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하라 토모미

 

[image]
華原朋美
1974년[1] 8월 17일(49세).
1. 개요
2. 이력
2.1. 가수 데뷔 전
2.2. 데뷔와 성공
2.3. 코무로와 결별
2.4. 1차 복귀
2.5. 예능계 은퇴
2.6. 2차 복귀
3. 발표한 음반
3.1. 싱글
3.2. 앨범
3.3. 베스트 앨범
3.4. 커버 앨범


1. 개요


일본가수이자 탤런트. 도쿄도 고토구 출신. 대표작으로 'I'm proud', 'I BELIEVE', 'Hate tell a lie' 등이 있다. 일본의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코무로 테츠야의 연인이었다. 코무로가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었다. 본명은 시모가와라 토모미(下河原朋美).

2. 이력



2.1. 가수 데뷔 전


나카야마 미호를 동경하여 연예계에 들어왔으며, 1993년 아카시야 산마의 방송을 통해 첫 티비 출연. 패션 잡지의 모델으로 활동하였고 토오미네 아리사라는 이름으로 그라비아 아이돌로 활동한 적이 있다. 나이를 4살 낮추기도 하였다.
토오미네 아리사 시절 레귤러로 출연하던 심야 방송에서 코무로 테츠야의 눈에 띄어, 코무로가 당시 경영하던 가게 'TJM'에 같이 간 것을 계기로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카하라는 여배우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코무로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목소리'라고 얘기함으로써 가수 데뷔가 결정. 우연하게도 카하라가 처음으로 샀다는 나카야마 미호의 싱글 '50/50'은 코무로 테츠야가 작곡한 것이었다.

2.2. 데뷔와 성공


95년 사무소를 이적하고 코무로 테츠야의 약자에 맞춰서 '카하라 토모미'라고 예명을 변경. 'I BELIEVE'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96년 카하라 최대의 히트곡인 'I'm proud'가 밀러언 셀러를 기록하여 톱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게 된다.
카하라가 현재까지도 코무로의 연인으로 이름이 오르는 이유는 당시의 폭발적인 코무로 붐과 함께 방송 매체에서 이들의 관계를 자세히 다뤘으며, 직접 두 사람이 방송에서 굉장한 애정 표현까지 할 만큼 유난을 떨었기 때문이다. 코무로는 카하라에게 엄청난 푸쉬를 해주었으며,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하는 큰 애정을 과시했다. 'I'm proud' 뮤직비디오에서 카하라 뒤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는 게 코무로 테츠야. 물론 이는 코무로에게는 일종의 언론 노출 전략이기도 했다. 데뷔 직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폭로한 인터뷰에 대해서는 "가수에게 손을 댄 게 아니라 애인에게 곡을 써서 데뷔시켜준 것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푸쉬와 함께 96~98년 홍백가합전에도 출연, 97년에도 'Hate tell a lie'가 히트하고 또 다시 계속 밀리언을 기록하였다. 2집 앨범 'storytelling'도 밀리언을 기록. 당시 아무로 나미에의 '아무라'에 대항하는 라이벌 구도로 '카하라'라고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코무로 패밀리의 공주님, 헤이세이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2.3. 코무로와 결별


그러나 99년 코무로와 파국을 맞으면서 카하라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파국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97년 말 경 코무로와 호텔에서 싸운 뒤 흥분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그 무렵부터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했다. 일단 98년에도 코무로 테츠야의 프로듀스는 계속되었지만 곡의 퀄리티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수준이었고, 카하라 토모미의 보컬도 이전과는 달리 듣기 괴로울 정도로 불안정해져서 정신적 충격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이 시기 나온 3집 'nine cubes'는 세기말적인 편곡과 세기말적인 보컬이 나쁜 의미로 조화를 이루어서 그야말로 세기말적인 앨범이 되고 말았다[2].
결국 99년 자택에서 가스 중독으로 쓰러져 입원, 코무로와의 파국설이 보도되어 자살 미수 의혹에 대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몇 달 뒤엔 기자회견을 가지고 복귀하였는데, 이사한 자택 맨션에서 빈혈로 쓰러져 또 다시 입원. 소속사에선 감기약을 너무 많이 복용하였다고 설명했으나 일부에선 약을 과다복용하였다는 말도 나왔다.

