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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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박원순은 정말로 첫손에 꼽아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에요. 모든 장면에 다 있었어요, 박원순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및 시민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그리고 박원순 성추행 사건 가해자.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시민운동가, 여성운동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한국의 시민운동,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다.박원순 사무처장은 시민운동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친 여성계 인사'로 꼽히는 법조인. 인권변호사 시절, 변호사가 드물었던 여성계에서 그는 말없이 돕는 지원군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성계 현안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조언자다. 그는 여성단체가 초청하는 남성 인사 가운데 가장 출연 빈도수가 높은 사람에도 손꼽히고 있다.
여성신문 2005년 5월 12일 #
박원순은 1983년 변호사 개업 후, 1988년 리영희 방북 사건, 1989년 문익환 방북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의 변론을 도맡으며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높여 갔다. 특히 박원순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3년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사건들의 변론을 도맡으며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이자 여성인권변호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를 야기시켜 6월 항쟁을 이끌어낸 도화선이 되었으며, 서울대 성희롱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장내 여성 성희롱이 불법임을 인정받은 사건으로 한국 여성운동계에 이정표가 된 사건이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정착시켰다.[6] 박원순의 참여연대는 해외의 NGO와 달리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계에 참여, 정부를 압박하면서 사실상의 정치적 권력으로 변모해 갔다.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현존하는 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7] 라며 현행 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강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2002년에 대한민국 반미 운동의 상징인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을 규탄하는데 앞장서며 민중들의 대규모 반미 시위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박원순과 참여연대는 반미, 재벌 개혁, 야당을 대상으로 하는 낙선 운동을 벌였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사회적 활동에 주력했다.
한동안 사회적 활동에 주력하던 박원순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다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부 비판 활동에 앞장섰다. 박원순과 참여연대는 대한민국 현대사 희대의 정치 선동이었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다. 2010년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마찰을 빚자 그해 12월 박원순은 시민단체들을 결집시켜 '결식 제로' 운동을 펼치며 서울시의회 민주당을 지원하고 오세훈 시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무상급식 갈등으로 오세훈이 서울시장직을 자진 사퇴했으며, 박원순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지율이 5%에 머물며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군소 후보 중 한명이었지만, 당시 유력 후보였던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면서 대신 박원순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말한 후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대거 흡수하여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서울시장 취임 후 박원순은 거버넌스(민관 협치), 개방형 공무원을 표방하면서 기존에 자신과 함께 권력을 감시·견제하던 역할을 했던 시민단체 출신들을 대거 서울시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변화를 일으켰다. 서울시장에 있는 동안 아무런 정치적 계파를 남기지 않았던 전임자 오세훈과 달리 박원순은 시민단체 동지들을 서울시 공무원으로 등용시킨 후 정계에 입문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계파인 박원순계를 육성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뱃지를 달게 되었으며, 원래 민주당 원내에 세력이 없었던 박원순은 이러한 방법으로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갔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한동안 큰 인기를 누렸다.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패권주의의 상징, 청산해야 할 기득권 세력이라며 비판했다가 문재인 지지자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후 결국 당내 경선 불참 선언을 하고 대선 출마를 중도 포기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초로 민선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하며 역대 최장 기간 재임하게 되었다.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당 내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서울시장 집권 기간 동안 개발과 토목 공사를 극도로 싫어하여 '반토목 시장'이라 불리었다. 박원순이 서울시의 재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면서[8] 서울은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하여 그의 재임 기간 중에 세계 집값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9][10] 또 취임하자마자 양화대교 보수 공사를 영구 중단할 것을 주장하여 물의를 빚는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 공사 예산을 대거 삭감하여 서울에 예정되어 있던 도로 신설, 확장 공사가 대거 취소되거나, 축소, 지연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서울시내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시속 50km로 낮추어 서울시의 교통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시의 경전철 예산도 삭감하여8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2013년 7월 돌연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한다고 깜빡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기존에 공사중이던 우이선, 서부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노선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결국 후임자가 추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2020년 7월, 자신이 성추행 가해자로 피소당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자살했다.
