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1. 소개
아랍어: عمّان
영어: Amman
요르단의 수도이다. 국토의 서북부에 있으며 1,680km2의 면적에 인구는 400만 명(2016)이다.
2. 자연
로마처럼 일곱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라고 하며, 해발고도 700~1000m의 고원성 지대에 있다. 건조하여 연강수량은 245mm에 불과하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더운 스텝 기후(BSh)로 분류된단다.
3. 역사
[image]
알레포 시타델에 버금가는 역사를 지닌 암만 시타델
[image]
암만 시타델의 헤라클레스 신전
[image]
시타델 우마이야 사원의 입구 유구
기원전 10세기부터 성서에 등장하는 암몬족의 나라가 있었는데, 암몬 민족의 중심지였던 라바트 암몬이 다름아닌 오늘날 암만이다. 헬레니즘-로마 시기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이곳을 지배하던 마케도니아인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별명을 따서 필라델피아로 불렸다. 당시 지어진 헤라클레스 신전의 대리석 거상이 유명했는데, 현재 그 손 일부만이 남아있다. 로마 제국기인 161년에는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지어지는 등 나름 규모있는 도시로 유지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배후지로써 각광받았고, 모스크와 칼리파의 궁전, 시장, 저수조 등이 지어졌다. 그외에 암만-마다바의 요르단 북부는 우마이야 시대의 별궁 유적이 즐비하다.
다만 750년 우마이야 조의 멸망 이후 제국의 중심이 이라크로 옮겨가고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며 도시는 쇠퇴하였다. 기록에 등장한 경우도 베두인들 사이에서 '사막의 항구'로 불린 것 정도였다. 그러던 12세기 십자군 국가인 예루살렘 왕국령 울트레주르뎅에 귀속되었고 아만트 혹은 하만이라 불렸다. 1167년 장기 왕조의 아미르 시르쿠가 템플기사단이 지키던 암만을 점령하였다. 다마 십자군 시기부터 아이유브, 맘루크 시대까지 요르단 지역의 중심은 중부의 카라크로 옮겨졌고 군사적 중요성도 북쪽의 아즐룬 성채에 밀렸으며 행정에 있어서도 14세기 아미르 시르기트미쉬 가문의 지배를 제외하면 남쪽 히스반에 밀렸다.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체르케스인 수천 명이 사는 이름없는 촌락에 불과했다. 그러나 철도가 개통되고,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며 1921년에 압둘라 1세가 암만을 트란스요르단 에미르국(현 요르단의 전신)의 수도로 삼았지만, 1930년 기준으로 인구는 1만에 불과했다. 그러다 요르단 왕국이 건국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주로 인구가 폭증했다. 2010년 시점으로 인구 284만 명이었으나 시리아 내전에 따른 시리아 난민의 입국으로 인구가 더 폭증해 400만에 이르렀다. 따라서 3천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토박이가 거의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4. 여담
- 암만의 아랍어 표기(عمان)는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 왕국인 오만과 똑같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모음표시로 구별한다고 한다. 직접 구두로 말할 때는 표준 아랍어로는 구별이 가능하긴 하지만 매우 어렵고, 마그레브 방언으로는 방언 자체가 모음이 거의 없어 구별이 불가능한 정도이다.
- 대표관문인 퀸 알리아 국제공항이 이 도시에 위치한다.
- 2014년 한국의 드라마 미생(드라마)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