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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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주황색 부분이 위임통치령이다.
한국어
위임통치(委任統治)
영어
Mandate
1. 개요
2. 역사
3. 관련 문서


1. 개요


위임통치령이란, 국제연맹이 해당 통치 지역의 복지, 개발을 위해 위임국에게 위탁한 지역을 말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실행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거의 해체되었으나, 일부 위임통치령은 해체되지 않고 신탁통치령이 되기도 했다.

2. 역사


신탁통치 제도 이전에 최초의 이와 비슷한 위임통치 제도를 실행한 기구가 국제연맹이다. 이는 전적으로 우드로 윌슨의 아이디어였는데, '''"패전국의 식민지를 강대국이 먹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 장기적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라는 논리였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식민지 획득의 수혜자가 아닌 미국으로서는 괜히 영국, 프랑스가 크는 게 미덥지 않았다는 이유가 더 크다. 하지만 수임국을 둔다는 점에서 사실상 식민지와 다르지 않은 제도였기에, 영국, 프랑스, 일본 등도 동의하면서 이 제도가 성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독립이 이뤄진 건 1960년대였다.
위임통치국은 독립 계획 속도에 따라 A형, B형, C형으로 나뉘었다.
A형의 경우 영국에게는 메소포타미아(이라크)와 팔레스타인, 프랑스에게는 시리아가 돌아갔고, 조기 독립을 통해 국제연맹에 가입시킨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라크를 제외하고는 끝내 독립되지 못했고, 이라크도 사실상 영국의 꼭두각시 왕국이었다.
B형의 경우 벨기에의 르완다, 부룬디, 프랑스의 레바논과 영국 프랑스가 나눠먹은 카메룬, 토고가 있었다(영국령 토고는 후일 가나로 독립).
C형의 경우는 미크로네시아와 서남아프리카(나미비아)로 섬을 제외한 마리아나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 본래 독일 제국의 것이었으나 일본이 위임했고(남양군도)[1], 나미비아[2]뉴기니[3], 나우루, 서사모아 등은 영국이 위임했다.[4]
후에 신탁통치로 계승된 이 제도는 점진적인 독립이란 성과를 결국엔 얻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보듯이 열강들의 나눠먹기를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단점 역시 가지고 있었다.

3. 관련 문서


[1]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자오저우(교주)만도 독일 것을 일본이 얻어낸 것이지만, 1922년 중-일 양국 협정에 의해 중국에 반환되었다. 다만 현지의 철도나 광산 등의 경제적 권익은 일본이 계속 장악하였고 중일전쟁 당시 '재'점령되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서 중국 최초의 근대적 시민운동으로 평가되는 1919년 5.4 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산둥의 권익을 노리던 일본에 저항하려던 것이었다.[2] 정확히 말하면 나미비아 등은 남아프리카(뒷날의 남아프리카 공화국)가, 태평양의 섬들은 뉴질랜드가 위임했다.[3] 뉴기니 섬 북동부로 남동부는 "파푸아"라고 불렀다. 파푸아뉴기니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웃기는 건 정작 파푸아는 영국령 호주의 외부 영토라는 관계로 대표자를 파견할 수 없었는데, 북부의 뉴기니는 위임통치령이란 성격 때문에 대표 파견이 가능했다(...). 뭐, 지금은 한나라가 되었으니 상관이 없지만.[4] 오늘날에는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케롤라인 제도)이 독립하고 나머지는 미국령 북마리아나 제도로 되어있다. 뉴기니 섬은 조각이 났고, 나우루와 서사모아는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