에 주포에 부딫히면서 조종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이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미군측 기술자가 도와준 덕에 수평으로 열리도록 개선되었다. (마틸다 전차에 딸려온 영국 기술자는 협조나 개선은 커녕 부품을 갈아끼우는 것 조차도 사사건건 방해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내부는 T-34와 비교하면 마치 서유럽의 고풍스러운 그림 작품과도 같았다. 내부 공간도 넉넉했고 수리가 쉬웠을 뿐 아니라, 좌석에 깔린 인조 가죽이 워낙 질이 좋았기에 격파되거나 유기된 셔먼이 보이자마자 가죽을 벗겨서 구두를 만들고는 했다. 배터리를 충전할 때도 T-34는 엔진을 무식하게 돌려야 했던 반면에 셔먼에는 작은 오토바이 엔진이 배터리에 연결되었기에 오토바이 엔진을 돌리면 손쉽게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었다.
T-34에 화재가 발생하면 군령을 어겨서라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야 했다. 탄약이 워낙 빨리 유폭되었고 불길이 사방으로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가 탄 셔먼이 피탄되어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적의 기관총과 박격포 세례를 피할 수 없었기에 불타는 차량 아래에 숨어야 했다. 그런데 철갑탄이 유폭되었음에도 고폭탄이 터지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살았다. 소련군의 위험한 화약과는 무언가 다르면서도 안전한 화약을 쓴 것이었다.
포탑 상부에 거치된 캘리버 50은 본디 대공 용도였지만, 영악한 독일 놈들은 사격 각도를 주지 않고 수직 사거리 바깥인 800미터 위에서 급강하 폭격을 했기에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거둔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 놈들의 자살 돌격을 막는데는 아주 쓸모가 많았다. 기관총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았다.
실제 타본 사람들의 소감. 주로 76mm 셔먼을 탔다고 한다. 그외에 각종 사료를 다 봐서 꽤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결론적으로, 다른 전차와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전차였다. 누군가가 이 전차를 나쁘다고 욕할 때마다 나는 '''"뭔 소리야?"'''라고 대꾸한다. 대체 어느 전차와 비교해서 나쁘다고 하는 것일까?
76mm를 장비한 셔먼은 1944년말에나 도착하는데, 이때는 이미 소련 기갑부대의 주력이 T-34-85였고, IS전차나 ISU-152등의 무식한 화력의 기갑 병력이 '''붕어빵처럼 찍혀나오던 시기였다'''. 관통력이 높은 100mm 대공포 대신 화력이 더 강한 122mm 야포를 선택하여 중전차에 넣고 관통력이 높은 57mm 장포신 포 대신 화력이 강한 76mm를 선택하던 화력덕후 소련답게 셔먼의 신뢰성에는 매우 만족했지만 화력에는 만족하지 못했다고. 다만 소련군은 미군과 다르게 독일군의 티거나 티거 2에 대응할 수 있는 중전차와 중장갑 자주포가 있었으므로 셔먼의 화력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또한 아래에도 언급하지만 셔먼을 운용한 일선 장병들은 이런 면모 때문에 다른 이유로 셔먼을 좋아했다. 앞에서 언급한 약간 부족한 화력 때문에 소련군은 독일군의 중전차나 대전차포와 최일선에서 직접 대결하는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에는 셔먼 대신 IS-2와 같은 중전차를 주로 투입했고, 셔먼은 그 바로 뒤에서 전과를 확대하고 아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 말은 셔먼에 탑승한 소련군 장병들은 임무가 덜 힘들고 죽을 일도 덜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셔먼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종합하면 가혹한 소련의 환경에서도 잘 작동하고 고장이 잘 안나는 주행장치와 엔진의 신뢰성, 오리 궁둥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향능력이 형편없기 그지없던 소련제 전차와 비교를 불허하는 고성능의 조향장치와 내부 승무원을 배려한 편의성, 맞으면 높은 확률로 화재가 나거나 유폭되어 승무원 모두가 요단강으로 가는 소련제와 비교해 불이 나도 소련제보다 안전한 습식 탄약고를 비롯한 생존성이 좋은 설계, 전차를 관통시키는 것보다 아예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것을 선호했던 소련군도 맘에 들어한 고폭탄의 화력, 이외 자잘한 편의성 최종적으로 상대적으로 저구경으로 인해 대구경 전차보다 덜 위험한 전장에 쓰인다는등... 소련군이 가장 좋아했던 서방제 전차라는 말이 결코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소련군의 M4 셔먼은 전쟁 후반기까지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공여받은 M4 셔먼에 있는 주포안정장치와 무전기는 복제돼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련 전차에 쓰였다.
셔먼이 밥값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대전 후반기인 1944년 10월, 미5군은 수백대의 75셔먼이 있는데도 '''그딴 거 줘도 안받으니까 76을 내놔, 지금 당장!'''해서 모든 전차를 76셔먼으로 교체해버린다. 사실 셔먼이 첫 등장한 북아프리카의 경우 셔먼을 상대할수 있는 장포신 4호(F2형)같은 기갑차량이 드물어서 셔먼은 당시 추축군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유럽에 돌아온 연합군을 맞이한 독일군은 (화력만큼은) 셔먼과 대등해진 4호에 3호 돌격포를 비롯한 각종 구축전차, 돌격포에 표범과 벵골 호랑이같은 맹수들을 있는 대로 다 끌고 나왔고, 여기에 영국군의 우직한 전차 운용까지 겹쳐진 결과 셔먼의 손실률은 상상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전쟁 후기로 갈수록 76셔먼의 수도 늘어나고, 이런저런 전술과의 시너지로 인해 아라쿠르 등지에서는 판터를 상대로도 사실상 압승을 거두기도 했을 정도이다. 판터의 경우 구동계통의 신뢰성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았으며 쿠르스크 이후 어느정도는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별다른 엄폐물이 없는 평지인 아라쿠르 같은 지역에서는 짤없이 털렸고, 그 결과 아라쿠르 전투에서 판터와 셔먼의 교환비는 8대 3.1이었다.
유럽 전선에서 셔먼의 교전 기록중 특이한 사례로는 셔먼 1개 중대와 반궤도 장갑차에 탑승한 보병 1개 중대, 3대의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로 구성된 웰본 기동부대가 미 제3기갑사단장[67] 을 전사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제507 중전차 대대 3중대의 티거 2 10대와 지근거리에서 조우해 괴멸적인 피해(셔먼 17대, 하프트랙 17대, 3대의 트럭, 1대의 M36 GMC 그리고 트럭 두대)를 입은 사례로,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뭐가 특이한가 싶지만 특이한점은 이 전투에서 3대의 티거 2 완전 손실이 보고 되어 있는 점이다. 그것도 그중 2대는 76mm셔먼도, 보병의 바주카도 아닌 초기형 포인 M2 75mm 셔먼의 전과. 어째서 이런일이 가능했는고 하니...
언덕위와 숲 방향에서 갑툭튀한 티거 2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와중에 75mm형 셔먼 한대가 숲 방향에서 나타난 티거 2 3대를 향해 돌진을 감행. 지근거리에서 백린탄으로 사격을 가해 발생한 연기와 화염으로 티거2의 전차병들은 어마어마한 연기에 질식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전투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 결국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그것도 연달아 두대를. 이 용감한 셔먼은 결국 다른 한대의 티거2에게 격파당했지만, 76mm도 아닌 75mm로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한것으로 여긴 강력한 중전차를 상대하며 승무원의 기지 만으로 상대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린 뜻 깊은 사례. 해당 티거2가 소속된 제507 중전차 대대 3중대의 기록에선 해당 전투에서 티거2 3대의 완전 손실(이중 한대는 다른 셔먼이 티거2에게 두들겨 맞는 동안 농가에 숨어들어 측면을 노리고 매복 공격을 가한 76mm의 셔먼의 전과로 확인)이 보고 되어 있어 백린탄에 의한 티거2 격파는 사실로 인정됐다.http://panzerkatz.egloos.com/327222
또 실제로는 독일군 기갑이 연합군 기갑보다 우위라고 볼 수도 없다. 1945년 봄 미 육군 탄도학 연구소(US. Army's Balistics Research Lab)에서 연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미국 제3 및 제4 기갑 사단을 표본으로 조사했는데, 이는 미 제3, 제4 기갑 사단은 미군 내에서 대전 중 가장 많은 전차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 두개 사단은 1944년 8월부터 12월까지 총 131회의 전차전을 벌였고, 이 대부분은 소규모 전차전이였다.대규모 전차전의 경우는 그 진행상황을 식별하기도 어렵고, 뭐에 어떻게 당했는지 판단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였다는 것. 미 육군 탄도학 연구소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전차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되게 말하자면, "선빵필승",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방어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인데, 익숙한 지형에서 매복하고 있는 적 전차와의 교전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공격 하는 측은 보통 이동 중이고, 지형에 익숙하지 않으며, 매복한 적을 늦게 발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응도 방어하는 측 보다 훨씬 느리다. 총 교전 횟수를 100%로 놓고 봤을 때 방어 측 전차가 선공을 가한 경우는 84%였다. 그리고 공격 측은 방어 측의 평균 4.3배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매복한 독일 전차 1대와 공세에 나선 미국 전차 4.3대가 교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16%의 경우 공격 측이 선공을 가했고, 방어 측에게 평균 3.4배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다. 낮은 확률로 공세에 나선 미국 전차 1대가 독일 전차 3.4대와 교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쉽게말해 선빵 맞은 셔먼은 독일전차 1대에게 4.3대가 썰려나간데 반해, 선빵 먼저 친 셔먼이 독일 전차를 평균 3.4대를 썰고다녔다는 것. 독일군 전차의 교환비가 매우 높게 잡힌 이유는 그저 연합군이 어지간해선 선빵을 맞을 수밖에 없는 공격측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술과는 큰 상관 관계가 없다. 단순히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쏘는 측이 유리하다는 증거이다. 전차전은 전투 초기에 승패가 갈리며 선공을 당하고 다대한 피해를 입은 측은 전멸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후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 기술적 우위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었다. 판터가 우세한 성능을 바탕으로 셔먼을 상대로 총 5 대 1의 교환비를 보였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 연구 결과 그런 교환비는 나오지 않았다. 실제 판터 vs 셔먼의 싸움에서 교환비는 판터손실 310대, 셔먼손실 425대로 1.5:1 정도의 교환비가 성립했다. 결국 기술적 우위보다 전술적 상황이 승패를 결정짓는 데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 승무원의 훈련도와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경험 많은 전차장은 적 전차를 먼저 발견하고, 잘 훈련된 승무원은 유기적으로 행동해 적 전차에 먼저 사격을 가했다. 우수한 포수는 이를 바탕으로 적보다 먼저 명중시켰다. 그러나 결국엔 매복한 상태로 열세한 성능의 전차에 탑승해 방어하는 비숙련 전차병이 강력한 전차에 탑승해 공격해 들어오는 숙련된 전차병보다 더 유리하다. 생각해보면 아르덴 공세 때 벌지전투에서 방어중인 헬캣 4대가 독일군 기갑 30대를 상대로 26대를 격파하기도 했고, 미하일 비트만도 매복중인 셔먼 파이어플라이에 비명횡사했다. 기습엔 장사가 없는 것이다.
3.4. 태평양 전쟁
[image](전략)
어둠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굉음은, 살펴보니 거의 이, 삼십대의 '''대형전차 같았다.''' M4형 전차의 '''위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대로 여기 있다간 벌레와 개미처럼 쉽게 뭉게질 것이 당연했다. 그 섬뜩한 캐터필러 소리는 우리를 "도망쳐", "도망쳐" 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 이시하라 중대장은 즉시 전진 명령을 내렸다. '''전진은 퇴각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중략)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거대한 전차무리에 따라잡히지 않도록 도망에만 열심이었다. 중대는, '''사나운 호랑이에 쫓기는 양처럼,''' 등뒤의 늪 속으로 흩어지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뛰어든 것은 좋았지만 힘든 장소였다. 그 늪에는 악어도 있고 독충도 서식하고 있었다. 늪을 건너다 어디에서 덮쳐올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육지의 전함"에게 짓밟히는 것만은 못한 것이었다.'''
