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W
1.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Extreme Championship Wrestling. 1990년대 프로레슬링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단체. 흔히들 ECW라고 하면 1의 ECW를 떠올리게 된다. (2010년대엔 WWE의 3번째 브랜드였던 ECW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가 이 단체의 본거지였다. 그래서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ECW 선수만 나오면 ECW를 외치고 홀리쉿을 외친다. 샌드맨도 필라델피아 출신.
이 단체의 특징은 하드코어다. 그래서 기존의 ECW 팬들은 WWE의 세번째 브랜드였던 ECW를 깐다. 하지만 이 단체가 처음부터 하드코어적인 것은 아니었고, 에디 게레로와 딘 말렝코의 전통적인 테크니컬 레슬링에 환호를 보내는 등 하드코어 이외의 프로레슬링을 폄하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설립초기까지만 해도 NWA 산하의 다른 단체와 같이 평범한 단체에 불과했다.(이때는 단체명도 Extreme Championship Wrestling이 아닌 Eastern Championship Wrestling이었다.) 하지만 폴 헤이먼이 등장하면서 평범하기 짝이 없던 단체를 유혈낭자의 하드코어의 세계로 바꾼다.[1]
'''반칙패'''라는 규정이 없다. 랍 밴 댐, 태즈, 제리 린, 랜스 스톰 등의 테크니컬 레슬러들과 사부, 더들리 보이즈, 뉴 잭, 타미 드리머, 샌드맨 등의 하드코어 레슬러들이 소속되어 있었고, 좋은 경기를 많이 만들었다[2] 캐릭터들도 독특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샌드맨은 경기 입장이나 경기 중에도 태연하게 음주(캔맥주)나 흡연을 했다. 911이라는 레슬러는 일종의 터프가이 해결사 캐릭터였는데, 폴 헤이먼은 일부러 선수들에게 저퀄리티의 경기를 하게 해서 관중들의 야유를 이끌어낸 뒤 911이 등장해 이런 선수들을 초크슬램으로 응징해서 환호를 이끌었다. 이외에 하드코어를 싫어하는 찌질한 심판이나, nWo의 패러디인 bWo 등 WWF나 WCW 같은 주류 프로레슬링에서 보기 힘든 특이하고 창의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다.
하드코어 레슬링 전문 단체라는 점이 호불호가 심하게 엇갈리면서 일부 레슬러나 프로모터들에겐 비난을 받던 단체이기도 했다.[3] JBL 같은 경우에는 ECW 원 나잇 스탠드 2005에서 'ECW 같은 하드코어 스타일은 운동 신경이 없는 안여돼 키보드 워리어들도 소화할 수 있다'며 비난했고, SMW[4] 의 프로모터이자 NWA를 거친 미국의 유명 프로레슬링 프로모터 짐 코넷[5] 도 '프로레슬링은 팬들이 존경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운동 선수들이어야 한다'며 ECW의 하드코어 스타일을 깐 적이 있다.
하지만 ECW가 하드코어 노선을 밟게 된 계기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딘 말렌코, 레이 미스테리오 등 실력파 선수들을 WCW에서 현금 박치기로 빼갔기 때문에 제한된 로스터로 이목을 끌기 위해 하드코어한 스타일로 어필할 수밖에 없었던 탓도 있다. 크리스 제리코가 회고하기를, ECW의 백스테이지는 선수들을 자상하게 격려해줬던 폴 헤이먼의 통솔 아래에서 무척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비록 자신이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났지만 선수들은 자신을 한 가족처럼 대해줬으며, 프로레슬링 단체에 늘상 있기 마련인 라이벌들의 견제나 동료들의 뒷담화가 없었던 유일한 단체였다고 말한다.[6]
선수들이 WWE나 WCW로 이적했던 일도 ECW에 대한 반감보다는 두 단체가 전국방송을 타는 메이저였고 때문에 지불해주는 돈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에릭 비숍은 ECW는 물론 WWE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주었기 때문에, 폴 헤이먼은 내가 업계에서 일하며 에릭 비숍만큼 증오해본 사람도 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WCW는 ECW안에 스파이를 심어두고 WCW로 오도록 유도했다고 The Rise and Fall of ECW에서 언급된다.
