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이에슈티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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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3년 8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미군 육군 항공대 소속 B-24 편대가 독일과 추축국의 석유 생산 방해를 위해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공습한 사건을 말한다.
2. 작전 수립
미군이 공습을 가했던 지역 플로에에슈티(Ploieşti) 루마니아와 독일의 대표적인 석유 생산지였다. 플로이에슈티에서 나는 석유가 추축국의 석유 소모량 30%를 채워주는 만큼 이 지역의 유전은 매우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었고, 이게 거슬렸던 미군은 이곳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기로 결정한다.
공습을 결정한 미군은 이제 공습에 동원할 항공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초 미군은 폭장량 좋고 성능 좋은 B-17을 고려했으나, 당시 미 육군 항공대가 주둔해있던 리비아에서부터 루마니아까지는 너무 멀고도 멀었던 탓에, 결국 미군은 기본적인 성능은 B-17보다 조금 딸리지만 항속거리 하나는 확실한 B-24를 선택한다.
3. 플로이에슈티로 향하다
1943년 8월 1일 새벽, 178기의 B-24가 리비아의 벵가지 미 육군 항공대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이들은 워낙에 폭탄과 연료를 빡빡하게 실은 탓에 이륙 난이도가 무척이나 어려웠고, 결국 이륙 과정에서 1기가 추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은 계속 진행되어서, 나머지 177기의 B-24들은 아드리아 해를 건너 루마니아로 날아갔다.
하지만 아드리안 해를 건너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아드리안 해를 건너던 도중, 갑자기 선도 편대에 속한 1기의 B-24가 뚜렷한 이유 없이 바다로 추락한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B-24가 급히 하강해서 수색을 진행했으나, 안타깝게도 추락한 폭격기에서 생존자는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하강해서 수색을 진행했던 B-24는 연료와 폭탄의 무게 때문에 다시 편대가 있는 고도로 상승하지 못했고, 결국 리비아의 비행장으로 귀환하면서 공습에서 빠지게 된다. 그 외에도 8기 정도의 B-24가 이런저런 이유로 기지로 되돌아오거나 중간에 불시착했고, 결국 총합 10기의 B-24들이 플로이에슈티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작전에서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작전은 계속 진행되어야 했고, 그 사이 나머지 B-24들은 무전 침묵을 유지하면서 루마니아로 향했다.
이들은 루마니아로 향하면서 대공 레이더에 잡히지 않기 위해 저공비행(50미터 가량)을 유지하였으나 시실리부터 루마니아까지 배치된 독일 스파이와 대공 감시병에 보고되었으며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 유전에는 1급 경계태세가 발령되었다.
또한 인근에는 상시 대기된 독일, 루마니아 대편대가 있었으며, 이들은 미 항공대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4. 공습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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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런 역경을 견뎌내고 플로이에슈티에 도달한 B-24들은 즉시 공격을 개시한다. 이들은 급격히 고도를 낮추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유전 시설에 어마어마한 폭탄을 투하했고, 폭탄을 투하자마자 전속력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24는 플로이에슈티에 설치된 수많은 대공포와, 공습 소식을 듣고 급히 날아온 수많은 Bf109 와 I.A.R. 80 편대에게 맹렬히 공격당하기 시작했다.
폭격기 기총사수와 지상 대공포간의 사격 대결이 일어날 정도로 낮게 난 탓에 공중과 지상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비행기가 피격당해서 낙하산을 펼치기도 전에 추락사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독일 대공포대의 지옥 같은 화망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복수심에 불타는 루마니아 공군과 독일 공군의 요격에 노출되었으며 미군은 루마니아 상공을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독일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미군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고 후일 이 날을 '검은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5. 공습 이후
미국과 추축국 모두 큰 손실을 입었다.
우선 미군 항공대의 피해를 살펴보자면, 처음 비행장에서 출격한 177기의 B-24중 고작 88기만이 리비아로 살아 돌아왔다. 즉 미군은 한 차레의 공습으로 무려 89기의 폭격기를 잃은 것이다. 다만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손실한 89기 중 44기는 유전의 맹렬한 대공포화와 요격기들로 인해, 나머지 45기는 손상으로 인해 중간에 추락/불시착하거나 다른 지역에 착륙했다.[1]
승무원과 조종사 피해도 막심했다. 310명에 이르는 조종사와 폭격기 승무원들이 공중에서 사라졌고, 108명은 추축국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 78명은 중립국이었던 터키에 억류되었고, 4명은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게 확보되었다.
이런 막심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목표를 달성한 듯 싶었다. 플로이에슈티 유전의 45%가 공습으로 인해 마비된 것이다. 그러나 독일도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이전부터 전쟁수행에 필요한 석유의 90%를 담당하는 합성석유 공장이 폭격을 받을 시 행해질 후속조치를 미리 준비해놓은 상황이었으므로 예비시설에서 차질없이 석유생산을 이어나갔고, 파괴된 시설마저도 금세 복구되었으며 루마니아가 소련군에게 점령당하는 순간까지 유전시설은 이전과 다름없이 가동되었다. 독일이 실질적으로 심각한 연료부족문제를 겪게 된 건 루마니아가 소련군에게 넘어간 이후였다.
연합군은 작전이 실패라고 판단하여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 예를 들어서, 몇 기의 B-24는 당시 영국군 점령지역이었던 키프로스에 착륙하거나 중립국이었던 터키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