-후나사카 히로시 저. '''『영령의 절규, 옥쇄의 섬 앙가우르전기』'''(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24~25
유럽전선에서 비록 많이 밀리긴 했다만 자기보다 체급이 높은 중전차를 상대로 대단히 선전했었던 것 이상으로 태평양 전쟁에선 매우 큰 활약을 했는데, 일본군은 미 해병대가 대전차 전투보단 밀림 속을 밀고 들어가기 위해 투입한 M4 셔먼을 맞닥뜨리자 '악마를 만났다'면서 패닉에 빠졌다. 일본군이 보유한 그 어떤 대전차포도 셔먼한테는 이빨도 안 들어갔으며, 철석같이 믿고 있던 47mm 1식 기동 속사포 탑재 97식 改 치하가 쏘는 포탄도 가볍게 튕겨냈다. 거기에다가 '뭐라도 움직이는 것만 보이면 일단 쏴대고 보는' 미군 특유의 호전적인 전투 방식 때문에 사방에서 피해가 속출, 1944년의 필리핀 탈환전에선 셔먼에게 그야말로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다. 가까이 숨어있다가 지근거리 기습으로 셔먼을 잡은 몇몇 97식 改도 있었지만, 그 직후엔 역습을 받아서 괴멸당했다. 화염병도 썼으나, 태평양의 셔먼은 디젤 엔진을 쓰는 A2형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가장 강력했던''' 전차인 '노획한' '''M3 스튜어트 전차'''를 끌고 나왔지만 M3 스튜어트로 셔먼을 막을 수 있을리가 있나. 그러다보니 대전차총검술 같은 어이없는 전법까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셔먼을 가장 애먹인 것은 사방에서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일본군 '''보병'''[69] . 그래서 뾰족하게 만든 철판과 쇠못을 차체에 용접해서 전차를 고슴도치처럼 만들고 다녔다고 한다. 일본군도 부랴부랴 셔먼에 대항할 전차를 개발했지만 너무 시기가 늦어서 포탑이 달린 것 중에선 치헤, 치누, 치토 등을 양산했지만, 치헤는 화력이 치하와 그리 차이 나지 않고, 치누는 그 치헤 차체에 그나마 근거리에서 셔먼을 뚫을 포를 얹는 바람에 느려터졌고, 치토는 2대만 굴릴 수 있어서 너무 적었던데다 시기도 늦고, 오이는 물론 충분히 격파 가능하지만 시험차량을 한 번만 굴리고 폐기해버려서 오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본토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전차자주포로는 치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든 호니는 치누에 달린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셔먼을 전면 격파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필리핀에 가서 결전을 준비했지만 대부분의 차량이 바다의 어초가 되어버리고, 무사히 상륙한 소수의 차량으로 맞서 싸웠지만 노획당했다. 설령 최고의 포탑 장착 전차인 치리와 오이가 나왔다고 해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것은 미군이 작정하고 6호 전차 티거 대항마로 개발한 1,000여 대의 M26 퍼싱 중(重)전차였다.[70]
그 밖에 동굴 속에서 농성하는 일본군 수비대에 대항하기 위한 화염방사 전차[71] 와 불도저 전차같은 현지 개수형 차량도 등장했다. 화염방사 전차는 동굴이나 참호에 불을 뿜었고, 불도저 전차는 땅속을 파고들어간 뒤 99식 파갑폭뢰를 품에 안고 자폭하려는 일본군을 생매장하는데 쓰였다.
물론 세상 일이 다 그렇듯 태평양에서 비교 대상이 없던 무적의 위용을 뽐내던 셔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손실도 없이 항상 일본군을 밀어버리며 다닌 건 아니었다. 일본군도 머리가 있는 이상 자신이 보유한 구세대 대전차포로 대항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미군의 선제포격에도 버틸 수 있는 반사면 진지나 견고한 대전차호를 구축해 잘 위장시켜 매복시켰다. 또한 적재적소에 대전차지뢰를 깔고 자폭병을 배치시켰다.
일본군은 이런 매복된 대전차포로 기습적인 화망을 구성, 셔먼의 약한 측면, 후면을 타격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최전선에서 실전 경험을 통해 단련된 부대는 셔먼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습시에는 착실히 피해를 줄 수 있었다.[72] 그래서 아무리 강력한 셔먼이라고 해도 역시 유럽에서 그랬듯이 전차의 사각(死角)을 지켜주고 정찰을 통해 적의 매복이나 위험요소를 미리 알려주는 보병과 함께 작전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잘만 했다면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냈다. [73]
보병은 전차처럼 강력한 장갑과 화력이 없는 대신, 넓은 시야와 탐색력을 가지면서 전차가 접근할 수 없는 거친 지형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군 보병의 화력은 전차의 사각에서 대전차총검술 등을 시전하는 일본군 보병의 접근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충분했다.
다만 이걸 일본군도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태평양전쟁 후반에 들어서는 미군 보병과 셔먼이 같이 진격해올 경우 일본군은 전차에는 큰 피해를 주기 힘들지만 보병에게는 치명적인 박격포를 쏟아부어서 일단 미군 보병들을 제거하거나 전열에서 이탈시킨 뒤 전차들만 남았을 때 일제히 대전차 공격을 가하는 전술을 즐겨 썼다.
이 전술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셔먼 단독으로 다니는 건 태평양 전선에서도 위험하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가 있는데 바로 가카즈 전차전이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미 제139 전차 대대 소속 A중대의 셔먼 전차 30대는 보병부대와의 연락이 끊긴 채 단독으로 가카즈 고지를 돌파하다 대전차포 화망에 걸렸는데 단 한차례 전투에서 셔먼을 22대나 잃고 8대만 살아 도망쳤다. 셔먼 전차는 매복된 대전차포가 어디에서 사격하는지 알수 없었으며 돈좌된 셔먼 전차 사이로 일본군 보병이 대전차 총검술을 벌이며 달려들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한 셔먼 승무원은 어찌나 다급했는지 후방의 27사단[74] 에 'HELP'라는 전신을 평문으로 계속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는 미군의 태평양 전쟁 중 가장 많은 전차를 상실한 전투로 기록되었다. 97식 전차 또한 이런 방법으로 몇 대의 셔먼을 잡기도 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작정하고 달려드는 일본군에 의해 800대의 셔먼중 153대의 셔먼을 완전 손실했다. 이는 미군으로 하여금 M26 퍼싱을 오키나와로 불러들이는 이유가 되었고 오키나와 방면의 일본군이 항복에 조인할 때 미군은 이 신형 전차를 항복 회담장에 도열시켰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한 M4는 4.7cm 1식 기동속사포 17발을 맞고서야 무력화당했다. 보병이 없는 전차는 태평양의 셔먼이라 할지라도 위험해지는건 마찬가지라는 증명이지만 이런식의 대응은 거의 죽음을 각오한 것이므로, 셔먼의 위상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셔먼을 많이 손실했다는 오키나와에서도 미군은 전차에 생채기만 나도 바로 바로 후방 정비대대에 수리를 보냈으며 그 와중에도 보충전차로 항상 전차부대의 정수를 유지시켰다. 결국 일본군 입장에서는 어제 한 대를 겨우 잡았는데 오늘 또 같은 수의 셔먼이 밀고 들어오고... 이하반복.
사실 오키나와 전역의 가카스 전차전 이전 이오지마 전역에서부터 셔먼이 본격적으로 대량 파괴당하기 시작했는데, 애초에 일본군이 처음으로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알아서 죽으러 와주던' 기존의 태평양 전선에서의 양상이 여기서부터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 처음 상륙하고 나서 기존과 다르게 저항이 없다가 갑자기 지뢰에 터지고, 심지어는 30여 톤 짜리 셔먼이 장난감처럼 휙휙 날아다니질 않나[75] , 내륙으로 들어가니 잘 위장해놓은 야포와 4.7cm 1식 기동속사포를 위시한 대전차포 부대에 의해 한 전투에서 대략 30여대를 한꺼번에 잃는 등, 셔먼의 본격적인 고난(?)은 이오지마 전투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오지마 전투부터 일본군이 정신 차린 결과, 셔먼부대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미군의 희생이 늘어난 만큼, 기존의 일본군의 전술이 그만큼 엉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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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혁명군 소속의 셔먼. 종종 이 사진을 일본군이 노획한 셔먼의 사진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자료가 적긴 하지만 미군 이외에도 국민혁명군이 셔먼을 미국에게 대여받아 중일전쟁 중 버마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운용했다고 한다.
태평양의 셔먼에 대한 다큐멘터리
전쟁 극후반에 소련군이 만주에서 운용하기도 했는데, 좁은 궤도 때문에 만주에서는 꽤나 애먹었다고 한다. 대신 전차장용 기관총은 자살 돌격을 막는 데 아주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3.5. 점보 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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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75mm 장착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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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때 포위망을 뚫고 가장 먼저 바스토뉴에 도착한 미 제2기갑사단의 M4A3E2 점보 셔먼. 일명 '''Cobra King'''이라는 별명을 지닌 점보 셔먼이다. 실제 차량은 현재 벨기에에 있다. 월드 오브 탱크에도 전차꾸미기 문장에 있다. 워 썬더에도 프리미엄 전차로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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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mm M1A1 장착 사양. 현지 개수형이다.
셔먼하면 주로 약한 방어력을 연상하기 쉽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시가전에서 중장갑으로 포탄을 튕겨내며 돌파구를 뚫기 위해 전측면에 1.5인치씩 6~8톤 남짓의 추가 장갑을 덕지덕지 발라 티거를 능가하는 떡장갑을 가진 M4A3E2 "점보" 셔먼도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전면상부 101.6mm(4인치) 47도 경사장갑, 전면하부 트랜스 미션 커버 114~144mm,(4.75~5.75인치) 포탑 전/측/후 모두 152.4mm(6인치), 측면 76.2mm(3인치), 포방패 177.8mm(7인치)라는 당대의 표준적인 중(重)전차급의 무식한 방어력을 지니게 된다.출처 대신 무거워진 게 단점이지만 전면 뿐 아니라 측면장갑도 상당히 강화되어 생존율이 높아진 점이 장점이다. 측면은 티거와 비슷한 수준인 76.2mm 장갑이지만 주 상대는 측면을 잡힐 일이 별로 없는 티거, 판터와 PaK 40 대전차포였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전면 장갑의 승무원 해치 구간[76] 도 평탄해져서 이후 M4A3 차체를 바탕으로 한 이지에잇도 비슷하게 매끈한 전면장갑을 지니게 됐다.
이는 셔먼의 설계에 이례적으로 여유가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점보 셔먼이 나오기 전 M4A3 전측면에 무게추를 달아 총 중량 37톤 상태로 500마일을 주행하는 테스트를 했는데 차량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다는 것도 중요했는데 동시대의 T-34나 4호 전차는 무게중심이 전방에 쏠린 구조 덕분에 전면 장갑 강화가 힘들었으나 셔먼은 포탑이 차체 중앙에 있어서 무게 중심이 잘 맞은 덕분에 장갑을 증설하고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무게가 한참 늘어났음에도 기동성이나 최고속도, 포탑 회전속도 등에서 심각한 저하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실 이런 중장갑형 셔먼은 일종의 임시조치였다. 원래 돌파용 중장갑 전차로는 M26 퍼싱 등의 보다 강력한 장갑을 가진 전차를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개발이 늦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셔먼을 임시개조 형식으로 만들어 투입한 것. 그래서 무리를 해가며 거의 차체의 한계까지 장갑을 장착한 터라 서스펜션도 고장이 잘 나고, 궤도 폭을 넓혔음에도 접지압이 높아져서 습지나 다리를 건너기 힘들어지는 등 아쉬운 부분은 있었으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었고 방호력도 강력한 장갑 덕분에 PaK 40의 사격을 모든 교전 거리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튕겨내고 8,8cm FlaK에도 쉽게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 야드 거리에서 88mm 포탄을 방호하고 바로 반격해서 날려버린 사례도 있다. [77]
포탑이 기본적으로 76mm 포를 장착 가능한 T23 포탑의 장갑강화형이었고 마운트 역시 보통 76mm 포를 장착했던 M62였음에도 그러했다. 탄약을 넉넉히 실고 다닐수 있고 적당한 장갑관통력과 고폭탄 성능 덕에 그리 된듯하다. 대신 별 개조 없이 76mm 장착이 가능해서, 전쟁 말기에는 격파된 76mm 셔먼에서 포를 떼어내 장착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화력에만 몰빵했던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완벽한 대척점에 서있는 물건. 실전에서는 대열의 선두에서 탱커로서 아군 전차대대가 맞을 분량의 PaK 40을 1~2대가 전부 다 맞아주고도 멀쩡히 굴러갈 수 있었고, 이는 점보와는 반대의 테마로 만든 파이어플라이가 티거에게 먼저 발견될 경우 쪽도 못쓰고 부서지던 것과 대비된다. 물론 다른 전차 대신 대전차포의 집중 포화를 받아주는 역할을 맡다보니 격파된 차량도 많았고[78] 하단 장갑은 그대로라서 대전차 지뢰에 격파된 사례도 종종 있었으나, 일반적인 셔먼이라면 진작에 터지고도 남았을 상황을 견뎌낸 덕분에 일선에서의 평가는 그야말로 대호평이었다. 밀덕 사이에서 셔먼이 야라레메카 취급만 받던 시절에도 점보 셔먼만은 뛰어난 방호력 덕분에 예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M4A3E2 돌격 전차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였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음. 기존 전차의 전선 투입에 차질을 빚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양을 양산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전선(유럽 전선)에 투입할 것을 요청함.
(아이젠하워 당시 총사령관, 1944년 1월 3일에 보낸 요청에서.)
