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빈
페르시아어 قزوین
영어 Qazvin
1. 개요
이란 중북부의 도시. 테헤란에서 서북쪽으로 140km, 라슈트에서 동남쪽으로 100여 km 떨어져 있으며, 엘부르즈 산맥 서남쪽 기슭의 해발 1800m의 고지에 위치하여 있다. 인구는 40만명으로, 동명의 주의 주도이다. 사파비 왕조의 타흐마스프 1세는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피해 타브리즈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고, 따라서 카즈빈은 이스파한 천도 이전인 1548 ~ 1598년간 이란의 수도였다.
과거와 현재 모두 교통의 중심지였고, 아제르바이잔 방면과 이란 내륙을 이어준다. 테헤란과 타브리즈로 가는 이란의 대동맥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이며, 카즈빈에서 서쪽의 술타니야 방면으로 350여km 가면 타브리즈가 나오고 서남쪽으로 250여km 가면 하마단이 나온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까닭에 카즈빈은 과거부터 각지에서 온 상인들로 북적였고 부유하였다.
2. 역사
서기 250년, 사산 제국의 샤한샤 샤푸르 2세가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름은 샤하드 샤푸르 (기쁜 샤푸르). 이후 644년에 아랍 무슬림에게 항복하였고 1210년에는 조지아 군에게, 1257년경에는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도시가 파괴되었다. 사파비 왕조의 아바스 1세의 천도 전까지 왕조의 두번째 수도로서 번영하였고, 18세기 초에는 아프간 출신의 호타키 조에게 밀려났을때는 타흐마스프 2세의 임시 수도로 기능하였다.
19세기, 카자르 왕조의 치세에서 카즈빈은 카스피 해 연안의 물산과 이란 서부의 물산이 거래되는 장터가 되었으며, 바자르가 더욱 확대되었다. 하지만 1847년에 밥 인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났고 1893년부터는 러시아 회사들이 들어왔으며 1920년부터는 영국의 영향력 하에 놓였다. 팔레비 왕조가 세워진 세속주의 군부의 쿠데타가 카즈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