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필드 M1903

 

'''M1903'''
''United States Rifle, Caliber .30-06, Model 1903''

[image]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종류'''
<colcolor=black>볼트액션 소총
'''원산지'''
[image] 미국
【펼치기 · 접기】
'''이력'''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역사'''
<colcolor=black>1903년~현재
'''개발'''
스프링필드 조병창
'''개발년도'''
1903년
'''생산'''
스프링필드 조병창
'''생산년도'''
1903년~1949년
'''생산수'''
3,004,079정
'''사용국'''
[image] 미국
[image] 멕시코
[image] 대만
[image] 쿠바
[image] 영국
그 외 다수
'''사용된 전쟁'''
미국-필리핀 전쟁
멕시코 혁명
제1차 세계 대전
바나나 전쟁
아일랜드 독립 전쟁
아일랜드 내전
코토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그리스 내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국공내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6.25 전쟁
쿠바 독립전쟁
후크발라합 반란
알제리 전쟁
베트남 전쟁
피그만 침공
캄보디아 내전
'''기종'''
'''원형'''
M1901
'''파생형'''
M1903 Mk 1
M1903A1
M1903A2
M1903A3
M1903A4
M1903 National Match
Bannerman Springfield
M1903 Air Service
'''제원'''
'''탄약'''
.30-03 스프링필드(7.62×65mm)
.30-06 스프링필드(7.62×63mm)
'''급탄'''
5발들이 내장형 탄창
5발 스트리퍼 클립
'''작동방식'''
볼트액션
'''총열길이'''
610mm
'''전장'''
1,100mm
'''중량'''
3.9kg
'''탄속'''
850m/s
'''유효사거리'''
914m
'''최대사거리'''
5,000m

1. 개요
2. 상세
2.1. 역사
2.2. 특징
2.2.1. 탄창 차단기
3. 파생형
4. 페더슨 장비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5.1. 영화 및 드라마
5.2. 게임
5.3. 그 외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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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ickok45의 리뷰 영상
미국의 볼트액션 소총. 기존에 사용하던 크라그-에르겐센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에서 개발된 총으로 베트남 전쟁까지 사용되었다. 현재는 미군 의장대, JROTC, 미 해안경비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상세



2.1. 역사



2.1.1. 세계대전 이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군트랩도어 후장식 단발 소총인 스프링필드 M1873과 연발 볼트액션 소총인 크라그-에르겐센의 미군 제식형인 스프링필드 M1872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미군은 산 후안 고지 전투에서 8,000명에 가까운 대 병력을 동원해 고작 521명이 전부인 스페인군을 상대로 15배의 병력차이를 보이며 수적, 질적 우세를 점하여 승리하였으나, 1,2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추태를 보였다. 전후 미군은 이 전투를 분석하였는데, 원인이 당시 사용하던 개인화기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스페인군이 사용하던 소총은 당대 최신 소총이었던 M93 스패니시 마우저로, 5발 내장식 탄창을 가지고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하여 빠르게 장전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반면에 미군이 사용하던 소총은 단발 트랩도어식의 스프링필드 M1873과, 5발 내장식 탄창을 사용하나 사이드도어로 장전하게 되어 있어 클립 장전이 안되는 크라그-에르겐센 소총[1]을 사용하였는데, 모두 한발씩 장전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어, 장전속도에서 한계가 명확했다. 이에 미군은 신형 소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노획한 마우저 소총을 바탕으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새로운 설계안을 내게 하는데, 사실상 개발보다는 모방에 가까운 일명 '''아메리칸 마우저'''가 탄생하게 된다.
스프링필드사는 각 1900년과 1901년에 신형소총 설계를 위한 30구경의 프로토타입 소총(M1900, M1901)을 제작하였는데, 이들은 스패니시 마우저와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최종적으로 채용된 1903년형 스프링필드 소총은 동시기 제작된 .30-03 스프링필드(7.62×65mm) 탄에 맞춰 제작되었다. 이 탄약은 프로토타입에서의 실험 결과 기존의 소총탄과는 달리 M1901의 30인치에 달하는 총열이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미군은 총열을 24인치로 줄여 M1903에 적용하였다. 총열이 짧아지면서 그만큼 다루기가 편해지고 가벼워지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Forgotten Weapons의 초기형 M1903용 막대형 총검 리뷰 영상. M1903의 열처리 및 특허 로열티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Forgotten Weapons의 M1915 볼로 총검 리뷰 영상
초기형은 짧은 수납형 스파이크식 총검을 장착했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에 의해 거부되어 기존의 칼날형 총검이 다시 달리게 되었다. 그 전에 미 육군의 제9보병연대의 병참 장교 휴 D. 와이즈(Hugh D.Wise) 대위가 적으로부터 총검을 빼내려다 죽은 기병들을 보고 1902년에 볼로(Bolo) 총검을 제안했고 시제형까지 만들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전통적인 총검이 부활하면서 1915년에 제식으로 채용되어 6,000개가 생산되어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군이 사용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M1903을 최종적으로 개량하여 설계를 마무리했고, 마우저식의 고정식 내부 박스 탄창, 3개의 볼트 잠금 돌기(Locking Lug)[2] 등 마우저 소총의 특징들을 갖춘 소총을 출시, M1903으로 명하고 납품을 받기 시작한다. M1903의 설계에 반영된 마우저 소총의 특징들은 참고보다 모방 수준이었기에, 마우저 사는 미국 정부에게 소송을 걸었고 미국 법정은 '''마우저의 손을 들어준다.'''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마우저에 1905년부터 1909년까지 20만 달러나 되는 로열티를 지불하며 M1903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M1903은 .30-03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나, 독일의 DWM(Deutsche Waffen und Munitionsfabriken) 사에서 바로 다음 해인 1904년에 더욱 긴 사정 거리를 가진 차세대 Spitzer 탄[3]을 개발한다. 갓 개발한 .30-03탄이 겨우 일년 뒤 구식이 되어 버리자, 미군은 또 다시 독일의 Spitzer 탄을 '''참고하여''' 1906년에 .30-06 스프링필드 탄환을 개발, 제식 탄환으로 지정한다. DWM 사는 당연히 미국 정부에게 소송을 걸었고 미국 법정은 '''DWM의 손을 들어주고''' 30만의 로열티를 지불케 하였다. 새로 개발된 .30-06탄은 150그레인(9.7g)의 탄두 중량과 5,000 m의 최대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2.1.2. 제1차 세계 대전


