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1. 개요
2. 역사
2.1.1. 근현대
2.2.1. 현대
2.3.1. 근현대
3. 서적
3.1. 중국
3.2. 한국
3.2.1. 삼국시대
3.2.2. 고려시대
3.2.3. 조선시대
3.3. 일본
4. 현대 한국 한의학
4.1. 한의학의 제이론
4.1.1. 사상의학
4.2. 상황별 대처
4.3. 수의학과 연계성
5. 전망
5.1. 한의학과 근거중심의학
5.2. 한국
5.4. 유럽
6. 논란 및 현대의학과의 갈등
6.1. 개요
6.2. 주요 지적
6.2.1. 반론
6.3. 양진한치
6.4. IMS
7. 관련용어
8. 바깥고리
9. 같이보기


1. 개요


  • (국내 정식 표기, 1986년 이후)
  • 한국: 한의학 (, Korean Medicine)
  • 북한: 고려의학(醫學, Koryo Medicine)[1]
  • 일본: 한방의학 (, Kampo Medicine)
  • 중국: 중의학 (医学, Chinese Medicine)
한자문화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일대에 전해져 온 전통 의학을 말한다. 바탕이 되는 이론은 '''경락'''학설(Meridian)과 '''음양'''학설(Yin and Yang)[2]이며, 경락학설은 '인체에는 기(氣)가 흐르는 혈(血)의 통로가 있다'는 믿음이고, 음양은 중국 제자백가 중 음양가에 의해 확립된 자연의 조화에 대한 철학관을 의미한다. 한의학은 이 음양학설을 바탕으로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라 여기고, 인체의 생리현상을 마치 자연 현상처럼 파악한다. 현대의학이 해부학세포 생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실증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면 한의학은 자연철학적[3]인 방식으로 인체질병을 바라보는 것.

2. 역사



2.1. 중국


중국의 전통의학은 흔히 중의학(中醫學)이라고 부른다. 중의학의 근간이 된 경락학설은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성립하였는데,[4]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황제내경상한론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었다.
이후 외부와의 교류를 거친 중의학은 송나라 때에 역대 의서가 총정리되면서 학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고, 금나라, 원나라 시대에 등장한 4명의 의가[5]를 거쳐 더욱 발전하였다. 어느 정도냐면 현재 시행하는 상당수의 처방법이 이 시대에서 비롯됐다.
청나라 때는 외국인의 왕래로 새로운 질병이 퍼져나가 전통의학만으로 치료가 힘들자, 서양의학을 전통의학과 접목시키는 중서회통파가 등장하고, 새로운 이론에 근거하여 유행병을 치료하는 온병학이 시도되었다.
아무래도 한의학이 본래 한(漢)의학이라 불리기도 했고, 유럽에서도 동아시아 전통 의학을 TCM[6]으로 보기도 하는 만큼,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다. 완전히 해석되어 번역된 것들을 제외하면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자료 해석도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특히 황제내경처럼 요즘에는 새로 뜨는 이론들에 밀리는 감이 있는 이론이 주요 이론이 되어 다른 문화권으로 주로 전파되어서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은 마음대로 자료를 구하기도 힘들다.

2.1.1. 근현대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벌어지던 당시, 마오쩌둥은 돈 없고 힘 없던 환자들이 한방치료로 건강을 되찾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중국 공산당중국 국민당을 제압하고 전 중국을 통일하자 마오쩌둥은 전통의학을 중의학(中醫學)이라 부르며 대대적으로 지원하였다.
그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한의학에서는 중의학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한의학을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도 중국 때문이다. 냉전시대 핑퐁외교 당시에 미국의 고위 인사가 중국에서 충수염(맹장염)으로 수술을 받는데, 침술을 통해 마취를 한 일이 미국 일간지에서 보도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현재 국의대사와 같은 국가 명예직 노중의 제도가 있고, 국의가 되면 그 밑에 도제식 교육을 통해 처방과 치료성과가 후대로 전수되게끔 한다. 상한론의 유도주 등이 국의 대사로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그 성과가 곧바로 출판되는 등, 여러모로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 RCT와 같은 이중맹검법과 sham침을 활용한 논문들 중, 메타 분석을 이용하여 침의 효과를 밝힌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은 비용이 싸고 안전하여, 권고할 만한 치료법으로 등재된 경우가 제법 많다. 다만 이중맹검에서 sham침이 피부를 찌르기 때문에 실제 플라세보로 불리기는 어렵다는 서양의 침 연구자들의 의견도 있다.[7]
중국은 서의사와 중의사로 제도를 분류한 이원화 체계이나, 서로의 의료영역 침범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중의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서의사들도 양약의 대체로 중약제제를 상당히 많이 활용하며, 오히려 현재 중국에서는 서의사들이 중약을 중의학식 변증 없이 사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의사들이 한의학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다양한 이유로 침이나 뜸, 한약을 사용한다. 대개 현대의학적 치료만으로는 어려움을 느끼는 양약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 증후군 성향을 지녀서 양약을 다량 처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 만성 질환 및 노인 질환, 현대의학적 치료의 가격이 높은 경우 등에 한의학적 치료를 사용한다. [8]
한편 중의학은 현대 의학과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대륙의 기상으로 다양한 기구를 지금도 만들어내며, 경혈도 계속 찾아내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도 계속 시도하고 있고 이러한 치료법 중 괜찮다 싶은 건 한국에도 수입된다. 대표적인 성과는 아무래도 2015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는 식물화학자이자 약학자이자 중의학자이다.[9][11]
중의사는 대략 한국의 한의사의사가 7:3 정도로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12] 중의병원 내부에서 진단검사의학이나 영상의학 등의 서포트 파트는, 순수 중의가 아닌 서양의학을 배우고 세부분과과목을 전공한 의사[13]가 서의습중의(西醫習中醫) 과정이라는 2-3년의 추가교육을 받은 이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중의사는 진맥비를 따로 받는다.
중국 주도하에 여러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도 SCI급 학술지에 실릴 만큼 제대로 된 연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직 표준화 문제와 적은 연구비 등으로 인하여 제약사항이 많다. 그러나 중의대 1곳에 1천억, 전체적으로는 몇 조가 되는 연구비를 중의학 연구에 쏟아붓고 있으니 곧 이른 시일 내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중의학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한국의 경우, 엄격한 논문 검증 과정을 거친다.
중국 내의 연구 결과 99프로의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사실이 있는 논문을 읽어본적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해당 분석에 쓰인 대조군의 대다수는 가짜침과 아예 치료를 하지 않은 경우이다. 다시 말해 진짜 침술이 가짜 침술이나 아예 처치를 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서 효과가 있다고 하면 문제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지어놓고 보니 이런 오류를 범하는 것.
최근 메타 분석들은 중국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연구가 되며 계속해서 침에 관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 중이며 한의학 외에 많은 전통의학이나 대체의학과의 교류도 넓혀나가고 있다.