2021년 1월 14일 법원은 박원순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으며,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다.
2. 생애
2.1. 사망
3. 박원순계
4. 비판과 논란
4.1. 자질 및 행보
4.2. 성추행 사건
5. 저서
- 국가보안법 연구 (총 3권) - 역사비평사 (1990)
- 고문의 한국현대사: 야만시대의 기록 (총 3권) - 역사비평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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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2009)
여러 지식인/정치인들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해 서술, 회고한 내용인데, 박원순은 '우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인을 잃었다' 부분을 서술했다.
- 박원순의 어린이를 위한 응원: 권경률, 박원순, 엄윤숙 공저
시간이 지나 제목이 매우 부적절하게 되었는데, 그의 사망 직전 배낭을 매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가는것이 포착 되었기 때문이다.[11]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관련 유머
8.1. 씨발드립
8.2. 스나이퍼 박
9. 여담
- 2019년 국제돌봄엑스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했고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 2009년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앵커의 고별 방송을 했을 때 영상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손석희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와 나이가 동갑[16] 인데도 나이가 많이 차이 나 보인다며 손석희의 동안의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손석희의 대답은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동안이라기보다는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십니다"였다. 그리고, 손석희가 저 발언을 하기 전에 노회찬 전 의원을 가리키면서 "여기 노회찬 대표님도 저랑 동갑이십니다."라고 팩트로 2연타를 때렸다. 물론 분위기상 손석희와 박원순 모두 가벼운 농담을 한 것이다.[17]
이후 JTBC에 특별 출연했을 당시 또 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때는 "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고 손 사장이 비정상인 거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임 강원도지사인 최문순은 조금 더 심한 상태로 방송국 시절부터 손석희로부터 능욕을 당했다.[18] 박원순 본인은 손석희와의 해프닝이 꽤 기억에 남았는지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손석희의 동안이 문제라는 말을 꺼냈다. 참고로 더 알자면 위에 언급되다시피 이때 나왔던 박원순이 1955년생, 노회찬, 손석희는 1956년생이고 얼굴로 따지면 손석희가 막내다. 여기에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도 56년생이다. 게다가 홍의락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은 박원순, 노회찬, 최문순 보다 1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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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다고 한다. # 당시에는 박원순과 문재인이 서로 변호사였기 때문에 박변 문변이라는 표현을 써서 친하게 지냈다고. 하지만 19대 대선 때 양측 간의 네거티브 전이 재개되는 등 사이가 멀어졌다.
- 평소에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하급자에게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 유시민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그 이유가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새벽 2시에도 불쑥 전화를 걸어 실무자들이 멘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정의당의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2에 출연해 했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앞서 말한 방식으로 일을 했더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줄줄이 병원에 실려간다는 하소연이 많아 지금은 일하는 스타일을 바꾸어 칼퇴근을 하는 등 아랫 사람들에게 숨 쉴 틈을 최대한 열어주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21분 21초부터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비서관을 새벽 6시까지 출근시켜 자신의 사적인 조깅에 동행시키더니 밤 11시, 12시까지 부려먹다가 퇴근시키는 갑질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박원순은 이런 갑질 상사 짓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워커홀릭이라고 미화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여러 비판이 있자, 자신을 스스로 옹호하다가 약간은 자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박원순은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과시하며 사석이나 인터뷰에서 과로사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과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들을 과로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 방문 때 스트레스 측정을 받은 결과, 심각 단계라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실렸다. 박시장의 일탈은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https://news.v.daum.net/v/20151019202803325
- "하버드 도서관 지하3층부터 7층까지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경상남도 출신이다 보니[19] 같은 당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의향을 드러냈던 민병두 의원과 PK의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상남도 도지사 중에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며 서울특별시장 3선 대신 경상남도 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외모가 왠지 경남 아저씨 같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각자 소질 있는 분야가 다르다면서 당의 몇몇 인물들이 박원순에게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을 일축하고 서울특별시장 3선으로 간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역대 최초로 민선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남지사는 친문 김경수 전 의원[20] 이 차출되었고, 역대 최초로 민주당 당적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 그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 복무에 관련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사건으로 일베 유저 16명을 고소한 것으로 보아 박원순 서울시장 측에서도 일베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심지어 일베에서도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게시글도 비슷한 이유로 고소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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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원저 대만 타이베이 시장인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치 이념 및 행보가 비슷한 사람으로 중화권에서 유명하다.[21] 마침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지 대표 자격으로 방문한 김에 서울에도 찾아가 회담을 가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을 호평하는지라 2016년에는 서울시에 노무현 거리(노무현 루트)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2020년에 박원순이 자살할 때까지 실현되지는 않았다.
