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파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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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는 한국 비파 중 하나이자 중국에서 들어온 당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붙은 이름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쓰인 대표적인 향악기이다.
삼국사기에서는 '始於新羅(신라에서 비롯했다)'고 하는데 마치 현대의 기타 제작업체들이 미국의 Gibson과 Fender를 참고하여 기타를 만들듯이 기존에 있던 비파를 참고하여 신라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비파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2. 구조와 형태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 때는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신라삼현으로 꼽히고, 향비파곡만 220곡 정도가 있다고 했을 정도로 메이저한 악기였다. 현은 명주실로 된 현이 5현이 있고, 무현-청현-대현-중현-유현을 각 僙-㑣-㑣-黃-仲으로 조율한다. 울림통에는 다른나라에서는 볼수없는 울림 구멍[6] 이 존재하며 괘[7] 는 처음엔 5괘였다가 조선시대에서는 10괘, 근대에서는 12괘까지 증가하였다. 현대에 사용되는 향비파는 1988년 이성천 교수가 개량한 것으로[8] 괘의 수가 31개이다. 이하 "개량 비파"로 칭한다.
개량 비파는 기존 비파보다 음역과 음량이 넓어서 정악과 창작국악에 두루 쓰일 수 있다는 듯. 한국 비파는 연주할 때\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술대를 가지고 연주했는데[9] 지금도 종묘악에서 술대를 사용하여 합주에 응하는 한국 비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개량 이후로는 중국의 비파와 마찬가지로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 손가락에 뾰족한 가조각을 끼우고 연주하기도 한다.[10]
현재 남아있는 향비파의 유물은 많지 않지만 일본에 있는 정창원 비파가 오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의 향비파였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3. 연주법
가슴에 비파를 안은 후 왼손으로 목 밑을 쥐어 손가락으로 괘를 짚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잡거나 손가락을 이용하여 연주한다.
4. 구입 및 배우기
현재 향비파를 구입하거나 배우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로 향비파와 당비파의 맥이 끊어지면서 향비파가 사라졌고, 향비파가 아직 대중들에게 국악기라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11] 과 어느정도 노력과 상당히 높은 금액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 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국악인 중 비파를 전공하는 이들은 모두 향비파를 연주하고 있으며, 당비파와 향비파 2가지의 악기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향비파의 가격은 보통 300만원 대에서 시작하여 평균 400 ~500만원 된다고 하며, 가끔식 150만원에 팔기도 한다.[12] 보통 당비파가 향비파보다 가격이 높다고 한다.
향비파와 당비파는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인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경력이 짧아도 다른 교수, 강사 및 연주자들과 협연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국악 오케스트라의 경우 향비파는 연주하는 사람들이 적거나 드물어서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비파 연주가를 받아주는 편이다.
현재까지 활동중인 향비파 연주가 및 단체는 다음과 같다.
- 정영범: 당비파, 중국비파, 향비파를 모두 연주하는 대표적인 한국 비파 연주가.##
- 한은영: 옥천군 한내중학교, 한내초등학교 비파 강사.# 비파교본 저자.#[13]
- 김주영: #
- 김연주: #
- 국악이좋다: 향비파 및 당비파 레슨으로 현재 수원에서 활동중.#
- 미소컴퍼니: #영상
- 국밥: 향비파,당비파를 비롯한 국악기들로 버스킹 및 공연중. ##
- 예인집단 향비: #
5. 참고 논문
고악기 복원
Ⅱ.『악학궤범』향비파 복원 제작과정 연구
6. 관련 영상
[1] 울림통에 있는 검정색 가죽 판[2] 엄연히 말하자면 현재 위 사진의 비파가 악학궤범식 전통비파로 볼수있다. 왼쪽사진의 비파는 술대를 가지고 연주했을때 비파에 손상이 가는것을 막아주는 '대모'[1] 가 없지만 오른쪽 사진의 비파는 대모가 있다. 또한 악학궤범에 나온 주아는 좌측의 사진속 비파에서처럼 모두 똑같지 않고, '대현'의 주아가 다른 현의 주아와 달리 봉오리지고 짦다. [3] 개량향비파 산조[4] 영상속에 향비파에서는 전통 방식대로 술대를 사용하여 연주하는것을 볼수 있다.[5] 향비파의 현을 조율하는 조임대[6] 이 구멍을 음공(音孔)이라고 한다. [7] 기타의 프렛 역할[8] 비슷한 발현악기인 월금도 개량하였다.[9] 거문고와 달리 현을 다룰 때 드는 힘이 적어서 술대 잡는 법이 좀 다르다. 또한 술대를 만들때의 재료도 철남목을 사용하였다.[10] 다만 조선초기부터 손가락에 가조각을 끼우고 연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11] 실재로 현재도 당비파와 향비파를 연주할때 가조각을 끼고 연주하므로 중국 비파라고 하는 경우와,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악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12] 난계국악사의 향비파 가격 #, 영동 국악기 제작축제 때의 향비파 만들기 및 가격 # [13] 2015년 기준으로 교본 절판상태. 현재(2020년 기준)까지 책 발행 중단. 다만 현재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 [14] 직접 들을려면 유튜브로 들어가야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재생이 안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