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두 칸

 

'''우구데이 칸국의 역대 칸'''
2대 구유크 칸

'''3대 카이두 칸'''

4대 차파르 칸
1. 개요
2. 생애 초기
3. 차가타이 칸국과의 대립
4. 원나라와의 대립
5. 생애 후반
6. 창작물에서의 등장
7. 관련 문서


1. 개요


Хайду. (생몰 1230년 ~ 1301년)(재위 : 1248년 ~ 1301년)
우구데이 칸국의 실질적 초대 칸으로 무려 50년 동안 당숙뻘인 쿠빌라이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인물이다. 우구데이 칸국은 그의 사후 10년도 채 안 되어서 멸망당하기 때문에 우구데이 칸국은 사실상 그가 혼자 지배했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생애 초기


1230년 우구데이 칸의 5남인 카시의 아들로 태어났다. 1241년 우구데이 칸이 죽은 이후 대칸 지위를 두고 구유크 칸바투가 다투고, 구유크 칸이 1246년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 지위에 올랐으나, 1248년 구유크 칸이 죽었다. 이후 바투 계와 연합한 툴루이 계와 우구데이 계가 다시 대칸 지위를 두고 다투다가 툴루이 계의 몽케 칸이 1251년 대칸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몽케 칸 즉위 직후 우구데이 칸 계열이 대칸 지위를 되찾기위한 위한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대거 숙청당했을 때 몽케 칸에게 고개를 숙여 목숨을 건지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오게 된다.

3. 차가타이 칸국과의 대립


1259년 몽케 칸 사망 이후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가 대칸 지위를 두고 다투자, 카이두는 아리크부카를 지지했다. 그리고 아리크부카가 결국 쿠빌라이에게 패배하게 되자, 쿠빌라이를 지지한 차가타이 칸국의 알루구 칸(재위 : 1260년 ~ 1266년)이 본격적으로 카이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킵차크 칸국이 도움을 주어서 차가타이 칸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차가타이 칸국에서 바락이 즉위하자 도리어 차가타이 칸국을 킵차크 칸국과 함께 압박하였고, 두 차례의 승리를 이끌면서 차가타이 칸국의 상당한 영토를 얻으면서 강화를 맺게 된다.
한편 영토를 잃은 바락은 상당한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불만을 이용해 바락으로 하여금 일 칸국을 공격하게 만들고, 바락은 일 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그의 성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킵차크 칸국은 그를 압박하게 되고, 1270년 일 칸국에게 대패한 바락이 1271년 카이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도리어 포위를 당하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결국 바락은 카이두의 군대에게 둘러싸인 상태의 막사 안에서 죽게 된다. 이후 차가타이 칸국에 새로운 칸을 올렸으나, 이전 칸들의 아들들의 반란에 시달리고, 이러한 반란은 1282년 카이두가 반란 세력과 타협하여 바락의 아들 두아를 칸 위에 올리면서 해결이 된다.

4. 원나라와의 대립


평소 카이두를 탐탁치 않아 했던 쿠빌라이는 넷째 아들 노무간으로 하여금 카이두를 공격하게 하였고, 여기에는 몽케의 아들 시리기, 아리크부카의 아들 요부쿠르, 멜릭 테무르가 있었는데, 1276년 세 왕자가 진중 반란을 일으켜 노무간을 킵차크 칸국에 넘겨버리고, 자신들은 카이두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이 왕자들 사이에 차가타이의 차남 사르반도 합류하게 된다. 이 왕자들과 킵차크 칸국, 카이두가 반 쿠빌라이 전선을 구축하고 원나라의 수도 카라코룸으로 진격하였고, 쿠빌라이는 바얀으로 하여금 이 진격을 막아내게 하였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나라를 괴롭혔다. 하지만 번번히 바얀의 방어에게 막혔고, 쿠빌라이 사후에는 오히려 본인 진중에 있던 세력들이 이탈해 감에 따라 세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그래도 원나라 공격을 멈추지 않아서 1298년에는 원 성종의 사위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기도 한다.

5. 생애 후반


자신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카이두는 1301년 최대 규모 원정에 나서게 된다. 처음에는 카말라(원 진종의 아버지)의 군대를 압도했지만, 곧바로 투입된 카이샨(이후의 원 무종)의 군대로 인해 차가타이 칸국의 두아는 본국으로 돌아갔고, 카이두도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사망했다.
그의 사후 칸의 지위는 장남인 차파르가 두아에 의해 오르게 되었으나 곧바로 두아와 대립했고, 두아는 원나라와 함께 차파르를 공격한다. 결국 1306년 차파르는 항복하고, 우구데이 칸국의 영토는 원나라와 차가타이 칸국에 의해 분할되게 되었다. 이후 1310년 차파르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원나라에 망명함으로 인해 우구데이 칸국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6. 창작물에서의 등장


코에이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에도 등장. 원조비사에서는 할아버지의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꽤 준수한 능력치와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가지고 있음에도 플레이 불가능한 군주로 나오며 시나리오 3 원조의 성립의 우구데이 칸국 칸이다.
징기스칸 4에서도 시나리오 2의 우구데이 칸국 칸으로 등장. '하이두'라는 이름으로 표기된다.[1] 능력치는 정치 / 전투 / 지모 순으로 74 / 86 / 82에 건설, 외교, 등용, 돌격, 연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콘솔 판에서는 지모가 90까지 상승해서 시나리오 1의 자무카와 비슷한 능력치가 되었다. 꽤 우수한 무장이지만 부하들이 심하게 빈약하고 문화도도 낮은 데다가 땅도 발전하기 영 좋지 않아 원나라와 국력 차이가 상당하다. 연사 특기와 몽골 기병 편성이 가능하므로 카이두를 앞세워 차가타이 칸국부터 접수하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지만, 자신이 있다면 냅다 원나라의 카라코룸으로 돌진하는 것도 해 볼 만하다.
원피스(만화)사황 중 하나인 카이도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속단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름만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드라마 칭기즈칸의 후예(원제 : 건원풍운)에서는 왕루(王璐)가 담당하였다. 우구데이의 후예들의 수장임에도 아리크부카의 졸개처럼 묘사되며 툭하면 작전이 실패할때마다 아리크부카에게 구박받고 어쩔줄 몰라하는 굴욕적인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이 드라마가 철저히 한족의 사고방식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몽골 땅을 변방 취급해 자기 할아버지의 영지를 다스리며 칸국들을 제패해 위세를 떨치던 카이두가 평생 변방에 쫓겨나 살았던 것처럼 에필로그를 써놨다.

7. 관련 문서



[1] 몽골어 ᠬᠠᠢᠳᠤ/Хайду를 중국어로 옮기면 海都/Hǎid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