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로 나미에
1. 개요
일본의 가수.'''Queen of J-pop'''[5]
2. 경력
2.1. 1977-1992: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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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 20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역의 유지인 부친과 외조모가 주일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등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배경 차이, 성격 차이 등으로 다투다가 아무로가 4살 때 이혼을 한다. 이혼 후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아무로는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면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도 없고 용돈도 없는 등 궁핍했던 시절의 일화는 눈물겨울 정도. 어린 시절 아무로는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어둡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다니던 가수/탤런트 육성 학원인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에 놀러갔다가 원장 마키노 마사유키에게 스카웃 된다. 구경 왔던 아무로를 버스정류장[6] 까지 쫓아가 어머니와 같이 오라고 말하고, 돈이 없어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아무로를 특별장학생으로 대우해 공짜로 다니게 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7] 아무로네 집안은 학원을 다니는 버스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아무로는 집에서 학원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걸어다녔다고 한다.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에 다니면서 오키나와 지역 방송에 출연하고, 도쿄도에서 오디션을 보는 등 연예인 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학생들과 '슈퍼몽키즈' 를 결성하고 정기 공연을 하다가 1992년 2월 라이징 프로덕션과 계약하고 3월 도쿄로 상경한다. 그 후 시무라 켄의 방송에 레귤러로 출연하거나 이벤트에 나가는 등 인지도를 쌓는다.
2.2. 1992-1995: 슈퍼 몽키즈
1992년 9월 토시바EMI에서 걸그룹 '''슈퍼 몽키즈'''로 데뷔하였다. 슈퍼 몽키즈는 인기를 끌지 못하고 여러 번의 멤버 교체를 거치며 슈퍼 몽키즈→슈퍼 몽키즈 4→아무로 나미에 with 슈퍼 몽키즈로 이름을 바꾼다.[8]
중학교 3학년인 1993년부터는 아예 학교를 나오지 않고 연예계 생활에 집중. 지금이야 대스타가 되었지만 당시 급우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 보자' 라는 다소 질투 어린 말도 오고갔던 모양이었다. 후에 다큐멘터리에서도 "그 당시 그런 말들이 매우 분했지만 덕분에 독기를 품고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라고 한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인지, 유일하게 아무로 나미에의 졸업 페이지만 공백으로 되어있다.
데뷔 이후 3년간 무명 아이돌에 불과하였지만, 1995년 1월 싱글 'TRY ME~私を信じて~' 가 대박나면서 전성기가 시작된다. 싱글 'TRY ME~私を信じて~' 는 초동 8,770장에서 시작해서 총판 732,950장이라는 괴물 같은 롱런을 한다. 같은 해 아무로 나미에는 싱글 'Body Feels Exit' 로 솔로 데뷔를 한다.
2.3. 1995-1997: 아무라 현상
아무로 나미에의 진정한 전성기는 1995년 가을 EMI에서 에이벡스로 이적하면서 시작되었다. 10월 25일 코무로 테츠야의 프로듀스하에 첫 싱글 'Body Feels Exit' 를 발표하면서 유로비트 노선에서 벗어났고, 이후 3년간 'Chase the Chance', 'Don't wanna cry', 'You're my sunshine' 등 5개의 싱글이 밀리언 싱글을 달성했다. 1996년 7월 첫 정규 앨범 'SWEET 19 BLUES' 는 300만장을 넘기는 대 히트를 기록하여 아무로의 앨범들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위에서 쓴 것처럼 아무로 나미에의 전성기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로는 당시 10대 소녀들의 패션 리더가 되었고, 소녀들은 아무로를 따라한다며 다이어트를 하여 평균 몸무게가 2kg이나 줄었으며, 트레이드 마크인 태운 피부, 미니스커트, 통굽[9] 등의 엄청난 유행을 불렀다. 그녀를 따라한 팬들로 인해 갸루 패션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사회적 파장은 언론은 '아무라' 라고 하였으며 경제학 용어에도 실려있다. 1996년 말 그녀는 일본 그랑프리상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에서 갈고 닦은 탄탄한 기본기를 통해서 '''격렬한 안무 중에도 CD 음원에 버금가는 완벽한 라이브'''를 소화해낸다는 자체로 국내외로 가요계에 큰 파장을 일었다. 처음에는 립싱크가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돌려봤지만 가사를 틀리는 모습[10] 을 보고 나서야 라이브였다는 사실에 그만 실력에 매료되어 팬으로 입문되는 사람도 꽤 많은 편이었다. 대표적으로 96년 치바 마린 스타디움 공연은 아무로 역대 최고의 라이브로 남아있지만, 특히 그 중에서 'Body Feels EXIT'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다.[11]
1997년이 시작되면서 싱글 'CAN YOU CELEBRATE?' 가 발매되는데, 이 싱글은 아무로 나미에의 발라드 노래 중 최고의 히트곡이자 당시 일본 결혼식 테마송으로 불리는 등 200만 장 이상 팔렸다. 현재에도 아무로 발라드 곡 중에 탑 2위를 차지하고 있다.[12] 7월 정규 앨범 'Concentration 20' 가 약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7월과 8월에 걸쳐 여성 아티스트 최초의 돔투어를 성공시키면서 인기의 최정점에 오른다.
2.4. 1997-1999: 결혼과 출산, 그리고 복귀와 모친 피살 사건
하지만 TRF의 멤버 SAM(본명: 마루야마 마사히루)과 결혼하면서 그녀의 화려한 전성기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SAM은 그녀보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았고, 무엇보다 최고 전성기의 여성 솔로가 갓 20살이 되자마자 속도위반까지 한 결혼이였기 때문에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임신 발표 기자회견 때 버버리 미니스커트를 입고 배를 가리키며 '아이가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 전까지 노티 나는 이미지였던 버버리는 '미니스커트도 있었어?!' 라는 반응과 함께 젊은 여성층의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이미지를 쇄신하고 최고 인기 브랜드로 등극했다. 더불어 아무로의 속도위반 결혼으로 인해 결혼 전 임신과 출산이 유행하며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장기 활동 휴재를 발표했고, 아무로 나미에의 공백으로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 같은 후배격 되는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가요계의 판도가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8년 5월, 아들 하루토를 출산했고 12월에 싱글 'I HAVE NEVER SEEN' 으로 복귀하면서 1위를 하였다. 그리고 싱글 'CAN YOU CELEBRATE?' 으로 1998년 홍백가합전에 진출했다. 이 때 홍백가합전 시청률은 역대 가수별 시청률 1위로[13] 20년이 지난 2018년 현재까지도 경신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99년에 어머니가 재혼 상대의 동생, 즉 아무로 나미에의 의붓삼촌에게 돈 문제로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필이면 새 싱글 'RESPECT the POWER OF LOVE' 발매날에 살인 사건이 터져서 일본에서도 파장이 컸으며, 본인도 심적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2008년 인터뷰에서 밝히길 당시 은퇴까지 생각했다고. 이후 2002년에 왼쪽 팔의 문신에는 어머니의 기일을 새겨놓았다. 이 때 발매된 싱글 'RESPECT the POWER OF LOVE' 로 홍백가합전에 진출했다.
