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코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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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 시호[1]'''
케이코 덴노(景行 天皇, 경행 천황)
'''화풍 시호'''[2]
오타라시히코오시로와케노스메라미코토
(大足彦忍代別天皇[3],
大帯日子淤斯呂和氣天皇)[4]
오타라시히코노스메라미코토(大足日足天皇)[5]
오타라시히코노스메라미코토
(大帯日子天皇,大帯日古天皇, 大帯比古天皇)[6]
'''능호'''
야마노베노미치노에능(山辺道上陵)
'''생몰'''
기원전 13년~ 기원후 130년
'''재위'''
71년 8월 24일 ~ 130년 12월 24일
'''황거'''
마키무쿠노히시로노미야(纒向日代宮)
1. 개요
2. 특징
3. 가계


1. 개요


일본의 제12대 천황.
일본서기에 의하면, 케이코 덴노는 스이닌 덴노의 3남으로 태어나 21세 때 황태자가 되었고, 스이닌 덴노가 사망하자 즉위했다. 재위 12년 구마소를 토벌하기 위해 규슈로 정벌을 떠나 히무카 국에 행궁을 지어 머물면서 13년에 구마소를 평정했고, 19년에 돌아왔다. 27년 구마소가 배반하자 아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보내 정벌했고, 40년에 동국(일본열도의 동쪽)의 에미시를 평정했다. 일본서기는 케이코 천황이 106세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21세에 태자가 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보면 143세에 사망한 것이 된다.

2. 특징


대체적으로 케이코 덴노의 재위 기간에는 아들인 야마토 타케루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 시기에 서쪽으로 규슈를 평정하고, 구마소와 동국 에미시를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후의 기록에서도 에미시와 큐슈 남반부 일대는 야마토 왕권과 별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케이코 덴노가 이들을 정벌했다는 기록은 7세기 후반 무렵에 창작된 역사로 보고 있다. 특히 케이코 천황의 시호에 나오는 ‘타라시히코’는 13대 세이무 덴노, 14대 주아이 덴노에서도 보이고 있으며, 이는 7세기경의 34대 조메이 덴노, 35대 고교쿠 덴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후세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가계


고사기에 따르면 그는 기록에 남아있는 황자가 21명, 남아있지 않은 황자가 59명, 총 80명의 황자가 있었다고 한다.
황후 : 하리마노이나비노오이라쓰메(播磨稲日大郎姫)
황후 : 야사카이비메노미코토(八坂入媛命)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 일본서기[4] 고사기 [5] 히타치 풍토기(常陸風土記)[6] 하리마 풍토기(播磨風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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