-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사망 때, 조문을 와서 추도사를 읽기도 했었다. 상당히 슬퍼했었다고 한다. #, # 추후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폭력 행사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하면서 이명박 측에서 정치 보복이란 말을 쓸 자격이 있냐며 비난했다.
-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박원순은 한때 이명박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반 이명박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이 된 직후로는 이명박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그래도 청와대로 박원순을 직접 불러 독대하면서까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지만 박원순은 친 노무현 반 이명박으로 정치 노선을 굳히게 된다. 실제로 2017년 7월에 냄비받침이란 KBS 프로그램에 박원순이 출연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크게 반발하면서 이명박과의 관계는 '과거 지인일 뿐이다' 라는 뉘앙스로 얘기하면서 이명박을 싫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아마 박원순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명박산성 같은 것들에게서 촉발됐을 거라는 게 정설. 당시 박원순은 광화문광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오세훈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
- 19대 대선 경선에 출마해서 서울대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공립대학교 통합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5000억 원을 들여 52개 국공립대학교에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적이 있다.#
- 문재인 정부에서 대 아세안 특사로 파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희상, 이해찬, 송영길, 박주민과 함께 외모패권주의의 희생양 아니냐는 농담을 들었다. 실제로 전술한 4인 모두 외모가 정부 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편. 7회 지방선거 이후에는 당선자들 중에서 외모는 최하위권이라는 말도 있었다.
- 지(知)동남아파로 분류되며,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서 아세안(ASEAN) 특사로 지명되었다. 서울시장 재임 동안 동남아 정부 관계자와 네트워크를 쌓아왔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대(對)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미국 등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후 외부자들에 출연하여 "아세안 국가에 도시 외교를 통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가는 김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청와대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 이왕 가는 김에 특사로 갔다 오라고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 별명으로는 '원순씨'[22] 가 있다. 그 외에 '박원숭', '박원숭이'가 있는데 이는 이름(박원순)에서 따온 다소 비하적 별명으로 박원순을 싫어하는 쪽에서 거의 사용한다. 입이 돌출입인 것도 한몫한다. 박원순은 이 별명에 대해 '그 원숭이 한 번 되어볼게요'라며 받아넘겼다. 원숭이띠이기도 하다. 그리고 '씨발아저씨'라는 별명이 있는데 박원순 욕쟁이 드립이란 밈에서 나온 것이다. 박원순 욕쟁이 드립은 문서 참조 바람. 박원순이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아마 이런 대인배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점이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노무현 또한 대통령 임기부터 온갖 비하에 갖은 비난을 다 받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었다. 노무현 비서관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보다 더한 것도 겪어봐서 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 80년대 안기부에게 감시 당한 것을 말하는 듯.
-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 전 의원을 복권 조치했는데 박원순이 정봉주가 패널로 있는 외부자들 스튜디오에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그런데 그 화환에는 '서울특별시장 내리2선 웬순씨'라고 적혀 있었다.