2.4. 1차 복귀


몇 주 뒤 불안정한 상태로 두 번째 기자회견을 가지고 복귀 싱글인 'as A person'을 냈는데, 코무로에 대한 카하라의 심경이 절절히 묻어져 나오는 가사가 화제를 불러모았다[3]. 이 싱글이 수록된 4집 앨범 'One Fine Day'는 에이벡스 마츠우라 사장이 프로듀스하여 호시노 야스히코, 하라 카즈히로 등 에이벡스의 A급 작곡진이 참여하였다.[4]
2000년 초 "100%의 내 자신을 되돌리겠다"며 갑작스레 캐나다로 유학. 몇 개월 뒤 다시 돌아와 '전진하라! 전파소녀 ~카하라 토모미의 전파소녀적 미국 데뷔의 길~'이란 프로를 통해 미국 데뷔를 노렸지만, 잘 되지 않았는지 몇 개월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전파소년'이라는 프로그램의 컨셉 자체가 말도 안되는 걸 시킨 뒤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방영하는 것이고, '전미 데뷔'라는 목표도 그런 맥락에서 정해진 것이었다. 본인이 전미 데뷔를 꿈꿨다기 보다는 프로그램 컨셉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발매한 싱글 'Never Say Never'는 오리콘 차트 10위에 판매량도 7만장 가까이 나와 물론 전성기 때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긴 하지만 복귀로서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 뒤엔 착실히 음반을 계속 발매하며 드라마에도 출연, 오프닝을 맡은 크레용 신짱의 성우에도 도전하며 다시 활발히 활동하였다. 전성기 시절보다 가창력도 좋아졌고, 곡도 미국 프로듀서들에게서 받는 등 이전의 소동을 생각하면 꽤나 안정적으로 활동하였다. 2004년 한국의 남성 듀오 일기예보의 '그대만 있다면'이라는 곡을 커버한 'あなたがいれば'가 음원 다운로드 10만 건을 돌파하며 꽤 인기를 끌었으며, 이것을 계기로 일기예보의 강현민이 직접 곡을 주기도 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홍백가합전에도 다시금 출연했다.

2.5. 예능계 은퇴


그러나 2007년 건강 악화로 인한 활동 휴업을 결정. 2009년 약물 중독으로 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 카하라는 정신 안정제를 다량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교제하던 남자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소속사에선 거의 짤리다시피 계약 해지까지 당하였다. 참고로 저 남자는 카고 아이와도 교제하였고 카고에게도 비슷한 짓을 했다.
2010년에는 코무로 테츠야와 함께 다시 재데뷔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코무로 본인이 직접 트위터에서 부정했다. 2010년 8월에는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정신이 몽롱한 뒤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1년 10월 자신의 친오빠의 블로그를 통해 예능계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블로그 기사.

