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노나 라이더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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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우.
'''20세기 말엽을 풍미한 배우로,''' X세대 할리우드의 대장격 되는 인물이다.
1990년대 전성기 시절은 그야말로 '''레전드'''로 평가받으며, 이 시절 가위손이나 순수의 시대, 작은 아씨들(1994), 처음 만나는 자유 등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최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허나 2001년 절도 사건으로 인해서 한때 나락을 갔고 이로 인해 커리어에 위기를 겪었으나, 마흔을 넘겨서 나이 50이 다되어가는 현재 시점 기묘한 이야기 등의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배우이다.
2. 어린시절
미국의 배우. 1971년 10월 29일 미네소타 주 옴스테드라는 도시에서 유대계 히피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히피들은 자식의 이름을 괴상하게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눈치 챘겠지만 위노나 라이더도 부모가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준 케이스.[5] 이후 10살 때까지 히피 사회에서 자랐다.
원래의 성인 호로위츠에서 라이더(Ryder)로 바꾼 계기는 첫 영화 출연작인 《루커스 Lucas》(1986)에 출연했을 때였다. 라이더의 에이전트가 영화 크레딧에 어떻게 이름을 올릴지를 요청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미치 라이더'라는 록가수의 성을 따서 라이더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10살이 됐을 때, 라이더는 도시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나서, 몇몇 동급생들에게 "호모"라고 놀림당하며[6] 사물함에 얼굴을 밀어 넣어지는등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 이후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다가 1983년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American Conservatory Theater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3. 활동
1986년 부터 2009년의 위노나 라이더 필모그래피[7]
3.1. 데뷔 초창기 아역 시절(1986년~1990년)
1985년이 되던 해, 그녀는 《데저트 블룸 Desert Bloom》이라는 영화를 위해 연기장면이 기록된 비디오를 오디션에 보낸다. 배역을 따내는데는 결국 실패했지만, 이를 인상깊게 본 감독인 데이비드 셀처(David Seltzer)에 의해 1986년 드디어 《루커스 Lucas》(1986)에 캐스팅 된다. 분량은 작았으나, 첫 영화출연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출연한 《스퀘어 댄스 Square Dance》(1987)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 등의 호평을 얻는다.
하지만 라이더를 널리 알린 작품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 Beetlejuice》(1988)이라 할 수 있는데 첫 작품인 《루커스》에서 라이더를 인상깊게 본 버튼이 캐스팅한 것이다. 지나 데이비스, 알렉 볼드윈, 마이클 키튼 등과 출연한 영화는 대박을 쳤고, 라이더도 주가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이후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열연한 《헤더스 Heathers》(1988)를 거쳐, 1990년에는 한때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조니 뎁, 그리고 팀 버튼과 다시 만나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을 찍게 된다. 이 영화는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휴식을 이유로 취소하였다.[8] 그 대신 동년에 가족 코미디인 《머메이드 Mermaid》(1990)에 크리스티나 리치, 셰어와 함께 출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라이더는 이 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에 지명'''되지만, 수상은 실패하였다.[9]
3.2. 전성기(1991년~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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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1992년 《드라큘라》출연 당시 모습이다.
1991년에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 Night on Earth》(1991)을, 그리고 1992년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Dracula》(1992)[10] 를, 그리고 1993년에는 자신이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1993)에 출연하는 등 거장들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핫한 배우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순수의 시대》는 미셸 파이퍼,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라이더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 및 '''아카데미 동부문에 노미네이트'''[11] 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배우로서의 라이더에게 대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어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1994)에 벤 스틸러, 에단 호크와 함께 출연했다. 소위 X세대라고 불리던 당시 청년층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바로 《작은 아씨들(1994)》(1994)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지명'''되기도 했으나, 역시나 수상은 실패.[12]
동년에 출연한 《아메리칸 퀼트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1995)에서 한차례 흥행, 비평면에서 실패를 겪으며 승승장구하던 행보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배우 데뷔 이후 라이더는 꾸준히 소위 거장들과 비평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당대의 배우였다.
1996년에 《보이즈 Boys》(1996)에서 또 다시 흥행, 비평면으로 참패를 겪였지만 배우 커리어에 문제는 없었다. 당시 라이더에게는 기묘한 면이 있었는데 흥행력이 결코 좋지 않은, 정직하게 말하면 상업성이 동시대 여배우들보다도 뒤지는데도 유명 감독들의 캐스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출연한 알 파치노가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겸 드라마인 《뉴욕 광시곡 Looking for Richard》에서도 만족스러운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13] 영국국립극장과 왕립셰익스피어극단에서 연출가로 활약하면서 영화 《조지 왕의 광기》로 평단을 흔들어놓은 니컬러스 하이트너 감독과 손잡고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공연한 《크루서블The Crucible》까지, 비평은 괜찮았지만 흥행은 큰 실패를 겪게 되었다.
