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민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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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5년부터 1976년까지 베트남 북부에 있었던 나라. 수도는 하노이. 인구는 1973년 당시 2,100만 명으로, 남베트남보다 약간 많았다. 간단하게는 북베트남이라고도 부른다.
당대 한국에서는 월맹(越盟, 베트민, Viet Minh)이라고 불렀는데,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월남(베트남) 독립 동맹의 불법 정권이라는 의미에서 그 약칭으로 불렀다. 이는 월남이라고 하거나 자유월남이라고 불렀던 남베트남만 정통정부로 보았기 때문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공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
국기와 국가는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같다. 국기는 한 차례 개정되었는데, 별 모양이 약간 달라진 것. 현재의 통일 베트남 국기는 민주 공화국 시절 개정된 국기다. 통일 베트남의 국장은 북베트남의 국장과 디자인은 똑같은데,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라고 적힌 부분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어서 쓰이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이 국호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사. 민주화는 원하지만 "베트남 공화국"이라 하자니 막장 이미지 때문에 안되고 그나마 민주적인 느낌이 들고 어차피 현 사회주의 베트남과 전통이 같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으로 회귀하자는 의견이다.
2. 역사
베트남은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서 다스리고 있었다. 1940년 9월 일본 제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침공했다. 당시 인도차이나는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비시 프랑스의 관할하에 있었고, 프랑스 식민 당국은 일본에 대항하기보다는 강화를 맺으려 했다. 일본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인도차이나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3월 일본의 패전이 명확해지고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부가 자유 프랑스로 전향할 조짐이 보이자 일본은 쿠데타를 일으켜(명호작전) 베트남 제국, 캄보디아 왕국, 라오스 왕국이라는 괴뢰국들을 세워 인도차이나를 직접 지배했다.
일본 제국의 항복이 다가오자,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은 봉기하여 일본 괴뢰정부인 베트남 제국을 8월 23일에 붕괴시켰다.(8월 혁명) 1945년 9월 2일 베트민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북위 16도선 이북에는 중화민국군이, 북위 16도선 이남에는 영국군이 들어왔다. 중화민국은 베트민의 이러한 행동을 방치했고, 오히려 장제스는 프랑스에게 호치민과 협상하라고 강요했다. 한편 남베트남에서는 프랑스가 영국군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프랑스가 재점령했다. 1946년 베트민과 프랑스군 사이에서 세관 업무를 가지고 충돌이 있자, 프랑스가 베트민을 공격하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 1954년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대패하며 베트남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점령하던 남베트남 지역에는 프랑스가 세웠던 괴뢰국을 승계하여(코친차이나 공화국 → 베트남 임시 중앙 정부 → 베트남국 → 베트남 공화국) 독립하였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합의에서 베트남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 통칭 월맹)과 베트남국[2] (남베트남)으로 분단된다. 정전선 설정에 관해서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프랑스는 북위 18도선을 고집했고[3] , 월맹은 북위 13~14도선[4] 을 주장했다. 저우언라이가 북위 16도선[5] , 몰로토프가 16~18도선의 중간인 17도선을 중재하여 '''베트남은 17도선을 경계로 남북분단된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남북 총선을 해야 했으나 베트남 노동당이 승리할 것을 두려워했던 남베트남과 미국이 총선을 거부했다. 이후 북베트남은 무력을 이용한 적화통일을 결심하게 된다. 1955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1960년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라는 조직을 남베트남에 심었고, 이들은 남베트남의 영토를 점거하고 남베트남군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등 남베트남에 혼란을 야기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으로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만 1973년 철수했고 잠시 파리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1975년 남베트남을 재침공하면서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1975년, 사이공의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남베트남 지역에 새로 생긴 나라인 '남베트남 공화국'과 1976년에 통일함으로써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어 소멸하였다.
3. 정당
이 나라의 유일 집권당은 베트남 노동당(Đảng lao động Việt Nam, Worker's Party of Vietnam)이었다. 적화통일 후인 1976년에 남베트남 세력인 인민혁명당과 합당하여 현재의 베트남 유일 집권당인 베트남 공산당이 되었다.
4. 관련 문서
[1] [image] 1955년까지 사용한 국기[2] 이후 베트남 공화국으로 바뀜.[3] 하띤 성과 꽝빈 성의 경계와 거의 동일하다. 옛 대월이 북쪽의 찐 씨 세력과 남쪽의 응웬 씨 세력으로 나뉘었을 때 두 세력의 경계와 이와 거의 동일했다.[4] 13도선의 경우 남베트남은 코친차이나와 안남 최남부 일대만 남으면서 남북간의 국력 차가 너무 커지게 된다.[5] 투아티엔 성과 꽝남 성의 경계와 거의 동일하다. 이 방안 대로라면 응우옌 왕조의 고도 후에는 북베트남령이 되며 다낭은 재수없게도 16도선이 도심을 정확히 관통하기 때문에 둘로 분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