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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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역사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발전과 그 분화과정에서 창출되었다. 부분적인 비판과 저항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배적인 역사는 지배층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자기를 만든 진정한 주인을 찾아, 민중의 손으로 돌아올 시점에 놓여 있다. '''민중에게서 소외된 역사는 역사 자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한국민중사> 서설의 마지막 부분

1. 개요
2. 기획과 집필
3. 내용
3.1. 전근대편
3.2. 현대편
4. 한국민중사 사건
5. 참고 항목
6. 관련 자료


1. 개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한 민중사관 도서의 대표작. 도서출판 풀빛에서 1986년에 초판을 냈고, 1997년에 복간했다.

2. 기획과 집필


처음 이 책은 민중사관을 위시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사실 '영어 한국사'라는 책의 초고 작성에서부터 시작했다. 당시 도진순[1], 유기홍, 한홍구, 이선희[2], 최민[3] 등 서울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은 '정철 영어'라는 출판사에서 영어로 된 한국사 도서를 출판하려고 하니 초고를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작업 도중 '정철 영어' 출판사가 의뢰를 포기해버리는 일이 터졌다. 그러자 도진순은 풀빛출판사를 찾아가 사장 나병식[4]에게 원고를 보여주었다. 원고를 읽어 본 나병식은 선뜻 출판 의사를 밝혔다.
풀빛출판사는 원고료까지 선불로 주어가며 집필을 도왔고 집필자들도 집필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유기홍과 한홍구가 운동권 활동으로 바빠지자 사학과 박사 과정을 밟던 윤대원이 투입되어 원고를 썼다. 그리하여 1986년이 되자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책을 완성하자 제목이 문제였다. 나병식은 원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한국민중사'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집필자들은 '한국민중사'라는 제목을 탐탁찮아 했다.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나병식은 '''"있지, 내가 한두 해 책장사를 한 게 아니잖아? 무엇보다도 있지, 이름이 화끈해야(...) 잘 팔린다."'''라며 원고를 <한국민중사>라는 이름으로 1986년 10월 전격 출판한다. 그러나 집필 당시 집필진들이 운동권 여기저기에 연관되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해지자 박사 과정 이수중이던 윤대원[5]이 유기홍, 한홍구 파트를 담당하였다.

3. 내용


책은 두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제1권은 '전근대편', 제2권은 '현대편'이다.

3.1. 전근대편



3.2. 현대편



4. 한국민중사 사건


"한국민중사, 이거 좀 심한 거 아닌가?" - 김원치 검사의 말.

집필자들의 우려처럼 <한국민중사>는 꽤나 거창하고도 문제 있는 이름이었다. 특히 '민중'이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여기던 높으신 분들과 공안검사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공안검사 김원치[6]가 이를 트집 잡아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1987년 2월 중순에 풀빛출판사 간부들이 대거 검찰에 연행되었다.[7] 검찰은 당연히 책의 제목을 문제 삼았다. ''''민중'이라는 단어가 불순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검찰은 '민중'이라는 단어가 '인민대중'의 준말이니 빨갱이스러운 말이라고 여겼다. 또 현대를 다룬 2권은 아주 '새빨간' 책으로 인식했다.[8] 대표 나병식은 검사와 타협을 시도하여 집필자들을 확인하지 말자고 제안했다.[9] 결국 나병식은 구속되고 김명인(편집부장)은 불구속되는 선에서 수사는 종료됐다.
이후 치뤄진 재판은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검찰 측에서는 <한국민중사>의 사상적 불순함에 대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변호사 측[10]에서는 사학과 원로까지 증인으로 불러들이며 책을 옹호했다. 책 내용 중 총 33개가 문제가 되었는데, '역사의 주체는 생산대중' 등 18개 부분은 무죄로, 신식민사회 주장 등 나머지 15개 부분은 유죄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리하여 나병식은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한국민중사>는 8만여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이중 5만여 부는 현대편인 2권이었다.
1990년에 항소가 기각되어 완전 무죄까진 가지 못했지만, 현대사 바로잡기 투쟁은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이성광의 <민중의 역사>,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의 <바로보는 우리역사>, 한국역사연구회의 <한국현대사>, 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의 <한국현대사 이야기주머니> 등으로 이어졌다.

5. 참고 항목



6. 관련 자료



[1]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백범 김구 연구의 권위자이다.[2] 현재는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3] 그는 당시 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4] 그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대표적인 70년대 운동권이었다. 이후 풀빛출판사를 운영하며 사회과학 도서를 출판하고 있었다.[5] 이후 그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한국현대사(1990)>를 썼고, <함께보는 한국근현대사> 집필에도 참여하였다.[6] 일설에 따르면 당시 공안검사로 이름 꽤나 날리던 사람이었다고 한다.[7] 이 때 대표 나병식을 포함해 발행인인 홍석, 영업부장 조기환, 경리 최금숙, 편집부원 송찬경, 영업부원 이상돈, 심지어 '전 편집부장' 박인배까지 끌려왔다. '''모든 것이 책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8] 당시 2권에서는 5.16 군사정변12.12 사태을 쿠데타로, 5.18을 민중항쟁으로 기술했다. 이는 당시 정권과 공안당국의 기준에서는 나자빠질만한 것이었다. 2년 전에 나온 강만길 교수의 <한국현대사>조차 1970년대까지 썼다.[9] 실제로 <한국민중사>의 저자는 앞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한국민중사연구회'라는 가상의 단체로 되어 있다.[10] 한승헌, 조영래, 박원순 등의 인권변호사들이 이 책을 변호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