2.2. 한국


삼국시대 이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이에 따라 삼국 시대의 의학에 관련된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신라군이 백제, 고구려, 당나라와 싸울 때 병참 보급품으로 우황, 인삼 등 약재를 갖고 다니거나 머리카락, 자석 등 응급처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물자를 운용하기도 했으며, 나당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사 최초의 국립의과대학인 '의학(醫學)'을 효소왕 재위기인 692년 설립해 의료인을 배출하는 산실을 일구었다. 신라의 의학에서는 본초경(本草經), 갑을경(甲乙經), 소문경(素問經), 침경(針經), 맥경(脈經), 명당경(明堂經), 난경(難經)을 기초 교재로 삼고 2명의 박사를 두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일본의 옛 역사 기록에 백제신집방, 신라법사방신라백제의 처방이 기록되거나 의사의 행적이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술은 불교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행위와 혼합되어 시행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집대성할 때 바다 건너 한국의 처방을 일부 소개할 정도로 한국 의학의 인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의학의 교류는 활발하였으며, 의서, 약재의 수출과 수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작성된 향약구급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한국의 한의학은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서, 세종 대에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던 처방을 모두 모은 향약집성방이 완성되었으며 당시 의학의 백과사전 격인 의방유취 또한 세종조에 만들어졌다. 의방유취는 양이 방대하여 현재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업은 역시 동의보감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한의학은 이론의 발전보다 대중화를 초점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의 등장으로 한국의 한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구한말 현대의학이 들어오면서, 한의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현대의학을 수용하면서 점진적으로 현대의학으로 이행시킬 기회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성의학교 교장인 지석영한의사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한국 한의학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의학을 시대에 맞지 않는 의학으로 생각하였으며[14] 한의사들은 의생으로 격하되었으며,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 또한 격렬하였다.[15]
일제강점기에는 서양의사가 부족해 기존 의료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기존에 존재하던 의생을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점진적으로 새로운 의생의 배출은 억제함으로써 도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16] 이로 인하여 의생 규칙이 시행된 지 1년 뒤인 1914년 말 당국에 등록된 의생 수는 5,827명이었는데, 해방 직전인 1943년에는 3,337명으로 30년 사이에 40% 이상 감소했다.

2.2.1. 현대


해방 이후에 잔존한 의생들이 모여 의생협회를 설립하고 동양학관이라는 한의학 강습소를 설립하였고, 1951년 국민의료법에 의원(醫療, 의사), 치과의사를 1종, 한의사(漢醫師)를 2종의료인으로 구분하였다.1962년 이래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다.
한의사와 의사의 "사"자의 한자표기가 국민의료법 제정 과정에서 처음에 한의사를 漢醫士로 다르게 표기했던 것은 맞았다. 그러나 제2독회 과정에서 漢醫士가 漢醫師로 바뀌었다. 법제처 국민의료법. 또 흔히 잘못 알고 있듯 '士' 자가 비하의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의사를 규정한 법률인 대한제국 '의사규칙(醫士規則)'에서 의사를 醫士로 표기하고 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학교정비령에 따라 동양의학관이 폐교위기에 몰렸으나 로비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1963년 경영난에 빠져 폐교 위기에 처하고, 동양의과대학은 이후 경희대학교에 흡수 합병되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되었다. 이후 경희대는 한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의학과와 한약학과, 한방재료가공학과 등 학과도 다양하다. 근래에는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융합을 추구해 경희의료원에 의사와 한의사가 동시에 진료하는 '''동서(東西) 협진'''센터도 운영 중에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의학을 발전시키려 노력 중이다.

2.3. 일본


일본의 고대 한의학은 7세기부터 9세기 사이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들이 한반도를 경유하여 중국대륙에서 전수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5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의사가 온 기록이 있으나, 일본의 한의학 보급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부분은 없다. 또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그걸 기록한 서적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나라 시대의 상한론을 기초로 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타게된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한의학이 발전한 건 16~17세기 이후로, 명나라 유학파인 의사 타시로 산키(田代 三喜)와 제자 마나세 도산(曲直瀬 道三)이 금원의학(金元医学)을 보급하면서 의학과 종교의 분리가 이루어진 뒤부터이다. 이시기의 의학을 '후세파'라고 부른다.
한편 상한론을 중시하던 '고방파' 측에서는 음양오행론같이 실증성이 부족한 추상적인 개념을 들고 온 후세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또 외부 세력, 즉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양 의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같은 16세기에 초기 서양식 병원이 설립될 정도였다.[17]
18세기의 요시마스 도도(吉益東洞)는 그러한 일본의 한의학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사람으로, 상한론 연구의 대가였으며 이후에 그 아들이 일본의 독자적 이론인 기혈수 이론 등을 수립하였다. 그 외에 18세기에는 이미 해부학, 마취학 등이 발달하고 있었다. 특히 사형수를 해부한 장지는 다소의 오류는 있으나 옛 해부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 '해부서'로 꼽힌다. 거기에 일본에는 네덜란드 해부학 서적번역해체신서도 있었다.
동시대 인접국가의 경우 청나라 왕청임이 쓴 의림개착이 거의 유일한 해부서이고, 조선은 없었다. 실제로 한의학에서 사용되던 그림 등은 '해부도'가 아니라 장부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그림으로 설명한 개념도에 가까우며, 실제 기능도 이러했다. 하지만 '해부학'이라는 의학의 한 부분을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의 삽질로 치부하고 아예 무시하였다.
조선통신사가 방문할 때 일본의 의가 중 하나였던 기타야마쇼우와 조선의 의사였던 남두민의 대화는 양국의 의학 발전에 있어서 후대, 특히 한의대생들로 하여금 어이가 없어할 정도로 인식과 개방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였다. 대화는 다음과 같다. 기타야마 쇼우가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 등을 자세히 살피니 옛 그림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 이를 교정하고 도 지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고 하자 남두민은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고 꾸짖듯 대답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한의학의 경우 고대부터 상한론을 금과옥조로 떠받든다는 잘못된 사실이 퍼져있다. 사실 17세기경에 화란 의학이 전래된 이후로, 그 이전까지의 내경의학과는 별도로 상한학파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요시마스 도도와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이제마와 같은 독특한 이론을 설파한 존재로 여겨진다. 실제로 상한학파가 융성하였다 하더라도 일본 한의학에서도 3체질론이나 기타 내경계열 의학자들은 계속 있어 왔으니 이는 사실무근이다. 일본 내 시판중인 한약제제의 원전은 만병회춘 등의 명대 의서인 경우가 많다.