심지어 전차하면 기동성이 최우선이라 생각한 조지 S. 패튼 장군조차도 점보 셔먼이 마음에 들어서 보급 요청을 했다. 하지만 생산 수량이 250대 정도에 불과한 귀한 몸이라 얻지 못하게 되자 비슷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슈퍼 퍼싱처럼 현지에서 장갑을 용접해 붙이라는 지시를 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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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의 4기갑사단에서 운용한 개조된 M4A3E8 셔먼인 썬더볼트 7도 그와 같은 현지개조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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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증가장갑에는 주로 격파된 다른 용접 차체형 셔먼, 혹은 격파된 판터 전차에서 잘라낸 전면 장갑을 활용했다. 특히 다른 셔먼의 전면 장갑은 차체 기관총이 들어갈 구멍이 이미 마련되어있어서 작업하기가 상대적으로 편했다고 한다. 이렇게 증가장갑을 장착한 차량은 총 100량 내외로 알려져있다. 이렇게 개조된 차량 중 하나는 PaK 40와 동급인 KwK 40 대전차포를 장착한 4호 전차 후기형에게 선제 공격을 당하여 전면 장갑이 분리되기는 했으나 격파당하지 않았고, 역으로 반격을 가하여 상대방 4호 전차를 격파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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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식 점보 셔먼은 증가된 장갑의 무게에 맞춰 변속기 기어비를 바꾸는 등의 개조도 이루어졌지만 이런 임시개조형 셔먼은 그런 조치가 없어 신뢰성 면에서 더 문제가 많았다.
3.6. M4A3E8(Easy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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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말에 등장한 기존의 현가 장치를 HVSS로 개선하고 주포를 76mm로 바꾼 M4A3E8, 통칭 'Easy 8'은 더욱 우수한 험지 주행능력과 주행 안정성, 주포 발사시 떨림방지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1944년 겨울부터 유럽전선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기본형 셔먼계열의 완성형.
2차대전 당시에는 M1 에이브람스로 유명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가 탑승한 전차인 "썬더볼트 VII"이 이 형식이었고, 대전후에는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되는데, '''M4A3E8은 훗날 대한민국 육군 기갑부대가 처음으로 보유한 진짜 전차'''가 된다. 한국군 창군 시기의 보유차량은 M8 그레이하운드 정찰 장갑차와 M3 하프트랙 병력수송용 장갑차, 그리고 군마(軍馬)여서 전차가 한 대도 없었다.[79]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게서 노획한 소련제 SU-76 경자주포를 노획하고, 1950년 11월에 미군이 준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를 경전차로 간주해서 '''한국군 최초의 전차'''로 쓰기도 했지만 대전차 자주포를 전차같이 쓸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이 보유한 제대로 된 주력 전차는 셔먼이 최초라고 봐야 한다. 성능이나 전차병의 숙련도가 우수했기에 북한군의 T-34-85를 상대로도 선전을 펼쳤으며, 퍼싱이 도착한 뒤에도 꾸준히 전투에 참가했다.
M4A3E8 버전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전세계를 싹싹 긁어가며 사들였다. 그래서 한국군이 1960년대에 M47, M48 전차를 도입하며 퇴역시킨 M4A3E8 셔먼도 죄다 이스라엘로 실려갔다. 다만 전쟁기념관이나 일부 전시되어 있는 차량을 보면 남아있는 전차를 모두 팔아버린 건 아닌 듯 하다. 60~70년대 군생활을 한 사람의 목격담에 따르면 사격지에서 표적으로 활용된 것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이스라엘이 모은 셔먼은 슈퍼 셔먼(장포신 75mm)과 아이 셔먼(105mm포)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는 슈퍼 셔먼의 개조에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크피르까지 이스라엘 마개조 역사의 파트너가 되었다.
참고로 공식 명칭은 M4A3(76)W HVSS지만 약칭인 M4A3E8이 더 널리 알려졌다. 이지 에잇이 워낙 어감이 좋은지라... 공식 형번을 풀어보면 'M4전차A3형 76mm포 탑재 습식 탄약고(W)장비 HVSS현가장치 장착차량'이 된다. 105mm곡사포를 장착하면 'M4A3(105)W HVSS', M4A3E'''9'''가 된다. 영국에 공여된 A2판 '이지에잇'도 있는데, 이쪽은 M4A2(76)W HVS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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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퓨리에서 나온 주인공 전차인 퓨리가 바로 이 형식. 영화에 등장한 전차는 상당수가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의 물건인데 2차대전 당시 랜드리스로 영국에 제공된 셔먼은 M4A2와 M4A4가 다수였기 때문에 전후 남은 것도 이 형식이 된 것이다. 어차피 M4A2나 M4A3이나 사용하는 엔진만 다르지 외형은 같으니 고증오류는 아니다.물론 찾아보면 영화촬영용 레플리카도 있다. 전신샷은 보빙턴에서 출장나온 친구가, 상부만 찍을 땐 촬영용 차량을 하는 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제08MS소대에서 육전형 건담의 현지개수형인 건담 Ez-8의 이름은 이 셔먼의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영문 위키에 따르면 몰락 작전 때 동원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포탑 뒤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은 환풍기이다.
3.7. 이 전차는 중형전차이다
셔먼 이야기가 나오면 티거의 싸움을 흔히 언급하며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80] , 셔먼의 중량은 60톤에 가까운 티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 셔먼과 자주 비교되는 독일군 전차는 비록 셔먼에 비해 5톤 정도 가볍긴 하지만 4호 전차가 있었으며 4호와 비교시 충분히 우수한 전차로 평가받았다. 사실 점보셔먼을 만들 만큼 확장성이 좋았던 셔먼과 달리 4호는 구동계상의 문제로 중량 증가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고, 이 기준으로 따지면 독소전 초기에 KV-1과 KV-2 앞에 손 쓸 방법 없이 터져나갔던 4호 전차 역시 형편없는 전차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인터넷상에는 독빠 성향의 서술이 강하다보니 독소전 초기 독일군도 소련군의 소수 중전차에 고전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무자비하게 격파해나가고 있었고 노르망디 이후 미군도 독일군의 소수 중전차에 고전하면서도 역시 전반적으로는 무자비하게 격파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같은 일을 해낸 4호 전차에 대해서는 훌륭한 전차라는 극찬만 있고 셔먼에 대해서는 론슨 라이터라는 서술만 쏟아져나오고 있다.'''셔먼과 전쟁 후기의 독일 전차를 1대 1의 조건으로 비교하는 잘못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데이비드 윌리, 보빙턴 전차 박물관 큐레이터. <탱크 북>에서 발췌.
따라서 굳이 미군 전차를 티거와 비교를 하려면 셔먼같은 중(中)전차가 아니라 티거과 같은 체급인 중(重)전차 시리즈의 T29나 M26 퍼싱[81] 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82] 셔먼이 티거를 상대하려면 셔먼 플랫폼을 헤비급으로 올려버리는 방법이 있다. HVSS 사양의 점보셔먼에 90mm포가 달린 퍼싱포탑을 장착한다는 초강수가 존재한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나타난 셔먼의 극심한 소모율(최대 580%)을 근거로 셔먼을 야라레메카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티거나 판터 같은 '''한 체급 위의 중전차를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했음'''을 감안하면 셔먼의 소모율이 높았던 것은 성능이 뒤쳐져서가 아니라 준수한 정면 방어력과 무난한 공격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이 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이탈리아,태평양 전선등 선박을 이용한 대규모 장거리 수송 및 보급을 위해 중량이 제한되었고 셔먼보다 상위 체급의 차량을 전선에 투입하기엔 많은 행정적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다가 랜드리스도 신경 써야 했다. 반면 나치는 대부분 유럽의 철도망을 이용해 운송하기에 히틀러의 지원에 중량 제한을 신경 쓰지 않고[83] 개발한 중전차 투입이 쉬웠다. 이 때문에 미영 연합국과 나치독일의 전차운용교리가 극명하게 다른것이다.
또한 랜드리스로 셔먼을 받아 썼던 소련군이 높이 평가한 얼마 안되는 서방제 무기라는 걸 보면 같은 중(中)전차인 T-34만큼 충분히 좋은 전차이다.[84] 재미있는 사실은 냉전기 소련의 문헌에서 M4의 능력에 대해 평가한 부분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고 겨우 사이가 좋았던 편인 영국의 발렌타인을 공여 전차 중 최고로 언급하는 정도였다.[85] 이후 소련이 붕괴되며 해금된 자료를 통해서 얻은 자료료는 T-34-85로 생산라인 변경이 이뤄지며 후방에 구형 T-34/76의 재고 떠안은 상황에서 운송문제가 발생하여 최전선에 전차가 부족해 졌을 때 당장 대량으로 공여받아 남아나던 M4를 근위전차사단에 우선 배치한 적도 있다.[86] 물론 이 셔먼은 순식간에 전멸하고 바로 T-34로 교체되었고 다시는 셔먼으로 교체되는 일 없이 계속 T-34를 사용했지만 어쨌거나 꾸준히 공여받은 M4는 이후에도 일부 부대에서 계속 사용되어 베를린 함락에도 투입되었고 발렌타인 전차등과 함께 만주 진공에도 참가했을 정도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물론 만주 진공에는 한심한 성능을 가진 일본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전차면 뭐든 ok였으며 부족한 성능으로 일선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최후방으로 돌려졌던 구형 BT 경전차마저 가져갈 정도였으니 이것만 가지고 고평가했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1945년에도 정예부대에[87] 까지 배치할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을듯 하다. 또한 같은 미제차량인 M3 리는 "일곱 동무의 관"이라는 놀림조 급의 별칭이 있었지만 소련군들의 평가로는 화력 빵빵한 APC로 평가했을 정도로 소련군들의 미제 사랑은 대단했다.(...)
76mm 셔먼은 훗날 만주 작전 때 좁은 궤도폭 때문에 험한 지형에서 꽤나 고생했다는 게 소련군의 평가지만, 그래도 신뢰성은 T-34 못잖거나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화력부분에서 소련은 절대 셔먼의 화력을 T-34 이상으로 판단한 적이 없다. 애초에 75mm 셔먼은 76mm T-34보다 단순히 봤을 때 구경이 작고 76mm 셔먼 역시 85mm T-34보다 구경이 작아서 고폭탄의 화력이 낮으며 또 실제 실험상으로는 포탄의 관통력에서 소련제 85mm가 미제 76mm에 비해 크게 우세할 것이 없지만[88] 소련의 전차 개발사를 보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관통력이고 뭐고 일단 대구경포를 올리고보는 경향을 볼 수 있고 실제 교리도 그랬기 때문에 대전차전에서 일단 포가 크고 관통력이 높은 APCR이 존재하는 T-34가 우선시되어 투입되었다. 다만 당연히 힘든 일 적게하고 신뢰성 좋고 거주성 좋은 셔먼을 탄 전차병은 T-34보다 셔먼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또 공여된 셔먼의 포 안정장치, 무전기는 복제되어 전후에도 오랫동안 소련군 전차에 탑재됐다.
참고로 M4에 '셔먼'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미군이 아닌 영국군으로, M3 경전차에 스튜어트, M3 중전차에 리/그랜트의 이름을 붙인 것도 영국군이다. 결국 미제 전차에 미국의 과거 유명한 육군 장군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은 영국이 만들어준 셈. 셔먼 이후, 미군이 자국산 전차에 붙인 이름은 M26 퍼싱(1차대전 당시 미군 원정군 사령관), M46, 47, 48, 60 패튼, M41 워커 "불독"(2차대전 중 패튼 휘하의 군단장, 한국전쟁 초기 미 8군사령관), M551 셰리든(남북전쟁 북군 기병대장군), M1 에이브람스(2차대전 당시 발지 전투에서 활약), M2/3 브래들리(패튼의 친구 겸 상관, 나중에 미육군 참모총장, M2/3 브래들리는 장갑차긴 하지만...) 등 미 육군사에 이름을 날린 장군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전차병이 이 전차에 탑승하기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셔먼은 남부 사람들이 증오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거짓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M4라고만 불렀고 그 어디에도 미국 남부 사람이 타기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없었다. 그리고 셔먼이나 스튜어드라는 명칭은 영국에서 쓰던 것이었다. 이 일화는 벨튼쿠퍼의 책 데스트렙에서 인용된 오류였다.
에이브람스 장군의 경우 당장 대전차용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75mm 셔먼만을 이끌고 독일전차 400대 이상을 씹어드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판터 전차를 상대로 8:3.1의 교환비를 보여주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괜히 현대 미합중국 주력전차의 이름으로 붙여진게 아니다. 그외에도 가끔씩 판터를 잡아내거나 한국전쟁에 투입된 셔먼이 T-34-85를 여럿 격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8. 유럽전선 초기의 피해
미국 제 1군 전차병 사상자,차량손실 통계
국내 밀덕계에선 독일 중전차에 밀리는 셔먼 때문에 유럽전선의 미군이 큰 피해를 본 것처럼 알려젔지만, 실상은 셔먼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연합군 운용상의 문제가 더 컸다.
사실상 미군, 더 나아가 연합군에 제대로 전차전을 할 줄 아는 장군은 패튼 밖에 없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 병사 폭행사건으로 부재중인 상황이였고, 나머지 연합군 장군들은 정석대로 셔먼을 독일의 방어선 정면에 들이부어버린 것이다. 이 상황이라면 중전차를 사용해야하는데 중형전차라면 아무리 중전차 체급인 판터라도 이 전술로는 제대로 활약하기 힘들다. 이상황에서 독일도 티거대신 판터를 사용해보고 판터에 대해 불만이 나오기도 했으며, 미군이 차기 전차로 가벼운 T25대신 T26을 후속으로 선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3주 동안 독일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피해만 늘어나자 결국 패튼을 복귀시키고 패튼식 작전인 코브라작전을 시행하면서 3주를 고생한 방어선을 뚫을 수 있었으며 이 당시에 사용된 전차는 당연히 셔먼이였다.