이 시절 아무로가 겪은 사건들이 얼마나 파장이 컸는지,
당시 일본 문화이 제대로 안 되어있던 대한민국 주요 언론에서도 아무로의 속도위반 결혼 소식과 어머니의 피살 소식이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2.5. 1999-2004: 음악성 전환과 이혼, 침체기
'GENIUS 2000' 앨범부터 'break the rules' 앨범까지 코무로 테츠야와 달라스 오스틴이 공동으로 프로듀스한 앨범을 발표하였다. 달라스 오스틴은 TLC와 보이즈 투 멘 등으로 유명한 거물 R&B 프로듀서이다. 1999년 9월 발매된 싱글 'SOMETHING 'BOUT THE KISS'를 비롯해 달라스 오스틴이 단독으로 프로듀싱한 곡들도 여럿 수록되어 있다. 코무로도 당시 R&B 음악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두 앨범은 R&B 성향이 짙다.
"Don't wanna cry" 시절부터 R&B 색채를 드러내오긴 했지만,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R&B/블랙 뮤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정작 이 시기 가장 히트한 곡은 코무로의 동양풍 발라드인 "NEVER END". 큐슈 오키나와 정상회담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2001년 1월 "break the rules" 앨범으로부터의 리컷 싱글 'think of me/no more tears'을 마지막으로 코무로 테츠야(TK)와 결별한다. 8월 아무로가 직접 작사한 싱글 'Say the word' 부터 셀프 프로듀싱을 시작하지만, 명확한 방향성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판매량 역시 하락한다. 게다가 아무로 소속사인 비전팩토리의 사장이 탈세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까지 이 시기에 벌어졌다.
2002년 7월 SAM과 이혼[14] 을 하면서 이미지까지 나빠지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와중에 아무로에게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 2002년 겨울 m-flo의 VERBAL과 이마이 료스케의 힙합 프로젝트 스윗칙(SUITE CHIC)에 보컬로 참여하게 된다. 평소 블랙 뮤직에 관심이 있던 아무로는 이를 계기로 완전히 음악성을 전환한다. VERBAL 측에서 ''''일본의 자넷 잭슨''''이라는 컨셉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중, 가장 이에 근접하다고 여겨지는 아무로 나미에를 간택. 다행히 컨택 과정이 매우 순조로워서 앨범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무로 나미에는 자신의 롤 모델로 항상 자넷 잭슨을 언급할 정도로 자타공인 엄청난 팬임을 인증한 적이 많다.[15]
참고로 이 시기에 미국 진출을 계획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유독 이 시절 음악들을 잘 보면 미국 본토 프로듀서들과 작업한 노래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로 본인도 영어 개인 교습도 받고, TLC 프로듀서였던 달라스 오스틴의 지휘 아래 미국 진출을 계획 중이었으나 결국 무산되어버렸다. 그 대신 이 때 작업했던 노래들은 6집 'Style'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과거 코무로 테츠야와 작업 당시에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고 간간히 하이노트만 질러주면 되었지만,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코러스도 하고 노래 부르는 스타일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기에 한때 녹음할 때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노래 부르는 난이도 또한 스타일이 바뀌면서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져 녹음하기 힘들었다고. 노래의 멜로디나 높은 스타일의 코러스를 소화해야 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한다.[16]
2003년 연말에는 자신의 완전히 바뀐 스타일이 담긴 앨범 'Style' 을 발매한다. 이 중 'Indy Lady'는 미국의 마이클 잭슨 프로듀서였던 테디 라일리가 2000년 Toni Estes에게 선사한 'Independent Lady'의 판권을 구입하여 리메이크된 노래이며, 'SO CRAZY'는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프로듀서였던 Full Force가 작곡했고, 'Put Em' Up' 은 실제로 달라스 오스틴이 자신의 프로듀싱 가수였던 TLC에게 제공하려던 곡을 아무로측에 건네준 것이라고 한다. 아무로 나미에 앨범 중에 제일 낮은 판매고와 성적을 기록한 이 앨범은 그러나 팬들에게는 나름대로 호평도 받고, 이후 있었던 앨범 투어에서는 '적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콘서트' 라는 호평도 받으며 가수로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급작스러운 변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판매량은 더욱 하락했고, 2004년 3월에 발매된 싱글 'ALARM' 은 솔로 데뷔 이후 최초로 오리콘 TOP 10에 들지 못한다.
2.6. 2004-2008: 재기의 발판
아무로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기존의 팬들에게는 외면을 받지만 신규 팬을 유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전국 홀투어를 실시하면서 착실히 팬층을 다졌다. 2004년 7월 발라드 싱글 'ALL FOR YOU' 은 좋은 평을 받으면서 싱글로는 2년 5개월 여만에 10만장대를 돌파하고, 10월 싱글 'Girl Talk' 가 6년만에 데일리 1위를 차지, 2005년 앨범 'Queen of Hip-Pop' 이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조금씩 부활의 기미를 보인다.
2007년 1월에 발매한 싱글 'Baby don’t cry' 가 판매량도 15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뜻밖의 히트곡 반열에 오른다. 특히 '착신음'과 '다운로드' 차트에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며 아무로의 대표 히트곡 라인에 오르게 된다. 그 해 착신음 연말차트에서 6위에 오르고, 꾸준한 롱런 끝에 2010년 대에 들어서는 다운로드, 착신음 부분 밀리언 인증까지 받는 등 큰 히트를 친다.
2007년 앨범 'PLAY' 로 완벽히 재기에 성공했다. 한동안 아무로를 '몰락' 따위의 수식어로 다루던 언론도 '드디어 시대가 아무로를 따라잡았다' 등으로 돌변, 찬사를 보냈다.
2.7. 2008-2012: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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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씩 원래의 위치로 다시 올라가던 아무로 나미에가 다시금 정상에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2008년 발매한 '60s 70s 80s' 싱글이었다.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팝 세 곡을 현대풍으로 리메이크한다는 참신한 기획에 비달사순과의 대규모 타이업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결정적으로 수록된 곡들의 퀄리티가 매우 높았다. 덕분에 9년 3개월 만에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하였으며 판매량도 30만 장을 넘겼다. 지금까지도 '60s 70s 80s'는 '양A면/트리플A면 싱글의 모범' 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60s 70s 80s' 싱글의 성공에 이어서 발매한 세 번째 베스트 앨범 'BEST FICTION'은 첫 주에만 60여만 장이 판매되었고, 그 이후로 6주 연속이나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거머쥐는 영광을 누린다. 이로서 아무로에게 화려한 제 2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2008년과 2009년에 걸친 'BEST FICTION' 아레나 투어는 추가 공연을 거듭하여 여성 솔로 아티스트 역대 최다 인원인 50만명을 동원하였다. 또한 12월 발매한 앨범 'PAST < FUTURE'는 저조한 프로모션에도 불구, 하프 밀리언을 기록하였다.
여담으로 BEST FICTION 투어부터 코무로 시절의 곡의 비중을 줄였다.
2011년에는 콜라보 베스트 앨범인 'Checkmate!'를 발표했다. 츠치야 안나, 야마시타 토모히사, 애프터스쿨, m-flo의 버발, 릴 웨인, ZEEBRA, AI 등이 참여한 호화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하프 밀리언에 가까운 판매량을 달성한다. 여담으로 콜라보 가수 후보 명단 중 애프터스쿨이 있었는데 미남이시네요의 유이가 생각나서 바로 선택했다고 한다.