게다가 ECW는 하드코어 레슬링이 주목을 받자, 이 여세를 몰아 1999년에 테네시 주 케이블채널 TNN(현 Spike TV)[7] 와 방영 계약을 맺어서 '''ECW on TNN'''을 방송하여 인기를 몰아세우려 했으나, WWF와 WCW의 협공으로 틈새시장을 돌파하지 못해 2000년 9월에 방송에서 퇴출당함으로서 이듬해 초에 결국 파산했다.[8]
단순히 하드코어만 한건 아니고 어떻게든 틈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루차 리브레처럼 북미에선 생소했던 스타일을 가져오고, 크리스 제리코나 에디 게레로와 같은 덩치 작은 테크니션을 부각시킨 것도 ECW이다. 여기에 마이키 윕렉같은 경우는 '''링 설치하던 말라깽이 하나를 고용해서 레슬러로 키운 예'''이다. 마이키 윕렉은 최초의 ECW 3관왕이기도 하다. 온갖 기믹 매치의 시초이며, 애티튜드 시대에서 볼 수있던 막가는 수위의 스토리들(예를 들자면 레즈비언 스토리 등)도 ECW가 시초였다.
더들리 보이즈의 경우 팬들에게 온갖 욕설을 해댔는데 단순 욕설도 fuck 수준을 넘어 게이라고 욕하거나 여성 관객한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기도 했다. 이게 얼마나 개막장이었냐면 한번은 경기가 끝나고 주차장에 가니 팬들이 '''여긴 경비도 없어'''라며 섬뜩하게 위협하는 말을 하려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스토리도 WWF나 WCW에선 상상조차 못할 과격한 스토리가 많았고, 배신에 배신이 계속되는 스토리에 그 누구도 믿을수 없는 긴장감이 매니아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지금이야 항복하면 탭을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탭아웃 개념을 이종격투기에서 프로레슬링으로 처음 접목시킨 것이 바로 ECW의 태즈였다.[9]
ECW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단체는 ROH와 CZW인데, ROH가 ECW의 테크니컬한 면을 이어받았다면, CZW는 ECW의 명물인 하드코어의 '''상위호환'''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의 막장 하드코어를 보여준다. 하지만 초창기 때나 그렇고 CZW의 하드코어는 점차 ECW를 훨씬 넘어서 데스 매치의 단계에 이른다.
프로레슬링 황금기가 끝나고 WCW가 파산하자 ECW도 전술한 2000년 방영권 결렬 후 같이 휘청이더니 2001년에 파산의 위기에서 WWF가 인수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에 ECW 출신 선수들은 WWF로 가거나, 메이저 리그 레슬링 및 TNA 등의 신생 단체로 이적하게 된다.
2. WWE의 위클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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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CW. 한때 WWE의 3대 브랜드로 매주 방송되었던 TV 쇼. 2005년 WWE에서는 자신들이 사들인 ECW의 1회성 이벤트 PPV인 ECW 원 나잇 스탠드(2005)를 기획했는데, 이게 대박을 치자 빈스 맥마흔의 기획에 따라 아예 ECW를 WWE 산하의 새로운 브랜드로 부활시켰다.
본래는 오리지널 ECW의 체제를 유지하려 했으나, WWE가 PG 등급에 맞춰 폭력적인 요소를 다 배제하면서 이전의 ECW와는 달리 하드코어 요소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간혹 하드코어 경기랍시고 했지만 거의 철제 쓰레기통만 사용하는 등 기존 팬들에겐 싱거웠다. 또한 처음에는 구 ECW 선수들도 꽤 영입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짤라버리거나 스스로 그만두었고, 마지막 ECW 선수인 타미 드리머도 결국은 자버 노릇을 하다가 은퇴했으며, 결정적으로 기존의 ECW 팬들이 우려했듯 빈스 맥마흔이 '''기존의 ECW 레슬링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초반엔 그나마 세트라도 옛날 ECW 삘이 남아 있었지만 스맥다운 녹화 전에 짬내서 녹화하는 체제였다가 WWE가 HD 방송으로 전향하면서 세트를 바꾸면서 해머스타인 블룸같은 독특한 경기장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RAW나 스맥다운과 비슷한 분위기의 세트/경기장에서 쇼를 진행하게 되면서 결국 이름만 따 온 상황이 되었다.[10] 결국 이 WWECW는 Extream Championship Wrestling 이전의 Eastern Championship Wrestling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 쇼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건 WWE 내에서 신인 양성 혹은 미드카더에게 도약의 기회를 준 쇼였다.[11] 일단 WWE에 신인이 들어오면 ECW에서 데뷔해 실전을 치루면서 경험을 차차 쌓았다고 볼 수 있는데, ECW 드래프트를 통해 메인 무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여왔던 선수 중에는 CM 펑크, 미즈, 존 모리슨, 셰이머스, 코피 킹스턴 등이 있었으며[12] 2019년 11월에 CM 펑크가 WWE의 새 프로그램 'WWE 백스테이지' 방송에서 깜짝 등장하며 5년만에 WWE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13] 2020년 1월에 존 모리슨이 스맥다운 라이브를 통해 8년만에 WWE 복귀를 하게 되면서 '''5명의 선수들이 WWE로 다시 뭉치게 되었다.'''