이처럼 전차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게 아니라면 전차의 스펙보다 전술이 더 중요하며, 오히려 독일 중전차와 달리 열차 수송 없이 단독으로 장거리 기동이 가능하며 대규모 운용이 가능했던 셔먼이 있었기에 유럽전선의 지상군의 피해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초기 셔먼에게 어울리지 않는 전술로 인한 피해가 워낙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셔먼이 못 써먹을 전차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3.9. 관련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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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저널 1945년 3월 27일자 기사 '전문가 패튼 장군이 미국 전차를 강력히 변호하다' '''
'''나치 전차를 상대로 2대 1 전적을 거두어'''
패튼 장군, M4가 타이거보다 기동성이 우수해 더욱 유리하다고 밝혀
최근 또다시 놀라운 돌파작전을 성공시킨 3군의 사령관인 조지 S. 패튼 중장이 지난 화요일 미국의 M4 전차를 강력히 변호하고 나섰다. M4는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던 전차이다. 패튼 장군은 3군 전차가 독일 전차를 상대로 약 2대 1의 전적을 거두었으며, 독일 전차의 상당수가 중전차인 타이거와 팬서 전차였다고 말했다. 패튼 장군의 입장은 그가 3월 19일 합동참모차장 토머스 T. 핸디 중장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패튼 장군은 편지에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자들이 전선에서 귀국하여 미군 병사가 가지고 싸우는 장비에 대해 흠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는 1942년 11월 7일부터 일선 전투부대의 지휘를 맡아 온 몸이므로 여러 가지 군 장비에 대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고 적었다.
'''M4 전차의 기동성이 더욱 뛰어나'''
"M5(경전차, 스튜어트)나 M4(중형전차, 셔먼)가 본국에서는 독일의 6호 전차, 즉 팬서형 전차와 타이거형 전차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3군이 운용되기 시작한 1944년 8월 1일 이래로 손실한 전차의 수는 총 1,136대이며, 같은 기간 동안 3군이 격파한 독일군 전차는 총 2,287대입니다. 격파된 적 전차 중 808대는 타이거 혹은 팬서 전차였으며, 아군 전차 중 851대가 M4였습니다. 이 숫자만 가지고도 우리 전차가 성능적으로 열세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 기간 동안 3군은 계속 공세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차 손실의 70% 이상이 적 전차가 아니라 엄폐한 대전차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반면 적 전차는 대부분이 아군 전차에 의해 격파되었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갖춘 타이거 전차를 거리 한 쪽 끝에 놓고 반대쪽의 M4 전차와 사격전을 벌이게 한다면 M4가 버텨내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M4는 기동성이 우수한 덕에 대부분 느리고 굼뜬 타이거 전차를 손쉽게 우회할 수 있고, 정면에서 사격을 주고받는 대신 취약한 후방을 노릴 수가 있습니다."
'''타이거의 주행가능 거리는 짧아'''
"내가 보기에 독일군은 무겁고 둔한 타이거의 등장과 함께 기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차는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가 주행가능 거리까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군이 전차가 아니라 숫제 포대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이 전차를 아군 전차를 막는 데 쓰게 되는 데 비해, 아군 전차는 전차의 올바른 운용방법대로 항상 공세에서 적 보병을 제압하는 데 투입되며 대부분 성공합니다. 만일 3군을 따라 프랑스를 가로질러 진격한 기갑사단이 타이거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다면, 3군이 모젤 강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행군간 손실률이 100%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수명이 긴 아군 전차의 행군간 손실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군의 모든 전차를 증기선에 실어 수송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여기에서 40톤과 70톤의 차이는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70톤짜리 전차가 투입되었다면 우리가 중형전차를 상륙정에 실어 해안에 내려놓은 것처럼 옮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군의 거의 모든 전차가 그랬던 것처럼 코탕탱 반도부터 라인강까지 주행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기계적 내구성과 정비 용이성에 있어 아군 전차는 전역의 어느 전차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또한 독일 전차에는 없는 기계식 포탑구동장치와 포구안정장치라는 장점이 아군 전차가 적 전차를 격파하는 데 막대한 도움이 되었습니다."[89]
'그 '독일군 전차 한 대와 미군 전차 다섯 대의 교전비'는 누가 지어낸 건지는 몰라도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운용한 셔먼 때문에 생긴 말 같고, 그나마도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군은 1944년 캉 지구에서 독일군과 교전하면서 다수의 셔먼을 손실한 적이 있지요. 60년대와 70년대의 초기 전차 관련 서적, 특히 미군 전차에 다룬 서적의 거의 대부분은 영국인 저자가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미국에서 쓴 전차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다수의 셔먼 관련 자료가 영국측 자료였고요. 그리고 영국군은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많은 셔먼을 잃었고요. 이는 전차 자체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인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긴 내용이라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영국군의 셔먼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미군 전차전력이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전차를 만난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상륙 후 첫 달의 전투는 대부분 7군단이 셰르부르로 진격하면서 코탕탱 반도에서 벌인 것이었는데, 코탕탱 반도의 독일군 기갑전력은 노획한 프랑스제 전차로 편성된 2개 대대 뿐이라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차전 자체도 별로 없었고요. 7월이 되면 미군이 보카주 지역으로 진입하면서 2기갑사단과 3기갑사단이 월말에 대규모 돌파작전인 코브라 작전을 개시하게 되는데, 보카주 지역도 전차전에는 그리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독일군도 전차전력이 있기는 했습니다. 기갑교도사단과 SS 2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였지요. '다스 라이히'는 지형 때문에 전차전 자체를 제대로 벌여보지 못했습니다. 한편 기갑교도사단은 7월 중순 큰 공세작전을 하나 시도하기는 했는데 미군에게 박살이 나고 맙니다. 어쨌든 두 사단 모두 미군 전차하고는 거의 붙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군 보병과 구축전차를 상대해야 했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요. 그리고 8월에는 돌파작전을 진행해 미군 전차가 브르타뉴를 지나 프랑스를 가로질러 파리까지 나는 듯이 달려갔습니다. 간헐적으로 전차간 교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규모는 매우 적었고요. 미군이 처음으로 독일군 전차전력과 대규모 전차전을 벌인 곳은 1944년 9월 로렌의 아라쿠르에서였습니다. 미군 4기갑사단이 독일군 기갑여단 몇 개와 맞붙었는데, 그야말로 미군이 압도적으로 깔아뭉개 버렸습니다. 패튼의 3군이 로렌에 있던 독일군 기갑여단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지요. 4기갑사단은 이 시기쯤 되면 훈련이 잘 되고 풍부한 경험도 축적한 상태였던 반면에, 독일군 기갑여단은 신품 판터 전차를 대량으로 보유하고는 있었기는 해도 부대 자체가 새로 편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경험 수준이 들쭉날쭉했으며 실제로 전투성과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가 2차대전 중 미 육군이 비교적 좁은 지역에 상당한 수의 전차를 투입해 벌인 전차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Steven J. Zaloga
패튼의 이 자신감은 아라쿠르 전투에서 비롯된다. 독일군의 전차가 86대 격파 및 114대 중파/유기된데에 비해 4기갑사단의 셔먼은 25대 격파에 7대의 헬켓이 격파된것 뿐이다. 약 6대 1의 교환비. 그리고 육군항공대의 지원은 막바지에나 있었으며 전쟁기간동안 육군항공대의 대전차임무 실적은 미미하다. 당시 4기갑사단의 선봉인 A전투단의 셔먼은 죄다 75mm였던 만큼 셔먼의 장갑과 화력이 판터에 비해 부족하다는건 사실이나, 그 열세에서도 패튼 휘하의 4 기갑사단이 안개낀 환경과 셔먼의 기동력을 이용해 판터를 우회해서 격파한 것이다. 이러니 패튼이 셔먼의 기동력을 강조한 것.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전차는 성능이 형편없었고 압도적인 독일 전차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화 퓨리에서 나오는 서문으로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패튼의 위 연설 또한 100% 진실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시 미군은 노르망디이후 서부전선 전역에서 실제 6호 전차와 교전한 횟수는 3번에 불가했다. 당시 미군은 독일 전차를 전부 타이거라고 불러서 교차검증이 어려운데다 실제로 미군이 주장하는 많은 수의 티거는 사실 4호 전차나 여타 돌격포나 판터였다. 그리고 아라쿠르 전투같이 극소수의 제한된 전투나 교전을 제외하고 독일 전차사 우세한 경우가 더 많았다. 애초에 독일이 방어측이라 유리한데다, 셔먼은 티거나 판터에 비해 전투력이 뒤떨어졌고 4호 전차 상대로는 우세했지만 완전히 우세를 점하진 못했다. 연합군과 독일의 전차 교환비는 종전당시 3~3.3:1이었다. 패튼의 말에는 과장이 들어갔다는 말. 물론 지휘관이 아군의 사기를 위해 전과를 부풀리는 경우는 어느 국가나 흔했기 때문에 패튼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단지, 현실은 패튼의 말과는 조금 다를 뿐. 게다가 패튼은 일선 장병의 시선으로 전차를 보는게 아니라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고있기도 하고 말이다.
흔히 '셔먼 5대가 모여야 티거 1대를 상대할 수 있다'거나 하는 말이 유명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 말은 미 제 3기갑사단 야전 정비대대 출신이었던 벨튼 쿠퍼가 자신이 전투에서 손상된 셔먼을 수리하며 개인적으로 분석한 것과 전차병의 증언을 바탕으로 판터의 공방 성능을 평가하면서 셔먼의 5배 정도 된다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것이다. 벨튼 쿠퍼는 슈퍼 퍼싱의 화력 시험과 장갑 강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전장 최일선에서 박살난 전차를 직접 피격 부위와 손상 정도를 파악하고 수리 및 재정비해 전장으로 돌려보내던 일을 하던 인물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낫겠지만 그가 소속된 부대는 600%에 육박하는 손상률과 200%에 달하는 완전 손실을 기록한 부대라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90] , 위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싸우던 전차병조차도 적 전차를 싸잡아 티거로 부르던 시절인데 정비부대에 있으면서 주워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자료를 보자면 영국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동해 8월 12일까지 미군과 독일군간의 전차간 교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미군측 전차병력이 독일측의 2.2배 이상인 경우는 항상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다. 독일군의 경우는 미군에 대해 1.5배의 병력을 동원한 경우 승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미군은 전차 자체의 대전차 전투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고, 이는 전쟁 초창기 M3 리의 차체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억지로라도 75mm 포를 달아 적 전차와 싸울 능력을 부여하는데 집착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증거로, 미군은 티거도 판터도 본 적 없던 1941년 9월에 이미 M4에 76mm 포를 시험 장착할 정도였다. 최초로 장착한 버전인 M4A1(76)W가 전장에 배치되지 않은 것은 대전차전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 결과 포탑이 지나치게 비좁아서 전투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M26 퍼싱이 더 일찍 배치되지 않았던 이유와 동일하다. 당시 미군 교범을 봐도 일반 전차 역시 최우선적으로 '''적의 전차를 먼저 제압할 것'''[91] 을 명시하고 있다. 보병 지원이 중요하다고 해서 대전차 전투를 등한시한 게 아니라, 전차를 잡는 것 자체가 보병 지원의 일환이었던 것이다.셔먼이 6호 전차 티거를 만났을 때 후퇴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원래 2차대전 당시의 미국의 전차는 티거든 판터, 심지어 마우스 초중전차를 만났을 때만이 아니라 3호 전차나 4호 전차 같은 셔먼보다 가벼운 전차를 상대로도 원칙적으로 전차는 싸우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미군의 군사교리에 의하면 전차의 상대는 M10 울버린같은 대전차 자주포지 전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전차 자주포나 대전차포 부대가 준비를 끝내면 전차는 후퇴해도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전차를 뚫어서 파괴시키는 것이 유일한 전차를 제압하고 상대하는 방법이 아니였다. 탱크의 궤도를 박살내거나 주포를 날려버리거나 전차병을 기절시키거나 탱크의 광학을 망가뜨린다던가하는 방법 아니면 복합적인 방법으로 탱크를 제압하는 방법이었다.[92]
해당 교범엔 대전차 자주포(Tank Destroyers)의 보조 역시 명시되어있는데, 대규모 기갑전투가 벌어지면 아군 전차가 전방에서 몸빵을 하는 사이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를 보다 우수한 화력과 낮은 차체, 오픈탑의 넓은 시야를 살려서 두들겨 패며 전차와 함께 싸운다는 것이지 아군 전차가 대전차 자주포 뒤로 도망가진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 즉 1943년까지는 이런 교리가 아주 잘 먹혀서 횃불 작전과 시칠리아 전투에서 미군측 셔먼은 3호 전차, 4호 전차나 엘레판트[93] 등을 때려잡으며 대활약을 했다. 그 뒤 독일이 수세로 틀어박히고 5호 전차 판터나 티거 2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면서 피해가 발생했을 뿐...
다만 이 대전차 자주포 운용은 2차대전 이후 실패로 평가 받는데 이유는 전차가 몸빵하는 동안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를 잡느니 그냥 전차에 강력한 포를 장착 하는 것이 낫다는 점과 대전차 자주포의 쓰임이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2차 대전 당시 실제 전장에서는 전차가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후퇴하면 전시 적전(敵前)도주죄로 간주되어서 군법재판에 회부될 수 있었다.