화려한 부활을 거둔 이후로는 좋은 아티스트, 좋은 댄서, 좋은 엄마로서 대중들의 호감을 얻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텔레비전 음악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지만, 음반이나 잡지 모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입지를 점하고 있다. 댄스를 주 장르로 삼는 와중에서도 발라드 곡을 히트시키는 등 곡의 범위도 넓다.
다만 'PAST < FUTURE' 앨범 이후로는 곡의 질에 대한 걱정이 많이 제기 됐었다. T.Kura, nao'ymt 등 소수 작곡가들로부터만 곡을 반복적으로 공급 받았는데, 이들 작곡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 그러나 2012년을 기점으로 해외 작곡가들과 많이 작업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사라졌다.
2011년 12월에 발매한 싱글 'Sit!Stay!Wait!Down! / Love Story'에서 'Love Story'가 게츠쿠 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타이업 등 여러 호재로 피지컬과 디지털 양측에서 좋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좋은 성과를 거뒀으며, 이 노래는 2012년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또한 10년 동안 아무로 발라드 노래 중 1위였던 싱글, 'CAN YOU CELEBRATE?'를 제치고 아무로 발라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8. 2012-2017: 데뷔 20주년, 굳건한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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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주년을 맞는 2012년에는 1997년 이후 15년 만에 5대 돔 투어를 열었다.''' 이번 돔 투어의 세트리스트는 특설 사이트 및 페이스북에서의 팬 투표를 통해 결정하였다. 또한 9월 16일에는 그의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기념 라이브를 연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오키나와 공연은 제16호 태풍 산바로 인해 무산되었다. 데뷔일인 9월 16일이 아니면 의미가 없기에 아예 취소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콘서트를 예매해놓은 팬들도 충격받았지만, 오키나와행을 준비하고 있던 게스트 가수들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무로 나미에 본인도 공연 취소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리허설에 매진했던 터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실제로 후에 WOWOW에서 방영된 데뷔 2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에서 취소 발표를 한 후에 백댄서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방송에 나갔다. 게다가 이 공연에는 코무로 테츠야가 게스트로 나올 예정이었다고.
2012년 6월 27일 새 앨범 'Uncontrolled'의 발매를 전격 발표하였다. 발매 첫 주 29.2만 장이 팔려나가면서 J-POP 솔로 여가수 정상의 자리를 다시 한 번 굳혔다. 7월 23일자 차트까지 'Uncontrolled' 앨범은 3주 연속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현재까지 약 53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음반 시장 불황 가운데에서도 2007년 이후 발매한 정규 앨범 모두가 하프 밀리언을 돌파해 꾸준한 인기를 증명해주고 있다.
2013년 7월 10일 앨범 'FEEL'이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는 지금까지 작업했던 T.Kura, nao'ymt 등의 작곡가진에서 벗어나서 서구권의 여러 프로듀서로부터 곡을 받았다. 특히 Zedd로부터 곡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다. 이 앨범부터 레이블을 avex trax에서 Dimension Point로 이적했다. 이적이라지만 에이벡스 내의 서브 레이블이라서 별 의미는 없다. 아무로 나미에를 위한 페르소나 레이블[17] 에 가깝다. 판매량은 발매 첫 주 24.8만장을 팔며 앨범 차트 1위를 하였다. 비록 전작에 비해 판매량은 많이 떨어졌지만 앨범 발매텀도 비교적 짧았고, 솔로 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진 제이팝 시장에서 이 정도 판매량이면 상당히 선전한 편이었다.
'Uncontrolled' 앨범부터 가사가 All 영어인 곡들이 늘어났다.
2010년대에 들어 창법이 바뀌었는데, 생목에 가까웠던 시절이던 예전과 달리 흉성과 두성을 사용했다. 특히 2018년 마지막 투어 때 두성을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변화의 이유로는 목에 최대한 덜 무리가 가기 위함과 최근 장르가 변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콘서트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Best Fiction 투어나 PAST<FUTURE 투어에서 폐렴, 대상포진, 성대결절 등등 몸 상태가 심하게 악화된 적도 있는 만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초창기 시원시원한 고음을 좋아하는 팬으로써는 아쉽겠지만, 대신 음색이 단단해지고 라이브 안정감도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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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4일 발라드 베스트 앨범 'Ballada' 를 발매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38곡의 발라드 곡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한 후 상위 15개의 곡들과 보너스 트랙으로 'Contrail' 발라드 버전을 실었다.' CAN YOU CELEBRATE?'[18] 와 'SWEET 19 BLUES'는 보컬을 새로 녹음해 수록했고, 뮤직비디오도 새로운 버전으로 촬영해 기존의 버전과 함께 DVD에 수록되었다.
또 2014년 8월부터 12월까지 라이브 투어 「namie amuro LIVE STYLE 2014」를 개최. 연말까지 콘서트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namie amuro LIVE STYLE 2014」는 특이하게 각 공연장마다 한 곡씩 'Ballada' 앨범 수록곡을 무작위로 가창했다. 라이브 DVD에는 무작위로 공연한 곡들의 영상을 수록해서 'Ballada' 앨범 수록곡 전체가 DVD에 수록되었다.
2008년부터 코다 쿠미의 하락세, 2012년을 기점으로 하마사키 아유미까지 하락세를 겪은 후, 2014년 토탈 세일즈 10위권 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 솔로 가수[19] 이다. 이제 아이돌 빼고는 살아남는 가수가 드물어진[20] 음악 시장에서 아직까지 버티면서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이를 보고 항간에서는 '''"후계자가 나오지 않으니까 본인이 직접 부활했다."'''는 드립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단순한 드립이 아니다.''' 현재 파워풀한 댄스 음악과 알파걸 스타일로 인기를 얻은 솔로 여가수가 전무하다. 한 때 이타노 토모미가 데뷔를 하면서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그녀도 그룹 출신 아이돌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급격하게 하락세를 타면서 '솔로 댄스 여가수'의 계보가 사실상 끊겨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들어서 소속사를 라이징 프로덕션[21] 에서 에이벡스 내 아무로만의 페르소나 레이블로 만들어두었던 Dimension Point로 이적. 작년부터 소속사와의 갈등과 관련된 루머가 돌았던 터라 팬들에게 많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에이벡스로의 완전한 이적이 아니고 에이벡스 내 본인 레이블로의 이적이라 일본 연예계 쪽에선 꽤 이례적인 경우가 되었다. 이후 소리소문 없이 한 번 더 소속사를 stella88[22] 으로 옮겼다. 다만 에이벡스와의 음반 레이블 관계는 여전히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6월 10일 새 앨범 '_genic' 의 발매. 앨범의 컨셉은 '리바이벌'로 80년대, 90년대풍 사운드와 EDM 트렌드를 접목시킨 팝 앨범이다. 특히 '_genic'에 수록된 'Golden Touch'의 경우는 스마트폰 화면처럼 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봐야 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을 끌었다. 역시나 아무로답게 TV 프로모는 전무하며 투어만 돌았다. 앨범 발매와 함께 팬들에게 희망하는 콜라보 아티스트를 물어보는 특별 사이트를 개설, 연말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Checkmate!' 앨범 이후로도 TLC, 히라이 켄, SHOW-YA, 크리스탈 케이 등 다양한 가수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던 만큼 차기에 발매할 두 번째 콜라보 앨범을 위한 설문조사로 보인다.[23]
2016년 여름 새 싱글, 'Hero'가 NHK의 리우 올림픽 방송 테마곡으로 타이업되면서 음원과 CD 매출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가을에는 데스노트: 더 뉴 월드의 테마곡 새 싱글, 'Dear Diary / Fighter'가 타이업되면서 다시 한 번 팬들을 찾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아무로는 싱글보다 앨범 활동에 치중했었는데, 2016년에는 오랜만에 한 해 동안 3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어김없이 하반기에는 홀 투어를 개최, 88회라는 역대 최다 공연 횟수를 또 다시 갱신했다. 후에 이 투어는 1회가 취소되고 13회가 추가되어 '''총 100회 공연이 확정'''되었으며 투어는 무사히 마쳤다. 후에 은퇴 발표 후 인터뷰에 따르면 이 투어는 전국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의미로 개최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무후무한 100회 투어의 영상을 담은 'namie amuro LIVE STYLE 2016-2017' DVD는 5월 3일 발매되었다.