1차대전 중 미군은 이 제식소총을 가지고 전쟁을 치르려 하였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군 규모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단시간에 급속도로 군대를 팽창시킬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화기의 부족 문제가 이어져, 파병 당시 미군은 제식소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무기를 도입하여 사용한다. 주로 프랑스의 무기를 많이 가져왔지만, 제식소총은 당시 영국이 버린 P14 소총의 .30-06 스프링필드 탄 사용 버전인 M1917 엔필드를 준 제식으로 도입하게 된다. 이 총은 당연히 M1903 스프링필드와 같이 참호전을 겪게 된다.
1차대전에 사용된 물량 중 전쟁 전 생산분은 금속 열처리에 문제가 있어, 총몸이 과열에 의해 폭발하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 부상사례도 제법 보고되었으며, 문서화되진 않았으나 사망사고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후 이 열처리 문제는 기존 총몸의 재 열처리 과정을 거치며 개선되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Forgotten Weapons의 1차대전 당시의 저격용 M1903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워너 & 스웨시 사의 M1913 망원 머스킷 조준경 리뷰 영상
저격용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보통 워너 & 스웨시 사의 망원 머스킷 조준경(Telescopic Musket Sight)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1908년에 처음 나왔을 때는 6배율이었지만, 1913년에 시야 확보를 위해 5.2배율로 개량했으며, 호치키스 M1909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윈체스터 사의 5배율의 A5 스코프도 사용되었는데, 주로 미 해병대에서 사용되었지만, 미 육군에서도 수백 정 사용되었다.
[image]

Forgotten Weapons의 카메론-야기 참호전용 소총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카메론-야기 참호전용 소총 사격 영상
다른 나라처럼 참호전에서 안전하게 사격하기 위해 잠망경 등을 다는 등 개조를 거친 물건도 있다.
또한 1차대전 중 미군은 무기의 부족과 함께 독일 제국의 신형무기인 MP18과 같은 근거리 무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신형 화기를 제작하는 대신에 미군은 기존 소총을 개량하여 두 가지 탄약을 한번에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나온 것이 페더슨 장비이다. 페더슨 장비에 관한 사항은 후술한다. 페더슨 장비를 사용하는 스프링필드는 다른 개량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권총탄약의 탄피배출구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기존 소총에 권총탄용 탄피배출구'''만''' 뚫어놓았고, 이를 Mark 1 소총이라 불렀다. 1차대전 중 이 장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곧 알고 이 물건들은 폐기되었으나, Mark 1 모델은 탄피 배출구 외에는 기존 소총과 차이가 없어 그냥 동일하게 일반 소총으로 사용된다.

