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드 1세

 


사산 왕조 제22, 제24대 샤한샤. 재위기간 1차 488 - 496년, 2차 498 - 531년
1. 즉위 배경
2. 제위 초반
3. 반전
4. 여담


1. 즉위 배경


당시 페르시아는 에프탈이나 훈족중앙아시아에 자리잡은 유목민들과의 충돌이 잦았고, 심지어 수차례 전쟁을 벌이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카바드의 부친이자 선왕인 페로즈 1세는 에프탈과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하고 카바드 1세를 인질로 잡혔고 상당한 양의 몸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던 484년 지난 패배로부터 2년 후, 자신의 아들이 볼모로 잡혀있음에도 전쟁을 감행한 페로즈 1세는 참패를 당해 전사하고 부대까지 궤멸하였다.
에프탈은 제국의 수도인 크테시폰으로 진격해왔고, 크테시폰의 귀족들은 페로즈 1세의 동생 발라시를 즉위시키나, 발라즈는 무능했고 결국 재상인 수흐라가 협상해 막대한 배상금을 대가로 에프탈이 진격해오며 차지한 영토와 볼모로 잡힌 페로즈 1세의 아들 카바드 1세를 반환받았다.
선왕의 아들인 카바드가 귀환했으니 카바드가 왕위에 오르는것이 맞지만, 아무래도 적에게 볼모로 잡힌 시절이 있으며, 일단 왕으로 즉위시킨 발라시 등의 문제로 카바드는 왕위는 커녕 여러 정치적 이유로 죽임당할 뻔 한다. 그러나 재상 수흐라의 중재로 죽이는 대신, 감옥에 가둬 놓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카바드는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였고, 에프탈에게로 도주하였고 막대한 돈을 약속하여 그들의 군대를 이끌고 왕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왕위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에프탈 군대를

2. 제위 초반


에프탈의 도움으로 반역에 성공한 카바드 1세는, 파르티아 7대 가문 중 하나인 카렌 가문의 수크라를 꺾어야 했다. 수크라는 당시 '페로즈 1세의 복수자'를 자처하며 파르티아 일대를 휩쓸었다. 카바드 1세와 카렌 가문의 라이벌이었던 미흐란 가문은 동맹을 맺고 카렌 가문을 공격하여 수크라를 처형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에프탈의 침략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았던 파르티아 지방조차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후 미흐란 가문의 득세 또한 카바드 1세 통치의 불안요소가 되고 만다.
카바드 1세는 이 상황에서 공산주의적 시각을 가진 마즈다크교를 후원하였다. 그의 의도는 확실히 마즈다크교의 교리를 통해 유력자들의 개입을 피함과 동시에 파르티아 귀족 세력의 재산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카바드 1세는 496년에 반대세력들에 의해 폐위되고 수사의 망각의 요새라 불리는 이름을 가진 곳에 유폐되었다. 그리고 카바드 1세의 동생인 자마습이 왕위를 차지했다.[1]
하지만 카바드 1세는 성에서 탈출하고, 에프탈의 공주와 혼인하여 에프탈을 배후세력으로 삼았다. 결국 카바드 1세는 498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 복위하였으며 반대세력을 숙청하였다. 카바드 1세는 집권 후 에프탈에게 공물을 보냈으며, [2] 예전에 페르시아에게 지급되었던 이민족 방어 보조금을 동로마 제국에 신청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으며, 동방의 두 나라가 전쟁으로 서로 쇠약해지길 기대하였다.

3. 반전


그러나 카바드 1세는 에프탈과 연합하여 동로마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502년에는 아르메니아의 에르주룸를, 503년에는 티그리스의 디야르바르크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505년에 캅카스 지역에 다시 훈족이 침략하여 휴전하였으며, 동로마는 페르시아에게 캅카스 지역 요새들의 유지비를 지원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스티누스 1세가 새로운 동로마의 황제로 집권했을 때,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페르시아의 봉신인 알문드히르 4세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승과 수녀들을 살육했다. 그리고 531년 동로마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칼리니쿰 전투에서 패배시켰다.
하지만 그해 9월 카바드 1세는 사망하고, 호스로 1세가 뒤를 잇는다.

4. 여담


취미가 목욕이었다고 한다.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상당히 이교도적인(혹은 로마적인) 취미로 비난받았던 모양. 그러나 마즈다크교를 밀 정도로 종교에 시니컬했던 카바드 1세는 신경도 안 썼던 모양.

[1] 하지만 이후에도 마즈다크교는 건재했으며, 이는 529년에 열린 신학 논쟁에서 마즈다크교가 이단으로 박해받고 마즈다크가 자살할때까지 계속 득세하게 된다.[2] 이 때문에 중국과도 혼인동맹을 맺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