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길옹주

 



'''조선 영조의 왕녀
화길옹주 | 和吉翁主
'''
'''출생'''
1754년(영조 30년) 5월 19일[1]
'''사망'''
1772년(영조 48년) 12월 18일
(향년 19세)
남양주 궁집[2]
'''부왕'''
영조
'''생모'''
숙의 문씨
'''부군'''
능성위 구민화
'''자녀'''
1남 2녀
(장남) 구명희
(장녀) 김이초의 처
(차녀) 윤영명의 처
'''묘소'''


충북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대지공원묘원[3]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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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영조숙의 문씨 사이에서 태어난 차녀. 동복 언니는 화령옹주이다.

2. 생애


1764년(영조 40) 나이 11세의 화길옹주는 호군 구현겸[4]의 아들 구민화를 부마로 맞이한다. 구민화는 구선행[5]의 손자로, 전통적인 무반 가문인 능성 구씨의 일원이었다.
안타깝게도 19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했지만, 다행히 그녀가 사망할 때는 어머니 숙의 문씨와 외삼촌 문성국 등이 몰락하기 이전이어서 외가가 풍비박산 나는 모습은 보지 않을 수 있었다.
[1]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화길옹주 태실비에 새겨진 기록이다. '건륭십구년갑술오월십구일미시생옹주아지씨태실(乾隆十九年甲戌五月十九日未時生翁主阿只氏胎室)' [2]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3] 본래 위치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426-1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후손들이 이장하였다. [4] 평안도병마절도사, 통제사 등을 역임했다. [5] 어영대장, 총융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