이후,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에일리언 4》에 출연해[14] 연기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영화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버렸다. 이후 우디 앨런의 《셀러브리티 Celebrity》(1998)에도 출연하는 등 같이 작업한 감독들을 보면 동시대 어떤 여배우보다도 더 많이 거장들과 작업했다.
게다가 직접 영화 제작에도 영역을 넓혀, 주연 및 제작자를 맡으며 제작한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1999)에서 자신이 간신히 출연을 성사시킨 당시 무명이었던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받게 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까지, 하층민에서 귀족까지, 시대극에서 현대극까지, 극사실주의 영화에서 SF와 판타지까지, 욕망의 화신에서 순진무구한 역할까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입체적인 매력을 가진 덕분에 거장 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였다.
3.3. 공백기[15] (2001년~2005년)
아래 후술 되는 절도 혐의 및 재판 문서 참조.
그 문제의 절도 사건으로 인해 위노나는 《뉴욕의 가을》 이후 필모그래피는 꾸준히 내리막을 걸었다.[16] 이 기간 영화 출연은 했지만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어 《시몬》(2002)에서 밥맛없는 유명 여배우 니콜라 앤더스 역할로 카메오 급 조연으로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3.4. 차차 재기하던 시기(2006년~2011년)
형이 완료된 후 워너 브라더스의 《스캐너 다클리 Scanner Darkly》(2006)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해서 칸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으나 인터뷰 공포증이 생겨 참석하지 않았다. 2007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절도 사건에 대해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아니니까 죄책감 까지는 느끼진 않는다고 말해 또 다시 폭풍까임을 당하게 된다. 이후 메이저 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못하고 저예산 영화나 단편영화에 출연한다.
잊혀져 가던 국내 팬들에게 다시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는 아마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 트렉 Star Trek》(2009)과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블랙 스완 Black Swan》(2010)일 것이다. 전자에서는 비록 카메오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절도 사건 침체되어 있던 라이더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드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잊혀지고, 늙어가며 결국 발레단 주연을 빼앗기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얄궂게도 과거의 영광에서 잊혀져 서서히 주연과 멀어지던 실제 배우로서의 삶을 사는 라이더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있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여러모로 배역이 라이더와 똑같은 모습이라, 많은 팬들이 씁쓸해했다.
이후 론 하워드 감독의 《딜레마 The Dilemma》(2011)를,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 마이클 섀넌, 레이 리오타와 함께 출연한 《아이스맨 The Iceman》는 2013년에 개봉 하는 등, 배우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2014년에는 프랑켄위니의 배역을 맡아 성우로 참가했다.
3.5. 두 번째 전성기 시작(2016년~현재)
2016년 7월 15일에 넷플릭스의 SF공포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열연을 펼치며 호평을 듣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 개봉 후 위노나 라이더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17] 전성기 20대 시절에 예전에 절도 사건 때문에 좀 묻혔지만 47세가 된 2019년[18] 현재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많이 알려지고 있는 점에서는 대단하다.
4. 사건 사고
4.1. 절도 혐의 및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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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어두운 과거'''. '''그녀는 이 사건으로 한 방에 무너졌다.'''
그녀의 가장 큰 죄라 할 수 있는 절도 사건이 2000년 리처드 기어와 함께 출연한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 이후인 2001년에 터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북미는 물론이고 온 세계 대중들에게 가식적인 위선자라는 이미지가 말뚝처럼 박히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
2001년 위노나 라이더는 디자이너 샵에서 고가의 의류와 악세사리의 태그를 몰래 떼고 숨겨 나가다가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처음에 그녀는 "다음 배역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라는 헛소리를 했는데, 절도는 둘째치고 이 거짓말 때문에 그녀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대중들에게 "너 지금 연기하는 거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당시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마약 투여를 의심해 약물 검사까지 했다. 또 당시도 유명했고 지금도 마이클 잭슨 사망사건을 변호할 정도인 유명 형사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이는 대중들에게 돈을 이용해서 처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약물검사 결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일반적인 경우에 처방 받을 수 있는 적정량의 처방이 아니었다. 라이더는 이에 팔 부상으로 의사에게 처방받아 복용했으며 적정량은 의사의 소관이지 자신은 알 수 없다면서 절도 당시 약기운에 이성이 약해진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대중들에게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약물 과다복용에 대해서는 혐의가 풀렸으나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또 재판에서 그녀는 검은색의 정숙한 고전적 정장을 입고 창백한 화장을 하고 선처를 호소했는데 이게 오히려 반발을 불렀다. 통계적으로 미녀가 유죄를 받을 확률은 일반적으로 낮지만, 미모를 이용한 범죄이거나 배심원들이 피고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영향을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혹하게 형량을 매긴다는 결과가 있는데 딱 그 꼴이었다. 자유로운 사생활과 잘 나가는 커리어를 밟던 화려한 여배우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연기한다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버린 것이다. 재판도중에 라이더가 이전에도 절도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나와 월경전증후군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매체에서 나왔지만 그녀는 이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부정했다. 어쨌든 또 이미지 훼손.