2.1.3. 제2차 세계 대전


1차대전이 종전되고, 새로운 반그립형 개머리판(Type C)[4]을 채용한 M1903A1이 나왔지만 그동안 생산된 기존의 M1903이 많다보니 군용으로는 많이는 생산되지 않았었고 민간 사격 경기용으로나 주로 생산되었다.
M1903A2는 포(砲)에서의 스포팅 라이플[5]로 사용된 모델로 독립 소총은 아니었다.[6]
그리고 2차대전이 일어나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생겨나자[7] 만들게 된 A3 모델은 공정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높히고, 가늠자를 후방으로 옮겼다. 또한 A3 모델은 방아쇠울이라던지 개머리판 받침 패드 같은 부분 등 몇몇 부품을 절삭 가공 부품에서 프레스 가공 부품으로 바꿨으며 총신과 가동부의 부품을 '완화한 합금 규격이 적용된 물건'으로 바꾸고 강선을 4조에서 2조로 바꾼 모델이었다.[8] 초기에는 M1903A1처럼 반그립형 개머리판을 썼지만 후기형 M1903은 이전에 쓰던 직선그립형 개머리판을 사용 하였다. 미군은 이미 M1 개런드라는 훌륭한 반자동소총이 있었으나, 모든 수요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M1903 또한 저격 임무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도 일부의 정규군에서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군은 다 개런드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놈도 대전 중 미군에 의해 땜빵용이나 저격용이 아닌 엄연한 '''일반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대부분은 비전투병과, 후방에 지급되거나 브라질 원정군, 자유 프랑스군 등에 랜드리스로 돌려져 실제로 최전선에서 미군 보병이 사용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M1 개런드가 생산되며 일선에서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으나, 미 해병대에서는 태평양 전쟁 초반에도 주력 소총으로 M1903을 사용했다가 중반에서야 미 육군과 보급을 통일하라는 압력과 일선 병사들의 요구로 인해 M1 개런드로 교체되었다. 이는 볼트액션 구조가 반자동 구조에 비해 명중률이 우월하고, 운영 유지비를 퍼먹어대는 대형함들을 유지해야 하는 미 해군 입장에서는 미 육군과 달리 해병대의 개인 화기까지 교체할 돈이 없었으며, 전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병력을 늘리고 있어 제식소총을 한꺼번에 바꾸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반자동 방식보다 볼트액션 방식의 신뢰성이 높다는 것도 있었다. 볼트액션 소총보다 발사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반자동소총의 최대 이점이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 소총에 자동 장전 기구를 넣어야 했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지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이 때문에 신뢰성이 감소하고 손질 난이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사가 덜 숙련된 신병이라도, 전투로 인한 공포로 인해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발사 후 노리쇠를 따로 조작해야 하는 볼트액션 소총과 달리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총알을 연속으로 내뱉는 반자동소총의 이점은 무시할 수 없었을 뿐더러, 미 해병대가 활동했던 태평양 전선은 유럽 전선과는 달리 교전거리가 짧은 데다 반자이 돌격하는 일본군백병전을 벌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볼트액션 소총의 높은 명중률과 구조적 간단함은 당시 전장에서 사용된 반자동소총 앞에서는 별 이점을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자신들이 사용하던 스프링필드에 불만을 느낀 해병대원들은 M1 개런드가 보급되기까지 육군 전사자의 M1 개런드를 가져오거나 아예 육군에 보급된 M1 개런드(와 기타 물자)를 '''훔쳐서''' 사용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미국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 이러한 사례가 잘 나타나는데, 해병대원들이 야적된 육군 보급품 더미에서 M1 개런드, 식량, 개인 물품 등을 아예 박스째로 훔치고, 이를 목격한 육군 장교가 거기 서라며 해병대원들에게 다가오자 밀림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Forgotten Weapons의 저격용 M1903A4 리뷰 영상
M1903A3와 동시기에 저격용의 M1903A4가 제작된다. 차이는 스코프 마운트를 위한 리시버 형태와 나중에 M1903A3가 직선그립형 개머리판으로 돌아간 후에도 반그립형 개머리판을 유지했던 걸 빼면 M1903A3와 거의 동일하다. M1903이 애초에 명중률이 좋았기 때문에, 중총열이나 유동총열 개조 등은 거치지 않았고 그냥 보급된 M1903A3 중 잘 맞는 물건을 골라 개조한 것이다. 미군은 이 총에 위버 사의 330 또는 330C의 2.75배율 망원조준경을 부착하여 사용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제식 채용되며 M73B1 스코프가 된다. 이 스코프는 장거리 사격에 그리 적합한 물건은 아니었고, 환경변화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딱히 저격수를 양성하지 않았던 미 육군은 이것을 한국전쟁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2차대전 이후에는 M1 개런드를 저격용으로 개수한 M1D에 달린 M84 망원조준경을 장착하기도 했다.
미 육군과는 다르게 미 해병대는 1차대전 중 채용한 윈체스터 A5 스코프를 장착한 저격용 버전을 계속 사용했다. 사격 능력을 중시했던 해병대는 육군보다 저격전에 더 유능했고, 더 높은 정확도와 뛰어난 성능의 저격소총을 원했다. 그들은 2차대전 중 존 유너틀이 제작한 8배율의 유너틀 스코프를 M1903에 장착하기로 하고 표준 저격소총으로 사용했는데, 이 총은 M72 매치그레이드 탄을 사용할 경우 무려 550m에서 0.58 MOA의 준수한 집탄율을 보였다고 한다.[9] 이 탄약은 잘 보급되는 탄약이 아니었으므로 해병 저격수는 일반용의 M2 탄약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 탄약 또한 550m에서 1.25 MOA의 집탄율을 보였다. 2차대전 중 미 해병대용 스프링필드 저격총은 1 km 이상의 사살기록을 내는 등 준수한 성능으로 해병 저격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전 기간 동안 중국 국민당군에는 10만 7천정이 제공되었다.

