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톰발바예
1. 개요
차드의 정치인이며 초대, 2대, 3대 대통령이다.(1960~1975) 쿠데타로 처형되기 전까지 약 15년간 공식적으로[4] 차드 공화국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2. 생애
1918년 6월 15일 생으로 프랑스령 차드 남부의 모옌 샤리 주에서 태어났다. 차드 남부지역 샤리 주에서 사라 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나름 고귀한 출신이다. 젊은 시절 모국인 차드의 열악한 교육시설로 그는 콩고 공화국의 수도였던 브라자빌로 유학을 갔고 결국에 교사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동안에는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였던 친나치 성향의 비시 프랑스 정부에 대항하며 자유 프랑스를 지원하였다.그는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인이였다.
개명으로 1973년부터 총살직전까지 은카르타 톰발바예(N'carta Tombalbaye)라고 불렸다. 그는 젊은 시절 교사였으며 무역연맹 운동가로 점점 정계에 입문하다 결국 차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 총리였고 당시 여당이던 차드 진보당의 당수로서 톰발바예는 1960년 8월 11일 독립 이후 대통령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독재자였으며 1975년 쿠데타로 인한 처형로 인해 그의 15년간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3. 사망
이 시기에 아프리카 대륙에 가뭄이 악화됐기 때문에 경제침체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드 국민들은 목화 생산관련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요했다. 결국 기독교계 남부에서의 톰발바예 지지율은 급락했고 급기야 톰발바예는 군대 내 진급과 강등을 제멋대로 처리하여 많은 군인들의 불만은 커져만갔다. 결국에는 불만이 고조될대로 고조된 1975년 4월 13일 반역죄로 여러 군 지도자들에 의해서 체포되었고 이것을 필두로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 쿠데타를 일으켜 톰발바예에게 총살형 집행 후 성공적으로 쿠데타를 마치고 쿠데타를 주도하던 전 육군참모총장이자 톰발바예의 정적이던 펠릭스 말룸 장군[5] 과 노엘 오딩가르를 주축으로 새로운 내각 수반을 내세우며 그의 독재정권은 1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