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맥주 사건
1. 개요
1976년 벌어진 대한민국의 금융 부정 사기사건. 증권업계에 경종을 울렸으며 이 회사에 대출해준 은행장들이 대거 경질되었다.
2. 한독맥주란 어느 회사인가?
1973년 6월, 섬유회사 삼기물산이 독일의 대표 맥주회사 이젠벡(Isenbeck)사와 합작하여, 마산에 공장을 세우고 연 410만 상자를 생산하여 전량을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한독맥주를 설립하고, 이듬해 4월 가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첫 출발부터가 불안했는데, 기대와 달리 생산량이 떨어지자 회사가 엄청난 손해를 보며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것.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미스 이젠벡 선발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내 시판을 위하여 돌파구를 모색하였으나, 이 마저도 잘 되지 않아 결국 1974년 10월에 공장 가동 6개월 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5년에 국내 판매가 허용되자 이젠벡은 한국 맥주 시장에 시판되었고, 당시 양대 회사였던 동양맥주와 조선맥주와 경쟁하면서 잘 운영되는 듯했다. 3개월 만에 국내 맥주 시장의 15%를 차지하여 다른 맥주 회사들을 긴장시키게 만들었고 이젠벡 맥주는 시장에서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뒤늦은 흥행이 가능했던 이유로 당연히 부정행위가 숨어 있었다.'''
3. 실상
알고 보니 한독맥주의 사장 이준석은 회사에서 생산되는 맥주 중 이젠벡 맥주의 판매가 부진하자 은행 융자를 받기 위해 1975년 7월에 회사의 간부들과 짜고 회사의 주권 392만 8천 800주(당시 액면가 500원)를 위조해 그것을 담보로 전북은행 서울지점 등 7개의 금융기관에서 19억 6440만 원을 대출받은 것이었다.
또 이준석 사장은 자신이 경영하는 삼기물산에서 외환은행장의 직인 등 120개의 공사기관의 인장을 만들어 주 홍콩 영사 확인의 연불수출계약서를 위조해 5월 12일에 외환은행에서 생산하자금 2억 8600만 원을 무담보로 융자받는 등 여러 금융기관을 속여 총 22억 5040만 원을 부정한 방법으로 대출받았음이 밝혀졌다.
4. 이후
결국 이 사건이 밝혀지면서 한국거래소[1] 는 1976년 8월 3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이 회사의 주권을 매매거래 정지시켰다. 또 이 사건이 밝혀진 날에는 매매거래 정지 직전 한독맥주의 주가가 450원이었다.
전북은행이 한독맥주에게 11억 원을, 경기은행[2] 이 4억 원을 부정대출한 일로 인해 이 두 은행의 은행장은 사퇴했다.
1976년 9월 25일엔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특별수사부가 이준석과 김창진을 유가증권과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으며 이도석 등 3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이기창 등 2명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1977년에 한독맥주 사장이었던 이준석은 징역 5년이 선고되었고 삼기물산의 외자부장을 지냈던 한춘화는 징역 2년이, 한독맥주의 자금이사였던 박병규와 한독맥주의 자급부 대리를 지냈던 김창진은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고 한독맥주의 부사장이었던 이도석과 삼기물산의 자금부 사원이었던 이영연은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한독맥주는 조선맥주[3] 에게 인수되었다.
이후 관련자들은 모두 출소하였으나 현재 그 이후의 근황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이 사건은 한국거래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차례대로 명동을 떠나게 되었고 당시 개발중이었던 여의도로 이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위의 내용들과는 별개로 맛이 꽤 좋았다고 한다. 한국에 공장을 세우러 온 독일 기술자들이 다른 맥주는 다 말오줌인데 한독맥주의 이젠벡은 맛이 좋아서 이젠벡만 찾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