3.9.1. 전적으로 거짓인가?
위의 설명은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셔먼이 독일군 전차를 상대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과 교리상으로 적 전차와의 전투를 피하게 되어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차병의 입장에서 독일군 전차와 마주쳤을 때는 당연히 싸워야 하며 도망치는 것은 군법재판감이지만, 적의 전차를 잡기 위해 셔먼을 들이박는 작전을 세우도록 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http://panzerbear.blogspot.com/2014/06/2-3.html미군과 독일군 장비의 비교 평가에 관한 미 제2기갑사단장의 보고서 중 호킨스 중령이 보고한 내용을 보자.
즉 미군 교리에 따르면 적 전차는 구축전차에 맡기고 전차전은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적어도 공식적인 보고서에 따르면 전차부대 지휘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도망쳐도 괜찮은지 여부와 그것이 교리에서 권장하는 이상적인 상황인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윌슨 M. 호킨스Wilson M. Hawkins 중령, 제67전차연대 제3대대장
(전략) 미군과 독일군 전차의 성능을 비교하라고 한다면 간단히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지금 독일군이 쓰는 5호전차나 6호전차를 타고 미군의 중형전차나 90mm포 구축전차를 상대로 싸울 것 입니다.(If such a choice were possible, I would prefer to fight in the present German Mark V or VI tank against present U.S. medium tank and tank destroyers with the 90mm gun.) 이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네번, 다섯번, 또는 여섯번 정도의 전역을 경험한 전차병이라면 본인과 같은 생각일 것 입니다. (중략)
아군의 전차는 보병의 공격을 지원하고 전차전은 회피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공격을 할 때 전차전을 회피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은 한 번도 없었고 우리는 독일 전차와 직접 교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전차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격시 독일 전차를 격퇴하는 것은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고 희생이 큽니다. (후략)
3.10. 2차대전 이후
기묘한 이 특별도장은 한국 전쟁 당시 맹활약하던 셔먼 전차에 미군이 그려넣은 그린 호랑이 도장이다.[94]
또다른 괴수 특별도장. 위쪽 호랑이 도장보단 귀여워보인다. 이 역시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M4A3E8 셔먼의 도장이라고 한다.
이 괴상한 특별도장은 미군이 중공군과 북한군을 겁주려고 그려놓은 호랑이 얼굴이다. 하지만 미군의 생각과는 달리 북한군이나 중국군은 이 그림을 봐도 별로 겁먹지 않았고, 그 대신에 아군의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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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난전차 등의 용도로 개조된 M4A3E8 셔먼. 역시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다. 원본링크
6.25 전쟁에서도 북한군의 T-34-85에 맞서기 위해 투입되었으며, 우수한 차량 성능과 대전 기간을 거친 압도적인 승무원 숙련도에 힘입어 T-34-85를 몰아내는데 기여했다. 전쟁 중후반이 되어 적 전차가 싸그리 다 녹아내리고 나자 낮은 주행성능의 M26 퍼싱이나 기계적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 M46 패튼보다 더 선호받았다. 낙동강 전선에서 T-34-85가 멸종 위기에 처했을 무렵에 북한군이 하도 떼거지로 달라붙어서 부수려고 해서 4개의 탱크가 한개의 조를 이루고 뒷쪽 탱크가 포탑을 뒤로 향하면서 주로 이동했다고 한다. 달라붙었을 땐 서로 기관총 사수들이 '''샤워'''를 해주면서 가야했다.
전후에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았으나 워낙 만들어 둔 숫자가 많아(5만대 이상) 세계 각국에 마구 뿌려 전차를 처음 운용하게 된 신생국이나 재정이 넉넉치 않은 서방 국가에게는 보약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을 통해 현대 전차 운용의 훈련 조교로까지 떠오른 이스라엘군에게 있어 셔먼은 둘도 없는 소중한 전력으로서 제1차 중동전쟁 시절 부터 사용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군대라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무장 수준이었는데 어떤 병참 장교가 수소문해서 이탈리아에서 고철로 스크랩 처리 하려던걸 30여대 얻어왔다. 이것들도 무장이 제거된 상태라서 독일제 곡사포를 갖다 박았고 셔먼 특유의 수많은 바리에이션 탓에 각 차량끼리도 호환되는 부품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없는것 보단 나아서 이스라엘군의 유일한 기갑전력으로 활약했고 이때 얼마나 혹독하게 굴렸는지 종전 후엔 14대만 살아남았다.[96] 2차대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전차로 대폭 개수되었으나[97] 아랍 연합군의 T-55까지 발라버리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98]
한국에도 M4A3E8 셔먼 이지에잇을 운용했는데 6.25 전쟁 중 해병대에서 1개중대급으로 운용했고 전쟁이 끝나고 1년뒤 1954년에 미군이 철수하면서 6.25 전쟁 간 투입한 679대 중 388대를 한국에 넘겨주었다. 이후 4.19 혁명에서도 진압군의 차량으로 쓰이며 후대처럼 5.18의 M47 패튼이나 M48 패튼 꼴이 될 뻔 했으나 계엄군이 시민의 손을 들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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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의 차체에 프랑스제 AMX-13 경전차의 포탑을 얹은 물건이다. 사진의 전차는 이집트군이 운용하다 이스라엘군에 노획당한 물건.
이스라엘이 셔먼의 노인 학대와 마개조로 특히 유명한데, 이스라엘의 험난한 여건상 어떤 병기든 쓸 수 없어질 때까지 골수까지 빨아먹으며 아껴 써야 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불과 몇십년 전까지 이스라엘은 보유한 M4를 엔진이나 주포, 장갑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현역 장비로 운용했었다. 이러한 개량형인 '슈퍼 셔먼'이나 '아이 셔먼'은 마개조의 결과와 노련한 전차병의 활약에 힘입어 중동전쟁 등지에서 소련제 최신형 전차, 심지어는 M48에 꿇리지 않는 대활약을 보여주어 전후 셔먼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노인 학대 방법도 참 다양하다
워낙에 우월한 이미지 덕에 보통 이걸을 마지막 셔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칠레의 M60 HVMS가 셔먼의 끝이다. 칠레는 페루가 소련제 무기를 야금야금 들여오고, 아르헨티나와 국경분쟁이 생기자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칠레는 돈이 없었고, 구세대 전차를 개량할 계획을 세우는데, 딱 마침 이스라엘의 셔먼 재고가 풀린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들여온 아이셔먼에 NIMDA 사의 60MM HVMS(Hyper Velocity Medium Support) 포를 장착하고, 사격통제장치와 엔진의 개량도 이루어졌다. 메르카바 MK1의 M111 APFSDS탄을 개량한 60mm APFSDS탄도 만들고, 관통능력은 페루의 T-62나 T-55/54와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고 한다. 칠레가 레오파르트1V과 AMX-30B2를 도입하면서 2선으로 물러났고 2000년대 들어서 드디어 퇴역했다고 한다.
이 생명력의 라이벌이라 할만한 T-34는 북한과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아직 2선급 전투용으로 현역이며 심심하면 한번씩 등판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2018년을 마지막으로 셔먼 전차가 퇴역하면서 T-34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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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도 전쟁중 방치된 셔먼전차가 아직 남아있다. 강원도 고성의 민통선 위 건봉산 OP앞에 셔먼이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건봉산 OP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생활을 했던 곳으로, 해당 셔먼 뒤에 노무현 벙커가 위치하고 있다. 대대 OP가 이전하면서 지금은 OP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
김포시에서도 발견됐다. 기사에서는 T-46 또는 T-48이라고 하지만 누가봐도 셔먼이다. 애초에 언급된 이름의 전차는 생산된 적도 없다.[99]
4. 셔먼의 파생형
대량 생산된 만큼 엄청난 바리에이션이 있으며, 위의 사진은 그 바리에이션이 혼합된 절정을 보여주는 차량이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사진의 차는 차체가 전형적인 후기 용접형이면서 조종수 관측창은 돌출된 전기 용접형의 특징을 가진, 일반적인 자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한한 물건.이 녀석의 정체는 엔진실이 차체의 뒷부분이 더 긴 M4A4의 형태에 HVSS를 단 희귀한 녀석이다. 차체는 전기용접형과 차이점이 있는 후기용접형중 초기형태. 전면장갑은 초기형의 조종수 관측창이 돌출되면서, 후방장갑은 90도의 직각에서 경사를 어느정도 준 형태이며, 그외 일부 차이점도 있고, M4, M4A1, M4A2 그리고 M4A4의 후기형이자 가장 늦게 배치된 M4A3 셔먼의 초기형과 차체 길이와 HVSS를 빼면 형상이 거의 같다. 그중에 또 M4A4의 후기형 중 HVSS를 탑재한 차량은 극소수이며, 실전엔 투입되지 않고 본토에서 훈련용으로만 쓰였다.참조
4.1. A1부터 A4(이후)까지
아래의 파생형의 성능은 전부 비슷하다. 엔진과 차체에 따라 분류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앞서 설명했듯이 서로간에 부품이 호환되므로 짬뽕으로 만든 파생형도 상당히 많았고, 아예 차체를 공유하는 M4, M4A2, M4A3는 차체 뒷면 장갑판의 형상이나 연료 주입구 캡의 위치와 엔진데크 형상을 확인하기 전까진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흔히 생산시기별 특징에 따라 극초기/초기/중기/후기/최후기형으로 구분하곤 하는 독일 전차와 달리 셔먼의 경우 이런 구분조차 무의미하다. 독일과는 달리 미국은 각 기업에서 무기를 생산했는데 이는 셔먼도 예외가 아니었다.[100]
- M4
용접으로 조립된 차체를 지닌 최초의 양산형 셔먼. 사진의 차량은 후기형 포방패, 중기형의 일체형 트랜스 미션커버와 스틸바 타입의 궤도를 달고 추가 장갑이 용접되었다. 돌출된 조종수석과 부조종석 앞의 돌출부는 해치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목적이었으나 경사각이 크게 줄어드는 약점 부위로 작용했기 때문에, 1943년 이후 1인치(25.4mm) 두께의 추가 장갑판을 용접해서 붙이는 개량이 이루어졌다. 측면 장갑의 별이 칠해진 부분도 탄약고 바깥에 1인치 두께의 장갑판을 추가로 용접한 것이다.
- M4A1
M4A1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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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1 (76)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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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1E8
차체를 주조로 만든 셔먼. 둥글둥글한 차체 형상 때문에 터틀백(Turtleback)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101] 실제 양산과 배치는 M4보다 먼저 이루어 졌다. 이 형식의 캐나다군 버전이 그리즐리 1. 사진의 차량은 차체 전면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에 직시형 관측창이 달린 초기형 차체에 아무런 패턴 없이 밋밋한 고무제(물론 전체를 통고무로 만든 건 아니고 타이어처럼 철사로 짜여진 구조위에 고무를 덧씌워 성형한 타입) 궤도를 갈고 있는데, 차체 전면의 직시형 관측창은 주물 제작된 M4A1 외에도 초기형 셔먼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 직시형 관측창은 승무원의 부상이나 차체 방어력에 대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곧 뻬고 기존의 차량도 현지개수로 용접해서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시형 관측창을 뗀 자리엔 관측용 잠망경을 단다.
- M4A2
M4A2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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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2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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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2E8
용접 차체. 디젤엔진 2개를 연결해서 만든 엔진을 달았다. 가솔린 엔진을 얹은 셔먼을 쓰던 유럽전선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영국군과 소련군에 무기대여법으로 제공하거나 디젤유를 많이 쓰던 태평양전선의 미 해병대에게 보냈는데, 이 결정은 일본군을 패닉에 빠뜨렸다. 화염병을 셔먼의 엔진에 던졌는데 무용지물인 것. 가솔린 엔진을 단 셔먼이라면 화염병 공격에 불탔을 것이다.
첫번째 사진의 차량은 위에서도 언급 된 자유 프랑스군 소속 전차. 차체는 아직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 전면에 돌출부가 있는 초기형으로, 해당 차량에는 포탑 전면과 측면 장갑의 탄약고 부분에 추가 장갑을 용접했다.
- M4A3
M4A3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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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3 (76)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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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3E8
엔진과 차체가 가장 궁합이 맞아서 셔먼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주행성능을 자랑했고, 덕분에 셔먼중 최대의 생산량[102] 을 자랑하며 생산량의 거의 전량을 미군이 사용한 형식이다. 생산량이 워낙 많은데다 그만큼 미군이 많이 썼기 때문인지 이런저런 테스트용으로 사용되거나 이 형식의 셔먼을 기본으로 GMC나 HMC같은 파생차량 개발에 써먹은 경우가 많다. 대전 말 등장한 미군의 신형전차인 M26 퍼싱과 같은 계열의 500마력 GAA V8 엔진을 사용한 덕분에 대전 후에도 미군이 직접 운용한 유일한 형식이다.
첫번째 사진의 차량은 취약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은 조종수석과 부조종수석이 돌출된 구조의 초/중기형 셔먼의 차체전면과 달리 장갑 각도가 수정되어 좀 더 모양이 단순하며 트랜스미션 커버 또한 방어효율을 고려한 형상의 '샤프노즈'형이다. 위에 소개된 다른 형식의 셔먼과 비교해보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포탑은 초기형 포탑에 전면 장갑을 추가로 용접한 개량형이다.
