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뷸러스 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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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2. 개요
3. 1940~70년대
4. 80년대 Rock 'n' Wrestling Connection
5. 오리지널 스크류잡
6. WWE로의 복귀
7. 여담
8.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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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링네임'''
The Fabulous Moolah (페뷸러스 물라)[1]
'''본명'''
Mary Lillian Ellison (메리 릴리안 엘리슨)
'''출생일'''
1923년 7월 22일
'''출생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컬럼비아
'''사망일'''
2007년 11월 2일
'''신장'''
168cm (5'6")
'''체중'''
62kg (138 lbs)
'''가족'''
배우자 카렌 모랄레스, 슬하 1남
'''피니시 무브'''
백 브레이커
'''유형'''
올드 스쿨
'''주요 커리어'''
JWPA 위민스 챔피언 1회
USA 위민스 레슬링 챔피언 1회
위민스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월드 위민스 챔피언 5회'''
NWA 위민스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WWF 위민스 챔피언 4회'''[2]
컬리플라워 앨리 클럽 선정 1997년 레이디즈 레슬링 어워드 수상
WWF 명예의 전당 헌액 (1995년)
NWA 명예의 전당 헌액 (2012년)
2003년 프로레슬링 홀 오브 페임 & 뮤지엄 선정
프로레슬링 일러스트레이티드 - 1991년 스탠리 웨스턴 어워드 수상
'''테마곡'''
Ooh Baby!

2. 개요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이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역사를 만들어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프로레슬러.

3. 1940~70년대


40년대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던 프로모터인 빌리 월프(Billy Wolfe)와 함께 일하며, 그의 아내이자 프로레슬링계 최초의 여자 스타인 밀드리드 버크(Mildred Burke)에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데뷔 경기는 1949년 5월 26일 보스턴에서 열린 준 바이어스(June Byers)와의 싱글 매치. 이후엔 Slave Girl Moolah라는 이름으로 엘리펀트 보이, 버디 로저스 등의 매니저로서 더 많은 활약을 한다.
1955년, 빈스 맥맨이 운영하던 단체인 캐피털 레슬링 코퍼레이션(Capitol Wrestling Coporation, 약칭 CWC)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1956년 9월 18일엔 주디 그레이블(Judy Grable)을 누르고 세계 여성 챔피언 자리에 등극. 이 타이틀은 NWA 세계 여성 챔피언으로 명칭이 변경되는데, 1983년 물라가 이 타이틀을 당시 WWF (현 WWE)에 팔아넘기면서 WWF/ (구) WWE 위민스 챔피언이 되었다. 물라는 이 타이틀을 1984년에 웬디 릭터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27년 10개월 하고도 5일'''이나 지켜냈다. 날짜로 따지면 '''10,170일!!!'''인데, 사실 중간에 4명의 선수들이 타이틀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지만 그때마다 물라는 며칠만에 다시 탈환해왔다. 초대 챔피언이자 WWE에 타이틀을 팔아넘길 당시에도 물라가 챔피언이었기에 WWE는 중간에 챔피언이 된 4명의 선수들은 정식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972년 7월 1일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경기를 가진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4. 80년대 Rock 'n' Wrestling Connection


Rock 'n' Wrestling Connection이라 정의되는 80년대의 WWE에선 최고의 여성 악역으로 활동하며 웬디 릭터와 라이벌 구도를 가졌다. 당시 나이는 이미 50대. 1984년 7월 23일 MTV에서 열린 PPV The Brawl to End It All에서 신디 로퍼의 인기를 등에 업은 웬디에게 타이틀을 내어주며 27년 10개월 장기집권의 막을 내린다.[3] 타이틀을 잃은 물라는 은퇴하는 대신 매니저로 탈바꿈한다. 웬디에게 대응하기 위해 레일라니 카이(Leilani Kai)를 데려와 그녀의 매니저로 선 것.

