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쿠디치니

 

'''첼시 FC'''
'''Chelsea Football Club'''
''' 이름 '''
'''카를로 쿠디치니'''
'''Carlo Cudicini'''
''' 출생 '''
1973년 9월 6일 (51세)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밀라노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조건 '''
185cm
''' 직업 '''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 소속 '''
''' 선수 '''
AC 밀란 (1992~1995)
코모 (1993~1994, 임대)
프라토 (1995~1996)
SS 라치오 (1996~1997)
카스텔 디 산그로 (1997~2000)
'''첼시 FC (1999~2000, 임대)'''
'''첼시 FC (2000~2009)'''
토트넘 홋스퍼 FC (2009~2012)
LA 갤럭시 (2012~2014)
''' 스태프 '''
아일랜드 대표팀 U-21 (2015~2016)
첼시 FC (2016~ / 코치)
1. 개요
2. 선수생활
2.1. 이탈리아
2.3. 토트넘 홋스퍼 FC를 거쳐 미국으로
2.4. 국가대표
3. 은퇴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5. 수상 및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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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퇴한 골키퍼 카를로 쿠디치니는 AC 밀란의 전설적인 골키퍼 파비오 쿠디치니의 아들이자 A.S.D. 폰지아나의 수비수였던 굴리엘모 쿠디치니의 손자로서, 현재는 첼시 FC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생활



2.1. 이탈리아


똑같이 밀란의 수문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밀란에서 19세에 데뷔하였으나 여느 골키퍼와 마찬가지로 어렸을때는 주전으로 자주 뛰지못하며 이적과 임대를 전전했다. 그러던 중 라치오에서 심각한 손목부상을 얻었고 그 다음 클럽인 카스텔 디 산그로에서까지 지속됐었다. 그러던 중 라치오의 골키퍼 루카 마르케자니가 친구이자 첼시의 선수겸 감독인 지안루카 비알리에게 쿠디치니를 추천했고, 1시즌 임대가게 된다.

2.2. 첼시 FC


[image]
쿠디치니의 첼시생활을 요약한 한짤..
'''첼시의 스티브 하퍼'''[1]
'''소속팀엔 체흐 대표팀엔 부폰'''
임대 중엔 세 경기만에 비알리에게 합격을 받고 기존의 에트 더 후이,마크 보스치니와의 경쟁에서 이겨내며 01-02 시즌에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주전을 꿰차게 된다. 특히 01년 12월 선덜랜드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일주일동안 2번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는 등 고군분투하며 첼시 FC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게 된다. 또한 ITV 프리미어리그 골키퍼상을 수상하며 2002-03시즌 프리미어 최고의 골키퍼상을 수상하는 등 이대로 공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는 줄 알았으나...
[image]
주제 무리뉴페트르 체흐가 도착하면서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하필 03-04시즌부터 라치오에서 얻은 부상문제가 다시 생겨 시즌의 상당부분을 뛰지못하였던 상황인데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팀은 역대 최저실점을 갈아치우며 흠좀무한 포스를 내보이는터라...겨우 리그 3경기만 출전하며 메달조차 못받게된다.[2] 05-06 시즌도 마찬가지로 4경기밖에 뛰지 못하며 '''메달을 또 목에 걸지도 못하였다.''' 그나마 시즌 막바지에서 12번의 페널티 중 6번이나 막는 등 존재감을 과시한것이 다행인 수준...06-07 시즌 출전시간 관련해서 잡음이 생겼으나 자신은 팀에 애정을 과시하며 팀이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을 얻을 때까지 남고싶다 라며 2009년 여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두번째 불운이 찾아오게되는데, 2006년 10월 14일 레딩과의 리그 경기에서 체흐스티븐 헌트와 부딪혀 엄청난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교체로 출전하여 '''다시 기회가 찾아오나 했으나 자신도 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버리는 통에''' 그 경기는 존 테리가 골키퍼 장갑을 낄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후 서드 키퍼 엔히크 일라리우에게 장갑을 내주며 부상복귀 이후에도 일라리우와 경쟁을 하는 신세가 된다.
그 이후 폼이 오락가락하던 체흐와 경쟁하며 07-08 시즌을 시작했으나 이 시즌 또한 부상의 악령이 떠나지 않았으며, 08-09시즌 들어 폼을 회복하기 시작한 체흐에겐 완벽히 밀려버렸으나 08-09시즌 첼시 유니폼을 입고 100번째 클린시트, 첼시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1-1로 비기게만드는 등 어느 정도 유종의 미를거두며 2009년 1월, 아직 6개월의 기간이 남았으나,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따라 이적료를 받지 않고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하게 된다.

