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홍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제17, 19,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서울시 관악구 갑이며, 조부 류기수는 제2대 국회의원이었으나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2. 생애
1958년 6월 11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수송국민학교, 배재중학교, 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되어 폭행당하고 학교에서는 무기정학되었다. 당시 복학생협의회 대표이던 이해찬,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대의원회 의장이던 유시민 등과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심재철과 유시민이 당선된 총학생회 선거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총무였다.[1] 그 탓인지 심재철~유시민 논쟁 때 대차게 심재철을 까기도. 1981년 서울대학교 학내 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사무국장을 맡는데 초대 대표가 바로 김근태. 그 후에도 민청련 의장을 맡고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한청협) 의장을 맡는 등 청년운동에 앞장섰다.
2.1. 정계 입문
1997년 국민승리21의 대변인을 맡았다.[2]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청와대에 정책기획수석실 정책기획국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다 2002년에 청와대를 나와 유시민, 문성근 등과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노무현 대선을 적극 지원한다. 새천년민주당에 가입하지 않고 신당을 창당한 이유는 당시 민주당 내부에 후단협 사태 등 후보 흔들기가 극심했기 때문. 실제로 후단협의 노무현 흔들기가 심각해지자 친노그룹 사이에선 노무현 1인 혹은 노무현과 친노 전부가 민주당을 탈당해서 개혁당으로 가는 방법이 검토된 적 있다.
이후 자연스럽게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 때부터 김성식과는 연속으로 대결하였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그에게 패하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를 꺾고 재선에 성공한다.[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으나 4번째 대결[4] 에서는 패하며 2 : 2의 전적을 만들게 되었다.[5]
낙선 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산동대학교와 경남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내는 한편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3자 구도에서 미래통합당 김대호 후보가 제명되어 구도의 변화가 예상되었지만, 약 56%에 8만표가 넘는 득표로 김성식 후보를 넉넉히 따돌리고 3선에 성공했다.
2.2. 국회의원 시절
국회의원이 된 후 교육위원회에 들어가 8년 내내 교육위원회 또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있었다. 교육 쪽에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금도 더불어민주당 교육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 있는 동안 8년 연속 의정활동 및 국정감사 우수 의원으로 선정되었다.
17대 국회에서 교육위원회 소속답게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그 외에도 친일파 재산환수법, 동북아역사재단법, 고전번역원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특수교육법, 기초노령연금법 등을 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는 교문위 소속으로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전면에서 반대했다. 전두환 재산 추징을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소득세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법, 생활체육진흥법 등을 발의했다. 이 시기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을 맡았는데 그 즈음 세월호 사건이 터져 거의 매일 티비에 나오기도.
2.3. 당내 숨은 실력자?
더불어민주당의 숨은 실력자라는 평도 있다. 일단 유시민, 이해찬 등과 학생운동에 뛰어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선거를 지원한 친노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겪은 두 번의 대선 모두 경선 때부터 교육 공약 만드는 과정을 주도했다. 출신부터 더불어민주당 정통인 셈. 그리고 운동권 출신 정치인 중에서 연배도 높은 편이다.
또한 20대 총선에서 낙선하고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을 맡았는데, 중앙당선관위장은 원래 중진 현역 의원이 맡는 게 관례임에도 현역 국회의원도 아닌 재선 출신 유기홍이 맡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도 지역위원장이 없는 곳에 누구를 임명할지 정하는 등 권한이 막강한 곳이다.
당대표 1급포상도 2019년에만 3번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당내에선 숨은 실력자라는 말도 나온다. 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서 21대 총선에 당선되면 교육부장관이 될 수 있다는 카더라 소문도 있다.
무엇보다도 17대 총선부터 5회 연속 서울에서 공천을 받은 민주당 후보가 유기홍을 포함 5명 밖에 되지 않는다.[6] 다만 21대 총선에서는 박민규 관악사회연구소 소장과의 경선에서 1.3%의 차이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었다.
21대 국회에서는 교육위원장을 맡으며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3. 여담
관악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현수막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관악구에는 편백숲지역주택조합이라는 지역주택조합이 있는데 한마디로 '''샤로수길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 [7] 게다가 지역주택조합 측이 동의서를 받기 위해 건물주들을 위협하고 공사를 방해하는 등 수년에 걸쳐 괴롭히면서 문제가 됐다.
그러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 주무열 관악구의원이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 피해자 공청회를 열면서 대응을 시작했고, 이에 지역주택조합도 반격에 나선다. 그 반격이라는 게 구의원 위에 있는 유기홍 지역위원장 욕하는 현수막 붙이고 다니기 유기홍도 물러서지 않고 허위사실에 법적대응하겠다고 나서면서 저런 현수막이 관악구 곳곳에 몇 달간 붙어있었다. 지금은 다 떼어진 상태.
그래서 대다수 관악구민들한테는 보기 싫은 현수막이 몇 달 동안 붙어있던 짜증나는 해프닝이지만, 당사자인 낙성대동 주민들은 유기홍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사실 현역 국회의원도 주민들의 피해를 모른 척하던 상황에서 현역 의원이 아닌데 그것도 '''선거를 앞두고''' 비방 현수막에 개의치 않고 싸워줬으니 어찌보면 당연. 현수막 문구가 워낙 저질이었던 탓에 현수막을 봐도 유기홍이 별로 나쁜놈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 2021년 재보궐 선거를 대비해 더불어민주당에서 본인들이 만든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내려고 하자 논란이 일었는데,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유기홍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 경쟁해서 투표하고 뽑는 선거가 아니라 총학생회가 부활되면서 추대하는 느낌의 선거였다고 한다. 참고[2] 출처 http://legacy.h21.hani.co.kr/hankr21/K_97C40185/97C40185_010.html[3] 이 때 김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유는 김성식 항목을 참조.[4] 김성식 후보는 국민의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해당 항목을 참조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5] 출구조사에서 앞섰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김성식에 0.8% 뒤지면서 최종적으로 낙선했다.[6] 나머지 4명은 우원식, 우상호, 노웅래, 이인영이다.[7] 처음 만들어질 때는 그 인근을 재개발한다는 게 불가능까지는 아니었지만 샤로수길이 뜬 지금은...[8]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611528012222030&id=100000946298175&sfnsn=scwspmo|#[9]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합당[10] 민주당과 흡수합당[1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