2.9. 2017-2018: 데뷔 25주년, 그리고 은퇴
2017년은 데뷔 25주년이라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5월 31일에 니혼 TV의 수요일 드라마 사와지리 에리카 주연의 '어머니가 된다'의 주제가, 'Just You and I'를 발매했다. 행복감이 넘치는 미디엄 템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5월 28일 기준으로 리퀘스트 J-POP HOT30에서 1위를 획득하며 발매 전부터 선두에 올랐다.
2012년 태풍으로 취소된 오키나와 데뷔 기념 공연을 데뷔 25주년을 맞는 2017년 9월 16일, 17일 이틀에 걸쳐 개최하였다. 공연일 즈음에 일본에 태풍이 왔지만, 다행히도 16일 이전에 오키나와를 통과했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2018년 9월 16일 자로 팬메일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다음은 아무로 나미에가 팬클럽에 보낸 메일 전문.
[image]ファンの皆様へ
팬 여러분께
ファンの皆様、
いつも応援して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팬 여러분,
언제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先日9月16日に無事、デビュー25周年を迎えることができました。
皆さんの応援、支えがあって25周年目をスタートできた事に
心から感謝しております。
얼마전인 9월 16일 무사히 데뷔 25주년을 맞이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응원, 뒷받침으로 25주년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습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今日は、私が長年心に思い、
この25周年という節目の年に決意した事を書きたいと思います。
오늘은 제가 오랜세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25주년 이라는 인생의 한 고비에 결의한 바를 쓰려고 합니다.
「わたくし安室奈美恵は、
2018年9月16日をもって引退することを決意致しましたので、
この場を借りてファンの皆様にご報告させていただきます。」
"저 아무로 나미에는
2018년 9월 16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을 결의하였기에
이 자리를 빌어 팬 여러분께 보고 드립니다"
引退までのこの1年
アルバムやコンサート、
最後にできる限りの事を精一杯し、
有意義な1年に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은퇴하기까지 1년간
앨범과 콘서트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모든것에 최대한 힘을내어
유의미한 1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そして、私らしく
2018年9月16日を迎えたいと思います。
그리하여 저 자신다운
2018년 9월 16일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皆様、
安室奈美恵の最後の1年を、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致します。
여러분,
아무로 나미에의 마지막 1년을
부디 잘 부탁 드립니다.
安室奈美恵
아무로 나미에
11월 8일 데뷔 곡부터 최신 곡까지 궤적을 수록한 올타임 베스트 앨범, 'Finally'를 발매했다. 발매 첫 주에 판매량이 밀리언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이는 2004년 우타다 히카루의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1' 이후 무려 13년만에 초동 밀리언 돌파이다. 이것으로 아무로는 일본에서 10대, 20대, 30대, 40대에 걸쳐 밀리언 앨범을 보유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되었다.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밀리언 판매고를 기록한 것도 미스터 칠드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발매 2주차에 2017년 오리콘 연간 앨범차트 1위를 확정지었다. 앨범차트 연간 1위는 아무로 커리어 사상 최초. 발매 9주차에 'SWEET 19 BLUES' 이후 처음으로 200만장을 돌파했다.
2018년 2월부터 마지막 투어, namie amuro Final Tour 2018 ~Finally~ 를 개최하기로 결정. 전국 5대 돔을 돌고, 추가로 아시아(중국과 대만)에서도 공연했다. 2012년 돔투어 때와 마찬가지로 세트리스트는 팬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당시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번 투어는 투표 대상이 그동안 발표해온 226개 전곡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일본에서 아무로의 현역 은퇴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었는데, 일본의 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는[24]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해서 아쉽다'는 말을 직접 전할 정도였다. 이 외에 그 동안 팬임을 자처했던 동료 연예인들도 각자 자신의 심경을 SNS를 통해 밝혔다. 언론에서는 ''''아무로스''''라는 말을 써가며 아무로의 은퇴 행보를 연일 주시하는 중.
여담으로 아무로가 은퇴 선언을 히자 코무로가 섭섭하다고 트윗을 남겼다.
2017년 12월 31일, 마지막으로 홍백가합전에 출전했다. 최근 TV출연이 전무했던 아무로의 7년만의 TV 출연이다.[25] 홍조나 백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 기준 형식으로 시부야 NHK 홀이 아닌 외부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를 펼쳤다. 가창곡은 'Hero'. 노래 마지막에 본인도 감정에 북받쳤는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5월 23일, 오키나와현으로부터 가수 활동 25주년을 축하한다는 감사패를 받았다. 링크.
2018년 6월 3일, 아무로 나미에의 마지막 투어 namie amuro Final Tour 2018 ~Finally~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총 관객 80만명, 일본에서만 7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일본 솔로 아티스트 최대 관객 동원 기록을 갱신하였다. 평소 콘서트에서 MC를 하지 않는 아무로가 이번 투어에서는 앵콜 무대 뒤에 MC[26] 를 하였다. 투어 종료와 동시에 오키나와 데뷔 기념 공연과 마지막 5대 돔 투어를 영상화한 namie amuro Final Tour 2018 ~Finally~를 8월 29일에 발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약 개시 1주일만에 주문량이 50만장을 돌파하면서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2018년 9월 15일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2019년 6월 16일 올타임 베스트 앨범, 'Finally'가 발매 2년만에 디지털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애플 뮤직에선 'Body Feels EXIT' 이후 발표한 전곡을 독점 스트리밍 서비스한다.[27] 2020년 기준 애플 독점 계약 기간이 끝났는지 유튜브 뮤직에서도 디스코그라피 전곡 감상이 가능하다.
