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야마 미호
1. 소개
일본의 가수 및 배우. 애칭은 '''미포링'''.[2]
2. 상세
한 때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여배우 중 하나.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1980년대엔 아사카 유이, 쿠도 시즈카, 미나미노 요코 등과 함께 아이돌 사대천왕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얻은 가수 출신이다. 아사카 유이와 미나미노 요코는 남성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 쿠도 시즈카는 여성팬들이 오히려 더 많았고, 나카야마 미호는 남녀 모두 골고루 좋아했다.
드라마 쪽의 기록을 보면 최고 황금시간대인 게츠구 드라마 주연 7회로 여배우 중에서는 역대 최고.[3] 또한 시대적으로 보면 아이돌 시절인 10대(80년대), 여배우로서의 전성기였던 20대(90년대), 결혼 직전인 30대(2000년대) 모두 주연으로서 최소 한 번은 평균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유일한 여배우이다.
가수 쪽의 기록을 본다면 싱글과 정규 앨범을 포함한 총 음반 판매량은 1,700만장 이상. 역대 여성 솔로 가수 중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1980년대에 데뷔한 여가수들 중에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다음이다. 그러나 가창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하라주쿠에서 캐스팅되었는데 데뷔 초엔 굉장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얼굴이어서[4] 캐스팅을 한 사람의 안목이 놀랍달까 모래 속의 원석을 발견해냈다고 할까(…)[5] 아무튼 TDK 스플렌더 카셋 테입 광고를 시작으로, 하나토유메 등의 광고 모델을 하다가 1985년 드라마 '毎度おさわがせします(매번 소란스럽게 하겠습니다)'로 드라마 데뷔. 이후 같은 해 싱글 'C'로 가수 데뷔를 하며 내는 곡마다 히트를 하는 등 다년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데뷔 초기 드라마에서는 까무잡잡한 동남아 구릿빛 피부에다 말도 행동도 불량한 일진 역할을 맡아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1986년 드라마 生意気盛り(한창 건방질 때)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198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톱 아이돌로 격상된다.
주제가 'wakuwakuさせて'도 대히트를 했으며, 모노마네(성대묘사 및 흉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 곡이다.# 이후 꾸준히 연기와 가수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톱 아이돌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0대 아이돌시절 1980년대 중반에 출연했던 드라마에서는 꽤 많은 노출신을 선보였다. '매번 시끄럽게 합니다.'가 대표작[6]
1991년 가을에 방영한 드라마 "보고 싶을 때에 그대는 없어"에서 원거리 연애에 외로워하는 간호사 역할을 맡으며 여성 팬들의 지지도가 급상승해 90년대 초반 명실공히 가장 핫한 여성 연예인 중 하나로 우뚝섰다. 주제가인 遠い街のどこかで…(멀리 떨어진 거리 어딘가에서)도 대힛트하며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여성가수 크리스마스 노래 no.1으로 손꼽혔었다. 남성가수 no.1송은 야마시타 타츠로의 크리스마스 이브.[7]
1992년엔 WANDS와 함께 부른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 누구보다 분명)'[8] 이 180만장이란 대히트를 하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는 쭉 이어져서 1994년엔 'ただ泣きたくなるの(다만 울고싶어지는 걸)'가 100만장이 넘는 히트를[9] , 1995년에는 주연을 맡은 러브레터로 여주연상을 받는 등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가수 활동과 배우 활동을 양립하며 두 분야에서 모두 큰 인기를 받게되었다.
1999년에는 가수로써 마지막 앨범을 내고 배우로써의 활동에 전념하였다.
2002년, 소설가인 츠지 히토나리[10] 와 결혼했고, 2014년에 이혼했다[11] . 결혼 생활 중에는 파리에 머물면서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하다가, 2010년 초에 다시 컴백을 했다. 이재한 감독(대표작 :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 맡은 'サヨナライツカ(사요나라이츠카)'의 주연 배우를 맡았다. 2013년에는 이와이 슌지 제작, 기타가와 에리코 감독의 영화 新しい靴を買わなくちゃ(새 구두를 사야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015년 겨울 무렵, 만나고 있던 시부야 케이이치와 결별 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2019년 2월에 '''또''' 불륜설에 휩싸였었다. 상대는 락밴드 모노럴 [12] 의 보컬 아니스. 문제는 아니스가 가족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 이에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부인하였다.
