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인 인슌

 

宝蔵院 胤舜
1589년 ~ 1648년


1. 개요


일본 전국시대 말기, 에도시대 초기의 승려이자, 무도가. 야마시로 국의 토착 무사 출신이다.
나라 코후쿠사의 말사 호조인의 2대 원주가 된 인물로 호조인 창술을 완성시켰다고 하며, 호조인 인에이가 유언으로 무예를 금하게 했지만 호조인은 창술로 유명했기 때문에 오조인 도에이(奧藏院 道榮)에게 배웠다고 한다.

2. 대중매체에서


'쥬스'가 아니라 '주스'가 맞듯 '호죠인'이라는 표기는 성립할 수 없다. 더군다나 '호조인'의 '조'는 じょ가 아니라 ぞ로, '죠'로 표기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호죠인 인슌'이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이는 항목에도 있지만 현대 한국어의 음가에서 ㅈ, ㅉ, ㅊ 다음에 오는 단모음과 이중모음의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된 표기.

2.1. 배가본드


[1]
호조인 인에이가 창시한 보장원 창술의 2대 계승자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오로지 강함과 싸움을 추구하고 자신의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기온 토지와 대결하다 양 손목이 날아가 버려 몸져누운 동료를 보면서도 위로를 하기는커녕 어떻게 해서 졌는지만 물어보고 마는 것이 대표적. 보장원의 실력자들 중 한 명이자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아곤이 무사시에게 패했을 때도 괜찮느냐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 때문에 보장원 내에서는 공공연히 아싸 취급을 당하고, 2대 계승자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승려들도 있지만 인슌이 먼저 알아채는 바람에 실패했다.
보장원에 쳐들어와 아곤을 꺾은 무사시와 대결을 펼치는데 무사시를 생사의 갈림길까지 몰아붙인 끝에 패배시킨다. 무사시는 나중에 조타로에게 들은 뒤에야 자신이 정신줄을 놓고 줄행랑쳤음을 깨닫고, 토지 역시 무사시와 인슌의 대결을 보다가 인슌의 천재성을 보고 '무사시, 이 대결 끝에 무엇이 보이는가?'라고 말하고 좌절하여 야규까지 흘러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이후 목숨을 걸고 싸울 상대가 사라지자 다시 게으른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무사시가 인에이에게 수련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다시금 기대한다.[2]
그렇게 인에이와 아곤의 입회하에 뒷산에서 무사시와 2차 대결을 펼치지만,[3] 무사시가 이전과 달리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지 않고 신중하게 나오자 도리어 당황하여 1차 대결에서 무사시가 그랬던 것처럼 기합으로 자신을 추스리려고 하는 등 심리적으로 열세에 몰린다. 그렇게 몇 합을 주고받나 싶다가 결국 무사시가 휘두른 목검에 이마를 맞고 쓰러져 패배한다.[4] 인슌을 타격을 받고 잠시 정신이 나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내는데...