2.3.1. 근현대


근대에 이르러 군사 목적으로서의 의학의 수요가 커지면서 일본에서는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한의사 제도 자체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전문의 과정과 같은 느낌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며, 이 때문에 의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 연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의사가 한의학 연구를 통해 한약 처방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내부적으로도 1950년 일본동양의학회를 수립하였다. 이후 1976년에는 한방Ex제제[18][20]의 보험 적용을 계기로 일본 한의학은 제도권에 공식 진입하고, 1991년에는 일본동양의학회가 일본의학회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의학으로 다시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일본 제약시장에서 한약제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정도이다. 일견 상당히 낮은 수치이나 일본의 한약제제들은 한국의 첩약과는 달리 일반의약품보다도 싼 저가의 약품들이며, 여러 종류가 함께 처방되는 양약과 달리 대개 단일 처방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연구한 내용 중에서 동일한 질환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양약과 한약을 비교했을 때 한약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가 제법 된다.
현재도 일본에는 한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많다. 단, 미국도 그렇지만 일본 내에는 침구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은 침구사들이 주로 사용하고 의사들은 주로 한의학 중 한약을 많이 연구한다. 일본 한약들은 주로 탕제보다 엑스산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산제 특성상 주로 며칠 내에 치료 효과를 보는 것보다는 1-2개월 이상 장기복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한약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는 편이다. 따라서 8주, 12주, 32주 이상의 장기 복용이 선호되고 있으며 부작용도 특별히 보고된 바가 없다. 소시호탕과 같은 일부 약재가 간염 치료에 있어서 면역 글로불린과 병용 투여 시 폐렴 발생 등이 보고된 정도다.
2009년 일본한방생약제제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의사 중 80% 이상이 한약을 처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로 한약처방이 쓰이는 부분은 산부인과, 외과와 부정수소, 갱년기 장애 같은 부분이라 한다. 다만 한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수의 의사(16.5%)는 진단과 사용의 어려움, 증거의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진단의 경우도 47.8%가 서양의학식 진단법을 사용하며, 서양 의학 진단을 기본으로 한방도 고려한다는 응답도 36.1%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약사일보 기사 참조.
이를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한약제제를 통해서 보완대체의학으로서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한의학이 자리를 잡았다.
재밌는 점이라면 일본 한의학의 4대가로 불리는 유모토 큐신(湯本求眞), 오오츠카 게이세츠(大塚敬節), 야카즈 도메이(矢數道明)는[21]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의사 출신으로서 한의학을 부흥시킨 인물들이라는 점. 여기서 출발하여 현재 일본 한의학을 재정비하고 토대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의사들이고, 한약제제 급여 활성화 및 한방 EBM 연구를 진행한 것도 모두 의사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한약 처방들 중 여러 처방이 일본 내과 메뉴얼집에 근거가 있다고 판정이 되어 실리고 있고, 일본 의대 교과서에도 한약물에 대해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일본 한의학 자료들은 국내에도 번역이 많이 되어있다. 주로 경희대 조기호 교수가 번역하여 출판이 되었는데, 일본 동양의학회의 공식 자료들과 기타 한방 전문의들의 저서들도 국내에 들여왔다. 또한 이러한 출판물의 다양화 덕으로 현대 중의의 고방파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의 고방파의 대표적 인물로 황황 교수가 꼽히는데 이분의 저술의 상당 부분이 일본의서를 참고해서 이룩한 결과다.
한국 한의학 연구원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일본 종합병원의 80%가 넘는 곳에 한방과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방약은 내과의사나 혹은 한방 전문의에 의해 투약되고 있다. 일본 교포 등에 의하면 "한약인지 모르고 처방을 받아서 먹어보니 무슨 가루약 등이 들어있더라"라는 말을 한다. 이만큼 이미 일본에서 한방은 토착화되어 있어, 현지에서 구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한의학이 황한의학이라고 불린다고 퍼져있는데, 이는 근대일본의 한의사 유모토 큐신(湯本 求真)의 서적 「황한의학(皇漢医学)」에 대한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한자 표기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 제국을 뜻하던 황국(皇国) 한방의학의 줄임말에 불과하며, 그냥 똑같이 한방의학(漢方医学:かんぽういがく:칸포우이가쿠) 또는 줄여서 한방(漢方:かんぽう:칸포우)[22]라고 부른다.

3. 서적



3.1. 중국


안타깝게도 중국은 그 무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으로 상당수의 서적과 자료들이 소실 및 훼손되어 그 장대한 역사에 비해 온전히 보존된 서적이 많지는 않다.