- M4A4
트럭 엔진 5개를 연결해서 만든 크고 아름다운 크라이슬러 A57 멀티뱅크 엔진을 장착한 셔먼. 전면경사가 일반 셔먼들보다 조금 더 기울어져 있어서 방호력이 증가했다. 하지만 엔진을 5개나 * 모양으로 응축하여 구겨넣은 덕분에 정비가 번거로워지고 신뢰성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는 문제점이 있다.[103] 미군은 이런 복잡한 엔진을 정비하기 싫었는지, 대부분의 물량이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상당수가 셔먼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됐다.M4A4 셔먼을 재생하는 모습으로 크라이슬러 A57 멀티뱅크 엔진도 파트 2부터 리빌드된다.[104] 주물 제작인 M4A1을 제외한 각진 셔먼중에선 유일하게 엔진데크를 확인 하지 않아도 구분이 가능한 유일한 형식인데, 바로 이 엔진이 너무 컸던 탓에 차체를 약간 연장 시켜야했고, 이 때문에 서스펜션 사이의 보기륜 간격이 다른 셔먼보다 크다. 사진의 차량은 M3 리/그랜트 전차와 같은 형식의 리벳 접합된 3분할 구형 트랜스미션 커버를 달고 있다.
4.2. 그 외 파생형
- Sherman Ic / Vc 파이어플라이
Sherman Vc
영국군이 독일군의 중전차를 때려 잡기 위해 17파운더로 전차포를 교체해 만들어낸 마개조판 셔먼. 영국군의 희망이자 독일 전차의 철천지 원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75mm포탑 76mm포 개수형
M4A1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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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A3E4
75mm 장착형 셔먼의 포탑에 76mm 포를 장착한 셔먼이다. 미군에서는 사용례가 드물고 주로 인도나 파키스탄에 공여되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당시 격파된 차량이 몇 있다.
- M4 "skink"
- M4 "tulip"
- M4A2 T10
- T31
- T33
- T34 칼리오페 / T40 위즈뱅
- T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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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셔먼에 새로운 포탑과 76.2mm 주포를 단 버전이다. 두번째 사진은 T35E1이다. T35E1은 T35에서 장갑을 강화시킨 버전이지만 충분히 두껍진 않았다. 이후 M10 울버린으로 이어지는 대전차 자주포다. M4A2차체를 기반으로해서 디젤엔진을 사용한다.
- T52
- T53
- T53E1
- T105
- M4AE3 VVSS 현가장치 및 90mm 탑재형 셔먼
90mm 포를 장착하기 위해 M26 퍼싱의 포탑을 달 수 있게끔 개수한 셔먼의 시제기, 여러가지 문제 덕분에 이 안은 기각되고 퍼싱을 양산하게 된다. 정확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뚜껑있는 M36B1을 생산하는 것과 별 차이 없어서 안 한 것. 퍼셔먼(Persherman)이라는 별명이 있으나 정식 명칭인지는 불명.
- 105mm 포 장착 셔먼
화력지원용으로 75mm 포 대신 105mm를 장착한 셔먼. 다만 105mm 포는 일반 야포라 대전차전 수행은 어려웠으나, 애초에 그 목적으로 만든 전차가 아니므로 별 상관은 없는 문제다. 셔먼 코드네임 뒤에 초기 건식탄약고형은 (105), 습식탄약고형은 (105)(W). HVSS 및 습식탄약고를 병용한 녀석은 (105)(W)HVSS 혹은 E9를 붙여 구별했다. (Ex: M4A3E9, M4A1E9 등)
M40은 155mm 자주포로 2차대전이 끝나갈 때쯤에 개발되었다. 차체는 M4A3를 이용했다. 한국전쟁 때에 M12와 함께 쓰였다. 여기에 203mm 곡사포를 단 버전이 M43이다.
- M32 구난전차
- M74 구난전차
M4A3의 차체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M36 잭슨의 파생형. 항목참조.
4.2.1. 전후 개량형
4.2.1.1. 프랑스 개량형
1950년 이후 프랑스에서 M4 셔먼을 개조한 전차의 목록이다. 여기서 개조된 종류 몇 가지가 이스라엘 개량형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 M4A4T
1952년 루에 조병창(Arsenal de Rueil)에서 개조되어 M4A4T로 명명되었다. 전후 미국에게 공여받았던 셔먼 전차 중 한 계열인 M4A4의 엔진을 개량한 버전이다. 엔진을 크라이슬러 멀티뱅크에서 콘티넨탈이나 라이트 R975 엔진으로 바꾸었다. 또한 전차장 큐폴라도 바꾸었다.
- M4A1 FL10
AMX-13의 포탑(FL10)과 포신을 M4A1 차체 위에 올린 물건이다. 참고로 이 전차는 나중에 이집트로 수출되어 굴려지다가,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군과 싸워 노획된다...
- M4A4 75mm 포
프랑스에 남아있던 M4A4의 포신에 AMX-13의 75mm SA50(CN 75-50) 포를 장착한 버전이다. 프랑스에서 운용되지는 않았고 이후 이스라엘군이 사가 M50으로 업그레이드 및 생산된다.
- M4A1E8 105mm L51
AMX-30과 같은 포탄을 썼다. 포신은 짧지만 인상적인 머즐브레이크를 달고 있다. 포신과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포탑 후면에 균형추가 달려있다. 또한 커밍스 V-8 460마력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프로토타입은 M4A1 VVSS 버전을 썼다. 이후 모든 시리즈 모델은 35톤에 달하는 전차 중량 때문에 HVSS 버전을 쓰게 되었다. 부르주 조병창(Atelier de Bourges)이 제작했다. 이후 1965년에 이스라엘군이 VVSS와 HVSS 버전 모두 사가서 M51 아이셔먼을 만들게 되었다.
4.2.1.2. 이스라엘 개량형
- M50
이스라엘에서 셔먼을 마개조해서 만든 전차. 일단 현가장치가 셔먼 계열에 장착된 현가장치 중 가장 효율이 좋았던 수평대향식 HVSS 서스펜션으로 교체되었고, 당시 기준으로는 출력이 한참 부족해진 엔진도 모두 들어내고 커밍스 V-8 460마력 디젤 엔진으로 교체.[105] 주포는 AMX-13의 75mm 장포신 전차포를 장착했다.[106] 주포가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운 물건으로 교체됨에 따라 포탑 후방에 카운터 웨이트가 증설되었는데, 특이하게도 T23 대형 포탑도 아닌 75mm형 포탑에 무게추만 달린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107]
- M51
이스라엘이 M50을 굴려보고 성능에 크게 만족한 결과, 기존 M50으로 개조되어 있던 차량은 물론 구식화되어 전시 예비전력으로 보관 중이던 세계각국의 셔먼 재고까지 있는 대로 긁어 모아 마개조 끝에 만든 물건으로,[108] M50에서 좀 아쉬웠던 부분인 공격력은 대형화된 포탑에 프랑스제 MBT AMX-30과 동형의 CN-105-F1 105mm[109] 전차포를 장착함으로서 해결했다. 단, 완전히 같은 포를 올린 것은 아니고 56구경장의 105mm를 올리기에는 너무 포신 길이가 길었으므로 44구경장으로 줄인 주포를 탑재했다.
덕분에 셔먼 중 실전에서 대량으로 쓰인 물건 중에선 최강의 화력을 자랑. 6일 전쟁 도중 T-55를 다수 격파한 사례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110] 다만 구식에 비교적 소형인 셔먼의 플랫폼에 무리하게 105mm 전차포를 때려 넣은 결과, 무게가 크게 늘어난 데다 그 늘어난 하중의 대부분이 포탑 전방에 집중돼 있어 차제 특정 부위에 가해지는 기계적 피로도가 심각했고, 그래서 평시엔 이동이나 장기간의 정차시 가급적 트래블링 록에 포신을 고정해 두도록 지시했다. 주포 사용시에도 주의할 점이 있었는데, 포신을 잘라내고 특이한 형태의 소염기를 장착해 발사 반동을 최대한 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체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주포를 발사하면 반동으로 심하면 포탑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전투 불능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때문에 주포를 발사할 경우 가급적 차체와 포탑을 동일선상에 정렬시킨 후 기어를 중립에 놓고 사격하는 것이 권장됐다고. 특이하게도 주물로 제작된 M4A1 차체를 베이스로 개조된 차량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주물 제작 특성상 이음매가 없고 둥그스름한 형상이 포탄 피격시 방어 효과가 좋다고 평가한 이스라엘 육군이 M4A1 차체에 우선적으로 105mm 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제4차 중동전쟁까지 현역으로 활동했고[111] 80년대 초반까지 예비물자로 보관 중이었지만 퇴역 결정이 내려지면서 전량이 칠레 육군으로 수출돼 1989년까지 칠레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다.
- 셔먼의료지원차량(Ambutank)
- M-50 155mm
- Ro'em(L-33)
- Makmat 160mm
- MAR-240
- Episkopi
- Kilshon
- Degem Yud (저차고 셔먼)
- 에얄 관측 차량 (Eyal observation post vehicle)
전투 헬리콥터를 활발히 쓰기 전에 만든 차량이다. 멀리 있는 적 전차나 보병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 앞의 에얄은 이스라엘 전용으로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왔을 때 현지 별명으로 달린 것. 그 옆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포를 가진 셔먼은 Soltam M68 155mm 견인포를 얹은 Soltam L33 자주포다.
- M60 HVMS
198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셔먼 마개조물의 마개조판. M50/51의 칠레 육군 개량형으로, 이스라엘의 협조가 있었다. 셔먼의 차체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겁던 CN-105-F1 105mm 전차포 대신 이스라엘이 개발한 60mm HVMS(Hyper Velocity Medium Support)와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한 버전이다.[112] 날탄도 운용 가능하며, 2km에서 240mm RHA를 관통할 수 있다. 또한 포방패의 형상이 변했으며 현대적인 사격통제장비가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커민스 VT8-460 디젤 엔진과 자동변속기가 장착됐지만 이후 미국의 스팅레이 경전차와 동일한 파워팩으로 교체했다.
4.2.1.3. 기타 국가 파생형
- M4A2 (37mm)
- SO-122
유고슬라비아는 지리적 특성상 소련제 무기와 미제 무기를 많이 공여받았는데, 그로 인하여 이런 물건이 나온 것이다.
이 외에도 상술하였던 75mm 셔먼에 임시로 76mm 포를 장착한 M4A3E4나, M4 베이스 차체에 M36 잭슨의 포탑을 얹은 M36B1 등 여러 독특한 무기를 많이, 주력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이 장비들은 유고 내전에서 등장했으며, M2 중기관총을 장착한 개조형 T-34-85와 같은 편에서 싸우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했다.