2.6. 2차 복귀


2007년 계약을 해지당했던 프로덕션 오기와 재계약하고, 2012년 12월 5일 후지TV의 FNS가요제를 통해 복귀한다고 알렸다. 친필로 언론에 배포한 팩스에 "나는 노래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세를 진 모든 분들께 보답의 생각으로 한껏 노력하겠습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FNS가요제에서는 자신의 히트곡 중 하나인 'I'm Proud'를 불렀고, 전성기에 비해 음역은 낮아졌으나 오히려 안정된 라이브를 선보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노래를 끝낸 뒤 스스로 감격을 감추지 못하며 울먹이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항간에 추측으로 나돌던 TK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없었다.[5]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2013년 12월 FNS가요제에서 TK와 함께 무대를 섰다. 'I'm proud' 와 'I believe'를 불렀고, TK는 뒤에서 피아노 연주와 서브보컬. 무대가 끝난 후에 카하라 토모미는 TK에게 "지금까지 염려와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고, 이제부터는 앞만 보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무대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고 악수를 청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프로듀서 말에 따르면 마지막에 손을 내밀고 사과의 말을 입 밖에 낸 것은 카하라 토모미의 애드립이었다고. 리허설 때부터 카하라 토모미는 프로듀서에게 "직접 무대에 서게 되면 저 아무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을 건넸고, 프로듀서는 "나는 그 말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마음껏 하세요" 라고 힘을 줬다고. 카하라 토모미가 용기를 내서 사과의 말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코무로 테츠야가 불편한 모습으로 허둥지둥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도망쳐버리는 것 같은 모습에 상당히 불편하고 어색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2013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곡을 커버한 싱글 '夢やぶれて -I DREAMED A DREAM-'을 발매, 이 싱글을 리드 싱글로 해서 셀프 커버 베스트 앨범인 'DREAM -Self Cover Best-'를 발매하였다.
2014년, 두 장의 커버 앨범 'MEMORIES -Kahara Covers-', 'MEMORIES 2 -Kahara All Time Covers-' 연작을 발매하여 앨범 차트 10위권에 들어가는 성적을 거둔다. 'MEMORIES'는 2014년 일본레코드대상 기획상을 수상했다.
2015년 5월, 자신이 작사하고 코무로 테츠야가 작곡한 싱글 'はじまりのうたが聴こえる'를 발표했다. 편곡은 코무로가 아닌 타케베 사토시. 2006년 이후 9년만에 내놓는 첫 싱글 신곡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36위, 레코초쿠 주간 차트 29위를 기록했다.
2016년 11월 컨디션 불량으로 장기 활동 휴지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매스컴 보도가 나왔다. 10월 30일의 본인 블로그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비치는 글을 업로드했으며, 잇따른 스케줄도 전부 캔슬했다. 현재 자택에서 요양 중이며 반년에서 길게는 1년 정도 휴양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7년 다시 복귀하여 PON!의 레귤러로 나오는 등 활동했다.
2018년 7월, 일본의 주간지들은 70대의 모 기업 회장과 카하라가 밀회를 가졌다는 골자의 보도를 하였다.프라이데이 카하라는 모든 SNS 계정을 닫고 잠적하였다. SNS를 폐쇄하기 전에 '나는 나의 행복을 생각하고 싶어, 카하라 토모미의 행복이 아니라'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업로드하기도 하였다.
한 매체의 인터뷰에 따르면 코무로 테츠야의 새 앨범을 사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소속사로부터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 글을 올리기 전 소속사로부터 일일이 감수를 받아왔는데, 자신의 본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본인은 이미 더 이상 코무로 테츠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음악인으로서 존경하는 마음만 남아 있을 뿐인데,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인터뷰의 내용대로라면 sns를 둘러싼 사람들의 온갖 말 때문에 피로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무렵, sns를 그만 둔 유명인들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면서 sns 문화의 어두운 면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링크 이로 인해 다시 활동 중지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12월 디너쇼를 개최하였다.
2019년 5월 4일 갑작스러운 6개월 임신 상태임을 발표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임신 상황인데다 생일 이후로 나이를 세는 일본식 만 나이로도 44살이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매우 놀란 모양. 발표에서 태아의 아빠는 작년 가을부터 만난 일반인 회사원임을 밝히고 있다.

