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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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建洙
1921년 8월 10일 ~ 1994년 8월 5일 (향년 72세)
대한민국의 전 기자, 정치인이다. 호는 봉암(鳳巖)이다.
1921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에서 유학한 다음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자신의 이름 건(鍵)을 건(建)으로 개명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러나 개표부정으로 예산군 선거관리위원장을 기소하였다. 이 선거 소송은 3년을 넘게 질질 끈 끝에 1970년 12월 박병선의 당선 무효 판결이 났다. 그러나 제7대 국회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아서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면서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이자 인접 지역구(홍성군-청양군) 국회의원인 장영순과 자주 교류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홍성군-청양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신민당 정치훈련원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때 비주류로서 이철승을 지지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어 '신민주당'을 창당한 바 있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홍성군-청양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최창규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성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