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
1. 소개
黃帝內經
한나라에 성립된 한의학의 원전. 황제내경소문 81편, 황제내경영추 81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한의학 이론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중국의 한의학 서적. 삼황오제의 한 명, 황제(黃帝)의 이름을 빌렸으며 당연히 황제 본인이 저술한 것은 아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황제내경태소라는 물건이 있긴 하지만 이는 소문과 영추의 재편집판이며 한때 실전되었다가 청말 일본에서 재발견되어 중국으로 역수입되는 등 현대 한의학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다만 일본에서 발견된 태소는 수나라 시대의 황제내경을 근거로 하여 재편집된 문헌이고, 송대 교정의서국의 교정을 거친 현행 황제내경과는 상이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문헌학적으로나 의학사 및 의학철학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귀중한 문헌이다. 또한 송대 교정의서국 정본이라는 의경들이 송대 이전에 간행된 의경들과는 일부분이 다르다는 점에서 문헌학적으로 상당한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물건은 모두 당나라 시대에 왕빙(王氷)이 주석을 단 물건을 기초로 하고 있다.[1] 애초에 성립연대가 고대인지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 내용을 어떻게든 압축해서 암호처럼 만들어낸 물건이고, 그나마도 기존의 구성을 왕빙이 뜯어고치고 주석을 붙여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냈으니 따지고보면 원형과는 거리가 먼 셈. 특히 운기학을 다룬 7개의 편을 가리키는 운기칠편은 왕빙의 자작이라고 한다.
사실 의학서이기는 한데 의학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역학, 기상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고 있어서, 의학서가 아니라 과학서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 의의
이 물건의 가치는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하던 한의학 이론을 일차적으로 끌어모아 재편성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한의학적 질병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것과 더불어 현대 경락학설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것에 있다. 전한 초의 고분에서 출토된 고의서들 중에서 일부는 12경맥이 아닌 11경맥으로 인체의 경맥을 규정했다.
가끔 원전빠들이 '황제내경은 완벽한 서적이라능 하악하악'하는 일도 있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고 수많은 주석가들이 바보도 아니다. 황제내경은 어디까지나 한의학의 원형을 제시한 것에 가치가 있다. 다만 수많은 의학자들을 홀리는 것을 보면 마도서일지도 모른다. 명말의 장경악은 내경 안에 여기저기 조금씩 나오는 생리 병리 경맥 장부 등의 내용을 골라서 주제별로 합치고 주석을 단 유경(類經)이라는 서적을 저술했다.
아직도 심심하면 내경 뒤적거려서 적당히 간추리면 그럴싸한 이론이 나오기 때문에 한의학의 영원한 밥줄 역할도 한다. 내경에서 틀릴 만한 내용이 나오면 동의보감처럼 까일 텐데 그런 적은 또 없다
3. 그 외
참고로 일부 내용 가운데서 오래 누워 있는 것은 기(氣)를 상하게 하고,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육(肉)을 상하게 하며, 오래 보는 것은 혈(血)을 상하게 한다고 하며, 오래 서 있는 것은 골(骨)을 상하게 하고, 오래 걷는 것은 근(筋)을 상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의서로 언급되는 책이기도 하다.
김용의 소설 비호외전의 히로인 정영소의 이름을 영추(靈樞)와 소문(素問)에서 한글자씩 따와서 지어졌다.
[1] 왕빙의 주석본은 황제내경소문 뿐이며, 황제내경영추의 경우 북송시대에 설치된 교정의서국이 기존의 의서의 여러 판본들을 모아 하나의 정본(正本)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중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영추본을 찾을 수 없었으나 고려에서 발견된 영추본을 토대로 해서 현행 황제내경영추로 정리했다. 영추를 헌상한 고려가 챙긴 것은 책부원귀(冊府元龜) 전질로서 소동파가 책부원귀를 고려에게 주는 것을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CCTV가 제작한 황제내경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