3.2. 한국



3.2.1. 삼국시대



3.2.2. 고려시대



3.2.3. 조선시대



3.3. 일본



4. 현대 한국 한의학



4.1. 한의학의 제이론


한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 이론인 음양오행론과, 신체순환에 대한 경락학설을 바탕으로 인체의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는 이미 황제내경에서 일차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에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여겨 자연과 인체의 대응관계를 중시하였으며,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인체의 내외의 대응관계를 수립하여 인체의 한 부분만을 분석하는 것보다 인체 내부의 관계를 관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의학에서 음양오행론은 경험을 통해 밝혀낸 인체 내부의 유기관계를 설명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한의학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환자를 관찰하는 망진(望診) / 대화하여 정보를 얻는 문진(問診) / 냄새 및 목소리를 듣는 문진(聞診) / 직접 환자를 만져보는 절진(切診)[23]으로 나뉘어 있고[24] 이 4가지 작업을 통해 정보를 얻고 환자의 병을 가려내게 된다.
진찰은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장부와 그 장부를 연결하는 경락[25], 그 장부와 경락의 기능적 요소인 기(氣), 물질적 요소인 피나 진액, 인체의 겉과 속, 장부나 물질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넘7칠 때 발생하는 허실 중 어디에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다.
한의학의 변증은 경험을 토대로 생겨났으며, 특히 한약의 경우 직접 약재를 먹고 기록한 신농본초경이 그 시초다. 황제내경과 함께 한의학의 양대 고전인 상한론의 경우 철저히 경험에 근거하여 증상을 분석한 후 그에 해당하는 처방을 제시하는데 책 자체에 음양오행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4.1.1. 사상의학


한국 한의학이 중국, 일본의 한의학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은 사상의학의 대두 이후부터이다.[26] 사실상 사상의학은 기존의 의학체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이론과학이나 논리적이기보다는 철저한 음양론적, 유교적 사고에 입각하는 특징을 보인다. 한의학에 속하는 이론이지만 오행론은 적용되지 않는다.[27]
다만 사상의학이 수립된 것은 겨우 1백 년 전이고 현대의 진단율이나 사상의학의 기원을 보았을 때 바로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사상의학의 수용 정도는 각각 달라서, 사상방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이전 처방만을 사용하는 한의사도 있는 한편, 사상을 최우선으로 보는 한의사도 있는 등 한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4.2. 상황별 대처



4.2.1. 한약


자세한 것은 한약 문서 참고

4.2.2. 침술/


침술은 다른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침 또한 한의학의 고유 특징으로 특정한 점을 출혈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극함으로써 치료한다는 개념은 한의학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다.
  • 김남수의 침-뜸법과 그의 옹호자들은 한의학이 문헌에 수록되지 않은 전통의학을 보존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것이 배타적이라고 본다. 그의 학설은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보급되었던 침-뜸법과 극히 유사하며, 백회 등에 뜸을 뜨는 것은 기존 한의학 이론에서는 금기다. 과연 이러한 것을 단순히 전통의학이라는 측면에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뜸사랑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행해왔음에도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의학 옹호 논리 중 중요한 것으로 '문제가 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 남아 왔겠는가?'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구당 측에서도 역시 쓸 수 있는 논리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애초에 한의학 자체가 음양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체계에 대해 현대적 의미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행해진 측면을 고려해서 면허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외부에서 보기에 여타 전통의학과 한의학의 위상 차이를 찾기 힘들다.
다만 이들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무차별적으로 전통의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는 있으니, 한의사들은 결국 안전성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 한의학적인 부작용은 그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생기는 문제도 있다. 흔히 체질을 바꾼다 라고 표현하지만, 잘못된 처방을 받은 경우 이 문제가 체질을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회는 인체의 양기가 모이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 열을 가하면 장기적으로 지능이 떨어지고 몸에 열이 쌓여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당장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한의학 의서들에 허무맹랑한 얘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 건 대부분 분명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4.2.3. 추나요법


인체를 밀고 당겨 치료하는, 미국의 카이로프랙틱이나 정골의학에서 비롯된 요법이다. 실제로 미국과 한국의 척추신경추나의학회는 미국의 미시간주립대학 정골의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또한 추나요법은 미시건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정골의학을 다루는 오스테오페틱 의사(DO, 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의 보수교육으로 인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미국 전역에서 정골의학의사(DO, 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를 대표하는 미국 정골의학협회(AOA,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의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채택되었다[28]. 자세한 것은 추나항목 참조.

4.3. 수의학과 연계성


동물에게 의료법적으로 돈을 받고 침을 놓거나 한약을 쓰는 것은 한의사가 아닌 수의사의 권한이다. 수의학 문서 참조

5. 전망



5.1. 한의학과 근거중심의학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은 현 시점에서 구축된 최선의 근거를 성실하고 신중하게 활용해 개별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의 의사 결정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29][30]. 근거중심의학은 1992년에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미국의사협회지, JAMA)에 처음 소개된 후 빠르게 임상 진료 및 연구에 있어서 기본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의사의 진료나 한의학 연구 역시 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한의약육성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좋은 예. 의사 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근거중심의학을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에 관해 내홍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춘 진료와 연구를 표방하는 추세이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점차 연구의 질이 올라가면서 출판되는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RCT), 메타분석, 체계적 문헌고찰 등을 종합해 한국한의학연구원 및 각 분과학회에서 질환별로 임상진료지침을 내놓았다. 특히 앞서 언급한 근거중심의학의 방법론에 입각한 과학적 보고를 바탕으로 미국에서도 미국가정의학회(American Academy of Family Physicians)미국내과학회(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 미국류머티즘/관절염학회(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Arthritis Foundation)의 진료지침에 한의학적 치료가 등재된 것은 이러한 연구 성과의 축적이 비단 국내 혹은 동아시아 몇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31][32][33]. 국내에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나 보건복지부의 연구과제로 개발 중인 질환들이 있으니 참고하자. 관련 기사

5.2. 한국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7년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 2015년에 비해 2016년 한약의 처방, 조제, 판매 건수는 대체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반인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번이라도 한방 의료를 경험한 사람은 73.8%이다. 이 수치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올라가고 낮을수록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같은 조사에서 향후 한방의료를 이용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84.2%로 나왔다. 역시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수치는 내려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방의료를 이용하는 연령대별 비율은 40~50대 43.5%, 60대 이상 30.5%, 20~30대 22.8%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방의료를 신뢰하는 비율은 대체로 큰 차이는 없었으나, 몇가지 특이점은 한방의료를 주로 이용하는 계층에서 오히려 신뢰도가 낮게 나타난 것과 특히 60대 이상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온 점이 있다.링크
고전 서적에 기재되지 않은, 새롭게 발명된 천연성분 기원 약품의 경우 한약이 아닌 천연물의약품으로 분류되며 새로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시판이 가능하므로, 현대의학에 기반한 3상 연구를 거치게 되어 의학적 근거도 탄탄한 편이다. 다만 이런 경우 한의학에서 자주 쓰던 약재 추출물 혹은 천연성분 기원의 약품이라고 할지라도 검증이 현대의학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한의학과는 상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레일라정이 임상시험 4차에 통과했으나 한의사는 천연물의약품의 경우 처방권이 없다. 링크1링크2