일본 아줌마들이 친권을 포기한 여자라고 아주 싫어한다.
2017년, 고양이를 부탁해로 유명한 정재은 감독의 멜로 영화 나비잠에 김재욱과 같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여 한국 배우 문소리와 함께 오픈 토크 시간을 가졌다.# 영화는 한일양국 모두 흥행실패했다.
2019년 정말 오랜만에 최고 히트곡 <세상 누구보다 분명>을 라이브로 불렀다. 활동 당시에는 라이브가 불안정했는데 시간이 꽤 흐르면서 목소리는 많이 변했지만 꽤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였다.
2019년 12월 4일, 35년간의 흔적을 돌아보는 앨범[13] 인 “Neuf Neuf”[14] 를 발매했다.
3. 인간 관계
동세대 아이돌이었던 코이즈미 쿄코와 친분이 깊으며 카하라 토모미는 나카야마 미호를 동경하여 연예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미호 본인은 아이돌 데뷔 당시 나카모리 아키나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고 한다.[15]
그리고 쿠도 시즈카와 한때는 절친이었다. 1988년 크리스마스 특집드라마 '미스 매치'[16] 로 방영된 후에 각별한 우정을 자랑하였으나, 1990년대 초반부터 둘의 우정이 삐걱거리며 깨져버렸다. 1990년 말쯤에 쿠도 시즈카가 첫 싱글부터 5번째 싱글까지 보컬 뉴버젼이 포함된 베스트 앨범 'Unlimited'의 12번째 보너스 트랙 '사랑 모양'이란 곡이 있는데, 타하라 토시히코와 사귀고 있던 나카야마 미호를 위해 헌정하는 곡이었으나 얼마 안가서, 1991년 연초 특방에서 쿠도 시즈카와 타하라 토시히코의 과도한 키스씬이 나카야마 미호의 격노를 사며 쿠도 시즈카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멀리하게 되었다.
여동생인 나카야마 시노부(中山忍)[17][18] 도 연기자로 활동 중이나 존재감은 거의 없다.
4. 싱글 목록
- 1985년 - C / 生意気 / BE-BOP-HIGHSCHOOL
- 1986년 - 色・ホワイトブレンド / クローズ・アップ / JINGI・愛してもらいます/ツイてるねノッてるね / WAKU WAKUさせて
- 1987년 - 派手!!! / 50/50 / CATCH ME
- 1988년 - You're My Only Shinin' Star / 人魚姫 / Witches[19]
- 1989년 - ROSÉCOLOR / Virgin Eyes[20]
- 1990년 - Midnight Taxi / セミスウィートの魔法 / 女神たちの冒険 / 愛してるっていわない!
- 1991년 - これからのI Love You / Rosa / 遠い街のどこかで…
- 1992년 - Mellow /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中山美穂 & WANDS)
- 1993년 - 幸せになるために / あなたになら…
- 1994년 - ただ泣きたくなるの / Sea Paradise -OLの反乱- / HERO
- 1995년 - CHEERS FOR YOU / Hurt to Heart ~痛みの行方~
- 1996년 - Thinking about you ~あなたの夜を包みたい~ / True Romance / 未来へのプレゼント(中山美穂 with MAYO)
- 1997년 - マーチカラー
- 1998년 - LOVE CLOVER
- 1999년 - A Place Under the Sun / Adore
5. 출연 작품
5.1. 영화
- 1985년 - BE-BOP-HIGHSCHOOL
- 1989년 - どっちにするの。
- 1991년 - 波の数だけ抱きしめて
- 1995년 - Love Letter
- 1997년 - 東京日和
- 2010년 - サヨナライツカ
- 2013년 - 새 구두를 사야 해(新しい靴を買わなくちゃ)
- 2017년 - 나비잠 - 료코 역
- 2018년 - 마멀레이드 보이(ママレードボーイ)
- 2019년 - 108명의 여자와 섹스하는 방법(108~海馬五郎の復讐と冒険~) - 카이바 아야코 역