3. 해외 인기
J-POP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아시아 음악 시장에서 유일하게 탑스타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일본 출신의 여성 솔로 가수이며, 특히 중화권에서는 1990년대부터 줄곧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공연 규모도 쭉 아레나 급 이상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관객 동원력도 매우 높았고, 앨범 발매마다 해당 국가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2010년대 부터는 콘서트에 in ASIA라는 부제를 붙이고 아시아 여러 국가를 방문해서 투어를 하고 있는데, 현지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규모라 부풀릴 여지가 없는 수준이다. 일본에서 이 정도로 해외 투어가 가능한 가수는 매우 손꼽히는 수준이고, 특히 여성 솔로 가수 중에서는 하마사키 아유미 정도를 빼면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28] 남자 중에서는 아라시 정도가 아레나 공연을 하기는 했지만, 이 쪽은 아이돌 그룹이라 사실상 여자 가수 중에서는 상기된 두 가수 정도를 빼면 중화권에서 아레나급 공연이 가능한 가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홍콩, 대만에서는 사실상 현지 탑스타 취급. 매 앨범 발매마다 순위권 안에 꾸준히 들고 있으며, 보통 아시아 차트로 한정된 성적을 보도하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현지 가수들과 겨루어서 나온 성적을 공표하는 몇 안 되는 가수이다. 링크. 대만에서는 전성기 때부터 꾸준히 방문해 타이페이 아레나 급의 공연을 수시로 여는 등 톱스타 대우를 받고 있다.[29] 2018년도 대만에서 개최한 Finally Tour 공연은 표를 개시한 지 3분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입국 당시 500여 명의 팬이 공항에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열렸던 Finally Tour는 당시 객석 가격이 2,080 HKD였는데(한화 약 31만원 정도), 이는 역대 홍콩에서 공연을 한 일본 가수들 중 최고 티켓가격이라고 한다. 링크.
이 쪽 시장은 전통적으로 일본 가수들이 강세를 보이던 시장이었음에도 201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 가수들에 의해 차트가 점령되면서 일본 가수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졌는데, 그 와중에 자신만의 브랜드 파워를 보여줬던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하나이다.
2014년에는 중화권 탑스타인 채의림과 콜라보 송을 발표하였는데, 뮤직비디오도 노래도 아주 멋있어서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직접 광동어로 녹음하기도 했다. 채의림 측에서 먼저 제의를 한 걸로 알려졌는데, 중화권에서 아무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의 관계는 이후로도 쭉 이어져서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공연에도 초청되어 함께 무대를 가지기도 하였다.
3.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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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가요 제창 거부 당시의 사진.'''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한 유일한 일본 가수'라고 알려져서 당시 한국 팬들과 다른 J-POP 팬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기미가요 제창 거부를 한 가수로는 하마사키 아유미도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유독 한국에서만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제창을 거부했다기 보다는 기미가요의 가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고, 가장 확실한 근거이기는 하다. 후의 인터뷰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한 물음에 "가사를 몰랐다. 오키나와현에서는 기미가요를 안 가르치는 학교들이 많다. 나도 그 중 하나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해명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기미가요가 일본의 국가(國歌)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일본 가수로서는 현명한 처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같은 오키나와현 출신인 각트는 기미가요를 부른 적이 있고[30] , 기미가요가 현 일본 국가인 만큼 정말 오키나와 출신이라서 모르는 건지는 불명. 진실은 아무로 나미에만이 알고 있을 듯하다.[31] 그리고 가수가 아닌 배우 중에서도 역시 오키나와현 출신인 나카마 유키에는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범 'PAST < FUTURE' 의 자켓이 표절 의혹으로 한일 양국에 화제가 되었다. 원본 사진 작가가 한국계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일본 네티즌들과 한국 아무로 팬들은 충격을 먹었다고 하며, 한국 인터넷 뉴스에도 실린 적이 있다.
2004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일본 가수로는 최초로 3일 연속으로 한국에서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32] , 이 공연은 SBS를 통해 방송되었다. # 이 콘서트에서 수줍게 한국어를 시전하기도 하였다. 종이를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일본어로 얘기하기도 하고(...) 마지막 곡이던 'Never End'의 2절은 한국어로 개사해서 불렀다.[33] 팬들의 반응도 뜨겁고 비와의 듀엣 등도 진행되어 나름 좋았지만, 콘서트 이후 대금 지급[34] 에 잡음이 있었다고 하며, 이 이후 한국 단독 공연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다만 7월에 열린 MTV Buzz Asia Concert In Korea 2004에서 다시 한국을 찾아 'Put'em up', 'All for you', "Uh Uh..." 등 4곡을 열창했다. 현장에서 신화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팬들이 와주었고 반응도 좋았다. 이게 2015년 전까지의 마지막 공식 한국 방문. #
사실 2008년에 아시아 공연인 'PLAY MORE!!'를 일환으로 일산 킨텍스에서 다시 한 번 내한 공연을 기획했지만, 협상 최종 단계에서 한국 주최사의 거절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한다.[35] 현재로선 2004년의 대금 미지급 사건 때문에 내한을 못한다기 보다는 일본 가수를 초청할 마땅한 기획사가 현대카드를 제외하면 없다는 점과 J-POP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 때문에 내한 공연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7월 아무로가 광고하는 코카콜라 CF[36] 가 한국에서도 방영되기 시작하며 팬들에게 놀람+기쁨을 선사 중. 슈퍼스타K2의 공식 스폰서가 코카콜라라서 슈퍼스타 K2 방송 전 광고에 만날 얼굴을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저 사람 누구지?'''" 하고 검색하게 된 건 정작 슈퍼스타 K2 결선 TOP 2 마지막 날 허각이 언급해서 검색 순위에 올랐던 게 전부였다. 물론 J-POP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앨범이나 라이브 DVD는 그나마 라이센스가 잘 돼서 나오는 편이었지만, 2015년 소속사 이적 이후 발매가 되질 않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와 아무로 소속사간의 계약상의 문제가 생겼는지, 음원도 발매가 되지 않고 있다.[37] 그러다가 마지막 베스트 앨범인 'Finally'는 일부나마 라이센스 발매가 확정되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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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서울특별시 중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2015 샤넬 크루즈 컬렉션에 참석하였다. 2004년 이후로 11년만에 공식적으로 내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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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은퇴 선언한 이후 한국 팬카페측에서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의 SNS에 내한 요청 댓글을 달았고, 정태영 부회장이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하였다. 해당 댓글, 정태영 부회장의 답변.
2018년 6월 1일 정오에 갑자기 올타임 베스트 앨범 'Finally'에 수록된 'Body Feels Exit' 재녹음 버전 한 곡만이 국내 음원 사이트에 발매되었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둘 다 가능하다. # 해외 음원 사이트에서는 모든 앨범 전부 구매 가능하다.
4. 아무로를 존경하거나 팬이라고 알려진 인물들
- 코다 쿠미 - 93년 롯데 CM 송으로 '愛してマスカット'가 흐를 당시 때부터 귀엽다고 생각해서 CD를 구입했고, 중학교 재학 당시 아무라 열풍으로 인해 아무로의 패션을 따라하기도 했다. 이후 에이벡스의 오디션을 보게 된 이유도 동경했던 아무로 나미에의 레이블이었기 때문이었고, 코다 본인이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아무로 나미에를 동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사와지리 에리카 - 데뷔 초 때부터 아무로 나미에의 팬이라고 밝힌 바있다. 결국 아무로 나미에의 노래가 타이업 된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간접적으로 나마 인연이 닿게 되었다.