5.3. 미국


KBS에서 방영된 2016년 특집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여러 대학병원에서 암환자 등에게 침을 이용하여 시술하는 통합 통증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 주도하에 NCCIH[34]을 설립하여 큰 연구비를 들여 한의학과 기타 여러 대체의학들의 요법을 검증하여 현대의학에 통합시키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17년 현재까지 침술에 대한 약간의 진통효과가 확인되어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으며, 그외에도 기타 몇 가지 생약들의 효과가 주목받아 연구중이다. 침술의 연구성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014년 타임지에서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에 한약을 처방하는 곳이 생겨났다는 기사가 실린 바도 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일반 병원에서 처방하는 것은 아니고, 통합치료의 일환으로 병원 내에 따로 생약치료센터(Chinese Herbal Therapy Center)가 열려서 원하는 환자들이 병원치료와 병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약이 단독으로 처방된다거나 하는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침 연구는 하버드 대학 의대가 세계 2위인 경희대 한의대를 제치고 1위에 차지할 만큼 침 연구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는 투자되는 연구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최근 미드 블랙리스트 등에서는, 주인공 레딩턴이 중간에 얼굴에 침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 등 애호가가 많이 생기고 있다.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대체의학들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긴 하다. 아직까지는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 현대의학을 보조하면서 병행되는 정도이다.
만성 질환 및 고령화 질환의 대두 등으로 한의학의 치료법이 검증과는 별개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한 기고가 네이쳐에 실릴 정도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건 한의학 자체에 대한 관심보단, 수술이 아닌 오랜 관리로 건강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인들이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일부인 한의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대체의학이 발달된 나라이기도하다. 인도계 미국인 의사들이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건, 현대의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있지만, 인도 전통 의학들도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약청FDA는 구조를 알기 힘든 복합 천연물 제제라도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기록 및 증거가 있다면 1상시험을 면제해주고 2상부터 검증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FDA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중성약(중국 한약제제)으로는 복방단삼적환(3기 임상 시험 중), 계지복령교낭(2기 임상완료), 부정화어편(2기 임상완료), 혈지강교낭(2기 임상완료), 강래특연교낭(2기 임상중지), 강래특주사액(3기 임상), 연화청온교낭(2기 임상) 등 7종에 달한다. 물론 FDA 승인을 못 받아 수십 년째 '시험 중'인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실제로 통과할 때까지는 이런 시험 중이라는 꼬리표는 별 의미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예를 들어 상술한 복방단삼적환도 2016년에 3상 시험을 완료했으나 여전히 FDA 승인을 통과하는데에는 실패했다.

5.4. 유럽


유럽연합 등록 및 등록을 진행중인 중성약은 지오심혈강교낭(네덜란드 허가 획득), 단삼교낭(네덜란드 허가 획득), 은행엽편, 유풍녕심적환, 농축당귀환 등 5종이다. 물론 이 허가는 의약품으로 받은게 아니라 전통생약[35]으로서의 판매허가다. 예를 들어 전술된 지오심혈강교낭의 경우만 봐도 의학적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6. 논란 및 현대의학과의 갈등



[제3병원] 의사 vs 한의사 발단

6.1. 개요


우리나라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의료계가 이원화되어 양한방이 동시에 존재한다. 단 차이가 있다면 서로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 많다는 점.
한의학을 두고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으나, 주된 내용은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소속에 따라 이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보통 한의학계에서는 폄훼로 받아들이는 게 많고, 과학계와 의학계에서는 비평으로 여기는 편이 많다. 예를 들어 의학계에서는 자신들도 전문가이므로 같은 과학적인 잣대로 한의학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들이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교류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만을 고수하려 든다고 반발하는 한의학도가 많다. 여러 문제제기가 있는데, 그중에서는 한의학계에서도 인정하여 스스로 고치려 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한의학계가 타당하게 반박하는 것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6.2. 주요 지적