- 2018년 제주 난민 사태에 대해서 우리도 한 때 난민이었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한다고 했다. # , #
- 탈모가 심했었다. 시장 출마 당시에도 머리가 점점 빠지던 상황이었고 2018년초까지는 정수리가 듬성듬성했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정수리가 풍성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박원순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여 수술설을 부인하면서, 머리숱이 많아진 것은 흑채 덕분이라고 해명하면서 직접 본인의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흑채를 뿌리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월간 조선 기사에 따르면, 박원순이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모발이식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복수(複數)의 관계자가 강남구 신사동의 모 성형외과에서 박원순이 2018년 2월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기자가 병원 측에 “박원순 시장이 그곳에서 모발이식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병원 측은 망설임 없이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고를 올렸지만, 개인적인 문제라 답변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24]
- 잠가라 밸브를 시전한 적이 있다. 바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경찰이 소방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수도 밸브를 잠그도록 했다.
- 이른바 '박원순 유니버스'란 짤방들도 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남긴 사진들이 하도 많아서 생긴 밈이다.
- 과거 사법연수원 사람들과의 등산에서 "정치란 보여주는 걸 잘해야 한다고" 라고 말했다고 한다.
-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 때인 2020년 7월 10일 0시, 공교롭게도 <박원순 죽이기>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어그로성 제목과는 달리 박원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 및 평가를 한 책인 듯하다. 다만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라는 점.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10. 둘러보기
[1] 공식적으로는 1956년 3월 26일이지만 실제 생년월일은 1955년 2월 11일이라고 한다.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56년 3월 26일으로 되어 있다.[2] 홍준표와 같은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인데, 그 옆 동네 남지읍 출신이다. 출생 당시에는 남지면. 인근의 강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3]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참고.[4] 규정공파 71세손 '순'(淳)자 항렬.[5] 원래는 2022년 6월 30일 까지 이였으나 임기 2년을 남기고 사망 하였다[6] 참여연대 이전에도 시민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해외 NGO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7] 2001년 9월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大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8] 특히, 재건축 아파트의 층수를 15층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결국 이 층수 제한은 박원순 사후 풀렸다.[9] 1위 홍콩, 2위 싱가포르. 사실상의 도시국가들을 제외하고 영토국가들의 도시 중에서는 서울이 1위인 셈.[10] 박원순 최악의 흑역사가 호텔을 청년주택으로 개조하겠다는 정책이였는데, 이한상 고려대 교수에게 "뇌피셜 가지고 정책좀 그만 짜라."며, 크게 비난 받았다.[11] 몇몇 음모론자들은 책의 제목이 삼각형이라며 박원순 사망의 일루미나티 개입설을 주장한다.[12] 대만의 리덩후이 전 총통(1.5년에 1권 꼴)을 이겼다.[13]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4]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를 책임지고 전임자 오세훈 2011년 8월 26일 사퇴.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단일후보경선에서 승리,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고 민주당과 선거연대해 당선된 뒤 2012.2 민주통합당에 입당.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특별시장.'''[15] 2020.7.9 임기 중 자살사망 [16] 당시에는 호적상으로 나이를 말해서 1956년생 동갑으로 말하였다.[17] 안타깝게도 노회찬과 박원순 두 인물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18] 참고로 손석희와 최문순은 MBC 동기이기도 하다. 1984년 입사했다.[19] PK-TK의 접경지대인 창녕 출신이긴 한데 박원순 본인의 정치 성향 상 PK로 분류되는 일이 훨씬 많다.[20] 이 사람 또한 서부경남 쪽인 고성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21] 다만 성격과 시장 당선이후의 상황은 좀 다른데 박원순의 경우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는 반면 커원저는 시의회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칠 정도로 성깔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높은 지지율로 유례없는 서울특별시장 3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커원저는 낮은 지지율로 재선이 불투명하다가 0.2%P차로 겨우 이기며 매우 고전하는 중.[22]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이다.[23] 아마도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다 보니 수도방위사령관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은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의심받는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이었다.[24] 여담이지만, 안철수가 탈모 비하 발언을 했을 때 달렸던 베스트 댓글 중 하나가 ???: 뭐 이 XXX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