2.1.4. 대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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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육군과 미 해병대는 저격용으로 개조된 M1903A1와 M1903A4[10]를 사용했다. 이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미국은 한국군의 증강에 맞춰 한국에 추가 군사원조를 해 주기로 했는데 예산 문제로 M1 개런드의 수량이 부족해지자 그 대신 비축물자로 있던 M1903을 주기로 했다. 이때가 '''1950년 5월'''이었고 다들 알다시피 한 달 뒤에 한국전쟁이 발발해버려서 기존의 평시군사원조 계획은 폐기되고 전시군사원조로 전환, 그 뒤로 M1 개런드를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참전 수기에 따르면 1950년 8월 30일에 징집되어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한 해병대 4기생들이 최초로 지급받은 화기가 M1918 BAR과 M1903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전시군사원조로 전환된 이후에도 M1903이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지속 중이던 1950년 12월에도 M1 개런드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11] 다시 M1903을 대신 주는 것을 고려했으나 효율성이나 후속 지원 문제 때문에 그냥 M1 개런드를 계속 주는 걸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훨씬 이후의 베트남 전쟁 초기에도 마땅히 쓸만한 저격소총이 없었던 탓에 저격용으로 소수가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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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자로 개발된 M21M40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부터 무기고에 비축되있던 비개조 수량들은 의장대#s-5.1청소년 학군단(JROTC) 전용으로 전환되었으며, 또한 미 해안경비대에서는 선박 연결용 줄이 담긴 보관통(Canister)이 합쳐진 투색총(Line Thrower Gun)으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에도 M1903의 명맥은 제한적이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2.2. 특징