5. 신뢰성과 관련된 이모저모
전반적으로 셔먼의 생산성과 신뢰성은 뛰어나다고 평가받아왔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서 전차를 수송해야 했던 미군은 셔먼이 본국으로 되돌아가서 수리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신뢰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이를 받아서 운용해본 소련군은 고장이 잘 나지 않고 튼튼한 전차라며 호평하였다. 중량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현지 수리 및 개수도 용이했고 미군 기술자도 개수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은 포드, GM및 크라이슬러의 소위 '빅 스리'를 위시한 '''자동차 강국'''답게 야금학과 기계공학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되어있었고, 대량의 자본 역시 조달할 수 있었기에 각 공장마다 개별 부품의 생산에 특화된 공작기구를 효과적으로 설계한 후 대량으로 생산하여 투입할 수 있었다. 6호 전차 티거를 생산하는 헨셸 공장에서는 선반을 비롯한 다목적 공작기계가 1000여대 가량 있었던 반면, 디트로이트의 크라이슬러 공장에는 특정 부품의 제조에 특화된 공작기계가 8000여대 가량 배치되어있었다. 기계적 복잡도가 비슷한 독일 전차의 생산라인과 비교할 때, 독일쪽 라인은 다목적 공구 하나로 둘 이상의 부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공작기계의 설정을 바꿔주느라 시간이 걸리고 생산성이 떨어졌지만, 미국쪽 라인에서는 그냥 특화된 공작기계로 분업을 시키면 되었으므로 전환 과정에서 오는 생산성의 손실이 없었다. 기계적인 복잡도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113]
미국과 소련은 셔먼과 T-34의 생산 과정에서 양쪽 모두 '''생산공정의 표준화'''와 '''부품의 표준화'''를 추구했다. 이런 표준화의 양상은 두 국가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소련은 생산 공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수직 계열화를 추구했다. 서부 지역을 빼앗긴 후에는 상대적으로 철도 시설이 낙후된 곳에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었으므로, 운영에 필요한 철도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공장 외부에서 부품을 조달받는 대신 공장단지 한 곳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T-34를 생산했다. 어차피 대다수의 T-34는 교체 부품을 받기 전에 격파될 운명이었으므로 부품의 수명과 반비례하는 허용 오차를 일부러 키워 명목상 불량률을 줄일 수 있었고, 공장마다 부품이 일부 호환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산량 목표를 위해 자잘한 세부사항을 희생하는 공산주의식 계획 경제체제가 전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미국은 수평 계열화를 추구했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미시간 ~ 일리노이 지역의 공단에서 민간 업자가 부품을 생산한 후 디트로이트에 수송해서 전차를 조립했다. 많은 민간 업자가 생산에 참여했으므로 자본이 꾸준히 투입되는 한 부품 조달 과정에서 별다른 병목은 발생하지 않았다. 표준화가 잘 되어있었고 입찰 과정에서 저품질의 부품을 걸렀으므로 민간 업자가 생산하는 부품이 서로 다른 공장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 없이 조립할 수 있었다. 야금학과 기계공학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므로 부품의 허용 오차도 타국에 비해 작아서 부품의 신뢰성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자본이 투입되었으므로 차량당 생산 비용 자체는 타국 전차에 비해 비쌌지만, 다수의 민간 업자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었으므로 개별 차량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노동 인시는 셔먼 1대당 1만 인시, 티거의 1/30으로 극단적으로 짧았다. 이번에는 현대 자동차 산업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자본주의식 경제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이었다(출처: Ibid). 당시 독일은 이 '''미국식''' 대량생산체계가 미미했으며, 심지어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노르망디 상륙 직후 벌인 굿우드 작전에서 영 연방군은 3일만에 500대 이상의 전차를 잃었다. 공격 선봉인 캐나다군 기갑부대의 전차는 죄 셔먼이긴 했지만 그 뒤를 따르던 보병부대에 배치된 셔먼보다 방어력이 낫다는 처칠 전차도 뻥뻥 터져 나갈 정도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이후로도 1944년 서부전선의 연합군은 순식간에 기갑사단의 모든 장비를 싹 새걸로 갈아치우는 참사를 수 차례 겪어야 했는데, 그러고도 차가 남아돌았다. 결국 미국이 워낙 먼치킨 같은 공업생산능력을 갖춘 국가라 그런 피해조차 우습게 덮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면 미국 제3기갑사단은 1944년 7월 9일(노르망디전역에 투입된 날)부터 1945년 4월 30일(실질적 종전일)까지 총 전차손실이 580%(!)에 달했다. 물론 전차손실이라고 해서 모두 완파라고 생각하면 안되며, 전투에 투입하기에는 손상이 심해서 후방으로 후송된 차량도 손실로 취급되기 때문에 600%보다는 낮긴 하다. 하지만 완파된 것만 따져도 200%정도였다! 자료출처겸 자세한 내용. 그래서 1944년 6월에는 전 사단의 전차가 75mm였는데 11월에는 전부 76mm로 대체돼 있기도 했다. 물론 장비가 남아서 갈아준 게 아니라, '''죽은 만큼 채워준 결과'''다. 그리고 이렇게 셔먼을 소모하고도 셔먼은 아직 수만 대가 미국과 영국에 신품 상태로 남아 있었다. 영국군만도 전쟁이 끝났을 때 수천 대나 되는 재고 셔먼을 안고 있었는데, 그 양은 미국이 안은 재고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문제는 미군은 저 짓을 하면서도 4년 동안 24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100척이 넘는 호위항공모함을 띄웠으며, 200여 척이 넘는 구축함을 찍어냈고 리버티선을 하루에 한 척씩 띄웠다는 것이다. 셔먼이 생산된 지역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미시간주와 일리노이 주변으로 한정되어있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제각기 다른 병과에서 필요한 병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국 전역에서 육해공군 병기가 쏟아져나오는 동안 추축국은 디트로이트는 커녕 '''미국 동부조차 공격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있다고 하면 일본군이 있었지만 공장지대가 아닌 하와이를 한번 때린 후 '''전선이 뒤로 밀려나가는 바람에''' 미국의 공장은 정말 말 그대로 쌩쌩 돌아갔다. 즉 아무리 전쟁이라도 군수공장이 안전하면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막을 길이 없다는 것.[114]
높은 신뢰성 역시 미국의 생산력 때문에 고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셔먼은 비록 복잡한 구조라 할지라도 미국 공업력의 힘으로 전체적인 부품의 질이 높고 표준화가 잘 되어 있었다. 셔먼의 다채로운 파생형의 대다수가 제조 공장의 차이로 생겨난 것이지만, 그럼에도 보급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독일처럼 생산 도중에 사소한 변경 사항을 적용하기 위해 즉석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우를 범하는 대신, 전차병이 요구한 개선안을 파생형을 도입하면서 현대식 블록 형식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더불어 끔찍한 소모율와 더 끔찍한 생산력 덕분에 고장날 만큼 굴리기도 전에 격파돼서 폐기처분되거나 전면 오버홀 받으러 가는 비율이 높았다. 결국 사소한 고장이 나도 수리하는 것보다 재고를 실어다 배치하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으니 신뢰성 문제가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상대는 중구난방인 전차 개발 계획으로 노력을 낭비했고 끝없는 패배 속에 공업력 자체가 소멸해가던 독일과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부품 규격화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일본.
하지만 소련군의 T-34도 부품의 내구성을 딱 평균적으로 격파될 수명에 맞춰서 설정하고 설계와 품질 관리를 간략화했기 때문에 격파된 전차를 새 전차로 교체하는 운용 방식은 셔먼과 거의 동일했다. 소련군이 셔먼에게 준 칭송에서 볼 수 있듯 셔먼의 신뢰성이 소련제 전차보다 대체적으로 우수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변속기같은 경우 셔먼은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2중나선톱니바퀴를 사용하여 전장에서의 험한 기동에도 좀 더 잘 버텼다고 한다. 독일의 판터는 2중나선 톱니바퀴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 일반 톱니바퀴를 써야했는데 그로 인해 조종수가 엄청나게 신경쓰면서 움직여야 했다고 한다. 소련의 T-34는 가동시간은 14시간으로 설정했지만 셔먼은 무려 40시간으로 세 배 가까이 높게 설정해서 만드는 등 부품의 내구성도 우수하고 고장났을 때의 정비성도 타국 전차에 비해 나았다고 한다.
또 신뢰성이 생산력의 힘으로 고평가된다는 주장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T-34가 가진 Uralzavod에서의 초기생산과정에서의 높은 불량률은 생산량 증대에 따라 급격하게 개선되어가는데, 설계단위당 생산량의 증대는 생산공정의 개선을 통한 생산성 증대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불량률 감소를 통해서도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생산력 때문에 신뢰성이 고평가된게 아니라, 생산량이 증대될수록 신뢰성이 증가한다고 보는게 보다 정확한 평가.
그리고 셔먼의 신뢰성에 대해서 가장 큰 증거가 되는 것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그 어떤 전차도 셔먼 만큼이나 다양한 환경에 투입되어 문제 없이 굴러다닌 전차는 사실상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평원은 물론이고 최초로 투입된 아프리카의 사막 환경에서도 문제없이 돌아다녔으며 렌드리스에 의해 소련에 공여된 것들은 시베리아의 한랭기후에도 문제없이 작동되었고, 태평양 전역의 다양한 열대섬에도 다녔으며 중국군벌에 의해서 동남아에서도 문제없이 굴려졌다. 이 정도로 광범위한 곳에서 굴려진 다른 전차라고 하면 영국의 마틸다2 가 있긴 하지만, 마틸다2는 사막과 한랭지 사용에 대해서 신뢰성 문제가 유의미하게 제기되었다. 물론 다른 전차가 비슷하게 투입되었다고 무조건 망가지거나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러한 식으로 실제로 사용되어 그 신뢰성을 검증한 전차는 셔먼이 유일하다. 또한, 만주에서 여러모로 물자가 열악한 중국군벌이 사용하기도 하였고, 유럽과는 다르게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좀 더 보급에 문제 있던 태평양 전선의 예를 보면 단순히 미국의 뛰어난 보급성으로 망가지기 전에 갈아치워서 신뢰성을 유지했다는 주장의 반증이 된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기계적 신뢰성만이 신뢰성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대부분의 셔먼은 정비성을 상당히 중시하여 기존 미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차체 뒤쪽의 문을 열고 엔진의 일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전면 변속기는 차체 하단 장갑을 볼트로 체결함으로서 2시간 정도면 이를 열고 변속기를 교체할 수 있었는데[115] , 이는 차체 상부에서 크레인을 써서 변속기를 들어내야 했던 판터에 비하면 1/3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잘 규격화되고 표준화되어 대량생산되는 부품에 정비성도 좋은 것은 작전시 신뢰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요소다.
6. 총평
일반적으로 셔먼에 대한 평가는 T-34같은 전차에 비해 상당히 박한데, 전후 소수의 독일군 전차나 승무원의 전적만 보고 셔먼이 일방적으로 격파되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와는 다르게 셔먼의 소프트웨어 스펙은 2차대전 전차로서는 가장 진보적이었다. 소프트웨어 스펙만은 2차대전 독, 소, 영을 뛰어넘어 전후 1세대 전차에 준했는데, 대표적으로 Command's Override, 수직 안정기, 많은 관측장비, 넓은 용적, 전기/유압 포탑회전 '''등'''(셔먼이 가진 수 많은 소프트 스펙 중에서도 몇 개만 쓴 것이다!)이 있으며, 셔먼을 제외한 2차대전 전차는 이중에 있는 게 겨우 한두 개 정도에 불과하다. 환율, 전시상황을 제외하고 전차만 본다면 티거보다 비싼 전차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였다.
당연하지만 셔먼이 당시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 티거 2같은 중전차에 비해 장갑이나 화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군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연합군에게 셔먼을 대량 수송해야 하기에 수송 무게한도를 함부로 늘렸다간 행정적 비용이 대거 발생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행정적 비용을 아껴보자고 나온 전차전 교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이유가 크다. 위험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으나 초기 상륙후 작전에 580%의 소모율을 부여주었기에 한세대 이상 앞서서 타국을 압도한 다른 미군 장비[116] 에 익숙한 대중 눈에는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셔먼은 그렇게 일방적인 화력과 장갑 스펙 두가지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전차이다. 체급 값을 충분히 하여 75mm포만으로도 3호/4호 전차를 상대로는 전쟁 내내 우위를 점한데다 전쟁은 순수한 전차전만 치루는게 아니다. 당연하게도 전쟁의 중심은 보병이고[117] 보전합동작전을 하기위해 보병과 함께 작전할 대규모의 전차가 필요했기에, 구식전차를 최대한 유용하여 대량 생산준비를 빠르게 할 수 있었고, 미국의 표준화 능력 덕에 부품 호환성도 뛰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대전기와 전후 파생형 셔먼이 수많은 개량형을 만들 수 있었고, 특히 중량 제한을 한계까지 활용한 점보 셔먼은 소련군의 중전차처럼 활용해 전선 돌파에서 탁월한 성능을 입증했다. 거기다 셔먼의 신뢰성은 있으면 좋은 장점이 아니라 병기로서 기능하는 데 필요했던 필수적인 기능이었기 때문에, 셔먼은 생산성 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편의성과 신뢰성 또한 뛰어난 전차가 되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탓에 본국으로 되돌려보내서 수리나 대규모 오버홀을 하기 힘들었던 당시 상황도 셔먼의 신뢰성 덕에 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기계적인 신뢰성 면에서 우수한 전차였으며, T-34와는 달리 내부용적이 매우 넓었기 때문에 승무원 거주성에서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우수한 수준이었고, 넓은 용적으로 개수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장점도 있었다.[118] 이런 측면에서 셔먼은 더 가벼운 3, 4호를 상대로는 물론이고 T-34-85 같은 거의 같은 체급의 중형전차와 비교했을 때도 결코 떨어지는 성능을 지녔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론슨라이터나 깡통이라는 저평가는 매우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 때 T-34-85와 싸운 이지 에잇은 T-34-85를 문제없이 박살냈으며. 소수 투입된 75mm 셔먼도 T-34-85를 큰 무리 없이 박살내고 다녔다.
서방쪽에서보다 러시아쪽에서 더 높은 취급을 받고 있다. T-34까지는 아니지만 셔먼은 '''조국을 수호한 전차 중 하나'''로 러시아에서 대우하고 있으며, T-34와 셔먼을 둘 다 경험했던 전차병은 카탈로그 스펙에서 드러나지 않는 거주성과 기계적인 신뢰성 등에 매우 좋은 평가를 매겼다.
7. 창작물에서의 M4 셔먼
7.1. 등장 영화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출연한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높은 확률로 M48이 대역으로 등장한다.[119]
틈틈이 출연하고 3화에서는 공격받는 이지중대를 꽤나 극적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셔먼이 등장하자 중대원이 정말 좋아한다. 다만 4화 마켓가든 작전에서는 매복하고 있던 독일군 전차에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박살난다.
북한군이 탑승해 학교로 쳐들어온다. 2차 세계대전 와중 소련이 랜드리스로 받았던 M4A2 76mm 버전을 한국전때 북한군에 공여하였던 기록이 있는데, 아마 그걸 표현하려 한 듯.
실차량은 단 4대만 등장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일반 차량에 껍데기를 씌운 가짜지만, 실차량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든 물건이다. 실차량은 영국군 행렬 맨 앞에 있던 4대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레플리카이다. 자세히 보면 5번째 전차부터 궤도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전차 밑에 뭔가 보인다.
