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은행

 



'''한미은행'''
'''KorAm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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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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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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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사용한 마지막 로고
<colbgcolor=#fff306><colcolor=#000000> '''정식 명칭'''
한미은행
'''영문 명칭'''
KorAm Bank
'''한자 명칭'''
韓美銀行
'''설립일'''
1983년 3월 16일
'''본점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0 (신문로2가)
'''역대 법인명'''
한미금융주식회사(1981년)
한미은행(1983년)
'''후신'''
한국씨티은행(2004년 11월~)
'''종목코드'''
016830[1]
'''은행코드'''
027
'''SWIFT코드'''
KOAMKRSE
'''사이트'''

1. 개요
2. 역사
3. 역대 수장
4. 자회사
5. 기타

알차고 튼튼한 한미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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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시중은행. 영문명은 KorAm Bank였다. 위 은행 로고는 199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며, 한국 전통의 격자무늬와 색동저고리의 색상을 바탕으로 해서 몬드리안 식 추상 구성을 접목시킨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그 때문인지 1999년에는 공평동 본점에서 몬드리안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일단 서울특별시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었는데, 수도권 외 지역에는 점포망을 크게 확장하지 못한 채 이름이 사라진 은행이다. 지점망은 주로 서울특별시경기도 지역에 몰려 있었고, 후발주자라 지방에는 많이 진출하지 못해 보통 광역시나 도에 1~2개가 고작이었기에 지방 광역시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이 은행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100개 가까운 지점을 운영하고, 광고도 제법 하여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시중은행으로 성장하였다.
여담으로 수수료 지옥으로도 유명했는데, 오죽하면 수수료의 10%를 환급해 주는 한미 OK캐쉬백 통장이 거의 주력 상품이었을 정도. 씨티은행과 합병한 이후에도 씨티 OK캐쉬백 통장으로 살아남았었으나, 씨티원 통장 등이 런칭되면서 없어졌다. 신세계와도 관계가 깊은데, 1998년부터 카드 제휴업무를 맡다가 2000년에 신세계로부터 카드사업부를 인수했다.
또한 인터넷뱅킹의 편리함을 강조하는 광고를 많이 냈었는데, 사이트 주소가 '''www.goodbank.com'''였다.

2. 역사


1981년 재무부가 시중은행 민영화 후속 조치로 외국 자본 합작은행 설립을 담은 은행 설립 지침을 마련한 데서 비롯되었다. 1981년 5월 정수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주축으로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뒤 1981년 9월 17일 한미금융으로 정식 설립됐으며 은행 설립 시 합작 대상자로 한국측은 삼성그룹, 대우그룹, 대한전선, 미국측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각각 정했다.
1982년 7월 22일 합작 은행 설립을 위한 주주 간 합의서를 조인하였고 1982년 9월 2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아 1983년 3월 5일에 한미은행이 출범했다. 이는 신한은행에 이어 국내 7호 시중은행으로 출범한 것이다. 본점은 설립 초기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에 임시로 입주한 후 1983년 3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1번지(인사동5길 41)[2]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1997년 9월 1일에 본점을 중구 다동의 청계천변으로 이전하여 현재도 한국씨티은행의 본점으로 이용 중이다.
초기에는 한국 50.1%, 미국 49.9%로 한국 지분율이 살짝 높았다. 미국 BOA측은 자체 부실로 인한 경영권 분쟁까지 겹쳐 한미은행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들어 BOA 지분이 줄면서 경영권이 한국측으로 넘어감에 따라 국산 은행이 됐고 1989년 한미리스를 세우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90년 영국령 홍콩에 처음으로 해외사무소를 열고 1991년 6월 스위프트 가입 후 비자카드 발급 업무를 개시했고 한미로얄센터를 연 뒤 홍콩사무소를 홍콩지점으로 격상시켰다. 199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처음으로 신규 해외지점을 냈다.
1995년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제1회 기업혁신운동 수범사례 금상을 받고 1996년 한미파이낸스를 세웠고 12월 총수신 8조원을 돌파했다. 1998년 3월 9일에는 정보통신부 우정국과 업무 제휴를 맺어 우체국의 금융 창구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한국씨티은행으로 바뀐 후 2011년 7월 1일에 ATM까지 공동망을 전면 개방했다. 그러다가 1998년 6월에 퇴출은행으로 지정된 지방은행경기은행 자산을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인천광역시 관내 점포망이 확대됐다.[3] 1999년 6월 18일에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3동의 경기은행 본점 건물을 360억원에 사들여 한미은행 인천영업부로 변경하고 전산센터도 인천영업부에 설치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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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3동 인천영업부 전경. 바로 뒤의 까르푸는 현재의 홈플러스 구월점이다.
경기은행 인수 후 몸집을 불리고 점포망을 확대한 한미은행은 국내 6~7위권의 은행으로 발돋움하며 1980년대에 설립된 은행으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성장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기순손실이 3,960억 원에 이르는 바람에 외자 유치에 나섰고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2000년 9월 4일 미국의 사모 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이 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무렵에 규모를 키우려던 하나은행과 합병 논의도 있었지만 칼라일이 합병 시너지를 낮게 평가해 2001년 1월에 백지화됐다. 심지어 BOA조차 2001년 주요 주주에서 제외된 뒤 사실상 철수했고 칼라일은 2003년 말 한미은행 지분을 매각한다고 선언한다. 국내의 타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기 위해 한미은행에 눈독을 들여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여기에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등 외국계 은행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인수에 반대하는 노조와 직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4년 2월에 미국 씨티그룹이 3조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한미은행 직원의 고용 승계 문제, 전산 통합 문제 등으로 노조가 2004년 6월 25일부터 2004년 7월 12일까지 무려 18일 동안의 장기 파업[6]을 하는 등의 진통이 있었으나 씨티그룹 측이 대폭 양보하면서 마침내 2004년 11월 1일에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했고 하영구 한미은행장도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자동 취임했다.
당시 한미은행의 덩치가 씨티은행 국내 지점보다 컸기에, 명목상으로는 한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여 씨티은행 서울지점을 통합하는 형태로 법인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씨티은행의 설립일은 한미은행의 설립일과 동일하다. 금융결제원의 앞 3자리 금융공동망 은행 코드도 한미은행의 027번을 이어받았으며 고객분류번호 역시 한미은행의 데이터를 그대로 가져왔다.[7]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씨티그룹에 넘기면서 2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거뒀다.

