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생리학·의학상

 


'''노벨생리학·의학상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image]
'''주최 및 장소'''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스웨덴 [image] 스톡홀름
'''상금'''
900만 SEK
100만 달러[1]
(2018년 기준)
'''첫 시상년도'''
1901년
'''최근 수상자'''
하비 올터 [image]
마이클 호턴 [image]
찰스 라이스 [image]
(2020년 기준)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생리학의 의미
3. 특징
4.1. 생물학 연구와 노벨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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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영문으로 된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이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줄여서 '노벨 생리의학상', 혹은 '노벨 의학상'이라고 부른다. 그 밖에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노벨 의학상이라고 많이 불리는데, 이 때문에 생리학도 노벨상의 시상 분야라는 사실이 우리나라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화학상, 노벨물리학상과는 달리,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서 선정한다.

2. 생리학의 의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 기금을 조성하고, 그 이자로 매년 그 전해에 인류를 위해 최대의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그 이자는 똑같이 5등분하여 다음과 같이 할당한다.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나 개선을 이룬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 "

이처럼 노벨은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이 상을 수여하라고 유언했다. 그런데 생리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이지만, 의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2] 따라서 '생리학 또는 의학'이라는 말은 마치 '전자기학 또는 물리학', '유기화학 또는 화학'이라는 말처럼 어색하다. 그러므로 생리학이라는 말은 빼고, 간단히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이라고 유언을 남겼어도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이 생리학과 의학을 따로 구분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노벨이 살던 시대에는 생리학이 오늘날의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했던 용어였다. 따라서 노벨이 굳이 생리학을 의학과는 별도로 유언에 적시한 것은, 의학뿐만 아니라 의학에 속한다고는 볼 수 없는 생물학의 여러 분야도 시상 분야에 포함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언에 담긴 뜻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노벨 생리학·의학상은 노벨 생물학·의학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도 노벨 생리학·의학상의 시상기관은 생리학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해왔음이 명백한데, 아래 문단에서 설명하는 1973년도 수상자의 업적(동물행동학 연구 업적으로 수상)과 1983년도 수상자의 업적(식물유전학 연구 업적으로 수상)이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3]

3. 특징


초창기에는 인간 생리의 원리를 밝히거나 의학적인 진보(기술 포함)를 이룩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도 인간의 생체 기능에 관한 연구에 수여하는 경향이 여전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령 1973년에는 꿀벌의 춤(꿀벌의 언어)을 연구한 카를 폰 프리슈, 각인 등 조류의 행동을 연구한 콘라트 로렌츠 등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이 시상되었다. 이들의 연구는 동물 행동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아니었고, 생리학 연구도 아니었다. 또한 1983년에는 바버라 맥클린톡이 식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노벨상 위원회는 이러한 곤충, 조류, 식물 연구가 인간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긴하다. 한편 생태학, 분류학 연구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 생리와 그다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4] 한편 생명과학과의 연관성이 많은 농학의 경우는 아직까지 사례는 없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듯.[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처럼, 수상자의 절반을 미국인이 차지한다. 세계 생물학 연구 예산의 40%를 먹고 들어가는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볼수있다.
노벨평화상노벨문학상을 제외한 다른 과학분야 및 경제상 중에서 여성 수상자가 가장 많은 상이다.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공동수상의 경향이 크다. 2차대전 이후 단독수상한 경우는 1/10 정도에 불과하다.
아시아 출신 수상자는 6명으로, 1987년 토네가와 스스무(일본), 2012년 야마나카 신야(일본), 2015년 오무라 사토시(일본), 투유유(중국),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일본), 2018년 혼조 다스쿠(일본)가 각각 수상하였다. 이 6명 중 투유유는 유일한 여자이고 박사 학위도 없다.
한국인의 경우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를 개발한 조장희 박사(고려대 뇌과학융합센터), microRNA 연구의 권위자인 김빛내리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 tRNA의 구조를 밝혀낸 김성호 교수(UC 버클리 화학과) 등 생각보다 많은 과학자가 생물학 연구에 기여해 오고 있기 때문에 노벨과학상 부문 중에서는 대한민국 국적의 과학자의 수상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바로 노벨생리학·의학상이다.
현재 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해결하면 100%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할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에이즈, 에볼라, 말라리아 등의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에 대한 100%에 가까운 예방백신 개발이나 2형 당뇨병과 말기암의 완전한 치료법 개발, 염색체를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해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같이 염색체가 망가진 환자를 치료하거나 이 방법으로 성전환 수술에 성공해 원래 남성이었던 사람이 여성으로 성별을 전환한 후 출산까지 하고 그 아이가 천수를 누리게 하면 무조건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할 것이다. 그 동안 역대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들의 수상 사유를 보자면 '''이것보다 난이도가 훨씬 낮은 것들이 매우 많았다.