2.3. 토트넘 홋스퍼 FC를 거쳐 미국으로


키퍼로서 한창일수도 있는 나이이나 부상과 적어진 출전환경 덕에 토트넘에서도 그의 입지는 서드키퍼였다. 에우렐리오 고메즈프리델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자주 뛰지 못하였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로 인한 매우 심각한 부상을 당한 적도 있었다. 중간에 계약연장도 하였으나 2012-13시즌 위고 요리스가 영입되며 아예 설자리가 없어진 탓에 2012년 12월 31일 자유계약으로 LA 갤럭시로 떠나게되며 2014년,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22년간의 축구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2.4. 국가대표


청소년대표팀에는 어느정도 선발되었으나 성인대표팀에는 뛰지못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쿠디치니가 부상으로 골골거리며 임대와 이적을 반복하던 시절부터 이미 부폰은 파르마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쿠디치니가 첼시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할 시기, 부폰은 이미 유벤투스에서 역대 골키퍼 이적료를 파격적인 금액으로 갱신하며 정신나간 모습을 보여주던 터라... 게다가 부폰의 서브로는 인터 밀란의 레전드 프란체스코 톨도가 버티고 있어서 후보로도 선발되는 게 불가능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15년 3월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21세 이하 코칭 스태프로도 활동했으며 2016년 7월 첼시로 돌아와 앰버서더와 코칭스태프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다 프랭크 램파드가 첼시 감독이 되면서 코치는 하지 않게 되었고 졸라와 달리 영구 스태프이던 쿠디치니에게 구단이 앰버서더만 하도록 제안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키는 185cm로 골키퍼 치고는 크지 않은 키지만 놀라운 반사신경과 순발력을 보여주었던 선수이다. 신장도 그렇고 이케르 카시야스줄리오 세자르의 하위호환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민첩성과 다이빙이 좋은 탓에 페널티킥 선방률이 꽤나 좋았으며 부상이 없었을 시기의 기량도 매우 좋았던 터라, 부폰이 버티는 한 출장이 불가능한 이태리 국가대표팀을 대신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귀화시켜 출전시키고자 하였으나, 법률상 이뤄지진 못했다.

5. 수상 및 기록


'''첼시 FC'''
우승 : 2004-05, 2006-07
우승 : 1999-2000, 2006-07
준우승 : 2000, 2005

[1] 쿠디치니와 하퍼는 둘 다 후보 골키퍼로 남기 아까울 정도로 꽤 좋은 기량을 가졌으나, 소속 팀 팬이 아니면 잘 모를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편이고 무엇보다 경쟁자들이 '''단순히 좋은 키퍼를 넘어 EPL의 최고 수준급 키퍼들'''이었던지라 기량에 비해 많은 출장을 갖지 못 했다는 불운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주전 키퍼가 부상을 당해도 이 둘이 있었기 때문에 각 팀 팬들은 키퍼 걱정을 덜 할 수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소속팀에 상당한 충성심을 보였기 때문에 팀 팬들에게 레전드 취급을 받고 있다.[2] 그 3경기 또한 첼시가 우승을 확정지은 후에나 뛰었던 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