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씨 고구려설

 

1. 소개
2. 상세


1. 소개


고구려 초기 군주들의 성이 해(解)씨였다는 가설. 삼국유사에는 동명성왕의 성이 고(高)로 정하기 전에는 본래 해(解)였다라는 언급이 있다. 참고로 여기서 해는 태양을 뜻하며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아 현대 한국어의 "해"라는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왕력 유리왕, 대무신왕, 민중왕 부분에 그들은 성은 해씨(解氏)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또한 초기 고구려 왕족들은 유달리 이름에 해(解)자가 자주 들어간다. 대무신왕은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도 하며, 민중왕은 해색주(解色朱), 모본왕은 해우(解憂) 혹은 해애루(解愛婁), 소수림왕은 소해주류왕이다. 유리명왕의 아들 중에는 해명태자(解明)가 있었다. 그리고 동명성왕의 아버지는 바로 해모수(解慕漱)다.
이렇게 이름에 해 자가 자주 들어가기 때문에, 본래 고구려의 국성은 해씨였으나 나중에 고씨에 의해서 역성혁명이 일어났고 그 후 전대의 왕들까지 역사기록을 조작해서 고씨로 바꿨다는 설이다.[1] 일부의 지지를 받는 학설이다.
실제로 해씨였으면 고구려에선 계루부 고씨가 아니라 연노부 '''해씨'''가 왕을 했다는 셈. 일부의 기록이라 정확하지는 못하다.
현재 학계의 흐름은 추모왕부터 이미 고구려의 정치적 중심은 계루부로 넘어갔다고 본다. 애초에 첫 수도이자 동명왕묘가 있는 오녀산성이 계루부에 있는데 연노부가 그런 데서 왕 노릇을 했겠나? 고구려 왕족과 귀족의 성씨 자체가 중국과 접하는 후대에 추숭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너무 몰입하지 않는게 나을수도 있다.

2. 상세


고구려 중기의 왕인 소수림왕의 또 다른 왕호가 소해주류왕인데, 해씨에서 고씨로 역성혁명이 일어났다기 보다는 '''해씨=고씨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고구려의 왕성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해(解)는 고구려어로 그 단어의 소리를 음차한 것이고, 고(高)는 뜻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해씨는 지금 우리가 해님 달님 할 때의 그 "해"와 뜻이 같으며, "고"는 높은 곳, 하늘, 해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므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후대에 북위(北魏)의 효문제탁발씨(拓跋氏)에서 원씨(元氏)로 한화(漢化)하여 성씨를 바꿨던 것처럼 고구려도 해씨에서 고씨로 성씨를 한화하여 바꾼 것으로 추정한다면 소수림왕의 사례가 설명이 된다.[2] 사실 기원전 시대에는 해라는 칭호든 고라는 칭호든 현대적 의미의 성씨가 아닐 수 있다. 성씨로 언급한 것은 당대의 내용이 아니라 모두 후대의 기록을 조합한 것이며 비교적 비슷한 시기의 중국 정사 기록에는 성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덤으로 백제의 경우에도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에서 '그 세계(世系)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씨(氏)를 해(解)라고 했다.'라는 언급이 있다. 근데 나중에는 부여씨가 되었다. 이 역시 해라는 명칭이 단순히 현대적 성씨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노태돈 교수처럼 동명성왕계와 태조대왕계가 별개의 왕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고구려사 연구』 에서 태조대왕대 이후 기록에서는 나(那)라는 이름이 붙는 정치체가 꽤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모본왕 이전 기록에 '나'가 더 많이 등장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점, 인명을 기술할 때 모본왕 이전 기록에서는 부명을 표기하지 않고 '매구곡인 상수(買溝谷人 尙須)[3]'라는 식으로 지명을 표기하는 점, 부여 관계 기사가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 3대에 나뉘어 기술되어 있는 점을 들어 모본왕 이전 기록은 태조대왕 이후 기록보다 기록으로써 정착하는 과정이 늦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래는 설화처럼 구전되던 이야기가 나중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동명성왕계와 태조대왕계는 별개의 왕가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두 왕가를 이어붙인 인물은 소수림왕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1] 해씨의 마지막 왕으로 생각되는 모본왕이 석연치 않은 암살을 당하고, 왕위를 빼앗은 고씨의 첫왕으로 생각되는 태조대왕이 '태조'라는 시호를 부여받은 것이 이 학설의 근거이다.[2] 최근의 유사한 사례를 꼽자면 청 황실인 아이신기오로(황금의 기오로)씨가 김(金)씨로 바뀐 사례가 있다.[3] 대무신왕 13년(기원후 30년)에 사촌 우도와 함께 귀순해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