3. 역대 수장


  • 한미금융 사장
    • 이경훈 (1981~1982)
  • 한미은행장
    • 김만제 (1983)
    • 황창기 (1983~1987)
    • 이상근 (1987~1993)
    • 홍세표 (1993~1997)
    • 김진만 (1997~1998)
    • 신동혁 (1998~2001)
    • 하영구 (2001~2004)

4. 자회사


  • 한미캐피탈: 2006년 MBK파트너스 자회사 '오세이지유한회사'에 매각되었다가 2007년 우리금융그룹에 재매각 후 우리파이낸셜로 바뀌었으나, 2014년 K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KB캐피탈로 사명변경.
  • 한미파이낸스: 1999년 폐업.

5. 기타


2000년에 개봉한 영화 반칙왕에서 주인공 임대호(맨날 송영창에게 헤드락 걸리는 송강호)가 다니는 은행이 바로 한미은행.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게시물이 인터넷에 꾸준히 돌고 있다.

[1] 2004년 7월 12일까지는 상장회사였다.[2] 태화빌딩 옆에 있는 현재의 하나투어빌딩이며 당시에는 한미빌딩으로 불렸다. 중구 다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한미은행 별관으로 이용하다가 한국씨티은행 종로지점으로 계속 있었지만, 2014년 5월에 폐쇄됐다.[3] 경기은행은 원래 인천광역시의 지방은행이었다가 1972년에 경기도 전 지역으로 영업구역을 확대했었다.[4] 다만 1998년 당시에는 대구광역시대한민국 제3의 도시였고 인천광역시가 인구나 경제 면에서 대구광역시를 역전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5] 당시 한미은행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수도권에서도 서울특별시에만 그나마 점포가 많았고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지역에는 지점망이 매우 취약했다. 그래서 김진만 당시 한미은행장은 퇴출은행과 관련해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특별시 근교의 은행인 경기은행 인수를 원한다고 말했고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역시 뜻을 같이 하여 경기은행이 한미은행으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익성이 딸린다 싶은 지역의 경기은행 점포를 모두 폐쇄해 버려서 딱히 점포수가 많이 커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대한민국 3위권 대도시인 인천[4] 지역 점포가 대부분 살아서 망정이지. 자세한 건 경기은행 항목 참고.[6] 2011년 SC제일은행 파업 전까지만 해도 역대 은행권 파업 중 최장기 기록이었다.[7] 통장 바로 안쪽면을 보면 8자리 고객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게 바로 구 한미은행에서 쓰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