그러나 신인들이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단 장점은 역으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나온다는 단점이 되는데, ECW에서 좋은 신인 다 키워놓으면 드래프트를 통해 RAW나 스맥다운으로 빠져나가는 케이스도 수두룩했고, ECW 독자 PPV였던 디셈버 투 디스멤버가 급조 대진표, 구 ECW 선수들에 대한 푸대접으로 욕을 먹으며 최악의 PPV에 등극하는 등 2006년 몇 달여를 제외하면 시청률도 계속 부진했으며, 2009년에 이르러서는 눈에 띄는 선수들이 확연하게 줄기 시작하여 스맥다운과 선수 로스터를 공유하는 지경이 되어 ECW 태그팀 챔피언쉽이나 ECW 텔레비전 챔피언십같은 새로운 챔피언 벨트를 신설할 수 없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결국 2010년 2월 2일자 WWE ECW에서 빈스 맥마흔 회장이 "ECW가 3주 후 공식 폐지된다."[14] 고 선언했다. 그렇게 2010년 2월 16일 193번째 쇼를 마지막으로 폐지됐으며, 이 마지막 쇼에서 에제키엘 잭슨이 최장기간 ECW 챔피언이었던 크리스찬을 꺾고 ECW 챔피언에 올랐지만 ECW 타이틀의 폐지로 인해 에제키엘 잭슨은 3분 ECW 챔피언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레슬링 팬들은 "그나마 WWECW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크리스찬의 이미지를 구겨놓았다." 며 많은 항의의 목소리를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ECW 챔피언이 된 이지키엘 잭슨은 그 후 스맥다운으로 이적해 딱 한 번 모습을 보인 뒤 스토리 부재와 부상으로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팬들에게 '''대형먹튀''' 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듣게 되었다.[15]
ECW가 폐지된 후 2010년 2월 23일부터는 WWE NXT가 이 시간대에 방영된다.
2006 독일 월드컵 무렵에 시작한 쇼가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치러지기도 전에 막을 내렸다. ECW 챔피언 타이틀도 처음에는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WWE 챔피언십/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과 동급의 강력한 위상으로 만들려고 했으나[16] 기본적으로 WWE가 아닌 WWE에 흡수합병된 WCW, ECW에서 유래된 타이틀이므로 WWE U.S 챔피언십,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과 함께 트리플크라운/그랜드슬램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뒤로 갈수록 WWE U.S 챔피언십/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등의 2선 벨트들보다 조금 나은 위상만 겨우 유지하다가 끝났다.
한국에서도 2006~2009년까지 엑스포츠와 tvN에서 방영되었다. WWE팬 빼고 시청자들 대다수는 "이걸 tvN에서 방영했었어?"라고 어리둥절한다.
2.1. 특집 에피소드
2006년 6월 13일 : 첫 방송 특집 (2.9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06년 12월 26일 : 베스트 특집 (1.4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07년 12월 25일 : 베스트 특집 (1.1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08년 5월 6일 : 100회 특집 (1.0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08년 12월 23일 : 베스트 특집 (1.2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09년 12월 22일 : 베스트 특집 (1.2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2010년 2월 16일 : 최종회 특집 (1.1 레이팅의 시청률 기록)
3. 추억팔이
WWE의 원나잇 스탠드 못지않게 추억팔이를 많이 당했다. WWECW가 없어진 뒤 TNA에서 자유계약 상태였던 ECW 멤버들을 긁어모아 추억팔이 PPV인 '하드코어 저스티스'를 했지만 흥행은 말그대로 시망.[17] 유럽쪽에서도 ECW 추억팔이식 이벤트가 계속해서 열렸지만 성공했다고 평가받은 이벤트는 단 한개도 없다. 이에 대해서 ECW의 수장이었던 폴 헤이먼은 'ECW 표기는 아무 의미 없으며 ECW 브랜드는 마음만 먹으면 개나소나 쓸수 있다. 과거를 베끼는 것은 새롭거나 오리지널이 될수 없다. ECW를 팔아먹느니 새로운 걸 찾아봐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차라리 WWE 가 ECW에 합병좋았을것
일단 2012년부터 ECW 콜렉션 DVD가 발매되고 있는데 2015년 6월까지 3 편의 DVD가 나왔다.
