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힐 전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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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아파치 스노우 작전[2] 당시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치뤘던 고지전.
기본적으로 이 전투는 수색 및 제압 작전의 일환으로 벌어졌다. 기본적인 작전계획은 미 해병대가 라오스 국경 방향으로 수색 및 정찰작전을 벌이고, 남베트남군은 북베트남군이 이동할만한 도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2. 진행
937고지는 산 전체가 울창한 숲의 캐노피로 덮인 산이었다. 문제는 이 때문에 미군은 항공정찰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인근에서 북베트남군의 활동징후는 노골적이었기에 작전을 개시한다면 분명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 예측되었으나, 정작 북베트남군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 장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쨌건 사단의 지휘지침에 따라 미군은 937고지의 북베트남군 수색 섬멸을 해야 했으므로 공격작전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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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5월 10일부터 937고지 및 인접한 900, 916고지에 대한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투 초입부터 미군은 대단히 고전해야 했는데 북베트남군이 산의 사방에 땅굴을 설치해둔 데다가 울창한 정글은 미군의 화력지원을 크게 방해하였다. 여러 차례 고지로 밀고 올라가다가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화력 지원을 호출했지만 그런 식으로는 어차피 북베트남군이 폭격이나 포격이 떨어지면 부리나케 땅굴에 숨어버리는 관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산 전체에 개미집마냥 땅굴을 파뒀고 땅굴이 생각보다 튼튼했기에 어지간한 폭격 정도로는 파괴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보병들이 소화기와 수류탄을 가지고 보병전을 하면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공격 헬레콥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3] 근접항공지원을 실시하였으나 울창한 삼림으로 인해 시계가 제한되고 아군과 적군이 지나치게 인접한 상황에서 공격을 하다가 미군을 팀킬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오사로 7명이 전사하고 53명이 부상을 입었다. 항공기의 폭격 역시 효율이 대단히 떨어졌다. 심지어 1km 넘게 빗나간 폭격도 있었다.
보병들이 전투를 하며 올라가다가 저항에 막혀 후퇴하고 다시 네이팜탄을 비롯한 폭격과 포격을 쏟아붓는 패턴이 반복되자 나중엔 937고지의 울창했던 삼림은 죄다 아작나서 민둥산이 되버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전선도 일정하지 않아 미군과 북베트남군이 뒤섞인 채 아수라장 벌어졌다. 북베트남도 완전히 가만 앉아서 방어만 하던 게 아니라 소규모 보병부대를 기동시켜 미군의 보급선이나 지휘소 등 후방에 기습을 가해오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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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손실이 늘어나고 작전이 장기화되자 언론에서 이 전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론과 언론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한 미군 지휘관들은 공격을 중단해야 하나 갈등했으나 결국 3개 대대의 증원을 더 들이부어서 점령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인근의 916고지는 5월 15일에 점령에 성공하였고 5월 19일엔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900고지도 점령하였다. 5월 20일에 미군 3개 대대, 남베트남군 1개 대대와 추가로 증원된 2개 중대가 937고지를 4방향에서 포위한 후 937고지의 공격에 재차 투입되었고 화력지원을 퍼부어가며 마침내 12시경에 937고지를 점령했다.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미군 포병대대에서 총 19,213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미 공군은 272소티의 전투임무를 수행하며 고폭탄 폭격 890톤 및 네이팜탄 폭격 115톤을 가했다.
패퇴한 북베트남군 일부는 라오스 국경 방향으로 탈출하였다.
3. 전투 후
어쨌든 미군이 이기긴 했다. 전사자는 미군 79명, 남베트남군 31명, 미군 발표로는 북베트남 측은 630명이 전사했다. 전투 후 6월 5일, 미군은 고지에서 철수했다.
햄버거 고지는 원래 목표가 북베트남군 섬멸이었고 고지는 전략적 요충지는커녕 쓸모없는 곳이었다. 목표는 고지위에 있던 적들의 섬멸이었지 고지점령이 아니었으므로 목표물이 제거된 후 이동하는건 당연한 것이 었다. 오히려 반전 단체에서 사상자의 숫자만 보고 "쓸모 없는 전투"라고 부르다가 "햄버거 고지"라는 이름이 나오고 붙은 것.
그리고 대대장이 사단본부에서 북베트남군 섬멸 명령을 받았는데 그 목표물인 북베트남군이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데 공격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현장 지휘관인 허니컷 중령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부하들도 알고 있었다고 햄버거 힐 참전용사들이 많이 증언했다. 참고로 다시 강조하자면 목표물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북베트남군이지 고지가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937고개를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물러서는 통에 이유야 어찌됐건 무의미한 전투로 보이기에는 충분했던 것. 본국의 시민들이 보기엔 '애들 갈아먹어서 고지 간신히 점령해놓고 스스로 바로 후퇴?' 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의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큰 논란이 되었다. '이럴거면 뭐하러 전투를 하느냐! 쓸데없는 전쟁놀음인지 아느냐!' 라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5월 25일에 바로 그 '햄버거 힐' '다진 고기'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였고 라이프 매거진은 6월 27일자 발매 호에서 베트남에서 1주일 동안 전사한 241명의 미군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 각종 언론들의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구정 공세 이후 안 그래도 바닥을 뚫고 내려가던 미국인들의 전쟁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이러한 여론의 압박에 베트남 주둔 미군의 작전은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리처드 닉슨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슬슬 발을 빼려 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베트남측에서는 이 전투의 북베트남군이 사실 베트콩 민병대였다고 주장하는데, 베트남이 이렇게 '너님들이 싸운 건 고작 최약체 베트콩에 불과하다!' 라고 주장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4. 대중 매체에서
- 이 전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햄버거 힐이 있다.
-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2 베트남, 라이징 스톰 2: 베트남에서 본 전투를 배경으로 한 맵이 존재한다. 단 BFBC2 베트남에서는 137고지(Hill 137)라는 명칭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