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키스 M1909

 

1. 제원
2. 개요
3. 역사
4. 종류
5. 둘러보기


1. 제원


'''호치키스 M1909 베넷-메르시에'''
''Hotchkiss M1909 Benét–Mercié''
'''종류'''
경기관총
'''국가'''
프랑스
'''역사'''
'''개발'''
로렌스 V. 베넷
앙리 메르시에
'''개발 년도'''
1901년
'''생산'''
호치키스
'''생산 년도'''
1909년
'''사용 국가'''
프랑스
영국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사용된 전쟁'''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
'''제원'''
'''구경'''
8 mm
7.7 mm
7.62 mm
7 mm
'''탄약'''
8×51mmR 르벨
.303 브리티쉬
.30-06 스프링필드
7x57mm 마우저
'''급탄'''
보탄판
탄벨트
'''작동 방식'''
가스작동식
'''중량'''
12kg
'''전장'''
1230mm
'''총열 길이'''
640mm
'''발사 속도'''
400~600RPM
'''최대사거리'''
3800m

2. 개요


[image]

호치키스 Mark I* 작동 방식 영상
Hotchkiss M1909
프랑스의 호치키스사 에서 제작한 경기관총.
오스트리아의 군인인 A. 오드콜렉 폰 우예즈의 설계를 개선한 M1900을 바탕으로 최종 설계 담당자였던 로렌스 V. 베넷과 앙리 메르시에가 제작한 보탄판 급탄식 경기관총이다.

3. 역사


1886년 호치키스 중기관총의 설계가 완료되고, 마이너한 개량을 거치며 각국에 팔려가게된다. 그 사이 1901년 베넷과 메르시에는 1897년 설계안을 바탕으로 보다 간략하고 가벼운 기관총을 설계하게 된다. 설계의 주안점은 보다 가볍고 저렴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관총이었다. 이는 당시 마드센 기관총의 제작방침과 일치했다. 따라서 대폭적으로 설계가 간략해 져서 기존 M1900과는 기본 가스 구조를 제외하면 그닥 닮은점이 없었다.
1907년 설계가 완료되었고, 1909년 프랑스가 구입하여 M1909의 제식명으로 700정 정도 도입되었으나, 당시는 경기관총의 운영교리가 없던 시기이다 보니 보병용으로는 사용되지 못했다. 대부분 진지방어용 보조 기관총 및, 전차 혹은 항공기의 차재기관총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생산공장이 파리에 있었지만 1914년이 되자 프랑스 군부에서는 생산공장을 리옹으로 옮기라고 지시했고 그 뒤부터 리옹에서 생산을 했다.
영국군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하였으며, 코번트리의 공장에서 .303버전이 생산되었다. 1차 대전 중 40,000정이상을 생산하여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요 사용국을 프랑스로 알고 있는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영국이 훨씬 많이 사용했다. 동시기 루이스 경기관총이 도입되기도 했으나, 그 생산수량이 보병용과 항공용수요를 충족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상당수가 기병 및 차량 탑재용 기관총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Mark 1 전차에 3정이 탑재되어 기관총 화력을 담당했다.
미군은 보병용 중기관총[1]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M1909의 제식명으로 이 총을 주문했고, 스프링필드 조병창콜트에서 .30-06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하는 M1909를 670정을 생산하여 1차 대전 당시 사용한 기록이 있다. 당시 미군은 대전이 터지기 전 가볍고 저렴한 이 기관총으로 자국 군을 무장시키게 된다. 아직 미군의 규모가 매우 작던 때이다 보니 그정도만 생산되었고,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이 이미 생산이 중단되었다. 뒤이어 터진 1차대전에서 화력 부족 문제 때문에 자국산 수랭식 중기관총인 M1917을 도입했고,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이 보병 지원화기로 사용되면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지만, 갑작스런 팽창으로 무기가 부족했던 미군은 1차대전중에도 간간히 이 기관총을 사용했다.
프랑스는 M1909로 도입하여 기병 및 차량용으로 사용했다. 일부 보병화기로도 사용하긴 했으나, 곧이어 개발된 훨씬 저렴하고 가벼운 CSRG 쇼샤에 자리를 내 주었고[2], 뒤이어 M1914 기반의 경기관총인 M1922도 개발되었지만, 신형탄약과 함께 BAR기반의 탄창식의 FM 24/29경기관총이 개발되며 자연스럽게 교체 수순을 밟았다. 2차대전이 뒤이어 터지면서 신형탄약의 보급에 차질이 생겼고, 일부 기관총이 여전히 사용되긴 했으나, 엄연히 주력도 아니었고, 보병용도 아니었다. 따라서 항간에는 프랑스가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고, 영국군이 오히려 더 많이 사용했다.[3]

4. 종류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제로 대동소이한 모델들이다.
  • 호치키스 M1909
프랑스군 버전으로 8 mm 르벨탄을 사용했으며, 기병용 및 차량용과 진지 방어용으로 사용되었다.
  • 호치키스 Mark I/I*

C&Rsenal의 리뷰 영상
영국군이 도입한 버전으로 .303 브리티쉬 탄을 사용했다. 영국군은 이 물건을 상당히 애용했는데, 차량탑재용 및 기병용 두 가지 모델로 생산되었다. 기병용은 일반적인 개머리판을 단 버전과 철제 튜브를 이용한 경량 개머리판 버전 두 가지가 있었으며, 차량용은 황동 브라스로 제작된 권총손잡이만 달려 있었다. 초기 모델은 보탄판만 사용했지만, 3발짜리 짧은 보탄판을 연결한 관절식 탄띠(M1900용의 그것)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했고 이전 버전과의 구별을위해 이름을 Mk I*으로 바꿔 생산했다.
  • Benét–Mercié Machine Rifle M1909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미군버전의 M1909로 670정의 적은량이 생산 되었다. 조준기가 개량되었고, 외형적으로 소소한 다른 개량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특별한 점은 없었다. 스프링필드 M1903에도 달린 워너&스웨시 사의 망원 머스킷 조준경(Telescopic Musket Sight)을 장착하기도 했다.

5. 둘러보기








[1] 오타가 아니라 진짜 중기관총 목적으로 도입했다. 참고로 이 당시 중기관총은 그냥 삼각대에 거치된 보병용 기관총을 의미했다.[2] 쇼사가 성능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전 중 프랑스는 이 물건을 엄청나게 많이 찍어내고 또 많이 써먹었다.[3]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M1909도 대부분 .303브리티쉬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