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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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Crucible
아서 밀러가 1952년에 쓰고 1953년에 초연된 희곡.
마녀재판과 전체주의의 광기의 무서움을 고발했다.
1692년에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발생한 세일럼 재판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 미국으로 건너와서 오히려 유럽본토에서보다 더 활개친 종교재판, 이단심문재판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무고한 여자와 그들을 변호하던 남자들까지도 모두 처형된 사건이다. 인간의 정신, 그리고 종교의 광기를 섬뜩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으며 1950년대 미국 문학을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 한밤중에 몇 명의 소녀들이 모여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광경을 페리스 목사에게 들키는 데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마을은 악마 소동에 휩싸이고 그중 존 프록터의 집에서 일했던 소녀 아비개일이 존 프록터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모함해 엘리자베스 또한 이 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프록터는 법정에 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아비개일과 내연 관계였고 관계가 깨지자 아비개일이 분노한 나머지 마녀 소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록터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가 아비개일의 사주를 받고 거짓 증언을 하면서 망연자실한 프록터는 자신이 악마를 보았다고 자포자기해버린다. 이 발언이 그가 악마를 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프록터는 구속되고, 상황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흘러가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자 아비개일이 도망가고 만다.
재판관들도 더 이상의 상황 지속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프록터에게 자백 시 처형하지 않겠다며 회유를 하며 결국 프록터는 자백 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자백서에 사인 후, 그것이 만인 앞에 공고될 것이며 자백하지 않은 그의 친구들은 모두 악마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안 마지막 순간에 자백서를 찢어 버린다. 존의 사형집행이 결정되고, 앨리자베스 또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 말리지 않는다. 형 집행의 북소리가 울리고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는 매카시즘이 온 미국을 휩쓸었는데, 밀러는 매카시즘의 위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마녀사냥을 끌어왔다. 두 상황 다 집단적 트라우마와 이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당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 상세
마녀사냥식 재판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나약함과 추악한 모습이 결합하면서 죄없는 사람들이 망가지고 목숨을 잃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억압받는 게 싫어서 잠깐의 일탈을 추구한 십대소녀들이 그게 문제삼아지면서 처벌받는게 두려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모습이 치가 떨리게 무섭게 나온다.
밀러의 스타일답게 어렵진 않지만,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고 담백하게 묘사하는게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마녀사냥에 대해 가감없이 설명했다고는 하나 부정을 저지른 남자를 은근슬쩍 합리화하거나 사실은 모든 게 여자들 잘못 식으로 여자를 실제적인 마녀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면이 있다고 싫어하는 여자들도 많은 편.[1] 특히 프록터가 엘리자베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마지막에 성자로 죽는 결말이 찜찜하다는 평도 많다.[2] 실제 여성 학자들이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쓴 논문을 보면 정말 가차없이 까인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세일럼의 마녀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도가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공지영 작가의 소설과 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더 유명해지면서 혼동을 막기 위해서 그냥 크루서블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crucible의 원래 뜻은 쇠를 녹여 쇳물을 만드는 데 쓰는 그릇인 '도가니'이고, 거기서 사람이나 조직이 높은 차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파생한 것이다.
주연인 프록터가 굉장히 격정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연기력이 돋보이는 역이기도 하다. 밑에 나온 영화판에서 대니얼 데이루이스, 2014년 영국의 연극에선 리처드 크리스핀 아미티지가 연기했다. 물론 희대의 악녀이자 광기어린 연기를 하는 애비게일이나 표리부동한 새뮤얼 패리스, 완고한 댄포스나 유약한 흔들리는 양심을 상징하는 존 해일 등의 연기 난이도도 상당하다.