사건 초기에는 연예계 뉴스 정도의 가십성이었는데 이게 점점 논란이 되더니 나중에는 미국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생포 임박'''소식을 밀어내고 위노나 라이더의 재판이 TV뉴스의 헤드라인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우디 앨런 감독이 자신이 희망했던 위노나 캐스팅을 포기해야 했다. 당초 자신의 영화인 《멜린다 앤 멜린다》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라이더에게 제안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배우 보험[19] 문제로, 후자는 절도 문제로 인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확고한 위치의 감독조차 라이더의 출연은 '도저히 영화사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절도 사건은 200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480시간, 절도에 대한 배상과 벌금을 선고받으며 유죄로 결말지어졌고, 형 집행은 2005년에 완료되었다.
4.2. 사생활
사생활에 상당히 염문들이 많았다. 조니 뎁과의 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 1989년 영화 시사회에서 처음 만나 1990년에 약혼했으나 1993년에 서로에 대한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서고 말았다. 약혼이 깨진 후 뎁이 오른팔의 Winona FOREVER 문신을 Wino[20] FOREVER로 바꾼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후 1993년 소울 어사일럼의 데이브 퍼너를 만난다. 3년간 만나 결혼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996년에 깨진다.[21] 당시에는 로커와의 교제로 유명했고 롤링스톤지에서는 "소년들이 위노나 라이더와의 데이트를 위해 로커의 길을 선택한다"는 글을 올릴 정도로 신예 로커와의 염문설이 잦았다. 1998년에는 맷 데이먼과 2년간 교제하는 등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2001년 절도 사건 이후에는 이런 개인적인 생활도 없고 심지어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이렇다할 스캔들이나 열애설도 없는 상황.
2011년부터 패션 디자이너 스콧 맥킨레이(Scott Mackinlay)와 연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4.3. 배역 후보 논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유력 후보라서 자신이 이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배역은 다른 후보였던 귀네스 팰트로에게 돌아갔고, 이 역할로 팰트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22] 유튜브의 수상장면 댓글에는 다른 배우가 받았어야 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이다, 말하면서 징징대지 좀 마라... 등등 까는 댓글이 거의 반 이상이다. 팰트로가 라이더 집을 방문해서 시나리오를 보고 몰래 제작사와 연락해서 역할을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도는데 팰트로 본인 역시 이미 후보에 올라있었고, 라이더가 자신이 후보로 올랐다는 언급을 여기저기 했을 때 팰트로는 예의상 자신이 후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이더가 유력했다 해도 배우를 결정하는 건 감독의 재량인데다 대본을 보고 가로채고 할 것도 없었고 진짜 그랬다간 고소감이다. 결국 라이더와는 사이가 어색해졌지만.
5. 여담
- 청초한 매력의 소녀같은 동안 외모에 중성적이고 반항기가 넘치는 톰보이 이미지를 가진 입체적인 매력 덕분에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1990년대 국내 영화잡지를 보면, 해외 영화배우 인기 순위에 위노나는 항상 상위권에 올라있다. 하지만 절도 사건으로 인해 활동이 한동안 저조해지면서 관리도 못 받고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현재 모습은 주름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꽤나 노화하였다. 팬들도 위노나 맞냐면서 경악할 정도로 폭삭 늙었지만 그래도 워낙 리즈시절이 레전드여서 상대적으로 많이 늙어보일 뿐 최근엔 다시 활동을 활발히 시작하면서 관리를 받기 시작해 현재는 과거보단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회춘했다. 2020년 기준 제 나이대로 보인다.