4. 역대 수상자




4.1. 생물학 연구와 노벨화학상


현대 생물학 연구는 물리학 및 화학적 연구방법론을 적극 도입하면서 발전해왔으며, 물리학자나 화학자 역시 생물학 연구에 힘을 쏟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연구 주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6] 아래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생물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연구로 수상한 경우이다.
생물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수상자 [ 펼치기 / 접기 ]
수상 연도
수상자
업적
1901년
헤르만 에밀 피셔(독일)
당과 퓨린 합성 연구
1907년
에두아르트 부흐너(독일)
비세포적 발효 연구
1915년
리하르트 빌슈테터(독일)
식물 색소 연구
1923년
프레더릭 벤팅(캐나다)
인슐린 연구
1927년
하인리히 오토 빌란트(독일)
담즙산 및 관련물질 조성 연구
1928년
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독일)
스테롤의 구조와 비타민의 연관성 연구
1929년
아서 하든(영국)
한스 폰 오일러켈핀(독일)
당의 발효와 발효효소 연구
1930년
한스 피셔(독일)
헤민과 엽록소 구조 연구
1937년
월터 호어스(영국)
파울 카러(독일)
탄수화물과 비타민 연구
1938년
리하르트 쿤(독일)
카르티노이드와 비타민 연구
1939년
아돌프 부테난트(독일)
성 호르몬 연구
1946년
제임스 섬너(미국)
효소의 결정화 발견
존 노스럽(미국)
웬들 스탠리(미국)
순수 형태의 효소 및 바이러스 제조
1947년
로버트 로빈슨(영국)
알칼로이드 연구
1954년
빈센트 뒤 비뇨(미국)
폴리펩타이드 호르몬 합성
1957년
알렉산더 토드(영국)
뉴클레오티드 및 그 조효소 연구
1958년
프레더릭 생어(영국)[7]
인슐린 구조 연구
1961년
멜빈 캘빈(미국)
식물의 탄소동화작용 연구
1962년
막스 퍼루츠(영국)
존 켄드루(영국)
구형 단백질 구조 연구
1970년
루이 를루아르(아르헨티나)
당뉴클레오티드 발견,탄수화물의 생합성에서 역할 규명
1972년
크리스천 앤핀슨(미국)
아미노산 서열과 생체활성형태 연구
스탠퍼드 무어(미국)
윌리엄 하워드 스테인(미국)
리보뉴클라아제의 구조와 촉매활성 연구
1975년
존 콘포스(호주)
효소-촉매반응의 입체화학 연구
1978년
피터 미첼(영국)
생물학적 에너지이동과정의 공식화
1979년
앨런 매클라우드 코맥(미국)
고드프리 뉴볼드 하운스필드(영국)
컴퓨터단층촬영 연구 및 발명
1980년
폴 버그(미국)
DNA 혼성화와 핵산의 기초 연구
윌터 길버트(미국)
프레더릭 생어(영국)
핵산 염기서열 결정에 공헌
1988년
요한 다이젠호퍼(서독)
로베르트 후버(서독)
하르트무트 미헬(서독)
광합성 반응센터의 삼차구조 결정
1989년
시드니 올트먼(캐나다)
토머스 체크(미국)
RNA의 촉매성질 발견
1993년
캐리 멀리스(미국)
마이클 스미스(캐나다)
DNA기반 화학방법론 개발
중합효소연쇄반응기술을 개발하였다.
1997년
폴 보이어(미국)
존 E. 워커(영국)
ATP 합성의 효소기작 설명
옌스 스코우(덴마크)
소듐-포타슘 ATPase 발견
2002년
쿠르트 뷔트리히(스위스)
존 펜(미국)
다나카 고이치(일본)
생체고분자 구조의 분석 및 동정법 개발
2003년
피터 에이그리(미국)
로더릭 매키넌(미국)
세포막상의 이온 채널 발견
2004년
어윈 로즈(미국)
아브람 헤르슈코(이스라엘)
아론 치카노베르(이스라엘)
유비퀴틴에 의한 단백질 분해 발견
2006년
로저 콘버그(미국)[8]
유전자 전사과정 연구
2007년
마리오 카페키(미국)
올리버 스미시스(미국)
마틴 에번스(영국)
녹아웃 마우스 개발
2008년
마틴 챌피(미국)
로저 챈(미국)
시모무라 오사무(일본)
녹색형광단백질 발견 및 응용기술 개발
2009년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인도)
토머스 스타이츠(미국)
아다 요나스(이스라엘)
리보솜의 구조와 기능 연구
2012년
브라이언 K. 코빌카(미국)
로버트 J. 레프코위츠(미국)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 연구


[1] 한화 기준 약 10억 6,680만 원.[2] 다만, 의학에서는 식물생리학 등은 관심대상이 아니고, 주로 인체생리학만을 다룬다.[3] 이상의 내용은 <노벨상 그 100년의 역사>, 아그네타 발린 레비노비츠 著, p164 이하에서 참조함.[4] 다만 엄밀히 얘기하면 위에 나와있는 동물행동학도 생태학의 한 부분이다.[5]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 박사가 노벨 생리 의학상 후보로 추천받은 적이 있다.[6] 물리학상의 경우에는 없지만,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크릭과 윌킨스도 기본적으로는 물리학자이며, 에르빈 슈뢰딩거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많은 물리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1979년 수상작인 CT 촬영 기술, 2003년 수상작인 MRI 기술 역시 물리학적인 기반이 없으면 안되는 연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