3. 등장인물
- 애비게일 윌리엄스(Abigail Williams)
- 존 프록터(John Proctor)
- 엘리자베스 프록터(Elizabeth Proctor): 존 프록터의 아내. 과거 남편과 에비게일의 관계를 의식하여, 그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을에서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으나, 마녀 재판으로 애비게일의 권위가 오르기 시작하자 경계한다.[3] 결국, 애비게일에 의해 마녀로 고소당해 재판에 서게 된다. 존 프록터가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4] 남편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불륜 사실을 말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존 의 주장이 묵살당하게 되었다. 결국 재판에서 존 프록터가 교수형을 앞두게 되자, 스스로 선택하라며 남편의 생각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교수형 당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He have his goodness now. God forbids I take it from him.(이제 자신의 선함을 찾았어요. 저는 그걸 빼앗을수 없습니다.)”라고 존 해일에게 말하며 극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 존 해일(John Hale): 세일럼 재판에서 마녀관련해서 조언을 하기 위해 온 목사. 페리스와 덴포드에 비해 양심을 지키며, 자신의 권위보다는 거짓고발된 사람들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록터가 재판에 서게 되자 그의 의견을 들어볼 가치가 있다며 그의 변호하고 페리스 목사와 대립하지만 결국 프록터가 재판에서 패배, 그의 입지또한 줄어들게 된다. 그후, 죄수들에게 자백을 권하고 함께 예배하는 등 그들과 교감한다. [5] 프록터 부부를 설득해 자백하게 하여 둘의 목숨을 구하려 하지만,[6] 프록터는 자신의 선함을 위해 사형 당하기를 선택하고, 결국 덤덤하게 부부의 이별을 지켜본다.
- 레베카 너스(Rebecca Nurse): 마을에서 가장 인자하고 선하다 평가 받는 수녀. 존 해일이 오기전 아이들을 진찰하며, 나중에 깨어날 터이니 잘 쉬게 하여 안정을 취하게 하자고 주장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7] 하지만, 에비게일에게 고발당해 재판에 서게 되고 평소 그녀의 인자함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재판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된다.[8] 감옥에 갇힌 이후에도 죄수들의 기둥이 되어 결코 거짓된 증언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마지막에 존 프록터와 교수형에 처해진다.
- 메리 워런(Mary Warren): 여자애들 그룹중 한 명이며 존 프록터 집안의 하녀. 수동적이고, 겁이 많은 모습을 보인다. 애비게일이 엘리자베스를 고소하자, 존 프록터에게 반쯤 협박당해 재판에 증인으로 서게된다. 이후, 애비게일과 대치하지만 애비게일의 연기로 인해 악마와 거래한 것으로 지목당해 반쯤 멘붕하고 결국 주인을 팔아넘긴다.
- 새뮤얼 패리스(Samuel Parris): 존 프록터와 평소에 사이가 좋지않은 세일럼교회의 목사. 세속적이며 재산에 집착한다. 에비게일이 소동을 일으키자 아이들의 건강보다 자신이 책임질 것을 걱정했다. 프록터가 재판에 서자 자신이 손해 볼 것 을 걱정하며 그를 계속 비하하고 아이들을 두둔한다. 하지만, 에비게일이 자신의 돈을 갖고 도망치고 재판의 힘을 잃게 되자 망연자실하면서 죄수들을 살려 자신의 권위라도 살리려고 하지만, 존 프록터가 사형 당하면서 이 또한 실패하고 완전히 몰락한다.
- 댄포스(Danforth): 세일럼 재판에서 판결을 맡고있는 재판장. 자신의 권위가 가장 최우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에비게일과 소녀들의 빽이 되어 고발당하는 사람들의 일방적으로 감옥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고발을 주도하던 에비게일이 사라지고 본인의 권위를 위해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증언을 시킨다. 마지막에는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존 프록터와 레베카 너스의 증언을 받으려고 하자 레베카는 이를 거절하고, 존 프록터도 자신의 증서를 공개적으로 내걸어 망신을 줄 것을 선언하자 프록터가 증서를 찢어버려 좌절 된다.
