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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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크리스 클럭새러티스 (Chris Klucsaritis)
생년월일
1970년 1월 4일
사망
2010년 4월 2일
신장
193cm
체중
120kg
출생지
미국 뉴욕주, 서니사이드
별명

피니쉬 무브
더 플랫라이너
커리어
WWE 태그팀 챔피언 1회
WCW US 챔피언 1회
WCW 태그팀 챔피언 2회

1. 소개


WWE, WCW 프로레슬러

2. 커리어


어린 시절부터 프로레슬링에 빠져든 캐년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대학졸업 후 심리상담사의 길을 가다가 중간에 직업을 바꾼 경우로 특이하게도 여성 프로레슬러 페뷸러스 물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크리스 캐년은 WCW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재능있는 레슬러이기도 했다. 그는 WCW 시절 모티스라는 복면 기믹으로 라스와 한 팀을 이뤄 짐 미첼의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블러드 런스 콜드'라는 팀으로 활약한 적이 있으며, 싱글 디비젼에선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와의 대립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DDP의 피니쉬 기술인 다이아몬드 커터를 그대로 따라하며 그것을 캐년 커터라 부르기도 했다.
그 후에 레이븐의 '폴락'에서 활동했는데 캐년은 레이븐이 나중에 이상증세를 보여 페리 새턴과 함께 모두들 그의 곁을 떠남에도 끝까지 레이븐 옆에 남아있었다. 물론 코믹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기도 했다만 레이븐 매니아들에게는 꽤나 좋은 이미지로 비춰졌다는 후문까지 있었다.
그는 WCW에서 WCW US 챔피언을 1번, WCW 태그팀 챔피언을 2번 (DDP와 한 번, 뱀뱀 비겔로우와 한 번.) 역임한 바 있다. WCWWWE에 매각된 이후 그는 WWE에 영입되었다. 크리스 캐년은 인베이젼각본에 따라 WCW & ECW 연합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WCW 시절엔 적이었던 DDP와 태그팀을 이루어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DDP와 함께 하면서 2001년 8월 7일, APA를 물리치고 WWE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섬머 슬램 2001에서 벌어진 WWE & WCW 양대 태그팀 통합 챔피언 챔피언쉽 매치에서 언더테이커케인의 팀에 패해 챔피언을 내주게 된다. 그 뒤 크리스 캐년은 십자인대 파열로 한동안 TV를 떠나 재활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재활에 전념하던 크리스 캐년은 2002년말 링에 서도 좋다는 판정을 받아 OVW을 통해 WWE 데뷔를 타진했다. 그리고 2003년 2월부터 크리스 캐년은 스맥다운의 하우스 쇼를 통해 스맥다운 소속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 2003년 7월 27일 벤전스 2003에서 앞서 벌어진 선데이 나잇 히트[1] 에서 크리스 캐년은 울티모 드래곤과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게 되지만, 리버스 DDT를 맞고 패하고 말았다. 그 뒤 크리스 캐년은 WCW 시절의 기믹인 모티스로 돌아가 다시금 WWE에서의 성공을 노렸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OVW를 전전하다 해를 넘겨 2004년 2월 9일 WWE로부터 방출 통고를 받고 말았다.
WWE는 대체로 크리스 캐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각본팀에선 그에게 이렇다할 각본을 제공해 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WWE를 떠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차라리 방출이 돼서 잘 되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캐년보다 잘난 사람 나와 봐!’라 외치면 팬들은 ‘에브리바디’라고 답할 정도로 카리스마는 대단치 않았지만 기량은 꽤나 수준급이어서 새로운 기술들을 많이 선보였다. 에지의 ‘다운워드 스파이럴’은 그의 ‘플랫라이너’에서 차용한 것이다. 빼어난 기량덕분에 유명 방송진행자 제이 레노의 WCW 경기를 위한 지도자로 낙점될 정도였고 레슬링 영화에 출연하는 영화배우 데이빗 아퀫에게 역시 가르침을 주었다.
2001년 WCWWWE로 매각된 후 동료 선수들과 같이 이동을 했는데 당시 양 단체의 라이벌구도 분위기에서 기존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쓰였으나 시 흡수합병 된 회사의 소속이었던지라 파워게임에서 밀렸고 게이라는 소문은 더더욱 그의 입지를 좁혀갔다. 어깨부상과 단체의 냉정한 평가로 인해 자주 보이지 못하다가 결국 2004년 2월 WWE에서 계약해지가 된다. 2005년 초반 잠시 2위 단체 TNA에 등장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하자 더더욱 설 자리가 좁아졌다.
캐년은 레이븐, 마이클 샌더스와 의기투합해 WWE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승리하진 못했다. 당시 캐년만은 게이이기에 계약해지가 된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게이라는 사실은 많은 프로레슬러들의 반감을 사면서 명성에 비해 경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과거에 비해 초라해지는 모습 때문에 우울증을 비롯한 신경증을 겪기 시작했다고 한다.
캐년은 온라인상의 이슈를 만들기 위해 게이가 아니라 양성애자라는 두 번째 충격고백을 했지만 동성애자와 별 차별화를 갖기 못했고 세 번째 충격고백으로 사실은 동성애자라고 고백했지만 여전히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캐년은 우울증, 양극성장애, 정신분열증 등 다양한 추론이 있었지만 항상 자살할 가능성은 존재했고 실제로 과거에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시도를 했었다. 약처방을 받았지만 증상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결국 201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NY데일리뉴스에 따르면 캐년의 옆에는 항우울제와 유서가 있었고 약물과다복용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약물이 소량이면 치료에 쓰이지만 과량으로 치사량이 넘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업계에 안 좋은 소식이 터졌다. WWE로서는 현재 자사의 소속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모두를 떠안을 수도 없겠지만 화려한 주목을 받다가 점점 잊혀져가면서 생활의 곤궁함을 겪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3. 여담


  • WWE 시절 유행어로 Who Better Than Kanyon!를 외치면 'Every Body!!'라고 외치는 팬들의 대답도 볼거리였다.

[1] 원래는 RAW 소속 선수들이 출전하는 프로그램이지만, PPV가 벌어질 때에 한해 스맥다운 선수들이 출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