- 이타노 토모미 - 아무로 나미에를 존경하고 있다고 밝혔다.
- 보아 - 아무로의 은퇴 후,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리스펙을 표했다.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라이브를 가고 싶어 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가질 못했다고. 직접 인스타그램에 아쉬움을 표했다.
- 고토 마키 - 연예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아무로 나미에만큼은 동경했기에 연예계에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오디션 때도 'I HAVE NEVER SEEN'을 불렀다.
- 이모토 아야코 -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개그우먼이자 자타공인 아무로 나미에의 광팬. 광팬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하나의 밈으로서 유명하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 중 아무로의 은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
- 김희선 - 일본 산케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로 나미에의 팬임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김희선은 90년대 당시 스타일링에 있어서 아무로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 송혜교 - 학생 시절 당시 다이어리에 아무로 나미에의 사진으로 한 페이지를 꽉 붙여놓은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 미우라 료스케 - 아예 연예계 데뷔하려 한 이유가 아무로 나미에를 존경해서이다. 오디션 때도 그녀의 곡을 부르고 합격했다고.
- 백지영 - 일본 진출을 했을 시기에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학창 시절에 아무로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또, 아무로의 콘서트에 갔다는 지인의 트위터 글에 본인도 가고 싶었다는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 박나래 - 아무로 나미에의 외모를 좋아해서 성형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tvN 예능 택시에서 밝혔다.
- 나카이 마사히로 - 아무로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앗! 아무로짱이다!' 하고 놀랄 정도이며, 심지어 팬이 아무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며 답을 요구했을 때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예인으로써 좋아하는 거라는 답을 한 적도 있다.
- 마츠모토 준 - 이상형으로 아무로를 언급한 적이 있다.
- 야스다 쇼타 - 본인이 '아무라'라 이야기한 적이 있다.
- 후지모토 미키 -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꼽은 적이 있으며, 스태프가 만남을 주선했을 때 긴장해서 아무 이야기도 못했다고 한다.
- 이이다 카오리 - 아무로를 목표로 하였으며, 오디션 때 'Body Feels Exit'를 불렀다.
- 요시자와 히토미 - 오디션에서 'I HAVE NEVER SEEN'을 불렀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아무로이며, 처음으로 산 CD도 아무로 것이라 한다. 좋아했던 노래로 'Don't wanna cry'를 꼽았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으로 버진로드를 이야기했다. 참고로 버진로드는 아무로의 'CAN YOU CELEBRATE?'가 주제가로 나온 적이 있다.
- 호시노 아키 - 인터뷰에서 직접 만나서 기쁘다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진 촬영을 할 때도 아무로의 DVD를 보며 헤어나 포즈를 의식하여 촬영했다고 한다. 실제로 헤이헤이헤이 방송에서 만났을 때 서로 귀엽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오오츠카 아이 - 'CAN YOU CELEBRATE?'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미용실에서 똑같이 머리를 잘라달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미우 - 잡지 '논노'의 모델로 노래방 18번이 'SO CRAZY'라고 한다.
- AI - SUITE CHIC으로 콜라보하게 되었을 때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츠치야 안나까지 더해 셋이서 'Wonder Woman'을 부르거나, 아무로 피처링으로 'FAKE'라는 싱글을 내기도 했다.
- MAI - SweetS의 멤버로 처음으로 간 라이브가 아무로의 것이라고.
- 헨미 에미리 - 신인 시절 아무로랑 함께 출연했을 때가 16살인데 여전히 멋있다며, 카리스마 그 자체라 표현하기도 했다.
- 카와베 치에코 - 오디션으로 'a walk in the park'를 불렀으며, 아무로를 직접 만난 날은 블로그에 관련 글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아무로랑 만난다고 해서 미용실도 갔다 왔다고.
- 리아 디존 - 외국계 그라비아 모델로, 프로모션용 비디오 중 'I WILL'을 일본어로 부른 영상이 있다.
- 샤쿠 유미코 - 아무로가 주제가를 맡은 드라마 비밀의 화원의 여주인공으로, 아무로가 주제가를 맡게 된다는 소리에 기뻐했다고 한다.
- 나카시마 미카 - 에세이에서 아무로를 동경해 머리카락을 길렀다 이야기한 적이 있다.
5. 홍백가합전 출전 경력
6. 디스코그래피
6.1. 솔로
6.1.1. 싱글
6.1.2. 디지털 싱글
6.1.3. 정규 앨범
6.1.4. 베스트 앨범
6.1.5. 영상물
6.2. 슈퍼 몽키즈(SUPER MONKEY'S)
6.2.1. 싱글
6.3. 스윗칙(SUITE CHIC)
6.3.1. 싱글
6.3.2. 앨범
7. 수상
8. 라이브
9. 어록
'''"미디어에 교태를 팔아 인기를 회복하는 것은 절대 싫다. 1부터 치고 올라갈 것이다.”'''
'''“지금 밑바닥에서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으니 조금이나 편하게 되었다."'''
'''“당장 결과가 잘 따라오지 않더라도 다음에 뒤집기를 하면 된다.”'''
"세간은 아들을 버린 최악의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론도 모두 빠짐 없이 그렇게 썼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 없다. 나는 아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노래를 계속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정한 길을 계속 걸어갈 뿐. 앞으로 얼마나 많은 팬들이 기다려주실지 모른다. 아직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찾는 중이지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
ㅡ 아무로의 인기가 하락하던 시절 언론에서 맥도날드에서 아들과 햄버거 먹는 아무로를 보고 패스트푸드를 먹이는 엄마라고 비난. 그에 관한 심경을 대변한 인터뷰 中
'''“어머니의 죽음은 나를 지옥으로 떠밀었다. 아무것도 못 했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로써 아들을 위해 힘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살아가는 보람이다.”'''
ㅡ 아무로의 어머니의 피살 사건 후 인터뷰 中
"일을 하면서 웃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음이 싫은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그건 사생활이고, 일을 하는 장소에서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던 일. 그것은 당신과 데뷔 15주년을 함께 맞이하는 것. 그리고 기념일 무대에서 기쁨을 함께 맛보는 일이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닿기를 바라며 노래합니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담아서"'''
ㅡ 15주년 자신의 고향 오키나와 콘서트 팜플렛의 마지막 장 中
'''"노래를 나보다 잘하는 가수가 굉장히 많다. 춤도 나보다 잘 추는 가수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노래와 춤을 동시에 해내는 가수로써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제 라이벌은 '매년 데뷔하는 신인 가수분들'입니다. 그 참신함과 강한 기세를 보고 '나는 거기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ㅡ 데뷔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인터뷰 中
“처음 히트 곡이 나왔을 때 혼란스러웠습니다... 히트 곡이 나오고 주위의 반응이 달라졌을 때 무서운 곳에 취직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떠오르면 가라앉는, 그 두 번째 단계를 처음 경험했을 때는 무서웠네요.”
'''"완성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ㅡ SNS는 왜 하지 않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색깔은 어떠한 색이든 스며들지 않는 검정색과 어떠한 색이든 스며드는 하얀색"
“춤추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가수 아무로 나미에로 빛나는 것은 응원하는 팬들에 대한 보답입니다."
