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카발리
1. 개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페라가 개발된 초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입지을 더욱 끌어올린 인물으로 평생동안 40편에 달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2. 생애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이끌던 성가대의 단원으로 음악가 경력을 시작했다. 그후 산 조반니 에 파올로 대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재직했고, 베네치아의 오페라단 설립을 돕다가 1639년 첫 번째 오페라인 《테티와 펠레오의 결혼''Le nozze di Teti e di Peleo''》를 작곡하였다.
1660년에는 루이 14세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오페라를 위촉받을 정도로 이미 유럽에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프랑스 궁정에서는 카발리의 오페라인 《세르세''Il Xerse''》가 공연되었고, 발레음악 담당은 유명한 장 바티스트 륄리가 맡았다.
3. 작품세계
카발리는 몬테베르디의 뒤를 잇는 2세대 오페라 음악가이기도 하고, 그가 작곡한 곡에 두드러지는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선율 역시 유명하다. 위의 두 아리아만 들어봐도, 카발리가 '정서론'을 음악에 잘 표현한 바로크 작곡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는 몇몇 아리아에 기악 반주를 넣어 아리아를 풍성하게 했다. 카발리는 오페라 중간중간에 연주되는 리토르넬로 부분과 아리아의 시작부분이 동일한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데, 이것은 목소리와 악기가 음악적으로 동등한 위치라는, 카발리 자신의 주장을 보여주는 나름의 장치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공동으로 음악을 구성한다는 방향의 첫걸음이었다.
레치타티보를 보자면 몬테베르디의 레치타티보만큼 열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변함없는 힘찬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카발리는 e단조의 피카르디 3도로 끝난 등장인물 뒤에 뜬금없이 다음 등장인물이 C장조로 레치타티보를 부르는 식의 효과를 넣었는데,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는 등장인물들의 심정상태, 더 나아가 무대 앞의 관객들에게도 강한 긴장을 주기에 적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