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스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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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은[1] 1921년부터 1946년까지 오늘날의 요르단 지역을 다스린 영국의 자치국인데, 영국법상으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였지만, 실제로는 하심 가문이 이끄는 이슬람교도 자치정부의 영역이었다.
2. 역사
1915년 1월 부터 1916년 3월 동안 아랍의 정치인 알리 빈 후세인(Ali of Hejaz)과 영국의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Henry McMahon)은 당시 레반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대신 통일 아랍 국가를 건설할 것을 협상하였다. 이것을 '후세인-맥마흔 서한(McMahon–Hussein Correspondence)'이라고 한다.
서한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받은 알리 반 후세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대를 조직하고, 영국군과 연합하여 레반트 지역에 주둔하던 오스만 군을 격퇴하였다. 이후 영국군은 오스만 제국과의 완충지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레반트 지역을 장악하였다. 1920년 4월 25일, 국제연맹은 요르단강 유역을 영국이 다스리는 위임통치령으로 설정했으니, '''영국령 팔레스타인'''이 세계 지도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1921년 영국군은 하심 가문과 협상하여 요르단강의 동쪽 지역에서 하심 가문의 압둘라 1세(Abdullah I bin al-Hussein,1882~1951)를 군주[2] 로 하는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이 성립되었다. 트란스요르단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지만, 국방권과 외교권은 여전히 영국에게 위임되어 있었다.
1922년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승인하고, 이에 따라 요르단강의 서쪽 지역은 영국의 직할구로서 이슈브(유대교도 자치정부)의 영역이 되었다. 반면에 요르단강의 동쪽 지역은 하심 가문이 이끄는 토후국(이슬람교도 자치정부)의 영역이 되었다. 1928년 2월에는 토후국에서 왕국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1946년 5월 25일, 트란스요르단은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여 요르단이 되었다. 또한 트란스요르단의 군주였던 압둘라 1세가 요르단의 초대 국왕이 되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범위는 공식적으로 요르단강의 서쪽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3. 참고 문헌
- 홍미정,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와 시온주의프로젝트", 2015
- 윤용수,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대중동 언어 정책과 그 영향 - 요르단의 아랍어화를 중심으로-",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