2.2.1. 탄창 차단기


마우저를 모방하여 만든 소총이었지만, M1903는 마우저에게 없는 M1903의 고유 장치가 있었는데 총몸 왼편에 달린 탄창 차단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능은 단발/연발 운영이 가능했던 크라그-에르겐센에서 따온 것이었다. 보통 볼트 액션 소총은 격발 뒤 볼트를 당기고 다시 밀면 볼트가 탄의 뒤를 잡아 약실로 밀어 넣는데, 이 탄창 차단기를 작동시키고 볼트를 작동하면 차단기가 볼트의 완전 후퇴를 막아, 탄이 탄창 위로 못 올라오게 되고, 결국 볼트가 탄을 잡아 약실에 밀어넣을 수 없게 된다. '''연발''' 소총을 한 순간 '''단발''' 소총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해하기 힘든 기능인 것이다.
미군 양반들이 뭔 약을 했기에 멀쩡한 소총에 이런 걸 달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1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군은 자그만 정규군 규모를 유지하다 전쟁이 터지면 민병대와 입대자들을 모아서 급격히 몸을 불리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소규모로 돌아가는 집단이었다. 즉 개인 병사의 숙련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민병대 군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야전 교리는 "장거리 교전 때는 단발로 차분하게 쏘고, 영거리 돌격시 탄창의 화력으로 다 밀어버린다!"였는데, 미군 장교들은 새파란 신병들에 고정식 탄창 소총을 지급하면 전투 중 탄약을 다 소모해 결정적인 순간에 빈 총 들고 돌격하는 참사가 일어날 것이 뻔해 보였다. 하지만 차세대 소총에 탄창이 없으면 말이 안되니 미군은 신병들도 그 시대의 야전 교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M1903에게 탄창 차단기를 달아놓은 것이다. 장거리 교전 때는 탄창 차단기를 작동시켜 탄 소모를 막고, 단거리 교전~백병전 시에는 차단기를 꺼서 화력을 올리는,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미군만의 아이디어도 아니었고, 리-엔필드, 르벨 M1886 등 당시의 내부탄창식 소총에 종종 설치된 장치였다. 굳이 문제라면 전쟁이 장교들이 상상하는 만큼 깔끔하지 않아 탄창 차단기가 쓰인 적은 별로 없었다는 것...
다만 총류탄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이 탄창 차단기가 유용하게 쓸 구석이 생겼다. 제식 소총인 M1 개런드로 총류탄을 쏘는 건 특유의 엔블록 클립 장전 구조 탓에 번거롭기 때문에 분대 당 M1903 1정과 공포탄을 지급해서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총류탄을 발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탄창 차단기가 있으면 실탄을 쏘던 중 공포탄으로 탄종을 바꾸는 과정에서 장전된 실탄을 분실할 위험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었다. 또한 후술할 페더슨 장비를 사용할 경우 별도의 탄창을 써야 했으므로 이 차단기를 사용했다.
이런 탄창 차단기는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SPAS-12 같은 일부 산탄총들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3. 파생형


  • M1903 Mk 1
[image]
페더슨 장비 사용을 위해 권총탄용 탄피배출구를 뚫은 모델. 권총탄용 탄피배출구 외에는 일반 M1903과 차이가 없어 페더슨 장비 폐기 후에도 일반 소총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 M1903A1
[image]
1차 개량형으로, 반그립형 개머리판이 특징이다.
  • M1903A2
M1903/M1903A1을 개조한 화포용 스포팅 라이플.
  • M1903A3
2차 개량형으로[12], 총몸 뒤에 부착된 가늠자가 확연한 특징이다. 초기에는 M1903A1처럼 반그립형 개머리판을 쓰다가, 후기형에서 일자형 개머리판으로 돌아갔다.[13] 이 뿐만 아니라 몇몇 부분(방아쇠울, 개머리판 아래쪽 패널 등)을 절삭 가공 부품에서 프레스 가공 부품으로 바꾸고, 총신과 가동부의 부품을 완화 합금 규격의 물건으로 바꾸고 총열 강선을 4조에서 2조로 바꾸었다.
  • M1903 개조형
[image]
레밍턴 사에서 제작한 임시 개량형 M1903. A3형이 등장하기 전 땜빵용이다. A1에서 A3로 넘어가면서 그 변경사항들이 하나씩 적용되던 시기의 물건.
  • M1903A4
저격형. M1903A3에 스코프를 달도록 개조하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없앤 모델. 육군용이었지만 해병대에서도 일부 사용했다고 한다.
  • M1903A1/Unertl
[image]
해병대에서 사용한 유너틀 스코프 장착 버전.
  • Bannerman Springfield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랜시스 베너만이 기존의 M1903을 개조하여 .303 브리티쉬 탄을 사용하게 만든 물건이다. 영국군에 제시해 보았지만, 림리스 탄에 맞춰 만든 물건을 .303 브리티쉬탄에 맞게 개조했더니 여러 트러블을 일으켜 결국에는 퇴짜맞았다고 한다. 애초에 영국군은 엔필드 소총을 바꿀 계획도 없었기도 하고... 일부가 영국에서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M1 총류탄 발사기
[image]
총류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발사기를 총구에 부착하였다. 이전에는 VB 총류탄을 운용했었으나 대부분 전간기에 폐기되었다. 1941년에 개발되었으며, 1943년 M1 개런드용 총류탄 발사기인 M7이 개발되면서 대체되어 갔다.
  • M1903 Air Service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C&Rsenal의 사격 영상
1918년에 제작한, 25발로 장탄수를 늘린 연장 탄창을 탑재한 M1903. 항공기 승무원이 기총을 보조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 반자동소총형 M1903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1921년에 제작한 프로토타입 반자동소총으로, 뇌관 작동 블로우백 방식으로 작동한다.[14] 기존의 M1903 재고를 재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기대 미만의 성능을 보여준데다 특유의 작동 방식으로 인해 전용 탄약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에 사장되었고, 후에 M1 개런드가 제식 채택되었다.

