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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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勝憲
1934년 9월 29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아호는 산민(山民), 본관은 청주(淸州). 인권변호사 1세대로 독재정권에 맞섰으며, 1988년 이돈명, 홍성우 등과 함께 민변 창립을 주도하였다.
2. 생애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1]#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전북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1965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한동한 작가들의 변호를 맡다가 인권 변호사로 영역을 넓힌다. 1975년에, 1972년 《여성동아》에 쓴 〈어떤 조사(弔辭)〉로 필화를 겪으며 구속. 당시 1백29명의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서 화제가 되었다. 1974년 10월 유신에 반발하여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하였다. 이후 주요 변론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등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감사원장으로 내정되었으나 한나라당의 반발로 같은 해 8월까지 감사원장 서리를 역임하였다. 이후 같은 해 8월부터 1999년 9월까지 감사원장을 지냈다.
감사원장에서 물러난 후로는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석좌교수,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석좌교수, 서울특별시청 시정고문단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담으로 김기춘의 안티테제라고 할 정도로 김기춘이랑 여러가지 특징에서 차이점이 많이 있다. 우선 한승헌 변호사의 경우, 박정희 정권 시절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어서 당시 유신 헌법이 발표되었을 때 반대 입장을 취했으며 이는 2017년 대선 이후 MBN에서 방영되었던 문재인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출연했을 때도 그건 법도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반면 김기춘은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헌법을 저작한 장본인이다. 또한 한승헌 변호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및 심판에서 문재인을 필두로 구성된 변호인단에 속해있었으며 반대로 김기춘은 당시 탄핵 소추 위원장을 맡았었다.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3. 변호한 사건 목록
- 분지 필화사건
- 동백림 사건
- 통일혁명당 사건
-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 울릉도 간첩단 사건
- 민청학련 사건
- 인민혁명당 사건
-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노동과 노래 필화사건
-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사건
- 민중교육지 필화사건
- 인천 5.3 운동
-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
- 임수경 방북 사건
- 황석영 방북 사건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 송두율 사건
4. 저서
-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1983)
- 《법과 인간의 항변》 (1983)
- 《허상과 진실》 (1985)
- 《역사발전과 민주문화의 좌표》 (1985)
- 《법창에 부는 바람》 (1986)
- 《저작권의 법제와 의무》 (1988)
- 《갈망의 노래》 (1990)
- 《분단시대의 피고들》 (1994)
- 《한 변호사의 초상》 (1994)
- 《정보화시대의 저작권》 (1996)
-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 (1997)
- 《법이 있는 풍경》 (2000)
- 《내 마음 속의 그들》 (2002)
- 《역사의 길목에서》 (2003)
- 《산민객담》 (2005)
- 《분단시대의 법정 -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개요》 (2006)
- 《한승헌 변호사 변론 사건 실록》 1~7 (2006)
- 《글로벌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공저)》 (2007)
-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기행 - 속 산민객담》 (2007)
- 《법창으로 본 세계 명작》 (2008)
-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2009)
- 《한승헌 변호사 스피치의 현장》 (2010)
- 《유머수첩 - 한승헌 변호사의 산민객담3》 (2012)
- 《피고인이 된 변호사》 (2013)
- 《권력과 필화》 (2013)
-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2014)
-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2016)
- 《하얀 목소리》 (2016)
- 《한승헌 수필전집》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