3. 발표한 음반



3.1. 싱글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수록 앨범
비고
1995.09.08
keep yourself alive
8위
370,070장
LOVE BRACE
1995.10.11
'''I BELIEVE'''
4위
'''1,028,490장'''
1996.03.06
'''I'm proud'''
2위
'''1,390,440장'''
1996.07.22
LOVE BRACE
6위
254,770장
리컷 싱글
1996.10.02
save your dream
1위
929,760장
storytelling
1997.04.23
'''Hate tell a lie'''
1위
'''1,058,610장'''
1997.07.02
LOVE IS ALL MUSIC
1위
653,000장
1997.09.18
たのしく たのしく やさしくね
1위
416,560장
1998.02.11
I WANNA GO
20위
47,610장
리컷 싱글
1998.04.08
YOU DON'T GIVE UP
7위
66,340장
리컷 싱글
1998.06.17
tumblin'dice
2위
188,810장
nine cubes
1998.07.29
here we are
5위
156,350장
1998.10.21
daily news
13위
58,190장
1999.07.22
as A person
6위
287,150장
One Fine Day
1999.10.27
be honest
12위
50,700장
2000.02.23
Believe In Future
~真夜中のシンデレラ~
28위
28,580장
Natural Breeze
2000.07.26
Blue Sky
55위
6,170장
One Fine Day
리컷 싱글
2001.04.18
Never Say Never
10위
79,180장
Love Again
2001.08.08
PRECIOUS
34위
13,510장
2001.10.24
あなたのかけら
36위
13,490장
2002.04.24
あきらめましょう
28위
21,780장
Natural Breeze
2003.02.26
PLEASURE
55위
4,374장
Super Best Singles
테레비 아사히 TVA 《크레용신짱》OP
2004.09.29
あなたがいれば
15위
32,818장
NAKED
2005.05.25
涙の続き
30위
12,563장
2006.02.22
華/Keep On Running
37위
7,889장
미수록
2006.07.05
あのさよならにさよならを
46위
5,130장
2013.04.17
夢やぶれて -I DREAMED A DREAM-
13위

DREAM -Self Cover Best-
2015.05.20
はじまりのうたが聴こえる
36위
2,637장
TBA

3.2.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비고
1996.06.03
LOVE BRACE
1위
2,571,210장
1997.12.24
storytelling
1위
1,365,860장
1998.11.26
nine cubes
5위
261,170장
1999.11.25
One Fine Day
7위
56,530장
2001.11.21
Love Again
36위
11,370장
2005.06.29
NAKED
30위
11,944장

3.3. 베스트 앨범


1999.02.10
kahala compilation
1위
695,730장
2001.09.27
Best Selection
23위
21,860장
2002.07.17
Natural Breeze ~KAHALA BEST 1998~2002~
37위
7,620장
2005.12.14
Super Best Singles ~10th Anniversary
65위
3,423장
첫 주 판매량
2013.06.26
DREAM -Self Cover Best-
15위

2015.06.24
ALL TIME SINGLES BEST
ALL TIME SELECTION BEST

3.4. 커버 앨범


2014.03.12
MEMORIES -Kahara Covers-
10위

2014.10.01
MEMORIES 2 -Kahara All Time Covers-
9위

[1] 우연히도, 코무로가 TM NETWORK 초기 때 발매한 노래와 년도가 똑같다.[2] 싱글 tumblin' dice와 here we are은 코무로의 의향에 따라 음정도 완벽히 안 잡힌 첫 가창을 그대로 음원화해서 싱글로 발매했다. 앨범 녹음 때에는 재녹음을 했다.[3] 일반적으로 8cm 싱글은 패키지 안쪽에 가사가 써있는데 이 싱글은 특이하게 가사가 바깥쪽에 써있다.[4] 그렇다고 에이벡스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레이블은 워너뮤직이었다. 프로듀스만 마츠우라 마사토가 맡았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에이벡스와 코무로의 관계는 최악이었다.[5] 이 때에도 콜라보레이션 제의는 있었으나 아내인 KEIKO의 병세가 악화되어 무산되었다. 아내가 아픈 와중에 사연 많은 전 애인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가 없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