4. 페더슨 장비


'''Pedersen Device'''
''United States Automatic Pistol, Caliber .30, Model of 1918''

[image]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종류'''
<colcolor=black>전환용 노리쇠
'''원산지'''
[image] 미국
【펼치기 · 접기】
'''이력'''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역사'''
<colcolor=black>1918년~1931년
'''개발'''
존 페더슨
'''개발년도'''
1918년
'''생산'''
스프링필드 조병창
'''생산년도'''
1918년~1920년
'''생산수'''
65,000정
'''사용국'''
[image] 미국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원'''
'''탄약'''
7.65×20mm Longue[19]
'''급탄'''
40발들이 박스탄창
'''작동방식'''
스트레이트 블로우백
'''중량'''
0.96kg(탄창 미포함)
1.4kg(40발들이 탄창 포함)

[image]

C&Rsenal의 리뷰 영상
제1차 세계 대전 말기, 볼트액션 소총 가지곤 연사가 얼마나 후달리는지 잘 알던 미군 수뇌부는 기관단총을 긁어 대면서 화망을 형성하며 돌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든 병사에게 기관단총을 지급하자니 이미 스프링필드 찍어낸 것도 있는데다가 기관단총 특성상 100m 이상에서는 명중률이 총알 뿌리개 수준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탄창탄환의 보급이었다. 일단 긁어 대는 기관단총 특성 때문에 무시무시하게 탄환 낭비가 심했던 데다가 당시에는 지금은 흔해 빠진 착탈식 탄창이 무진장 비싸서 돈이 왕창 깨지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군부에 갑자기 나온 제안. '''그럼 소총의 볼트액션식 노리쇠를 빼고 거기다 권총처럼 블로우백식 노리쇠를 달아 권총탄을 쏘게 만들면 어떨까요?''' 그리하여 권총의 슬라이드를 닮은 구조를 갖춘, 기관단총만큼 빠르게 연사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당대 볼트액션 소총보다는 빠른 연사가 가능한 장치가 개발되었다. 긴 탄창을 써서 무려 40발의 장탄수를 가지고, 권총탄이 소총의 긴 총열을 통과하다 보니 기관단총의 총열에서 발사하는 것보다도 탄속이 높아 살상력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기에, 개발자인 레밍턴 사의 존 페더슨의 이름을 따 페더슨 장비라 명명되었고, 우왕ㅋ굳ㅋ을 외친 수뇌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U.S Automatic Pistol, Caliber .30, Model 1918"'''이라는 제식명을 받고 대대적인 양산을 개시했다. 원래 계획은 총에는 아무런 개량을 하지 않고 노리쇠만 바꿔 장착하는 것이었지만, 자동 사격을 위해 발사된 탄피를 버릴 구멍이 필요했기에 탄피 배출구만 따로 뚫어놓은 M1903 Mark 1 소총을 따로 생산을 개시했다. 하나의 총기에 소총형 노리쇠와 페더슨 장비 둘을 갖추고 다니는 방식은, 병사의 군장 무게가 총기 2정 들고 다닐 때보다 가벼워서 기동성을 향상할 수 있고, 하나의 총기로 저격용과 탄막용으로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미군은 춘계 공세에 페더슨 장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지휘관이었던 존 조지프 퍼싱 장군은 40개의 탄창과 5000발 이상의 탄약을 요청한다. 그리고 춘계 공세에 실제로 사용되어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군은 기존에 미군이 사용하던 다른 소총에도 설치할 수 있는 Mark 2의 개발을 구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1차대전이 끝나면서 구상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래도 제법 찍어 낸 덕분에 페더슨은 꽤 재미를 봤다고 한다.
1차대전이 끝나고, 반자동화기의 가능성을 보게 된 미군은 이 장비로 인하여 소구경 반자동소총에 관심을 가지게된다. 물론 실제 2차대전에 사용된 M1 카빈M1907 SL의 영향이 컸지만, 풀사이즈 소구경 반자동소총 채용에 이 장비가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페더슨 장비는 단점도 있었는데, 바로 전장에서는 물건 잃어버리기가 쉽다는 것. 노리쇠를 빼 두면 나중에 '''어라? 어디 갔지?''' 하는 상황이 심심찮게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리쇠 파우치를 지급했지만, 그래도 격렬한 상황중에 노리쇠가 부딪히고 깨져 못 쓰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위력이 높네 어쩌네 해도 권총탄은 어디까지나 권총탄이었고 미군은 딱히 기관단총을 갖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15]
페더슨 장비가 완전자동으로 탄을 뿌려댄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반자동 사격만 가능했다. M1903의 방아쇠 구조 상 완전자동 사격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 블로우백 방식이었으며 탄피 추출기가 따로 없었고, 공이가 탄피를 잡고 추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약실 사이즈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30-06 스프링필드탄과 유사한 형태의 주둥이가 .30-18 Auto 탄의 약실 역할을 대체했다. 사용된 전용 탄약은 프랑스에서 제식권총탄으로 사용했던 7.65×20mm Longue 탄이다. 급탄은 측면에서 40발 박스식 탄창으로 했으며, 탄창 차단기 스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기존에 장전되어있던 .30-06 스프링필드 탄을 제거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생산되었던 페더슨 장비는 오랫동안 군사기밀이었다가 전량 폐기되었는데, 이때 폐기를 면한 소수의 페더슨 장비는 희귀한 컬렉터용 아이템으로 현재 무지막지한 가격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페더슨 장비를 장착하기 위해 생산되었던 M1903 Mark 1 소총은 페더슨 장비용 탄피배출구를 빼곤 기존의 M1903과 차이가 없어 일반 M1903 소총과 함께 사용되었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5.1. 영화 및 드라마


