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누웰레
Hainuwele
1. 개요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의 세람 섬에서 전해지는 농경신화의 주역. 코코넛 소녀라고도 알려져있다.
아돌프 엘레가르트 옌젠(Adolf Ellegard Jensen, 1899~1956)과 헤르만 니게마이어(Hermann Niggemeyer, 1908~2005)가 집필한 『하이누웰레 신화』[1] 에 의해 인도네시아 외 지역에도 그녀의 전승이 알려지게 되었다.
2. 전승
'하이누웰레' 라는 이름은 몰루카 제도의 언어로 ‘야자나무 가지’라는 뜻으로, 그녀는 야자나무의 꽃즙과 남자의 손가락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엉켜서 태어난 여자아이라고 한다.[2]
이리 태어난 하이누웰레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태어난 지 삼 일 만에 결혼할 수 있는 처녀로 성장했으며 변을 보면 도자기나 진주, 시리 등의 보물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신기한 재주를 가진 이 소녀는 마을에 마로 춤 축제가 열리자, 춤판의 한가운데 앉아 변을 보았고 나온 보물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시는 인간이 아직 낙원을 향유하고 있던 태고시대였고, 그녀가 나누어준 보물은 낯선 나라로부터 오랫동안 세람으로 들여오던 물건들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아홉번째 밤, 나선형 원의 한가운데 앉아 있던 하이누웰레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인간에게 일어난 첫번째 죽음이었다.
딸의 시신을 발견한 하이누웰레의 아버지는 시신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다시 땅속에 묻었다. 그러자 시신 조각이 묻힌 자리에서 그녀의 몸을 닮은 구근작물들이 생겨났다.
이후 그녀의 아버지는 하이누웰레의 두 팔을 가지고 사테네에게 갔다.[3] 사테네는 하이누웰레의 살해사건을 알게 된 후, 최초의 살인이 일어난 것에 분노해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났으니 이제 자신은 더이상 인간들과 함께 지상에 살 수 없으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죽음의 여행을 거쳐 죽음의 산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사테네는 춤추던 장소의 한 곳에 아홉 겹의 나선형 문을 만들어 세우게 하고, 하이누웰레의 두 팔을 들고 그 문을 통해 나오는 사람들을 한 대씩 쳤다. 사람들은 하이누웰레의 두 팔로 맞으면서 죽음의 표식을 받게 되었다.
아홉 겹 나선형 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다섯 씨족과 아홉 씨족의 두 종족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 인간들은 동물이나 정령이 되었다. 이들은 하이누웰레를 살해한 자로 지목되어 인간 세상에서 축출되었다.
하이누웰레를 살해한 죄로 인간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죽음과 탄생이라는 인간의 존재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세계는 명확히 분리되었다. 지도자였던 사테네는 죽음의 나라의 정령이 되어 인간 세상을 떠났다.
출처
3. 상세
하이누웰레 신화는 인간의 사체나 체내에서 재배식물이 생겨났다고 설명하며, 이런 류의 '최초의 살해 - 재배식물 발생 신화'라는 농경신화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멜라네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주로 열대지역에 폭넓게 유포되어 있다.
이들 문화층의 공통된 특징으로 신에 관한 독특한 관념을 꼽을 수 있다. 하이누웰레 신화의 집필자 중 하나인 옌젠은 하이누웰레의 살해와 환생을 뉴기니의 마린드 아님, 즉 족의 조상신 개념인 '데마신'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여기서 데마신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에게 유용한 작물들이 생겨났으며, 이때 데마신은 타살의 방식으로 신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최초의 농경민들은 데마로 지목된 소녀를 살해함으로써[4] 창조력이 부여된다고 생각했다. 이 최초의 살해가 의례의 형태로 폭넓게 행해지면서 가축의 공희나 머리사냥, 식인의 습속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때 데마신의 무대는 지상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문화층의 신화들에서는 우주기원신화나 창조신의 개념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보면 하이누웰레 신화는 성경으로 익히 잘 알려진 카인의 아벨 살해 신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최초의 죽음은 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 '''그로 인해 살인에 대한 대가가 부여되었다'''는 살인 기원 신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족살해로 인해 원죄의 개념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카인이 궁핍한 황야로 추방당하게 되는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동족살해의 대가를 치른다고 이야기하는 성경과 달리 하이누웰레 신화에서 인간은 동족살해에 대한 대가를 치렀으나 하이누웰레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을 얻는 양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죽음을 새로운 창조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
4. 기타
세람 섬의 하이누웰레 신화 외의 다른 신화들도 다들 비슷한 요소, 즉 '''식물의 삶의 형태로부터 인간의 죽음과 생식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건 여기 참고.[5]
하이누웰레는 여러 신화들에서도 대단히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보물을 나눠줬는데도 결과는 집단살해.
나루타루의 등장인물 타카노 분고를 링크자로 둔 용의 아이인 하이누웰레의 명칭이 바로 여기서 기원했다.
[1] 이 저서는 옌젠과 니게마이어가 1937년 2월부터 1938년 3월까지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와 네덜란드령 뉴기니의 섬들을 답사하면서 채록한 신화, 전설, 민담을 모은 자료집이다.[2] 즉 하이누웰레는 인간과 식물의 혼혈.[3] 사테네는 익지 않은 바나나에서 태어난 여성으로, 하이누웰레 신화를 기준으로 태고시대에 인간들 사이에 살면서 인간을 다스리던 처녀였다. 즉 고대사회에서 일종의 지배자로 생각할 수 있다.[4] 살해작업이 허가되는건 남성들 뿐이었다고 한다. 이 살해행위는 단순히 살해행위가 아닌 제의식 행위이며 이것이 남성의 생식력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수행이라 보았던 것.[5] 하이누웰레 신화(저서)에 나오는 원주민 언어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