4. 오리지널 ECW 시절 프로그램,PPV, 챔피언들
4.1. 프로그램
- 하드코어 TV (1993~2000) - ECW의 경기,인터뷰 등을 녹화해서 방송해주던 프로그램.
- ECW on TNN (1999~2000) - ECW 최초의 주간 TV 쇼.
4.2. PPV
ECW/역대 수퍼카드 및 PPV
- 노멤버 투 리멤버 (1993~2000)
- 하드코어 헤븐 (1994~1995 ,1997, 1999~2000)
- 히트 웨이브 (1994~2000)
- 레슬팔루자 (1995, 1997~1998, 2000)
- 디셈버 투 디스멤버 (1995, 2006)
- 베얼리 리걸 (1997)[18]
- 리빙 덴저러슬리 (1998~2000)
- 길티 애즈 차지드 (1999~2001)
- 애너키 룰즈 (1999~2000)
- 매서커 온 34th 스트릿 (2000)
4.3. 챔피언 타이틀 목록
-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992 ~ 2001)
- E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1992 ~ 2001)
- E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
- FTW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999-2000) [19]
- ECW 메릴랜드 챔피언십
- ECW 펜실베이니아 챔피언십
5. 오리지널 ECW를 거친 인물들
5.1. 남성 로스터
- 911#s-6
- 뉴 잭
- 다나카 마사토
- 더들리 보이즈
- 도리 펑크 Jr
- 도잉크 더 클라운
- 딘 말렌코[20]
- 라이노
- 랍 밴 댐
- 랜스 스톰
- 레이 미스테리오
- 레이븐
- 로드킬
- 리틀 귀도[21]
- 릭 루드[22]
- 릭 스타이너
- 마이크 어썸[23]
- 마이키 윕렉
- 무스타파
- 뱀 뱀 비글로우
- 볼스 마호니
- 브라이언 필먼[24]
- 블루 미니
- 사부
- 싸이코시스
- 샌드맨#s-6
- 셰인 더글라스
- 스캇 스타이너
- 스티브 오스틴
- 스티브 윌리엄스[25]
- 스티비 리차드
- 스티브 코리노
- 스파이크 더들리
- 시드 비셔스
- 에디 게레로
- 액슬 로튼
-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 조이 스타일스 - 아나운서
- 지미 스누카
- 저스틴 크레더블
- 캑터스 잭
- 케빈 설리반
- 크리스 캔디도
- 크리스 벤와
- 크리스 제리코
- 타미 드리머
- 타지리
- 태즈
- 테리 펑크
- 토니 마말룩
- 투 콜드 스콜피오
- 티토 산타나
- 페리 새턴[26]
- 퍼블릭 에너미
- 폴 헤이먼
- 하야부사#s-9.1
- 하쿠시
5.2. 여성 로스터
- 니콜 배스 - WWF에서 세이블의 보디가드를 맡았던 세계 최장신(188cm) 여성 보디빌더.
- 던 마리
- 레지 베넷
- 루나 버숀
- 크리스티나 라움
- 말리아 호사카
- 미스 콘제니얼리티
- 미시 하이엇
- 뷸라 맥길리커티[27]
- 센세이셔널 셰리 -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우먼 - 크리스 벤와의 부인
- 재즈
- 조지 - WCW의 골저스 조지
- 태미 린 씻치
- 프랜신 푸르니에
6.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 쟈니 핫바디 -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1993년 4월 3일 하드코어 TV에서 크리스 캔디도와 함께 토니 스텐슨 & 래리 윈터스를 이기고 E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마이키 윕렉 - 1995년 10월 28일 라이브 이벤트에서 샌드맨을 이기고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사부 - 1995년 2월 4일 더블 테이블즈에서 태즈매니악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자니 그런지 &로코 락)을 이기고 E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 태즈#s-2 - 1999년 1월 10일 길티 애즈 차지드에서 셰인 더들라스를 이기고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달성.
