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농회왕비 당씨

 


弘農懷王妃 唐氏
(? ~ ?)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미디어 믹스


1. 개요


중국 후한의 13대 황제인 소제의 아내. 영천 출신. 회계태수 당모의 딸. 통칭은 '''당희'''(唐姬).[1] 봉호는 홍농왕비(弘農王妃).
소제의 정실부인인데도[2] 칭호가 황후가 아니고 왕비인 이유는 소제가 홍농왕으로 격하되면서 당희도 황후에서 왕비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2. 정사


189년 동탁이 소제를 폐하였고 이듬해 의병이 일어나자 동탁은 당시 낭중령으로 있던 이유를 시켜 소제에게 짐새의 독을 억지로 마시게 하였다. 소제는 죽음을 앞두고 당희 및 궁녀들과 작별의 술자리를 열었다. 술잔이 돌자 소제가 슬피 노래하며 당희에게 춤을 추라고 했다. 당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노래했다. 소제는 그녀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될 수는 없다며 자신을 따라 죽어달라는 말을 하고 독약을 마셨다. 이 때 소제의 나이가 18살이었다. 당희는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당희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려 했는데 당희가 거부하였다.
나중에 이각이 장안을 함락시키고 이각의 군대가 동관 지역을 약탈할 때 당희를 사로잡았다. 이각은 당희를 자신의 첩으로 만들고자 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당희는 완강히 거부하였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3] 역사서에 당희의 외모에 관한 언급은 없지만 소제와 이각의 일화를 통해 뛰어난 미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동진의 원굉#s-3이 쓴 후한기에서는 당희가 이각에게 욕을 보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상서 가후가 이 사실을 알고 상소를 올려 헌제에게 알렸다. 헌제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당희를 맞아들이고 농원을 설치해주고 시중에게 지절을 보내 홍농왕비로 봉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냥 당희도 하태후, 소제와 동시에 이유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죽기 전에 소제와 함께 시를 읊는다.

4. 미디어 믹스


삼국기밀에서 당영(唐瑛)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 희(姬)는 본명일 수도 있지만(실제로 범희 등 그 글자를 이름으로 쓴 여성들이 있긴 하다.) 그 글자의 일반적인 용례가 아가씨의 미칭임을 고려하면 그저 당씨인 아가씨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더 높다.[2] 일단 왕작(王爵)에서는 왕비가 정실부인이고, 엄연히 사서에서 그녀를 처(妻)라고 수식한다.[3] 수절은 봉건 시대에는 당연한 처사이자 칭송받을 일로 여겨졌다. 거꾸로 말하면 이런 사례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당희와는 반대로 음탕해서 지탄을 받은 황후들이 꽤 있었는데, 그 예시 중 하나가 북제무성황후 호씨다. 먼 후대 일을 찾을 것 없이, 고대 중국에서도 패장의 아내나 첩이 경제적 지원 등을 조건으로 승자의 처/첩이 되기를 승낙한 사례가 적지 않다. 사실 자존심이고 절개고 간에 살아야 의미가 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