"여러분 안의 아무로 나미에를 자유롭게 상상해주시길 바란다. 어떤 상상도 부정도 긍정도 안 하니까"
10. 사건사고
10.1. 2009년 PAST < FUTURE 앨범 재킷 표절
아무로 나미에 커리어의 거의 유일한 오점.
2009년 11월 발표한 정규 앨범 <PAST < FUTURE>의 재킷이 같은 해 3월 한국의 한 패션잡지 화보로 수록된 사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단순히 콘셉트가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사진을 찢고 있는 모델의 표정, 사진이 찢어진 각도, 사진을 잡고 있는 모델의 손 각도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 흡사하여 표절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에 한국에서는 유력 일간지 동아일보에서 보도하는 등 파장이 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이조우먼 등 일부 가십지에 보도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논란이 되었을 뿐이다. 일본 내 아무로의 팬들 중 일부 극성 팬 또는 일부 혐한들은 "한국이 아무로 앨범 재킷을 무단 유출한 후 베낀 거다"라는 식으로 어거지를 부리며 발광을 했다.
아무로 본인이나 레이블인 에이벡스 측에서는 이 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즉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는 사이에 표절 건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혔다. 그래서 한국의 아무로 팬들도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후 스포티파이에서 서비스되는 해당 앨범의 앨범 아트는 별개의 새로운 이미지로 대체되었음을 볼 때, 아무로 본인과 레이블 측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11. 여담
- 게이 팬층이 굉장히 두터운 가수로도 유명한데, 일본 게이 클럽 등지에서는 정기적으로 ‘아무로 나이트’라는 이벤트를 열며, 아예 아무로의 노래로만 쭉 클럽송 리스트를 달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관련 코스프레나 커버 무대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아무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관련 행사를 직접 관람하러 간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하였다. 재밌는 점은 동년배이자 친구였던 그룹 MAX 역시 비슷한 게이 디바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다. 참고로 하마사키 아유미, 코다 쿠미 등이 비슷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발표 기준 3,239만장으로 역대 가수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 솔로 여가수 중에서는 4위이다.
- 2002년부터 왼쪽 팔에 새긴 문신이 있었다.[49] 문신을 지운 이유는 아들이 지우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일본은 문신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다). 상단에는 어머니에 관련된 문신이 있었고, 하단에는 아들의 이름인 HARUTO가 새겨져 있었다. 오른팔에는 자신의 생년월일이 적힌 바코드 문신이 있었고, 오른팔 안쪽에 'Love Peace World'라고 새롭게 새겼었다. 하단은 어머니에 관련된 문신 내용.
>1950년 6월 30일 (어머니의 생년월일)
>
>my mother's love live with me
>어머니의 사랑은 나와 함께 살아있다
>
>Eternally in my heart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
>R.I.P
>rest in peace
>
>MAR.17 in 1999
>1999년 3월 17일 (어머니의 기일)
- 1997년을 전후로 치아 교정을 했다. 97년부터 서서히 현재와 같은 갸름한 얼굴형으로 자리 잡았다.
- 가냘픈 체구와는 달리 굉장한 대식가이다.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쉬는 날에는 집에서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뒹굴뒹굴거리거나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 일례로 한 팬이 뉴욕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아무로를 보았는데, 혼자서 햄버거 세트 두 개는 거뜬히 먹는 아무로를 보며 놀랐다고 한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일본식 불고기(야키니쿠) 등 고기류이다. 반대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과일이라고.
- 2006년에 만화책을 태어나서 처음 접했다고 한다. 첫 만화는 꽃보다 남자. 그 뒤로는 쉬는 날엔 주로 집에서 만화책을 본다. 음악 방송에서 나와 말하길, 만화책을 접한 이후로 하루도 안 읽은 날이 없었다고. 또 너무 열중해서 읽다 보니 손목이 아파 스트레칭을 하면서까지 읽었다고 한다. SMAP 멤버들에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 반신욕을 하면서 주로 본인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콧노래를 5:5 비율로 섞어서 부른다고.
- 그리고 우타다 히카루와 마찬가지로 상술을 잘 안 부리고, 텔레비전 출연이 별로 없는 가수에 속한다. 싱글 'Break It / Get Myself Back'을 전후로는 TV 프로모션을 아예 돌지 않는 편. 그래도 DVD반을 내고 자켓 사양이 다르지만, 타 에이벡스 소속 가수들처럼 심하게 부리지는 않는다.
- 텔레비전 출연이 없을 뿐 아니라, 최근 공연에서는 MC(멘트)가 없다. 빡빡한 공연 스케줄도 스케줄이지만, 20~30여곡을 MC 없이 논스톱으로 소화하는 아무로의 체력 관리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부분.
- 무대에서 파워풀 넘치는 모습과 다르게 실제로는 매우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고 한다. 무대 뒤편에 있는 사람이 아무로. 실제로 아라시가 장난을 치자 쑥스러워 고개를 못 들고 있다. #
- 일본 여성의 평균 신장에 가까워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158cm), 얼굴도 사기적으로 작고 비율이 좋아서 작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힐을 벗고도 8등신에 가깝다. 자켓만 보면 158cm라는 걸 못 믿을 정도. 2004년에 아무로를 처음 본 키아누 리브스는 얼굴 크기에 너무 놀란 나머지 계속 쳐다봤다고. 아무로가 2005년쯤에 혼자서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모습이 파파라치로 찍혔는데 한 마디로 빛이 난다. #
- 2005년에는 아들 하루토의 친권을 되찾으면서 하루토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 아들이 2017년 11월 27일 현재 대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몸매는 여전. 어느 날 아무로가 젊고 건장한 남성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되었는데, 그 젊고 건장한 남성이 사실 하루토였다고. # 화보에선 고딩처럼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일례로 팬북에 예전에 찍은 앨범 자켓들과 동일한 헤어와 포즈로 다시 찍은 것이 있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어려 보인다. 그나마 최근에는 이전에 비하면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 의상이나 노래 등도 이전에 비하면 성숙하고 차분해보인다. 그러나 팬들은 이렇게 아름답게 세월을 타는 모습도 지지하고 있다.
-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만큼 팬들 사이에 떠도는 에피소드가 많다. #
- 2002년에는 V6의 미야케 켄과의 스캔들이 터졌으며, 쟈니스 사무소의 모종의 압력으로 인해 헤어졌다. 2010년에는 일본 장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런던하츠의 메인 진행자 타무라 아츠시와 스캔들이 터졌고 교제를 정식 인정하였다. 그러나 2010년 8월 초에 헤어졌다.[50]
- 최근에 TV 출연이 없어서 그렇지 예능감은 상당하다. 헤이헤이헤이나 우타방에 출연한 아무로의 영상을 보면 그녀의 입담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브에서도 MC를 하지 않는, 숨겨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솔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홍백가합전에는 2003년 이후 출장하지 않는다. 사퇴인지 낙선인지 정확히 밝혀진 건 없다. 2003년 NHK 로비 문제로 2004년 홍백 출연진 섭외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아무로 인기가 하락한 시점이므로 낙선했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아무로 소속사 쪽에서 소홀히 했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아무로 소속사 사장이 탈세로 재판, 실형을 살았기 때문에, 소속사 사정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친딸 같이 아꼈던 사장의 부재와 소속사의 위기, 그리고 인기 하락이 맞물리면서 NHK 쪽에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 2008년 재기에 성공하면서 공개적으로 홍백 섭외가 나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방송 출연을 줄이고 콘서트에 집중했으며, 연말이나 늦은 시간에는 아들과의 시간을 위해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는 소리도 있었기에 섭외는 실패로 돌아갔다. 2016년에도 싱글 'Hero'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테마곡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12년만에 홍백가합전 출전 섭외가 들어왔으나[51] , 출연은 성사되지 않았다.