[1] 원래 ECW는 NWA 산하 단체였는데 폴 헤이먼이 당시 ECW 챔피언이었던 셰인 더글라스와 짜고 NWA를 물먹인 뒤 탈퇴하고 단체명도 우리가 잘 아는 Extreme Championship Wrestling으로 바꾼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원조격인 사건이었다.[2] 단, 선혈이 낭자한 장면이나 과격한 폭력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하드코어 경기는 비추다. 과격한 폭력성을 내포한 경기가 대부분인데다 자상으로 인한 출혈이 낭자한 경기가 꽤 된다. '''철조망이나 공업용 스테이플러까지 등장한다.'''[3] 프로레슬링이란 종목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종목이기도 하다. 충격을 완화하는 글러브를 끼고하는 복싱이나, 보호패드 같은 장비를 착용하는 미식축구와는 달리 프로레슬링은 맨몸으로 모든 가격을 막아내야 한다. 더구나 ECW같은 과격하고 날카롭거나 딱딱하고 단단한 흉기들이 동원되는 경기라면 선수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다.[4] 미국 남부의 프로레슬링 단체. 크리스 제리코, 케인 등이 몸 담았었던 나름대로 유명한 단체이다.[5] 말을 잘하고 다혈질인 걸로 유명하다. SMW가 없어진 뒤에는 2000년대 초반의 OVW를 운영하기도 했다. 다만 OVW 제휴 해제 과정에서 좀 안좋게 끝나서 마지막 OVW계 선수들과 빈스와는 사이가 안좋은 편. 존 시나, 랜디 오턴, 데이브 바티스타 등의 선수가 짐 코넷이 운영하던 OVW에서 활약했지만 바티스타와는 사이가 안 좋다. 바티스타는 자서전에서 OVW 시절에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고 깠고, 짐 코넷은 덩치와 힘만 그럴 듯했지 게으르고 적극성도 없고 암 드래그나 헤드락도 제대로 못하던 얼간이가 기껏 프로레슬링을 할 수 있게 가르쳐놨더니 WWE로 가서 트리플 H와 친구 먹고 나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길러줬던 OVW를 깐다고 폭풍 디스한다. WWE가 OVW와 제휴 관계를 끊을 때 좀 안 좋게 끝났고, 짐 코넷은 존 라우리나이티스를 비롯한 WWE 임직원들을 깠는데, 바티스타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OVW를 깐다고 코넷이 주장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말.[6] 다만 실제로는 경쟁자들끼리 신경전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수장인 폴 헤이먼은 타미 드리머에게 원한을 사서 드리머가 헤이먼을 총으로 쏴 죽일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자세한건 타미 드리머 항목 참조.[7] 초기에는 The Nashville Network란 이름의 컨츄리 뮤직 전문 채널로 시작했다가 점차적으로 일반 채널로 전환했다.[8] 이때 ECW의 방영권을 가지고 있었던 TNN은 전국적인 확장을 노리기 위해 돈이 되는 WWF와 계약을 체결한 게 결정타로 작용한 것이다. 그 댓가로 WWF RAW는 USA 네트워크를 버려야 했으나, 2005년 10월에 USA 네트워크로 되돌아온다.[9] 그전까진 심판에게 항복 의사를 표할때 말로 항복을 외치거나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알렸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이전 경기 영상들을 보면 서브미션에 걸린 선수가 바닥을 마구 치는 데도 항복패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ECW 이후 서브미션 항복=탭아웃이란 공식이 정식화되었다.[10] 고전 ECW 팬들의 지나치게 호전적인 태도도 한몫 했다. WWE 선수들이 나올 때마다 폭풍야유를 보내는 것 정도는 포장으로 넘긴다 해도 ECW 원 나잇 스탠드(2006) 존 시나 VS 랍 밴 댐의 반응 때문에 WWE 팬들은 ECW는 정신나간 집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직전까지 활발하게 진행되던 ECW와 RAW/스맥다운의 직접적 교류도 점차 흐지부지됐다.[11]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매트 하디와 마크 헨리 그리고 크리스찬이다. 매트 하디는 이전까지 겨우 U.S 챔피언을 한 번 따내거나 맨날 태그팀 전선에서만 겉도는 평범한 미드카더였으나 타이틀 획득 후 기세를 타 아예 ECW의 탑 페이스가 되었고, 마크 헨리 역시 첫 월드 타이틀을 따내며 탑 힐로서 중요한 활약을 해주었다. 특히 크리스찬은 최장기간 ECW 챔피언 자리를 유지하며 주목받지 못한 미드카더들과 새로 갓 데뷔한 신인들과 좋은 퀄리티의 경기를 하며 호평을 받았다.