5. 오리지널 스크류잡


1985년 11월 25일.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비롯한 모든 스크류잡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지널 스크류잡'''의 주인공이 된다. 당시 인기 최고의 여자 프로레슬러이자 WWE 여성 챔피언이던 웬디 릭터는 WWE와의 재계약을 미루고 있었다. 이에 웬디가 WWE 여성 타이틀을 가지고 다른 단체로 이적하진 않을까 염려하던 빈스 맥마흔은 물라와 함께 일을 꾸민다.
뉴욕에서 열린 라이브 이벤트에서 챔피언인 웬디 릭터는 '스파이더 레이디'라는 복면 레슬러와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스파이더 레이디가 웬디에게 스몰 패키지를 걸었을 때 웬디는 분명 3카운트가 되기 전에 어깨를 들었지만, 심판이 재빠르게 3카운트를 세고 스파이더 레이디의 승리를 선언. 새로운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웬디가 '''스파이더 레이디의 복면을 벗기자 그녀가 물라였음이 드러난다.''' 직후 웬디는 WWE를 떠나 타단체를 전전하며 활동하고, 물라는 돈 욕심 때문에 실제 제자였던 웬디를 배신한 악녀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애초에 물라는 그런 비난에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7분 15초부터 상황이 벌어진다.
이후 벨벳 매킨타이어와 센세이셔널 셰리에게 한번씩 타이틀을 내어준 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87)에서의 경기를 끝으로 WWE를 떠난다.

6. WWE로의 복귀


1995년엔 여성 최초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 3년 후인 1998년에 매 영과 함께 WWE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제프 제럿에게 도전하던 차이나의 서포터 역할로 WWE에 정식으로 복귀한다. WWF 노 머시(1999)에서는 아이보리를 이겨 '''76세의 나이로 다시 WWE 위민스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4]
2003년 RAW에선 빅토리아와의 싱글 매치에서 승리. 경기 후 빅토리아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와중에 랜디 오턴이 물라를 구해준다. 그러나 이 시절의 랜디 오턴에게 RKO를 당하며 레전드 킬러의 첫 제물이 되고만다.
복귀 후 아이보리와의 대립을 제외한 경기들은 모두 이벤트성 경기였고, 주로 민폐형 개그 캐릭터인 매 영을 뜯어말리는 역할로 활동한다. 이 때문에 물라 또한 매 영과 함께 묶어 개그 콤비로 보기도 한다.
WWE 섬머슬램(2007)의 백스테이지에 출연. 빈스 맥마흔을 덮치고 키스를 해대는 매 영을 뜯어말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눈수술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수척한 모습이었다. 이게 WWE 방송상의 마지막 모습. 그 해 11월 2일 세상을 떠났다.
WWE에서 제작한 물라의 추모 영상.

7. 여담


  • 고향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콜롬비아의 사유지에 그의 링네임을 딴 Moolah Drive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 레슬매니아 34에서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경기인 패뷸러스 뮬라 메모리얼 배틀로얄이라는 명명하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생전 현역 시절에 벌였던 악행 논란[5] 때문에 팬들에게서 논란이 되었고, 공식 스폰서인 스니커즈가 성명을 내는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예정되었던 경기는 레슬매니아 위민스 배틀로얄로 이름이 바뀌었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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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WWF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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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NWA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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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Fabulous는 '훌륭한', '엄청난'이라는 뜻, Moolah는 '돈'(금전)이라는 뜻이다.[2] 초대 챔피언[3]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 의해 '올해 최악의 경기'로 선정된다. [4] 역대 최고령 챔피언이다.[5] 제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게하고, 프로모터 권한으로 돈을 갈취하며 마약에 빠져들게 해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는 등 수많은 악행 논란이 있다. 다만 이 논란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뮬라의 악행을 증언하는 증인이 여럿 있기 때문에 모두 사실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증인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가 하면 반대 입장의 증인도 여럿 있는 터라 결론이 어려운 문제다. 위키디피아에서도 뮬라가 악행을 저질렀다는 설과 반박하는 양 측 모두의 입장을 서술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