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타운젠드
1. 개요
피트 타운젠드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로 더 후의 기타리스트이다. 더 후의 리더이기도 하며, 더 후의 대부분의 곡은 피트 타운젠드가 작곡했다.
스펠링만 보고 '타운'''셴'''드'라고 읽는 경우가 있으나, s를 z로 발음하고 h는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타운'''젠'''드'가 맞다.
2. 어린 시절
피트 타운젠드는 영국 서런던의 치스윅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음악가 집안이였는데, 아버지는 재즈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었다.
타운젠드의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없었고 당시 유행하던 모험소설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또한 맨 섬이나 해변으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는데, 1956년에 여행을 가서 락 어라운드 클락이라는 영화를 보았고 락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액튼 카운티 문법 학교에 들어갔는데 큰 코때문에 자주 왕따를 당했고 이 일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때 외할머니가 싸구려 스페인 기타를 사주셨는데 그의 아버지가 코드를 몇개 알려주셨고 피트는 혼자 작곡하는법을 배웠다.[1]
친구인 존 엔트휘슬과 재즈그룹을 만들기도 했으나 락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트는 그룹의 드러머와 싸운계기로 그룹을 탈퇴한다.
이후 피트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힘들어서 음악학교와 디자인 학교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결국 디자인 학교인 일링 스쿨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행적은 '''더 후''' 항목 참고.
3. 음악적 특징
기타리스트로써는 성격답게 과격하고 공격적인 연주를 보여줬다. 특히 파워코드를 매우 자주 사용했고,[2] 제프 벡과 함께 기타 연주에 피드백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작곡가로서도 더 후의 대부분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처음의 거칠고 강렬한 앨범뿐만 아니라 뒤로 갈수록 실험적인 노래들을 선보였고, 'Baba O'reily'나 'Won't Get Fooled Again'같이 매우 세련된 노래도 작곡했다.
또한 가끔씩 직접보컬을 맡는 노래[3] 도 있었고, 로저와 같이 부르는 노래도 아주 많다. 백 보컬도 주로 했는데[4]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잘 불렀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5] 그래서 이제는 로저 달트리나 피트의 동생 사이먼이 피트의 백보컬 파트까지 부를때도 있다.
4. 퍼포먼스
존 엔트휘슬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도 그렇지만 피트 타운젠드는 다혈질 이였고, 거친 퍼포먼스를 자주 했다.
공연 도중에 실수로 기타가 천장에 부딪혀갖고 박살 났는데, 관중들이 환호하자 다음부터는 아예 기타를 모조리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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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특유의 윈드밀 이라던가, 점프를 하는 등 거칠고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자주 했다.
이런건 뒷 세대의 하드락, 헤비 메탈 밴드 등에게 퍼포먼스 쪽으로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5. 기타
- 성격은 더 후의 멤버들이 그렇듯이[7] 과격하고, 다혈질적이다.
- 어릴때 꿈은 기자였다.
- 조니 마에게 깁슨 레스폴을 줬고, 조니 마는 나중에 그걸 노엘 갤러거한테 빌려줬는데 노엘 갤러거가 난입한 관중이랑 싸우다 부숴버렸다(...). 참고로 피트 타운젠드가 조니 마에게 빌려주고 노엘 갤러거가 부숴버린 그 레스폴은 1960년 썬버스트 레스폴이라 안그래도 비싼 일반 깁슨 레스폴보다 몇배는 더 비싸다. 한화로 따지면 최소 1~2억원을 호가한다.
- 조니 마, 노엘 갤러거 같은 후배들과 친한데, 위의 기타를 준 일화라든가 노엘 갤러거와 같이 노동자 자선 공연을 하기도 했다.
-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은 소아성애자가 절대 아니고 아동학대를 진중하게 다루는 책을 쓰기 위해 봤을 뿐이라고 해명했고 로저 달트리를 비롯한 주변인들도 피트는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증언하여 풀려났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피트 타운젠드의 컴퓨터에서 아동 포르노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풀려난 것이다. 링크 그가 문제의 사이트에 접속하여 신용카드 결제를 한 기록은 있으나, 사진을 다운받은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인들의 증언이 통한 것도 그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수사가 진행 중임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한, 사전에 증거를 인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하드에서 이미지가 한 장이라도 발견되었다면 게리 글리터와 같은 말로를 맞았을 것이다.
2012년 그는 자서전인에서 영국 은행들이 소아성애자 커뮤니티의 수익을 올리는 데 공모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고 주장했다. 즉, 신용카드 결제 가능 여부만 확인한 것이지, 사진을 볼 의도는 없었기에 사진은 다운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무죄라는 것이다.
2012년 그는 자서전인
즉 무죄라는 것이다.
- 과거 TV 라이브 도중 키스 문이 드럼을 터뜨려 청력이 손상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이분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부수던 기타를 계속 부쉈으며, 심지어는 MC가 메고 있던 어쿠스틱 기타까지 박살내버렸다.
[1] 그래서 악보를 읽는법을 못배웠다[2] 이 때문에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는 리드 기타리스트보다는, 코드로 박자를 맞추는 리듬 기타리스트로서의 모습을 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3] A Legal Matter, Odorono, Our Love Was, I Can't Reach You, Sunrise, Going Mobile, I'm One 등등 수많은 곡들 [4] My generation, Substitute 등 매우 많은 곡들.[5] 다만 그럼에도 노래를 부를 때가 있는데, 젊은 시절에 비해서는 로저 달트리와 같이 목소리가 꽤 굵어졌다.[6] 사진 속 기타는 깁슨 SG이다[7] 존 엔트위슬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