인슌의 어린 시절 본명은 신노스케. 아버지는 본래 검술을 익히는 무사로, 호조인 인에이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지만 능력은 약간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신노스케는 장난삼아 인에이가 건넨 봉을 제법 능숙하게 드는 모습을 보여 두 사람의 감탄을 받는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방랑검사에게 어머니가 살해당했다. 정확히는 신노스케와 함께 집에 돌아가던 그녀를 산길에서 방랑검사가 보고 쫓아오기에, 신노스케와 모친은 뛰어서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실수로 신노스케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검사에게 붙들려서 모친은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낭인이 며칠 동안 굶은 상태라 허기가 져서 음식을 구걸하자 이를 불쌍하게 여긴 인슌의 어머니가 먹을 것을 줬는데, 막상 이걸 다 먹고 난 낭인은 배가 부르자 딴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이 모자를 쫓아와서 신노스케의 모친을 겁탈하려 들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다. 인슌의 모친은 심하게 저항하다가 칼에 찔려 사망했다.
집에 돌아오다가 이를 발견하고 달려온 아버지는 낭인과 대결하다가 함께 목숨을 잃는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지켜 본 인슌은 충격에 빠져 기억을 상실하고, 인에이는 그를 가엾이 여겨 보장원으로 데려와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인슌'이란 이름을 주고 기른다. 하지만 인슌의 머릿속 어딘가에는 그 충격과 복수심이 남아 있었기에 오로지 창 수련에만 매달린다. 절친인 아곤의 회상에 의하면, 사실 인슌이 보장원에 입소한 초창기에는 다른 보장원생들도 그의 강함을 보고 감탄했고, 이를 동경하여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신들과는 넘사벽급으로 다른 그의 강함과, 타인을 그냥 수련 상대로만 여기는 그의 태도에 겁을 먹고 점점 따돌리기 시작했다고.
인에이는 인슌이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나 그 속에는 어렸을 때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뒤틀린 호승심을 깨닫고, 이를 깨우쳐 줄 강자를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무사시가 나타난 것. 그리고 인에이의 바람대로 패배를 모르던 인슌은 무사시에게 패배하고서 기억을 되찾고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환상 속에서나마 무사시를 인정한다.[5]
이후 무사시와 나란히 사경을 헤매다가 뒤늦게 깨어나서는 다시 유랑을 떠나는 무사시에게 정식으로 예를 갖춰 인사하고는, 이번에는 '목숨을 빼앗는 일 없이' 대결하자고 약속한다. 그리고 인에이에게 보장원의 계승자에게 전수되는 창을 반납하고는, 정식으로 보장원류(호조인류) 2대를 계승받는다. 혼자만의 복수심을 버리고 다른 승려들과 함께하며 창술을 보급하는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명대사로는 무사시와의 첫번째 대결 중 말한 "흡사 검놀림 하나하나가 네 목숨 그 자체를 밀어붙이는 듯 하다."이 대표적. 이후 무사시와 요시오카 70명과의 대결 이후 잠시 얼굴을 비춘다. 넉살 좋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절들이 할 일이 많아질 것이고, 70명과 싸웠으니 무사시도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실제로 무사시는 다리를 크게 다쳤다.
작중 무사시에게 처음으로 '''굴욕'''과 '''패배의 쓴맛'''을 알게 해준 인물.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도 인슌과의 대결은 무사시를 작중 가장 많이 성장시킨 훈련이다. 배가본드에서는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패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무사시와 겨뤄서 패한 인물은 인슌을 가르친 오조인이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에서는 보장원의 2대 계승자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등장한다. 잡스런 무사들이 무사시와 보장원을 이간질해 복수하려다[6] 무사시에게 썰리자, 무사시가 지쳤을 때 무사시 대신 그 무사들을 '''몰살한다(!).''' 이유인즉 그 지역의 영주들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출내기라 지방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통제를 하지 못하여 건달들이 넘쳐나는 상태였다. 이에 관리들은 보장원과 협력하여 그들을 소탕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무사시가 그들과 마찰을 빚자 이때다 싶어 쓸어버린 것. 무사시와 대결하는 장면은 없다.

2.2. 용과 같이 켄잔!


호죠인류 창술 2대 당주로 뛰어난 실력자. 하지만 승려로서의 본분은 까맣게 잊고 강함만 쫓아다니며 자만심이 심하다.
작중 호죠인이 투기장 역할을 하며 토너먼트식 대회도 여는데, 여기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출전한다는 소식에 키류 카즈마노스케가 조사를 위해 출전하여 부딫치게 된다. 결승전에서 인슌과 키류가 싸우게 되는데, 정작 인슌은 싸우고 싶은 무사시는 안나오고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올라왔다고 그냥 때려치우려 했으나 키류가 나라 지방의 코찔찔이라 도발을 걸자 그와 대결했다가 패배한다. 이때 패배한 것이 처음이었던 덕택에 큰 충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에 널부러진 채 애들처럼 울며 찌질거렸다.

2.3. 일기당천



2.4. Fate/Grand Order에서


3성 랜서로 참전했다. 자세한 건 호조인 인슌(Fate 시리즈) 문서 참조.
[1] 아닌게아니라 자신만만한 태도나 웃음, 마이페이스인 성격 등이 매우 닮았다.[2] 무사시가 수련 중이던 산에 찾아가서 봉으로 나무를 한 번 찔러 무사시를 도발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무사시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3] 이때, 인슌은 연습용 나무봉을 이용하지 않고 보장원 대대로 내려오던 쥬몬지야리(십자창)을 사용했다![4] 다만 무사시 역시 초반에 기싸움을 했거니와 전혀 타격을 안 받은 것은 아니기에 인슌과 거의 동시에 기절했다.[5] 무사시는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들었다는 식으로, 실제로 말하지는 않은 것처럼 묘사된다.[6] 시골에서 무술학교 같은 걸 같이 하자고 제안했으나, 무사시가 보기엔 실력도 없어 보이거니와 워낙 징글징글하게 매달려서 내쫓았는데 그것에 불만을 품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