- 2003년 홍백무대에서 문신을 가린 것으로 NHK와의 불화를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신을 가린 것은 2003년 홍백 무대가 처음이 아니다. 2002년에 문신을 한 이후, NHK 음악방송 POP JAM과 홍백에서 문신을 그대로 방송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8일 POPJAM 10주년 특방(저녁 7시~9시)에서 문신을 의상으로 가리고 나온다. 이것으로 볼 때 NHK가 무조건적으로 문신을 불허한 것은 아니라고 추측된다. 한 달 정도의 사이에 문신에 대한 취급이 달라진 걸 보면, 시청자 항의가 왔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전세대가 함께 보는 홍백에서 문신이 나왔으니, 심야에 방송되는 POP JAM이랑은 반응이 달랐을 것. 이후에도 POP JAM 같은 심야 방송에서는 문신을 가리지 않고 나왔으며, 황금시간대 저녁시간 특방이나 홍백에서만 문신을 가렸다. 이러한 일들이 팬이나 아무로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문신을 가린 게 홍백이 처음이 아니다. 이후에도 아무로는 NHK에서 드라마랑 올림픽 주제가를 맡으며, 2007년 POP JAM 마지막회까지 출연한 걸 보면 불화는 없어보인다.
- 투어 때는 핸드 마이크와 이어 마이크 둘 다 썼는데, PAST < FUTURE 투어부터 핸드 마이크만 쓰고 있다. 아무로 본인이 이어 마이크는 춤 출 때 빠져서 싫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 듯.
- 비슷한 예로 2001년 break the rules 투어부터 양갈래 머리나 묶음 머리 같은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데, 전성기 때 격렬한 춤을 추면서 머리카락이 시야를 방해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할 때에는 평상시처럼 머리를 풀고 나오는 편.
- 오키나와 출신 뮤지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오키나와 음악의 뮤지션으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아무로 나미에의 음악은 오키나와의 전통 음악이나, 미군을 대상으로 한 공연으로 발달한 오키나와 록과는 구분되기 때문. 그래도 간혹 오키나와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 같이 작업한 경험도 있는 모양.
- 초력전대 오레인저 45화에 그녀가 부른 'Body Feels EXIT'가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바라미크론에 의해 무력화된 2대 로봇이 댄스 추듯 기능부전을 일으킬 때 나온다는 시리어스한 개그 포인트.
- 2014년 경에는 프로듀서인 니시 히게시로와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면서 거리를 걷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사실 아무로의 흡연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사실로, 이미 2005년 경에는 한국 팬들도 아무로의 흡연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 그동안 아무로가 3년동안 모친상, 하락세, 이혼 등을 겪으면서 가수 생활 은퇴를 고려할 만큼의 힘들었던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흡연을 시작했을 거라며 이해하는 반응. 사실상 이 시기에는 아무로가 소속사를 독립하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가깝다. 다만 요근래에 목소리가 허스키해진 것이 담배 때문이라는 추측으로 팬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 2017년 새해 벽초부터 프라이데이에 의해서 50대 프로듀서 니시 히게시로와 일주일에 3번가량 단 둘이 식사를 한 뒤에 아파트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히는 등, 불륜설이 일어 화제가 되고 있다. 불륜 의혹은 사실 2014년 사무소 독립할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의혹이었지만 이번에 또 다시 떡밥이 된 것. 니시 히게시로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며, 당사자 2명은 이에 대해 부정했다. 유독 소속사 분쟁이 있고 난 후로부터 이런 잡음이 많이 들리는 듯. 팬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자기 관리가 엄청난 워너비 스타로 유명하다. 이미 4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와 몸매 때문에 뷰티 관련 일웹에서는 항상 화제의 인물이다. 오히려 스타일링 때문에 1990년대보다 지금이 더 어려보일 때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언론을 통해 공개된 그녀의 뷰티 팁은 다음과 같다.
각선미와 엉덩이 라인을 위해 항상 미니사이즈의 스타킹을 입고 댄스 레슨과 운동을 병행한다.
임신 후에는 복근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해 예전의 몸매를 되찾았다.
다이어트 비디오 중 가장 힘들기로 이름 난 부트캠프 비디오를 보며 운동.
규칙적인 식단을 지키고, 저탄수화물 위주로. 부족한 영양소는 영양제를 통해 섭취.
효소음료와 메밀차를 즐겨 마심.
다이어트에 돌입할 때는 양배추 다이어트나 귤푸딩(한천) 다이어트를 함.
쌀 함유량이 높은 청주를 넣은 물에 반신욕을 매일 한 시간씩. 입욕제는 PHYTOMER 사의 OLIGOMER 제품.
두유비누를 세안과 샤워할 때 이용.
'송진팩'을 이용해 피부 관리를 함.
충분한 수면 시간을 통해 피로를 품.
- 자넷 잭슨을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아무로의 프로듀서였던 코무로 테츠야가 직접 밝힌 사실로, 프로듀싱 과정에서 자넷 잭슨의 성공 사례를 참조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아무로 본인도 자넷 잭슨의 광팬이라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으며, 자넷 잭슨을 동경해서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 올타임 베스트 앨범 'Finally'가 발매 2달만에 200만 장을 돌파했다. 앨범 더블 밀리언 달성은 히라이 켄 이후 11년 9개월만의 쾌거이자 여성 솔로로는 우타다 히카루 이후 13년 9개월만의 쾌거다.
-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뮤즈였던 존재다. 이효리가 한때 아무로 나미에를 그대로 베낀 수준의 스타일링을 했던 건 유명한 사례고,[52] 김희선 같은 배우들도 아무로의 시그니처격인 태닝한 피부+브라운색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소위 갸루 스타일)를 따라했었다. 송혜교가 고3 시절 방송에서 찍은 셀프 카메라를 보면, 다이어리에 아무로의 사진으로 잔뜩 꾸민 페이지가 등장한다. 배두나도 고등학생 때 아무로의 광팬이어서, 역시 다이어리를 아무로의 사진으로 꾸민 것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아무로의 사진 뒷장에 써줬다고 한다. 또한 보아도 아무로 나미에가 은퇴하자 SNS에 아무로 나미에가 자신의 우상이었으며,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 2018년 9월 은퇴에 맞춰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운항하는 일본 트랜스오션항공에서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특별 항공기 Amuro Jet를 9월 하순까지 운행했다. #
- 하마사키 아유미가 2019년 미혼으로 아들을 출산하면서, 일본의 헤이세이 시대를 풍미한 3대 디바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하마사키 아유미가 모두 외아들 가진 싱글맘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중 가장 먼저 싱글맘이 된 사람은 아무로 나미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