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해전
1. 개요
황해해전(黃海海戰)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북양함대와 일본의 연합함대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압록강 해전(Battle of the Yalu River)이라고도 부른다.
2. 배경
일본의 초기 작전은 한반도에서 작전에 결정적인 재해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평양 전투 이후 이홍장은 한반도에서 점점 불안해지는 중국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북양군의 증원을 요구했다. 길은 통과할 수 없을것으로 여겨졌기에 다수의 인원과 장비가 이동할 수 있는 실행가능한 길은 바다였다. 중국의 함대는 더 크고 더 큰 포로 무장되어 있었고 일본의 함대는 더 빨랐다. 이로 인하여 일 해군은 열린 바다에서 우세하였기에 이홍장은 북양함대에게 전력을 보존할것을 지시했다. 이에 북양함대는 일본의 속력에서의 우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뤼순항에 주둔하여 일본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광서제는 일본 함대가 중국땅 근처에 온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일본 함대를 격퇴할것을 지시하였다.
서류상으로, 북양함대는 전함 2척을 포함한 더 강력한 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일본에게 대응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북양함대는 탄약의 부족으로 포수들은 충분한 포격 훈련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포탄의 부족은 청나라의 부패가 원인이었는데 많은 포탄이 시멘트나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거나 구경이 맞지 않는등의 이유로 발사가 되지 않았다. 화약도 문제가 있었는데 상당수의 화약이 오래되거나 부적합한 물건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짜 포탄은 거의 없었고 실사격 훈련 또한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다.
3. 전개
일본의 연합함대는 2개의 대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쓰보시 코조가 지휘하는 4척의 순양함으로 구성된 유격 함대와 기함인 마쓰시마가 포함된 주함대가 뒤를 따르는 형태였다. 한편 북양함대의 정여창은 가장 강력한 배(진원, 정원)를 중앙에 배치하고 남쪽을 향하는 열을 만들었다.
오전 늦게 양 함대는 서로에게 접근하였으며 마쓰시마가 정원에게 포격을 가하는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북양함대는 배들이 나란히 배열되게 하려고 하였으나 배들간의 속력의 차이, 신호의 혼란등으로 정원과 진원이 돌출되고 나머지 배들이뒤로 처진 쐐기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유격함대가 앞장서고 주함대가 따르는 종대로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이토 제독은 유격함대에게 북양함대의 우측을 공격하게 지사하였다. 청 함대는 5,000m 거리에서 포문을 열었다.
4. 결과
이후, 여순항에 피항한 북양함대는 일본 육군에 의해 육지로부터 포위될 뻔 했다. 북양함대는 여순항을 겨우 빠져나와 산동의 웨이하이웨이로 갔지만 일본 해군의 추격으로 결국 항복했다. 일본이 황해의 제해권을 차지함으로써 대륙으로 일본 육군이 진격하는 일이 수월해졌다.