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루이스

 

'''포트루이스 (모리셔스)'''
'''Port Louis'''

1. 개요
2. 역사
3. 산업
4. 관광
5. 교통
6. 여담


1. 개요


모리셔스의 수도이다. 이름은 프랑스 식민 제국 시절 루이 15세에서 따왔다. 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137,608명이다.

2. 역사


주변에 모카 산맥 때문에 강풍과 사이클론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장점 덕분에 1638년부터 항구로 쓰였으며, 1736년부터는 프랑스의 모리셔스 식민 통치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모리셔스는 원래 무인도였으나 프랑스는 이 지역에 흑인 노예들을 데려다 사탕수수 농사를 시켰으며, 포트 루이스는 해상 교통 중심지이자 모리셔스 설탕 수출 창고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포트 루이스는 해상 교통 요충지로서의 위상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 영국에서 노예 무역을 금지한 상황에서 흑인 노예들이 충원되지 못해 설탕 농장이 타격을 받자 중국인, 인도인 노동자들을 노예 계약을 맺어 데려왔다. 중국인, 인도인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모리셔스 로티’ [1] 등 특유의 길거리 음식이 발달했으며 시내에는 힌두교 사원이 많으며 모스크도 있다고 한다.

3. 산업


중국계나 유럽계가 잡고 있다. 포트 루이스 항에서 보이는 고층 건물이 거의 다 중국계 건물이며, 식당가나 카지노도 중국인이나 백인들이 잡고 있다. 그나마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곳은 맥도날드 뒤로 보이는 5일장 빈민촌으로, 마다가스카르의 안타나나리보와 비슷한 풍경이다.

4. 관광


우산 거리, 항구, 과거 유럽계 건물들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관광 시간도 하루면 충분하다.

5. 교통


포트루이스와 일대를 잇는 노면전차 메트로 익스프레스가 있다.

6. 여담


모리셔스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공항인 SSR 국제 공항과는 섬 정 반대편에 위치해있어서 주로 해변 리조트를 찾아온 관광객 입장에서 무시하게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다만 프랑스 식민 시절 나름 번영했던 도시였던 만큼 근대 유럽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 몇 개가 남아있다. 영어가 잘 통하는 해변 리조트들과 다르게 수도 포트루이스는 관광객이 드물다보니 관광객 입장에서는 주민들과 프랑스어로 소통해야 한다.
동남아 느낌 나는 타지보다 월등히 개발되었다. 이유는 외국인들 때문이다.

[1] 부리또마냥 평평한 빵을 말아 그 안에 커리와 고기, 야채를 담은 요리. 흥미롭게도 남아메리카 대륙의 수리남이나 트리니다드 토바고, 가이아나, 과달루페 등에서 먹는 인도 요리와 흡사하다. 거리는 많이 다르지만 열대 지방이라는 공통점 때문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