[1] 태어난 곳은 나가노현 사쿠시.[2] 그녀가 1987년에 출연한 드라마 '엄마는 아이돌'에서의 극 중 애칭이었지만, 이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이후로도 미호 본인의 애칭으로 굳어져버렸다.[3] 남성을 포함한다 해도 기무라 타쿠야에 이은 2위 기록이다. 게다가 7회의 주연 작품 중 4작품에서는 직접 주제가까지 불렀다.(이것 역시 역대 최고 기록)[4] 원래부터 그렇게 하얀 피부는 아닌 것 같지만, 당시 비키니를 입고 찍은 화보를 보면 일부러 더 까맣게 태닝한 거라는 걸 알 수 있다.[5] 사실 연예계 관계자가 직접 말을 걸었던 건 미호가 아니라 옆에 있던 그녀의 친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두 사람이 사무소로 찾아가자 그 친구보다는 미호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 모양이다.[6] 사춘기의 성을 다룬 가족드라마로 시즌1과 2에 출연했는데 극중 역할이 중학생이였다. 당시 나카야마 미호 실제 나이도 14-16세였었다. 그러나,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속옷 장면은 빈번하게 나오고 실제 가슴 및 엉덩이 일부가 노출되는 장면도 있었으나 가슴은 니플패치를 부착한 상태에서의 노출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이라 당시 화질로는 분간하기도 힘들다. 엉덩이 노출은 속옷신에서 뒷부분이 약간 내려가 골이 약간 노출된게 다다. 이후 재방송에서는 컷되었다. 사실, 그 드라마에서 성인역은 노출이 없는 반면에 나카야마 미호를 빼고도 타 아역을 맡은 여배우들의 속옷노출은 빈번했었고 남자 10대 배우들은 거의 매화 알몸 노출이 나온다. 당시 미국에서도 10대 하이틴 섹스물이 유행했던 시기인만큼 지금과는 시대적인 인식이 많이 달랐다고 봐야 한다.[7] 1988년~1992년 5년간 크리스마스 시즌 때 JR 도카이의 캠페인 광고 '크리스마스 익스프레스'의 배경음악으로 매우 유명한 곡이다.[8] 한국 가수 '포지션'과 '더 넛츠'가 각각 '그해 겨울은', '사랑의 바보'라는 곡으로 리메이크를 했고 일본 내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가수들에 의해 많이 커버가 되었다.[9] 90년대에 이르러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곡이 많이 나왔는데, 가창력은 음색이 괜찮아서 정식 녹음본만 들으면 괜찮게 들리지만 라이브는 굉장히 불안한 수준이었다. 다만 데뷔 초기인 1986~1988년에는 제법 괜찮은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건강 악화로 한 번 입원한 이후 목상태에 따라 가창력이 들쭉날쭉해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오로지 인기 덕분에 가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다만 미호 본인은 연기보다 가수 일이 더 좋다고 TV에서 여러번 언급했다.[10] 작가 공지영과 합작 소설을 내는 등 한국에서도 알려진 소설가.[11] 이혼 과정에서 먼저 츠지 히토나리의 불륜설이 터졌고 언론은 이혼의 책임을 남편인 츠지 히토나리에게 몰아갔다. 그러나 이후 사실은 나카야마 미호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180도 역전. 그녀가 불륜 상대에 홀딱 빠져 친권까지 포기해가며 이혼을 감행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이 일로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12] 에르고 프록시 오프닝을 부른적이 있다. 다만 이 이외에는 마이너한 편.[13] 과거 싱글들 일부를 2019년에 재녹음했다.[14] 프랑스어로 "새로움"을 뜻한다.[15] 1986년의 콘서트에서는 아키나의 앨범 'D404ME'의 수록곡 '모나리자'를 부르기도.[16] 이 드라마가 절친한 아이돌인 두 사람을 주연으로 기용했다는 점을 내세운 작품이었다. 첫 인연은 1987년에 나카야마 미호가 주연한 드라마 '한가하면 놀러와'에 쿠도 시즈카가 조연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고, 이 드라마 종영 이후 각종 매체에서 절친임을 과시하고 다녔다.[17] 이연걸의 정무문에서 일본인 여자친구로 출연, 한국에서도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18] 최근에는 수리검전대 닌닌저의 주인공 이가사키 타카하루의 어머니 역으로도 나왔었다.[19] 첫 홍백가합전 출장곡[20] 안리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