[12] 이후에 존 모리슨은 2011년 11월에 계약이 만료되어 퇴사하였으며 CM 펑크는 2014년 로얄럼블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당한 대우로 인해 무단 탈단을 하며 WWE와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13] 하지만 WWE와의 계약이 아닌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FOX 방송사와의 계약이기 때문에 선수 복귀는 아니며 특별 기고자 및 분석가 역할로 출연할 예정이다.[14] WWE ECW가 끝나면 같은 시간대에 새로운 쇼가 들어온다고 발표했으며, 그 쇼가 바로 NXT 브랜드이다.[15] 다만 이후 잭슨은 11년도에 복귀해 넥서스의 파생 스테이블인 더 코어의 일원으로 비중을 차지하고 턴페이스 후에 한 때 존 시나를 상대로 연승하며 강력한 모습을 보이던 웨이드 바렛을 꺾고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이전의 푸쉬를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강력한 모습에 비해 그리 큰 반응을 얻진 못했고 가지고 있던 타이틀도 2개월만인 8월 스맥다운을 통해 코디 로즈에게 넘겨줬다.[16] WWE 챔피언 존 시나에게 도전할 때 랍 밴 댐은 자신이 챔피언이 된다면 WWE 타이틀을 EC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로 쓰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WWE 챔피언에 등극한 랍 밴 댐에게 E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라며 벨트를 부활시켜 수여했다. 빅 쇼가 ECW 챔피언이 된 후 언더테이커, 케인, 바티스타, 릭 플레어 등 WWE 내에서 위상이 높은 선수들을 ECW에 출연시켜 타이틀에 도전하게 했는데, 릭 플레어는 빅 쇼와 붙기 전에 반드시 ECW 챔피언에 등극해서 개인 통산 17회 월드 챔피언이 되겠다는 프로모를 선보였다. WWE 사이버 선데이(2006)에선 WWE 챔피언십,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ECW 챔피언십 세 벨트 중 팬들의 선택을 받은 타이틀을 두고 WWE 챔피언 존 시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부커 T, ECW 챔피언 빅 쇼가 격돌해(세 타이틀 중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이 걸렸고, 부커 T가 방어했다.) 동급의 위상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언더테이커가 30인 WWE 로얄럼블(2007)에서 우승한 해에는 WWE 챔피언십,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ECW 챔피언십 중에 선택해서 도전할 수 있다는 각본을 넣어서, 언더테이커가 세 명의 챔피언과 대면하는 장면도 있었다.[17] 하드코어 저스티스 PPV 자체는 살아남았다가 TNA가 망테크를 타면서 폐지됐다.[18] WWE가 2019년 11월말 상표권 등록 신청.[19] WWE 밀리언 달러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비공식 타이틀. 태즈 전용 타이틀. 2020년 AEW에서 부활한다. 애초에 태즈에게 소유권이 있기에 단체에 상관없이 사용 가능[20] 크리스 벤와와 더불어 테크니컬 레슬러 중 한명이었고, 훗날 벤와와 같이 릭 플레어가 수장으로 있던 '포 호스맨(Four Horseman)'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벤와, 에디 게레로, 그리고 페리 새턴과 함께 WWF로 이적한 4인방의 멤버가 된다.[21] WWE의 눈지오[22] WWF시절 'Ravishing(매혹적인) 릭 루드'란 링네임으로 활약했으며 링 네임 그대로 여성들이 혹하고 갈 몸짱이었다. 거의 보디빌더급 수준의 몸을 갖고 있었던 인물.[23] 언더테이커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레슬러로 파워무브는 기본이고 하이 플라잉도 가능했다.[24]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태그팀으로 활동했다.[25] 위의 스티브 오스틴이 개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인물로서 텍사스 대학교 미식축구팀에서 활동했으며 '닥터 데스'란 링네임으로 활약했다.[26] 이후 WCW로 이적한 후,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그리고 딘 말렌코와 더불어 WWF로 이적한 4인방의 멤버가 된다.[27] 타미 드리머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