  • 양/한방이원화 제도로 인해 위급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큰 혼란과 피해를 입고 있다. 가령 한의학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의 응급환자가 한방병원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으나 과거에는 뇌졸중 환자들이 먼저 한의원을 찾아 갔다가 우황청심원을 처방받고 침을 놓는 등의 치료를 받으며 시기를 놓치면 안되는 응급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후유증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침치료가 중풍 초기 응급치료로 우수하다고 글이 올라와 있다.https://www.akom.org/Home/AkomArticleHealth/106520?HealthType=1 최근 많은 한의사들은 수술이 필요한 외과파트나 심장마비 같은 응급질환, 영상의학 등은 현대의학이 더 우월하다고 인정하고 의학병원으로 위탁치료를 보내는 일도 많고 한방병원 내에 검사목적으로 아예 두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몇몇은 한의학계 경우는 심지어 말기암도 한방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지라 환자인 국민들이 병이 났을 때 양/한방 중 어떤 곳을 찾을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119조차도 중풍이 생긴 환자를 한방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다.[36] 국민들의 혼란과 피해를 막기 위해 한의학을 폐지하거나 국민건강의료보험에서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 면허제도 때문에 한의학을 쉽게 검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의사는 침술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지만 한국 의사는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 즉 한의사 면허제도가 없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한의학을 오로지 한의사만 다룰 수 있다.
  • 한의사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한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은 한의학과 현대의학 비중이 거의 3:7이다.관련링크 한의학에 각과 전문의 수련 제도가 도입되는 등 점차 현대의학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식의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대학이 경희대 한의학과다. 현대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은 한방식 진료보다는 현대의학식 진료에 더 익숙하여 환자들에게 기나 혈보다는 점점 현대의학 용어를 써가며 설명한다. 대중들은 이미 청진기를 들고 흰 가운을 입은 한의사들이 의사인지 한의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한의학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한방의료기기는 외면당하는 반면에 X-ray와 초음파진단기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어떻게든 사용하고자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한의학에 현대의학을 많이 도입한다면 한의사 개개인의 능력은 높아질지 몰라도, 반대로 이렇게 한의학이 현대의학을 닮아간다면 언젠가는 한의학의 입지가 좁아져 한의학의 존폐문제가 더 대두 될 것이다.
  • 한의학에서는 "의자의야"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시대에 따라 의미가 바뀌었는데, 원래 의사와 환자사이의 자세나 성실성, 주의력을 일컫다가, 손사막 등이 병의 소재를 알아내는 능력으로 이야기 했고[37] 송나라 때부터는 임기응변을 일컬었다.[38] 즉 시대나 사람에 따라서 뜻이 제각각이었던 문장인데, 종종 이 문장과 해석을 두고 과학적 검증보다 개인적 경험을 더 중히 여기느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39]
  • 현대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한의학이 SARS라든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과 자주 비교되고는 한다.[40] 현재 전염병에 대한 치료능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기에 정부차원에서 한방병원을 전염병처리 기관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항생제의 발견이 중세시대의 수명을 두배 이상으로 끌어올린건 다 이유가 있다.
  • 과학철학 측면에서 한의학을 본다면 우선 생물과 생명 현상을 적절한 수준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생명과학과는 다르게, 한의학은 생기론적인 입장을 많이 담고 있다. 또한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부족했던 시기에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와 같이 정, 기, 신 등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문제는 이러한 철학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어서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환들에 대해 한의학적 치료의 효과성을 주장하지만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탈모, 알레르기, 유전병, 암 등에 대해 한의학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하고 환자를 유인한다.

6.2.1. 반론


  • 면허제도로 한의학을 보호 및 독점하여 밥그릇을 챙긴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다. 한의사는 적어도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았지만, 소위 말하는 전통의술가들은 제대로된 교육도 받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치료비는 한방병원보다 더 비싸게 받았다. 그중 구당 김남수는 사기꾼으로 스스로는 자격증이나 면허도 없으면서 타인에게 돈을 받고 침사면허를 팔았고, 자기가 말한 경력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한의사들보다 실력이 좋다고 하였으나, 한의사가 직접 실력을 겨뤄보자고 하자 대결을 회피하기도 했다. 즉, 한국에서는 면허제도가 전통의술가들의 활약을 제한하는 것보단 이런 유사의학 사기꾼을 거르고 국민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이 더 크다.
또한 앞서 말한 정체성 문제는 현대 의학계,정확히는 대한의사협회에서 일종의 진영논리를 저지른 사례도 있다. 일부 한의사/의사들은 상대의 자격도 함께 취득한, 즉 공식적으로 (양)의사 면허와 한의사 면허를 동시에 취득한 복수면허자도 있으며,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라는 별도의 협회도 있다. 그런데 의사협회에서는 복수면허자일지라도 한의원을 개원한 이들은 일반개원의 의사회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한의사들에게 '제대로 의료기기 쓰고 싶다면 의대 나와서 의사 자격 따라'라고 해놓고, 정작 실제로 의사 자격을 획득한 복수면허자는 의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 반면 한의사협회에서는 이들 복수면허자들을 한의사가 아니라고 내치지는 않고 있다. 즉,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선 의사협회가 더 폐쇄적인 입장을취하고 있다
  • 의사들이 침을 연구용으로 못 쓰는 이유는 당연히, 의사는 침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경우 그나마 학부시절부터 예과에서 졸업 때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을 교육받지만[41], 의사들은 침에 대해 배우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중국, 일본의 의사들이 한의학을 교육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용은, 현재 의사들의 경우 보편적으로 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혹은 침을 놓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Electrical Muscular Stimulation 혹은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의 모습이 의심된다. 이러한 것은 주로 미국에서 complementary medicine을 비롯하여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미 한국 한의학계는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학의학연을 두고, 또한 전국 각지 한의대에서 분명히 연구중이며, 이는 상당한 투자를 필요로 하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성과를 내고 있다.
  • "의자는 의야"는 어디까지나 전해내려오는 문장일 뿐 그것이 절대적인 행동지침이 아닐 뿐더러 실제 한의학계는 적극적으로 과학적 검증과 임상시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 성공적인 연구성과도 여러 개 있다. 실제로 한의사들 역시 약침과 같이 침술 등에 현대 의학을 접목시키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 2010년대 중반 이후로 그 이전에 비해 여러 한의학적 치료의 기전이나 효과, 안전성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빠른 속도로 구축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영 의료보험Medicare에서는 미국가정의학회(American Academy of Family Physicians)미국내과학회(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의 임상진료지침에서 침 치료를 권고함에 따라 2020년 초에 만성 요통에 대한 침 치료를 보장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42]. Case series나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출발해서 신경과학적·분자생물학적 기전 연구, 후향적·역학적 연구, 대규모 이중맹검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 메타분석, 체계적문헌고찰 등 다양한 문헌 보고가 이루어진 덕인데, 오늘날의 한의사한의학 연구자들이 어떤 식의 접근을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6.3. 양진한치