미 레인저 2대대 C중대 저격수인 대니얼 잭슨이 사용한다. 잭슨은 왼손잡이인데, 그 당시 총기답게 오른손잡이에 맞춰 생산된지라 꽤 힘들게 볼트를 당기는 모습이 보인다.[16] #
미 해병대의 보급 현황이 육군에 비해 후진적인 면을 부각시킬 때 나오기도 한다. 육군은 신형 M1 소총을 주는데 우리는 고물 할아버지 총을 준다는 푸념에서 등장. 그리고는 육군의 M1 개런드를 비롯한 보급품들을 몰래 훔쳐간다. 호주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M1 개런드과 비교하며 열차에서 죄없는 소들을 쏴 제끼며 M1903이 더 낫다고 한다.

5.2. 게임



미 해병대의 일반 소총과 저격소총으로 나온다. 일반형은 성능이 그저 그렇기에 잠깐 쓰다가 M1 개런드나 기관단총이 보이면 바로 버리고 바꾸게 된다.
미 해병대의 일반 소총과 저격소총으로 나온다. 하지만 M1 개런드가 주로 쓰인다.
매그넘과 특전무기류를 제외하고는 강력하지만 볼트액션이라는 특성때문에 사용하기 까다로운 무기.
비트레이얼 DLC에서 추가. DLC가 없어도 구매 가능하다. 데미지가 약해(머리 2발, 몸통 3발킬) 버려진다. 가끔 인포서 유저들이 이걸 들고 자가보급하면서 캠핑을 하기도 한다.
정찰병 장비로 등장한다. 데미지 모델이 전형적인 실제 미군 저격수들이 사용했던 고증대로 초장거리 저격용이다. 바리에이션 중 하나인 M1903 Experimental은 페더슨 장비가 장착된 [17] 소구경 반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4성 소총으로 등장. 영 좋지 않은 순정 성능과는 별개로 수려한 일러스트에 스킨이 많고, S급 성우, 현모양처 성격이라는 요소 덕분에 인기가 매우 많다. 일명 '춘전이'[18]라고 불린다. 자세한 건 스프링필드(소녀전선) 참조.
클랜 전용 총기로 등장했다. 클랜미션을 통해 부품상자를 얻어 조합해야 획득 가능하다.
스코프가 달린 저격소총으로 싱글플레이 미군 무기로 등장한다. 멀티플레이 시 스코프 없는 스프링필드를 습득할 수 있다.
주인공인 미육군 병사 로널드 다니엘스가 이 총에 8배율 유너틀 조준경(게임상에서는 6배율)을 달고 포 근처의 연료통을 맞춰서 독일군의 포를 파괴하는 데에 사용한다. 멀티플레이에서도 쓸 수 있다.
수색대와 보병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볼트액션 소총. 타국 볼트액션 소총과는 다르게 네모난 가늠쇠를 사용하여 탄이 위쪽으로 많이 튀는 단점이 있다. 그 외엔 타국의 볼트액션 소총과 동일. 수색대는 보병보다 우월한 부품과 더 높은 배율의 조준경을 사용하니 참고.
레드티켓 캡슐 총기로 등장하여 꽤나 준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상당히 희한한 성능의 소총으로 등장한다. 작동 방식은 볼트액션인데 조준경도 없고 게임 시스템상 정조준 시스템도 없어서 육안으로 조준하고 쏴야 한다. 그래도 기본적인 공격력과 명중률도 높고 기동성이 좋아서 헤드만 잘 따고 다닌다면 충분히 좋은 총이다.