- 염색을 자주해서 본래의 머리색이 미스테리인 배우다. 결국 팬들의 궁금증에 답을 했는데, 어린아이일 때의 머리색은 뚜렷한 금발이었으나 그 이후로는 갈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가위손을 비롯한 몇몇 초기 영화에서 금발로 등장하긴 했지만, 옅은 금발, 딸기색 금발 등등 영화마다 색이 달라서 그때의 금발들도 염색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당시 영화보다 어린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미 갈색에 가까운 금발로 머리색이 변했다.
-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탈루마에서 폴리 클라스(Polly Hannah Klaas)라는 12세[23] 소녀가 페도필리아에게 납치당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클라스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위노나는 이 소식을 듣고 범인의 검거를 위해 현상금 20만 달러를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종 제보 프로그램에 출연한 위노나 영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클라스는 실종 두 달 뒤 사체로 발견되었다. 위노나가 작은 아씨들 영화화에 출연하게 된 것도 평소 작은 아씨들을 좋아했던 클라스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참고로 범인 리차드 앨런 데이비스(Richard Allen Davis)는 사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중이다.
-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헤더스》의 후속편을 찍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헤더스》는 1990년대 청춘 영화의 상징이었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위노나 라이더의 풋풋하고 젊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본인은 아마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순으로 시리즈화 된것처럼 자신들의 소위 리즈 시절이었던 그때의 시절이 퍽 생각나는 모양인듯 하다. 프로젝트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지만, 둘 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제 2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 2000년 10월 6일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통산 2165번째 배우다.
- 한국에서는 함수정과 박영희가 전담 성우로 각각 KBS, MBC에서 방영된 여러 작품들을 맡았다. KBS에서 방영된 에일리언 4, 미스터 디즈, 시몬에서는 이선이 맡았으며 SBS에서 방영된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는 은영선이 맡았다.
[1] 본인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2] 1938년생 작가이자 사업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개인 항목이 개설되어 있다.[3] 위키백과에서는 Hiatus라고 표현했다.[4] 가위손(1990)에서. 이 영화에는 위노나의 전남친인 조니 뎁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사실 여기서 만나서 교제하기 시작한 거다.[5] 위노나는 미네소타의 도시 이름으로, 그녀가 태어난 옴스테드와 인접해 있다.[6] 당시 위노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7] 1988년 영화 비틀쥬스는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인데, 동영상에는 안나왔다...[8] 당시 위노나 라이더 대신 출연한 당시 대부 시리즈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자 현재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대성한 소피아 코폴라의 '''발연기'''를 보면... 위노나의 결정이 아쉽기만 하다...[9] 수상자는 우피 골드버그의 《사랑과 영혼》.[10] 앞서 휴식을 위해 대부 3에 예정된 출연을 취소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뜻에서 제작자에게 코폴라 감독을 추천한 것은 물론 프리 프로덕션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11] 수상자는 《피아노》의 애나 패퀸.[12] 수상자는 《블루 스카이》의 제시카 랭.[13] 이 작품에서 알 파치노는 위노나 라이더를 주연 중 하나로 앤으로 기용했다. 재밌는 점은 알 파치노가 2002년 영화 시몬에서 극초반에 작중 유명 여배우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에게 퇴짜 맞는 감독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당시 위노나 라이더는 2001년 절도 사건으로 영화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14] 라이더의 오빠가 이 시리즈의 팬인 것도 출연의 한 이유였다.[15] 위키백과에서는 Hiatus라고 표현했다.[16] 하필이면 《뉴욕의 가을》도 흑역사급 퀄리티에 제대로 폭망해버려 치명적이였다. 사건 일어날 쯤 개봉한 미스터 디즈도 만만치 않았다.[17] 기묘한 이야기는 현재 전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미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18] 2019년 10월 29일에 꼬박 48세가 된다.[19]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전 배우의 안전을 위해 제작사쪽에서 보험료를 지불해주는데, 로버트는 온갖 문제로 보험료가 엄청나게 치솟아서 제작비에 무리를 줄 정도라 제작사에서 포기하게 되었다.[20] 영어로 술주정뱅이이다.[21] 뜬소문에 따르면 깨진 이유가 그게 작아서 그렇다나...[22] 참고로 팰트로는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까인다. 후보였던 콩라인의 여왕인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과 에밀리 왓슨,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등 쟁쟁한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이 출중하지 못한 펠트로가 마치 상을 강탈해갔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작/배급사의 정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배급했던 회사는 미라맥스인데 당시 미라맥스의 수장이었던 하비 웨인스타인은 제작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오스카 캠페인을 잘 하기로도 소문이 나있었다(...)[23] 1981년 1월 3일생, 1993년 10월 1일 사망하여 향년 12세로, 살아 있다면 현재 43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