양진한치 즉, '''현대의학적으로 진단하고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행위'''가 한의학계에서 널리 쓰이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법적으로 한의사와 의사가 보험 청구 시 질병의 이름인 상병명(질환명)을 똑같이 쓰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의사들도 일반 병명을 사용하는데, 한의학계에서는 이를 위해 특정질환에 대한 진단법, 필요 검사 등을 포함한 한방병명체계를 마련해두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질병통계를 낼 때 병명과 환자 비율을 보고해야 하기에 동양의학계에서도 양진한치가 대세다. 그런데 이를 두고서도 여러 논란이 있다.
  • 어디까지나 제도적으로나 환자들이 알아 듣기 쉬우라고[43] 주로 질병명을 분류할 때 양진을 사용할 뿐. 치료기준은 어디까지나 한진인지라 질병분류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가령 한의대에서는 보통 양방병증으로 찾아온 환자를 다시 한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양방병증에 대해서 공부한다. 구체적으로 한의대 교과서에서는 두통을 다룬다면 편두통, 긴장성두통, 군발성두통 및 각종 두통의 현대의학적 내용을 제시하고, 이 두통에 대해서 한방 진단법을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한방 치료법을 제시한다.
  • 양진을 위한 실력을 한의사가 갖추고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가령 의사들이 의대 6년과 추가적인 전문의 수련 과정을 통해 현대의학지식을 습득하는데[44] 비해 한의사의 현대의학 습득시간[45]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게다가 한방 고유의 진단이 효용성을 잃었으니 양진에 목을 맨다든가, 한방의 질병 분류와 의학의 질병 분류가 모두 호환되지는 않는데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양진을 허용해도 되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 반대로 양진한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배타적이란 주장도 있다. 한의사들도 한의과대학에서 현대의학교육을 받으며, 실제로 양진한치 때에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양진용어는 그래봐야 대학교 학부 교육만으로도 익힐 수 있는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한의사가 더 전문성을 요구하는 세부적인 양진을 하지도 않는데, 양진에 필요한 실력을 지나치게 높게 두고 배척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역시 반론으로서 현재 현대의학에서는 비슷한 증상 혹은 일부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는 증상을 두고도 세세하게 나뉘는 질병들에 대해 감별진단하는 훈련을 의과대학 본과 과정부터 지속적으로 받게 한다. 이는 본과 과정이 끝날 무렵 국가시험을 치르고 졸업한다고 해서 끝이 아닌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보완되어서 한 명의 훈련된 의사가 탄생하게 되는데, 한의학은 이에 대해 전혀 고심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개략적 혹은 주로 알려진(most common) 질병들만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지속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을 배우지 않았는데 한의학에서 함부로 현대의학을 이용하려는 모습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들도 현대의학의 비중이 10중의 7에 가까은 한의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전문의의 존재가 있는 것은 한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논리라면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일반의들은 의료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또한 질병코드에 대한 규제는 보건복지부가 행한 것이며, 한의계는 이에 대해 분명히 반발한 적도 있다.

한마디로 한의사의 양진의 역량이 핵심이며, 한의사측은 충분하다고 보고있다. 당장 일본에서 의사가 침치료를 하거나 한약을 처방하면 양진한치인데 의사들의 양진한치가 없다는 주장은 무리수일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래에 기술된 대한한의사협회 골밀도 의료기기 시연사건에서 한의협 김필건 전회장의 오진으로 한의사들의 현대의학기기 사용 능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었던 바 있다.

6.3.1. 대한한의사협회 골밀도 의료기기 시연





6.4. IMS




7. 관련용어


의료 관련 정보를 참조할 것.
(한약, 사상의학, 상한론, 침구학 등)