5.3. 그 외


  • 히스토리 채널의 '웨폰 브라더스'


6. 둘러보기
















[1] 크라그-에르겐센의 탄창 구조는 상당히 독창적이어서, 노리쇠를 U자로 둘러싸는 탄창에 한 발씩 재장전해야 했다. 이렇게. 단면도[2] 볼트 헤드에 두 개, 중간에 한 개가 있다. 고정돌기를 세 개나 단 볼트는 마우저 계열의 특징이다.[3] 탄약 끝이 뾰죡한 탄약. Spitzer가 독일어로 뾰족하다는 뜻이다. 다만 엄밀히 말하면, 이 탄이 세계 최초의 Spitzer 탄은 아니다. Spitzer 탄두는 1898년 프랑스군이 8mm 르벨 탄에 적용한 것이 시초이다.[4] 이전의 직선그립형은 Type S로 불렸다.[5] 포탄과 탄도가 비슷한 소총탄을 발사하는 총으로, 포의 조준점 확인용도로 사용되는 총이다.[6] M1903이나 M1903A1을 개조해서 조달했다가 나중에 안 쓰게 되자 다시 M1903/M1903A1으로 돌아간 물건들도 있었다.[7] 새로운 제식소총은 M1 개런드로 정해졌지만 최일선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쓸 용도로 있던 생산 라인을 쓰게 되었다.[8] 전시상황을 고려해 당연하게도 생산 시간과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처음 2조 강선으로 바꾼다는 말이 돌 때 일선 관계자들은 당연히 대량생산으로 인한 품질(특히 명중률) 저하를 우려했다. 그런데 시험 사격 결과, 4조 강선이랑 2조 강선의 명줄률 차이는 거의 없거나 2조 강선이 더 높은(!) 결과가 나타났고 관계자들은 얼씨구나 하며 대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9] 이는 현대의 기술로 생각해봐도 대단한 명중률이다[10] 미 해병대의 경우, 유너틀(Unertl) 사의 7.8배율 망원 조준경을 단 M1903A4에 M194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하였다.[11]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소총을 수십 만, 수백 만 정씩 찍어내기는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 이틀만 생산할 것도 아니었고.[12] M1903A2는 앞서 서술했듯 기존 M1903/M1903A1을 개조한 화포용 스포팅 라이플이었다.[13]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레밍턴 사로 넘어간 M1903 생산설비가 구형 일자형 개머리판 생산설비여서 구형 일자형 개머리판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M1903 생산설비가 레밍턴으로 넘어간 이유는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M1 개런드를 전력 생산하기 위함이다.[14] 이 구조는 M1 개런드의 프로토타입에도 적용되었다.[15] 따라서 2차대전이 터지고도 미군은 기관단총이 없었다. 당시 미국에는 톰슨 기관단총이 있었지만 먼저 사갔던 것은 미군이 아니라, 미국의 경찰과 마피아들이었고, 최초 제식 채용 국가는 아이러니하게도 1930년대 톰슨 M1928A1을 사갔던 영국이다.[16] 라멜의 마지막 전투에서 종탑에서 저격하는 잭슨이 왼손으로 볼트를 낑낑대며 땡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17] 페더슨 장비를 사용한 M1903 권총탄을 사용하고, 데미지 모델마저 기관단총과 거의 같다.[18] Springfield의 중국어 표기 春田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