- 티튜바(Tituba): 바베이도스 출신으로 가끔씩 소녀들과 함께 고향의 옛 주술춤을 췼다. 그러나 이것이 악마와의 거래로 몰려 세일럼 재판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 자일스 코리 - 주요 피고발인 중 하나로 부유한 농부였으나 아내 마사 코리에 이어 본인까지 고발된다. 이는 작중 구달 가와의 분쟁이 원인이 된 것처럼 묘사된다.[9] 아무리 봐도 성질이 괴팍한 노인네였던 실제 코리와 달리 좀 과격한 면이 있을 뿐 성품은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고발 이후 행보는 실제 역사와 일치한다. 그는 혐의를 거부하고 이에 대한 대응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10] 이에 따라 재판에 회부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중세 유럽에서 쓰였던 고어한 처벌을 받게되었는데, 이는 피고발자를 묶어놓고 그 위에 돌을 계속 추가해서 얹어놓는 것이었다. 대응하거나 죽기 전까지. 이는 무려 3일동안 계속되었는데, 계속해서 회유하는 이들에게 코리는 "더 무겁게(More weight)"라고만 대답했고 이는 결국 유언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러한 잔혹한 형벌이 미국에서 벌어진 유일한 케이스다. [11]
4. 영화화
- 감독 : 니컬러스 하이트너
- 출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조앤 앨런, 폴 스코필드
- 제작사 : 20세기 폭스 사
- 연도 : 1996
[1] 애초에 이 작품의 포인트는 프록터의 도덕성이 아니라 마녀사냥과 여론재판의 광기와 위험성이다.[2] 다만 대사로 예전에 엘리자베스에게 불륜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 명확하다. 물론 미성년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프록터의 죄질이 굉장히 나쁜데도 "용서받았으니 끝난 얘기"라고 넘어가는 게 이상하다는 건 맞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가 맞긴 하지만, 너무나 순종적이고 보수적인 모습만 보이는데 이상적인 여자처럼 그려진다.[3] 그녀를 죽이는 것이 에비게일의 실질적인 목적이고 그녀도 이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4] 남편이 불륜 사실을 자백한 다음에야 재판에 불려와, 정황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5] 이는 패리스와 댄포드도 마찬가지 지만 다른 것이 패리스와 댄포드는 사람들이 재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권위에 타격이 가므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백을 시키려고 한 반면, 헤일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백을 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둘은 강압적인 방식을 고수하여 자백을 받아내지만, 해일은 최대한 온건하게 접근한다.[6] 여기서 해일은 "신이 주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자백을 해서라도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설득했는데, 도리어 엘리자베스는 "그거야말로 악마의 유혹"이라며 거부한다.[7] 어떻게 보면 굉장하기도 한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들었더라면 재판으로 인한 참극도 없었을 것이다.[8] 심지어 이방인인 존 해일 목사도 “만약 레베카 수녀가 악마의 편에 섰다면 이 마을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9] 실제 역사상으로 코리는 소작농 중 하나인 자콥 구달이 도둑질을 했다고 의심해 심하게 두들겨 패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있다. 어처구니없이 당시 소작농에 대한 체벌은 합법이었기 때문에 코리는 살인이 아닌 과도한 체벌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그는 유죄가 인정되어서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10] plea라고 하며, 자신에게 취해진 법적조치에 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죄 인정(plead guilty), 무죄 주장(plead not guilty) 등.[11] 작중에서는 정의로운 코리가 불의에 대응하는 의미로 저항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사실 코리는 위에 언급됐다시피 그리 깨끗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고 아내 (세번째 아내였다)가 마녀혐의로 고발되자 처음에는 이를 믿을 정도였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재산과 관련된 것이었을 확률이 높다. 법에 따르면 재판에 회유됐을 경우 그의 재산이 나라에 의해 몰수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회유되지 않은 상태로 죽었기 때문에 재산을 지켰고, 이는 유언에 따라 그의 두 사위에게 상속되었다. 즉, 어차피 당시 80세 노인이었고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코리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 행위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당시 세일럼에서 마녀고발의 주된 원인은 재산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