오드볼 소속의 셔먼 3대가 나와서 활약한다. 티거 잡기엔 역부족임이 잘 묘사돼 있지만, 독일군이 점령한 철도역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참고로 오드볼의 셔먼은 엔진을 개조하고 구형 포탑에 주포를 76mm 포로 교체한 뒤 그 앞에 위장용 가짜 포신을 덧댄 현지 개수형이다.
- 빅 레드원
'퓨리(Fury)'란 이름을 가진 어느 M4A3E8 전차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 이후 대중매체에서의 셔먼의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 이야기로는 영화 촬영에 쓰인 '퓨리' 셔먼은 M4A3E8이 아닌 M4A2E8으로 티거와 같은 보빙턴 출신이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M4A2를 다수 공여 받았기에 M4A3보다는 M4A2가 훨씬 많아서 내린 결정인 듯. M4A2의 후기형은 M4A3와 마찬가지로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통짜형 전면 장갑을 채용했고, 여기에 '퓨리'는 76mm포와 이지에잇형 HVSS 서스펜션을 장착했으므로 M4A3E8과 외형이 완전히 동일하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퓨리'셔먼의 특징은 포신에 'FURY'라고 써져있다는것 외에도 측면에 통나무다발을 엮어놓았다는게 있다. 이지에잇 이외에도 M4A4, M4A1, M4A3등의 다양한 종류의 셔먼도 볼 수 있다.
7.2. 등장 게임
6티어인 점보셔먼은 5티어셔먼의 무장에 추가로 M1A2 주포를 사용 할 수 있다. 티거보다 좋은 실효방호력 150mm급 경사장갑과 177mm급의 단단한 포방패를 자랑한다. 하지만 M1A2를 사용하기위해 최종포탑을 장착하면 좀 더 좋은 부각과 포신뢰도, 30의 체력, 10m의 시야를 얻으면서 점보셔먼의 아이덴티티인 두꺼운 포탑장갑을 잃게 된다.(83mm) 따라서 스톡포탑에 M1A1이나 105mm을 장착할 것을 추천한다.
M4A3E8 이지에잇은 좋은 기동성과 쓸만한 장갑, 아주 좋은 기동간 사격 능력과 높은 DPM이 특징이다. 최속 50km/h 밖에 안되지만 빠른 가속과 10티어 중형전차와 맘먹는 좋은 궤도 성능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전차를 뺑뺑이 돌릴 수 있다. 또한 수직안정기가 장착되기에 동티어에서 기동사격시 포분산이 가장 좋다. 이는 빠른 연사(최대 2.5초)와 매우 좋은 부각(-12), 쓸만한 포탑장갑(150mm급)과 시너지를 일으켜 언덕싸움과 난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준다. 특히 연사속도가 매우 빨라 무한클립이나 다름없어 궁극의 6티어 중형전차가 되었다. 비교적 낮은 최속과 명중률 0.4, 낮은 관통력(128/177/38mm)이 걸림돌이지만 앞서 말한 장점이 모두 커버해준다.
프리미엄 전차인 M4A2E4는 75mm를 달고 있다. 따라서 괜찮은 연사속도와 매우 낮은 관통력을 가진다. 또한 M4보다 좀 더 좋은 장갑을 가지고 있다. 성능이 성능인지라 6티어방 까지밖에 안간다.
M4 Improved는 설계도면만 존재하는 셔먼의 개량형이다. 9.12패치 이후 판매를 시작했으며 역시나 75mm 주포를 가지고 있다. 또한 M4셔먼보다 더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
프리미엄 전차로 한정판매를 한 퓨리는 이지에잇의 열화판으로 차체, 포탑할것 없이 더 낮은 장갑, 엔진출력, 부각과 높은 중량을 가지고 있다. 특히 포방패는 83mm급으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궤도성능이 더 좋으나 막상 몰아보면 이지에잇보다 약간 느린 기동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판이 원판이기에 6티어 중형전차 평균보다 약간 나은 성능을 보여준다.
2014년, 영국 기동구축트리가 추가되면서 M4A2의 랜드리스 버전인 셔먼 Mk.3도 동일 트리 5티어에 추가되었다. 미국트리에 있는 5티어 M4셔먼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준다. 체력이 약간 더 좋으며 6파운더를 사용할 수 있으나 6파운더 주포의 성능은 다른 전차와 마찬가지로 저질이다.
차후 패치로 셔먼 파이어플라이도 추가되었다. 6티어 중형전차이며 용접차체를 사용한다. 느린 최고속도(36km/h)와 낮은 부각(-6) 높은 관통력(171/239/38mm)을 특징으로 가지며 17파운더의 명중률은 0.38로 미국의 76mm보다 좋은 명중률을 가지고 있다. 중형전차보다는 고관통 주포를 가진 구축전차에 가깝다.
9.9패치에서 M4A1 Revalorisé[120] 이 프랑스 8티어 프리미엄 전차로 추가되었다. 유저들이 보통 빵셔먼이라고 불린다. 8티어 전차이면서 셔먼다운 5티어급의 장갑, 더 낮은 부각(-7), 느린 기동(460마력, 40km/h, 35톤), 느린 연사속도와 조준시간(2.8초)를 가진다. 하지만 좋은 관통력(200/250/53mm)[121] 과 최상급 탄속(1460m/s)을 가지며 105mm 장포신 답게 390의 10티어급 핵펀치를 가지고 있다. 유저들의 평가는 제작진이 의도한 대로 물장갑 구축전차.
- 11 패치에서 M4A1 FL10이 프랑스 6티어 프리미엄 전차로 추가되었다.
프랑스 트리에는 랜드리스로 받은 M4A1과 점보 셔먼 이외에, M4A4에 75mm 57구경장 포를, M4A1에 같은 포와 요동포탑을 장착한 차량이 나온다. 프랑스제 포를 올린 두 셔먼은 BR에 비해 압도적인 관통력을 받았지만, 커다란 포를 얹는 바람에 주포 안정기를 달지 못했고, 탄두에 작약이 없는 포탄을 사용하여 살상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영국 트리에는 M4A4가 셔먼 II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유명한 셔먼 VC "파이어플라이"가 나온다. 또 폴란드 제2기갑사단이 운용한 셔먼 IC 파이어플라이가 프리미엄으로 등장한다.
이밖에 독일이 노획한 M4A2 셔먼이 지상군 사전 예약 특전으로, 미국이 소련에게 공여한 M4A2 76이 소련 트리 프리미엄으로, 국민당군이 운용했던 셔먼이 중국 트리 정규 차량 및 프리미엄으로 등장하는 등, 미국이 이 나라 저 나라에 뿌리고 다닌 전차 답게 많이 등장한다.
- Men of War 시리즈
다양한 셔먼 바리에이션이 나오는데 M4A1 에서부터 105mm 장착형, 칼리오페 다연장로켓 셔먼, 셔먼 파이어플라이 등 미국, 영국 진영에서 중요한 기갑유닛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특히 멸격의 17파운더를 장착한 파이어 플라이는 전차 성능이 떨어지는 영국에게 없어선 안될 귀중한 전력이자 대전차 사냥꾼이다.
2편에선 "서부 전선(Western Front)" DLC에서 미군이 주요 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다시 출연하게 됐다. 기종은 여전히 M4A3이나, 76mm 전차포 연구가 등장하지 않게 됨에 따라 독일의 대형 기갑은 순전히 대전차 자주포에만 의존하게 됐다. 다행이라면 M36 잭슨이 정규 생산 유닛으로 참가한다는 것이다. "서부 전선" DLC의 선행 패치로서 등장한 "엘베 강 기념일" 업데이트에선 소련에게 공여된 76mm 장착형 M4A2를 쓸 수 있다. 전반적으로 모난 곳이 하나도 없어, 대전차, 대보병 모두를 수행할 수 있다. 다소 비싸다는 것과 포탑 기총 탑재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흠이다.
기본지휘관 중 하나인 기갑 중대지휘관을 선택하면 105mm 포+불도저 장착 셔먼을 외부지원으로 호출할 수 있다. 용도는 건물 및 방어선 철거 겸사 겸사로 보병도 쓸어버릴수있지만 대전차로는 부적합하다 불도저로 땅을 밀어서 흙으로된 벽을 만들 수있는 스킬도 갖고 있다.
게임 보상으로 얻는 레어 지휘관 중 하나인 소총병 중대지휘관으로 M4A3E8 이지에잇셔먼을 외부지원으로 호출할 수 있다. 기갑전력이 부실한 미군진영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만한 전차로 방어력 기동력 화력이 조화로운 우수한 성능을 갖고 있다.
2편에 영국이 다시 추가되면서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재등장했다. 화력이 전체적으로 올라간 2편에서도 전차 구축력에서 최상위를 달리며, 튤립 로켓 업그레이드시 자원을 소모해 RP-3 로켓을 두 발 발사할 수 있다.
이로서 1편의 크로커다일(화염방사전차)까지 포함하면 셔먼시리즈만 6종류가 등장하는데 하프트랙시리즈를 제외하고 가장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게임에 구현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세력이 미군인 만큼 당연히 아군 전차로 등장한다. 첫작은 비중이 아예 없고, 확장팩인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에서도 싱글에선 가끔가끔 등장할 더러 멀티 플레이에선 미군편 전차로 등장하는 걸로만 끝. 콜 오브 듀티 2에서 영국군 제 7기갑과 같이 다니는데… 타이거 전차를 만나면 100%의 확률로 격파된다. 미국 미션 후퇴 다른 쪽으로 돌격하는군에서 찰리라인까지 대피한 후 P-51 머스탱과 함께 등장한다. 영국군 탱크 미션에서 제브라 편대로 M4전차가 등장한다.
미군편에서 초반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중반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비중이 증가하는 것이 전부이며 후반부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약간의 저항 미션에서 97식 전차와 싸우면서도 치하를 포탄 한 방에 보내지 않고 오히려 오래 싸우게 냅두면 치하에게 진다.
무장업 전인 2성 셔면 마크 4의 조이 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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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 셔먼 마크 5로 무장업 후의 모습
셔먼 MK-IV 가 이게임의 마스코트로 나온다. 이름은 2성 전차인 조이 셔먼이다.[125]
이후 2018년 3월 12일 가상전차이자 특전차의 중형전차로 셔먼m4a3로켓발사장치형 서리화가 등장했는데 유진 크라이슬러에 이여 한국인 캐릭터이자 로켓탄이 처음 주어진걸 제외하면 신기전을 쓴다.
2019년 여름 이벤트(안치오 상륙작전)에서 등장하였으며 DD 사양으로 부항스크린을 전개한 버전으로 등장한다. 깡갤에서는 이 전차를 빵봉투라고 부르는데, 부항스크린을 전개한채 함선에서 전개되어 육상기지를 강습하는 모습이 진짜로 빵봉투를 닮았기 때문.# 부항스크린으로 어린왕자 드립을 쳐 네가 원하는 셔먼은 이 안에 있단다라고 드립치기도 한다. 또한 성능은 강력하다.
>고대 강철 대륙에 있었던 대전쟁의 유물.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장갑과 안타까운 화력으로 적인 티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티거 노이로제 증상에 시달리게 된 그녀는 티거만 만나면 일단 공군 지원부터 요청하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저 공군 개그 덕분에 멤피스 벨의 플레이버 텍스트에도 짧게 언급된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미군 전차로 등장한다.
미군 2티어 전차 M4A1 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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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3티어 전차 M4A2 셔먼
- Hell Let Loose의 미국 측 기갑 차량으로 등장하고 75mm, 76mm, 점보 셔먼 등이 등장한다.
7.3. 기타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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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립 오아라이 여학원의 전국대전 1회전 상대인 선더스 대학 부속 고교 소속으로 등장한다. 아키야마 유카리가 얻은 정보엔 그 희귀한 A6형까지 갖추고 있으나 시합엔 출전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빠듯해서 이지에잇이나 점보는 등장하지 않았으며, 나오미의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실제 차량을 완벽하게 재현한 건 아니라고 한다. 극장판에서도 여전히 케이의 M4와 아리사의 M4A1(76)w, 나오미가 탄 파이어플라이[126] 3대가 나와 대학 선발팀의 부관 3인방이 모는 M26 퍼싱을 막아서지만 순식간에 격파당했다. 이 외에도 대학 선발팀 측에서 훈련용 차량으로 쓰는 모습도 나왔다.
8. 프라모델
미국과 연합군의 주력 전차였던 만큼 웬만한 모형 메이커에서 한번쯤 발매 하였다.
105mm 도져 블레이드 장착형과 칼리오페 로켓 장착형, 미 해병대 셔먼, 이스라엘 슈퍼 셔먼등을 발매하였다. 현재 몇몇 킷은 단종.
발매한지 좀 되어 현재 새로 나온 제품보다는 좀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가격에 비해선 괜찮은 수준이다.
여러 형식의 셔먼을 발매했는데 드래곤답게 부품의 수가 많고 가격이 비싸 고수에게나 추천되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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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러 형식의 셔먼을 발매하고 있는데 최근에 나온 이지에잇 한국전 사양은 훌륭한 품질로 아스카와 견줄만한 거의 결정판급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1/48 스케일로도 발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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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카에서 사명을 바꾼 회사로 셔먼에 사운을 걸었다 할 만큼 셔먼의 재현에 힘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