8. 바깥고리



9. 같이보기



[1] 1993년까지는 동의학(東醫學)이라 불렀다.[2] 굳이 음양오행학설이 아니라 음양학설으로 표기한 이유는 '''사상의학'''이라는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3] 실증주의 과학만 과학이고 자연 철학은 사변이성일까 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한 논의다. 전자의 말을 따르자면 생각보다 과학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사라진다. 당장 정신분석학만 해도... 과학철학을 참고할 것.[4] 이에 대한 내용이 마왕퇴 한묘에서 발굴됨.[5] 흔히 금원사대가라고 부른다.[6] Traditional Chinese Medicine[7] 한약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이중맹검법이나 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시행해서 효과성을 보인 처방이 다수 있다.[8] 그래서 중국의 서의대나 일본 의대 모두 한방 관련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일본 의대의 경우 일본 의과대학 학장들의 협의로 16시간 이상의 한방교육을 받도록 하였고 실제 80개 대학 중 60개 이상이 16시간 이상의 한의학 교육을 받고 있다. 이 수치는 웬만한 한의대의 기초 의학 교육과 비슷한 수치다.[9] 대표표기를 뭐로 해야 될지 정립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는데, 본인이 직접 '''식물화학자'''라고 발표했다.[10] 학질. 말라리아와 유사하다.[11] 이 청호 연구는 중의학에서 사용하던 약물(청호), 주치증[10]과 약물 가공법(저온추출)을 현대의과학 및 약학으로 검증하여 재가공한 연구로서, 중국에서는 중서결합의 성공적 사례이자 중의학이 준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벨위원회에서는 '''중의학이 아닌 현대 약리학적 연구'''에 준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는 '''양자가 결합한 사례이지만 최종 결과가 약리학적 결과'''였으므로, 중국이나 투유유 여사 본인의 주장과 노벨위원회의 발표가 충돌한다고 보긴 어렵다.[12] 위에서도 언급했듯, 실제 권한으로도 한국의 의사 권한을 포함해서 갖고 있다.[13] 중국은 아직 전문의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14] 일본으로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최신 지식인 현대의학을 조선인에게 교육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주요 거점도시 위주로 일본인들의 진료를 위한 현대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산간벽지나 오지에는 기존 한의사들을 활용하여 의생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일본이 한국에 현대 의학이라는 신식 문물을 '''"베풀어''''' 줌으로써 호감을 얻음과 동시에, 한국 의학계를 일본이 독점하려는 의도 역시 숨어있었다.[15] 의생으로 격하된 것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명칭은 현대의사들이 도입되면서 시작된 용어이며 이전에는 의원이라고 주로 불리웠다. 공무원인 의원에서 해고된 상태로 그냥 일반 의생으로 바뀐 것이고 새로운 현대의학을 학습한 의료인을 의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16] 일본 본토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50여년 이상 새로운 전통의사 배출을 막아서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소멸하였다.[17] 다만 이 시기엔 서양도 근대적인 해부학, 생리학과는 거리가 먼 4체액설을 따르는 갈레노스의 의학을 기초로 하였다.[18] 지금도 과립상 Ex제제의 생산 품질은 일본이 좀 더 뛰어나다.[19] 보통 부형제 70% 약물 30%정도[20] 일본의 엑스산 제품 질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국내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현재 국내 한약재의 품질기준치가 명확치 못하여 같은 이름이 붙은 약재라면 모두 같은 취급을 받아 고품질한약재의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 한 문제이고, 이외에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엑스산제와 약국에서 사용하는 엑스산제의 구분을 인위적으로 시켰다는 문제도 있다. 한의원과 약국 간의 구분을 위해 약국에 공급되는 엑스산제는 한약전체를 한꺼번에 전탕하여 산제를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한의원의 엑스산제는 한약탕제를 구성하는 각 약물을 각각 산제를 만들어 이를 비율대로 섞는 방식을 취한다. 이 경우 나중에 특정 약물을 추가하여 약제 구성을 할수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약이 섞여 탕전되면서 생기는 합성의 효과를 무시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 현재의 엑스산제는 부형제를 포함시키도록 되어 있는데[19] 이 때문에 1회 복용량이 쓸데없이 많아져 복용 시 불편하고 심한 경우에는 소화장애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문제점을 개선한 백산제(일본엑스제와 같은 방식)도 현재 나와 있으나, 제작 비용 때문에 늘어난 비용을 건강보험 측에서 인정하지 않아 비용 문제로 보험 적용이 현재 되지 않고있다.[21] 나머지는 요시마츠 도도[22] 한약(한방약)을 부를 때도 이렇게 줄여 부른다.[23] 맥진이 여기에 속한다[24] 현대의학에서도 하는 일이다.[25] 경락이 기가 흐르는 실체가 있는 선이라는 주장은 점점 도태되고 있는 이론이다.[26] 한국의 한의학이 한자로 한나라 漢으로 사용했으나 1986년 이후 법 개정을 통해서 韓으로 바뀌었다. 그 이전 기록은 광속 수정 중인 듯하다. 글자적으로 독자적인 길은 1986년이다.[27] 억지로 적용시키자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제마의 저술 내에 오행의 등장은 없다. 심지어는 황제내경에서 설명된 오행이론을 사실상 쓰지 않는다며 배격하는데, 이래놓고 정작 이제마성리학의 심성이론을 토대로 사상의학을 저술했다. 성리학에 매몰된 유의 출신이니 그 한계라고 봐야 한다.[28] 미국에서 2020년을 목표로 DO와 MD의 의료일원화 추진이 진행되고 있어 미국 정골의학협회(AOA,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의 교육에 참관하는 의사(MD, Medicine of Doctor)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46[29] Sackett DL, Rosenberg WMC, Gray JAM, Haynes RB, Richardson WS. Evidence based medicine: what it is and what it isn't. BMJ. 1996;312(7023):71-2.[30] 이전에는 '의사 개인의 임상 경험이 아니라 무작위 대조군 실험이나 이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과 같은 과학적인 근거'를 활용한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이는 근거중심의학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다. 근거중심의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David Sackett 역시 위 BMJ 논문에서 '좋은 의사는 개인의 임상적 경험과 최선의 근거를 모두 활용해야 하며, 이 중 어느 하나로는 충분치 못하다. 임상적 전문성 없이 시행되는 의료행위는 소위 '근거'가 휘두르는 폭력에 노출될 위기에 처하는데, 아무리 훌륭한 근거라도 개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거나 적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 시점에서 최선의 근거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이내 구식이 되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31] Kelly RB, Willis J. Acupuncture for Pain. Am Fam Physician. 2019;100(2):89-96.[32] Qaseem A, Wilt TJ, McLean RM, Forciea MA. Noninvasive Treatments for Acute, Subacute, and Chronic Low Back Pain: A Clinical Practice Guideline From the 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 Annals of Internal Medicine. 2017;166(7):514-30.[33] Kolasinski SL, Neogi T, Hochberg MC, Oatis C, Guyatt G, Block J, et al. 2019 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Arthritis Foundation Guideline for the Management of Osteoarthritis of the Hand, Hip, and Knee. Arthritis & Rheumatology. 2020;72(2):220-33.[34] National center of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2014년 명칭변경[35] 즉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서 안전성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으나, 실제 의학적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36] 혹자는 이것은 한국 의료전달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각과 전문의나 종합병원에 보내기 전에 교통 정리 역할을 하는 주치의제도가 정착이 안 됐었고, 외국에 주치의제도가 활발한 국가들의 경우엔 종합병원에 가기 위해선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주치의를 거쳐가야할 때가 많다며 차이를 근거로 든다. 하지만 그런 외국의 경우도 저런 응급질환의 경우 119를 통해 바로 치료능력이 있는 종합병원급 응급실로 바로 보낸다.[37] 왈 "의자의야라. 神은 손과 마음으로 진찰하는 와중에 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그 정황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말로서 다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즉, 의자의야의 意는 의사의 정미한 개인능력이었다.[38] 주진형이 "의자의야라. 병이 지나감에 임기응변으로 대해야지 각주구검해서는 치료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39] 이 문단을 보면 한의사가 아니면 들을일이 없는 문구까지 동원해 반론을 만들어내고 그에대한 반박을 하여 정당화 하려는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있다.[40] 중국에서 SARS 등에 한방치료를 도입하려고 한 것은 단지 치사율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료비 자체가 저가이고, 상대적으로 공급받기 쉬운 한약제제로 치료할 수 있으며 증후군 상태로 오는 후유증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41] 물론 그렇다고 의과대학의 수준만큼 배우지는 않는다.[42] 요통(등 통증, dorsalgia)는 한방의료기관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상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출처[43] 이와 비슷한 예를 들자면 미국에 있는 아유르베다나 이란 전통의학자들도 많은 수의 용어가 현대의학용어로 번역되어서 나오고 있다.[44] 예과, 실습기간 다 떼고 이론만 2년 반~3년을 배우고, 핵심적인 요소는 실습을 통해 습득한다.[B] [45] 극단적인 의사나 [B] 사실 카이로프랙틱도 배우려면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들도 나름대로의 논리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습득기간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방은 국가면허로 인정하면서 왜 자기들은 인정해주지 않는지 불만이 많고 한방에서 추나요법을 들고 나오는 것을 두고 자기들 것을 베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불만이 위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첨언하자면 현재 한의대도 본과 1학년부터 양방과목을 배우기 시작해 본2 본3 때는 절반 이상이 양방 내용이다. 본4 실습까지 하면 1~2년 밖에 배우지 않는다는 소리는 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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