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로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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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은 콘라트 차하리아스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오스트리아인이기 때문에 콘라드가 아니고 '''콘라트'''라고 읽어야한다. 콘라드 로렌츠 문서는 여기로 바로 이동된다.
1903년 11월 7일 ~ 1989년 2월 27일
오스트리아 태생의 생태학자, 동물 심리학자. 1922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의예과 과정을 마친 후 비엔나 대학으로 진학, 1928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35년에는 해부학 조교수로 임면되었다. 1933년에는 동물학에 대해서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제3제국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에 의해 전쟁 포로로 수감되어 1944년부터 1948년까지 포로 수용소에서 계속 의사일을 하며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나치 부역은 그에게 있어 평생 따라갈 낙인이 되었다. 그 자신은 1942년부터 포로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후에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그는 나치에 협력한 일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그 후 계속 반복한 바 있다.[3]
1958년부터 막스 플랑크 행동 심리 연구소에서 지내며 자신의 동물 행동 심리 연구를 계속해 오다가, 1973년 같은 오스트리아 사람인 카를 폰 프리츠, 네델란드 학자인 니콜라스 틴베르헌[4] 과 함께 동물 행동 연구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거의 유일한 거시생물학 분야에서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이다. 이 상은 생물학상이 아닌 생리·의학상이어서, 주로 인간 생리 이해나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기 때문이다. 1973년은 또한 그가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떠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다 1989년 알텐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동물행동학(Ethology)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류 등에게서 나타나는 각인(Implant)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이는 오랜기간의 반복적인 연구와 수많은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습성을 조사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각인 효과의 입증으로 인해서 생물의 뇌가 가지는 기전, 즉 학습 이전에 내재된 행동 양식과, 생물이 경험과 학습에 반응하는 원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물학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로렌츠의 주요 저서로는 '''<솔로몬의 반지>''', '''<인간, 개를 만나다>'''가 있다. 둘 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으로 국내에도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특히 솔로몬의 반지는 당시까지 생소했던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책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일 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에세이집으로는 이례적으로 후대의 동물학 연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풀네임은 콘라트 차하리아스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오스트리아인이기 때문에 콘라드가 아니고 '''콘라트'''라고 읽어야한다. 콘라드 로렌츠 문서는 여기로 바로 이동된다.
1903년 11월 7일 ~ 1989년 2월 27일
1. 생애 요약
오스트리아 태생의 생태학자, 동물 심리학자. 1922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의예과 과정을 마친 후 비엔나 대학으로 진학, 1928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35년에는 해부학 조교수로 임면되었다. 1933년에는 동물학에 대해서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제3제국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에 의해 전쟁 포로로 수감되어 1944년부터 1948년까지 포로 수용소에서 계속 의사일을 하며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나치 부역은 그에게 있어 평생 따라갈 낙인이 되었다. 그 자신은 1942년부터 포로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후에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그는 나치에 협력한 일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그 후 계속 반복한 바 있다.[3]
1958년부터 막스 플랑크 행동 심리 연구소에서 지내며 자신의 동물 행동 심리 연구를 계속해 오다가, 1973년 같은 오스트리아 사람인 카를 폰 프리츠, 네델란드 학자인 니콜라스 틴베르헌[4] 과 함께 동물 행동 연구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거의 유일한 거시생물학 분야에서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이다. 이 상은 생물학상이 아닌 생리·의학상이어서, 주로 인간 생리 이해나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기 때문이다. 1973년은 또한 그가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떠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다 1989년 알텐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2. 업적
그는 동물행동학(Ethology)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류 등에게서 나타나는 각인(Implant)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이는 오랜기간의 반복적인 연구와 수많은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습성을 조사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각인 효과의 입증으로 인해서 생물의 뇌가 가지는 기전, 즉 학습 이전에 내재된 행동 양식과, 생물이 경험과 학습에 반응하는 원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물학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3. 저서
로렌츠의 주요 저서로는 '''<솔로몬의 반지>''', '''<인간, 개를 만나다>'''가 있다. 둘 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으로 국내에도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특히 솔로몬의 반지는 당시까지 생소했던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책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일 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에세이집으로는 이례적으로 후대의 동물학 연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4. 여담
- 그는 각인 연구를 할 때 가능한 한 조류의 관찰만을 행했으며 침습적 시술 등을 사용하지 않아서 동물에 대한 인도적 대우와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준 바 있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1973년은 아직 그러한 주장이 큰 힘을 얻지 못하던 때이다.
- 그는 생태학이나 생물학 외에도 철학 저서 등을 집필한 적이 있다.
- 소꿉친구 항목에도 있지만 어린 시절 같이 자랐던 소꿉친구 그레틀과 결혼하여 백년해로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콘라트 로렌츠가 1살일 때 자기집 정원사의 3살짜리 딸인 마르가레테 게프하르트(Margarethe Gebhardt) 애칭 그레틀(Gretl)과 만나 거의 남매처럼 자랐는데[6]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걸 꺼린 부친이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까지 했지만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워낙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기 때문에 웨스터마크 효과의 반대 증거로도 간혹 인용된다. 한마디로 소꿉친구계의 레전설.
[1] 항체의 화학적 구조 발견 [2] 세포의 구조적, 기능적 체계에 대한 연구[3] 게르만 민족에 속하는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수괴 히틀러의 출신지이기도 하며, 제3제국은 큰 반발 없이 오스트리아를 무혈 입성 합병했다. 그 후엔 싫어도 군대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나치를 반대하는 사람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주인공처럼 나라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4] 리처드 도킨스의 지도교수였으며, 형인 얀 틴베르헌은 1969년 노벨 경제학상 초대 수상자이다.[5] 실은 어느 정도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그의 업적의 권위에 기대는 것도 있다.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이라는 게 분류상 분명히 과학인데 인문학에도 상당 부분 걸치고 있어 이과 출신들이 생각하는 논리적인 지지를 받을 기 힘든 분야라 과학계에서는 미신에 가깝게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라.[6] 처음에는 그레틀이 어린 콘라트를 돌봐주는 형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